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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로 결정됩니다 (마 7: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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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로 결정됩니다 (마 7:15∼23)

"거짓 선지자들과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요한복음 15:1-12절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 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두 잘라내시고 열매 맺는 가지는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고자 깨끗케 손질하신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으니 내 안에서 살아라. 나도 너희 안에 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 가지에 붙어 있지 않고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는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 할 것이다. (My Father is the husbandman. Every branch in me that beareth not fruit he taketh away: and every [branch] that beareth fruit, he purgeth it, that it may bring forth more fruit.) 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다. (I am true uinetree)"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유산인 금 포도나무를 보시고 “내가 참 포도나무라.” 하신 요한복음 15:17절은 성전 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에 포도나무 비유가 많습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했습니다.(이사야 5:1-7 에스겔15:, 19:10 호세아10:1 시편80:8)

그래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미카비 시대는 돈에다 포도나무를 그려 넣었습니다. 성전의 영광의 하나도 성소 앞을 장식할 굉장한 순금포도나무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머루를 맺었다 한탄하신 적도 있습니다. 저 값비싼 순금포도 나무 넝쿨을 보라 열매가 많지 않으냐. 이와 같이 너희가 참 포도나인인 내게 붙어 있는 가지라 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 서로 다르고, 또 행복이 무엇인지 규정된 바가 없기에 자기가 원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고 어쩌면 불행만이 닥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의 요인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1) 첫째는 일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할 일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일할 때에는 바쁘다. 힘들다, 피곤하다 하지만 세상에 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병들 때, 혹은 퇴직할 때, 늙었을 때에 이런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2) 둘째는 바램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저 미래는 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절망합니다. 사람은 현재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미래지향적인 약속을 받고, 보다 더 밝은 미래를 바라보는 소망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3) 셋째는 사랑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얼핏 사랑받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됩니다마는 사실은 이보다 더 절실한 것이 사랑의 대상입니다. 내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할 것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4) 넷째는 믿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믿음의 대상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믿어볼 것이 없다는 사람은 벌써 죽은 사람입니다. 참으로 확실한 믿음의 대상을 지니고 '나는 이것을 믿노라'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귀한 행복의 근원이요. 대상이 되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 회복이 통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Ⅰ.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과일나무가 그리 흔하지는 않습니다. 무화과, 가람, 포도 등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어디를 가나 포도나무는 어렵사리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농촌에 가면 사고, 복숭아, 포도, 자두나무 전지를 합니다. 기술자는 금방 압니다. 열매 없는 가지는 아무리 굵고 튼튼해도 잘라버립니다. 그런데 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잘린 가지에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선한 목자다. 내가 참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요14:6), 내가 생수다. 내가 생명의 떡 이다.”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참 포도나무”라 하셨습니다. 구원 얻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어떤 주간 신문에 연제가 된 내용가운데 기사를 소개하면 그는 전라도 어느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시골 사람이 될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사모님은 아동문학가인 지성인 이었습니다. 그는 목사님보다 더 일찍 시골농사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외국에서 공부해서 신학박사입니다. 다들 선망하는 대학교수를 싫다하고 몇 안 되는 농촌교인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 믿기 전에는 절에서 꾀나 높은 자리에 있었던 분이랍니다. 그가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이시대의 등불입니까?

미국의 백화점 왕이라는 와너메이클를 아시지요. 그는 철저한 기독교 교인입니다. 그는 비누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누는 물에다 적셔 손으로 부비면 비누는 닳아 점점 작아집니다. 그러나 비누가 작아지는 만큼 사람의 때는 지워집니다. 끝내 그 비누의 모양은 없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대의 비누처럼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한 알의 땅속에 묻힌 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밀알이셨습니다. 사람은 허물투성입니다.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습니다. 상처입고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요즈음 유행어가 “짱” 입니다.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을 “얼짱” 이라고 합니다. 몸이 잘생긴 사람을 “몸짱”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기자는 예수님을 “고운 모양도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세주 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Jesus said unto him,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th unto the Father but by me.)" 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교만합니다. 자만심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잠꼬대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화성에다 위성SPIRIT을 발사 했습니다. 지금 하늘에는 수많은 위성들이 돌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것도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할 수 없는 것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함들은 현대과학을 너무 믿고 맹신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떠나서는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대속의 원리를 통해서만 죄 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유대인들은 포도나무였습니다. 율법에 유대인은 일년에 한 번 성전 단 제단에 쓸 나무를 헌납해야 합니다. 거기 포도나무는 금지되었습니다. 전지한 나무는 불에 태워 버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범인입니다. 에수님께서 메시야 되심을 거부하고 사사건건 트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불행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리스도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시기 때문니다. (Jesus christ is true vine) 우리는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영적으로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합니다. 예수님 떠나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에 빚진 사람입니다. 우리 표정은 조금만 더 기쁜 쪽으로 바꿉시다. 구원 받은 사람은 기뻐합니다. 우리 모두가 범사에 감사합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2. 심은 것은 반드시 그대로 거둡니다.

  포도나무는 관상수가 아닙니다. 열매를 목적으로 하는 유실수 입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으면 일차 가지를 자릅니다.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으면 나무를 뿌리 채 뽑아 태워 버립니다.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힌다.' 얼마나 상식적인 이야기입니까? 간단한 이치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그러나 이 간단한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불한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한당이 무엇입니까?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들입니다. 수고하지 않고 거두겠답니다. 이는 도박꾼의 마음이요강도의 마음입니다. 땀 흘려 거두어야 하건만 흘림 없이 얻고 누리겠다고, 행복하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거짓을 심고 안정을 바란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직 진실이 있고야 안정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거짓은 거짓으로, 불의는 불의로 나타나는데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거짓과 위선과 불충을 심고서는 아름다운 것들 안정된 것들, 평안함을 기대합니다. 이미 그 기대 자체가 병들고 잘못되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대는 회의주의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뭇가지에서 진리라는 열매를 찾고 있다." 여러분, 허무와 회의주의 속에서 어떻게 진리의 열매가 맺히겠습니까?

바로 이런 기대가 사람을 절망과 더 무서운 불의로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마당 한구석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감나무 옆에는 전봇대가 있습니다. 전봇대는 높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그대로 있거나 아니면 점점 썩고 약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나무는 키는 작아도 봄에는 푸르게 잎이 돋고 가을이면 빨갛게 감이 열립니다. 감나무와 전봇대,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은 반드시 자라게 되어 있고, 운명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에 대해서 우리는 진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이 사십이 넘었으면 자기 얼굴 표정에 책임을 지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마음이 항상 울적하고, 분함과 한과 우울함에 맺혀 살았다면 사십이 넘어서는 분명 얼굴 표정이 다릅니다. 실제로 저는 그런 것을 많이 봅니다. 젊은 사람들은 분명히 예쁜 사람과 안 예쁜 사람이 있어요. 부모가 그렇게 낳아주었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나이가 좀 들면 다 비슷비슷해요. 예뻐도 그저 그렇고, 외모는 별것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게 하나 있어요. 얼굴빛이 다릅니다. 한 사람은 얼굴이 썩었고, 한 사람은 얼굴에 빛이 있어요. 그것도열매입니다. 또 오십이 넘었거든 주변 환경에 책임을 지라'고합니다.

'주변사람들이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힐까?', '왜 나한테 왜 이렇게 불친절할까?"라는 생각이 듭니까? 그런데 이것이 내가 지금가지 심었던 열매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이 오십이 되도록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지 마세요.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이치 앞에 겸손하고 진실한 사람의 자기인식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분명하고 강하게 말씀합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절)."

이것은 자연의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좋은 열매를 맺고자하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좋은 나무가 되고자 해야 합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종자로부터 비롯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를 생각해보세요. 좋은 씨앗이 뿌려져야 그로부터 좋은 나무가 있고, 좋은 나무가 되고야 좋은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열매를 보면서, 이 결과를 보면서 저 봄에 뿌려진 씨앗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진실해야 합니다.

심은 것을 거두는 이귀한 진리를 잊지 않고, 믿음으로 심고, 선으로 심고, 주어진 직분에 충성으로 심고, 기도와 감사로 심고, 오직 하나님을 위한 헌신으로 심고, 십일조와 감사로 심고, 성미로 심고, 물질과 시간과 정성으로 심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반드시 열매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심는 것은 선택이요, 자유입니다. 그러나 추수하는 것은 심판이요, 보상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악을 심었으나 웬만하면 악을 거두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악을 꼭 거두고야 맙니다. 이것은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좋은 씨앗을 뿌렸는데 나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심판도 은혜도 다 같은 맥락입니다.

한 번은 이화대학 부속병원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돈많은 집 외동 며느리가 아들을 낳게 되자 그 축하 분위기가 대답하더랍니다 마치 무슨 왕자라도 태어난 것처럼 화환이 오는가 하면 선물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참으로 굉장했는데 그후에 아이의 혈액형을 조사해보니 그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낳을 수 있는 아이의 혈액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당 의사가 조용한 시간에 산모에게 개인적으로 "당신은 이 어린 아이에 대하여 이러이러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하고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산모가 '생사람 잡는다.'며 펄펄 뛰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담당의사가 '당신이 아무리 그렇게 나와야 소용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이 아이가 자기 혈액형을 알게 될것이고 어머니 아버지의 혈액형도 알게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아이가 나는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 아니구나 라고 알때가 올것을 대비해서 미리 말씀 드린다.'고 했더니 그 산모가 고백하기를 '결혼한 얼마후 옛날 애인을 만났는데 하필이면 그 사이에 애기가 생긴 것이다.'라고 고백하더랍니다.

여기에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눈앞에 낳아 놓았으니 그것이야 말로 사실이 어떻게 그 열매가 아니라고 할수가 있겠습니까?문제는 악한 열매를 심었기 때문에 악한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무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것, 겉으로 나타난 것보다 속에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관심이 더 있어야 합니다. 완성은 양에 있지 않고 질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이지 얼마를 소유했느냐에 있는 게 아닙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라.' 얼마나 평범하고 엄연한 진리입니까?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의 열매가 있습니다. 자, 보세요. 마음은 씨앗입니다. 말은 열매입니다.  뜻은 나무요, 행위는 열매입니다. 인격은 나무요, 공인된 것이나 평판은 그 열매입니다. 나쁜 열매를 맺었으면 그것을 인정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연은 없습니다. 환경이나 분위기를 탓하지 맙시다. 이것은 성경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세상을 원망할 것 없습니다. 환경과 조건은 양의 문제이지 근본적인 씨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물론 바꾸어지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비바람이 치고, 가뭄이 들고, 장마가 지고, 근본적으로 거름이 잘못되고, 또 어떻게 됐다고 해서 콩이 팥으로 되는 것을 봤습니까? 콩은 콩입니다. 많이 맺고 적게 맺는 것은 별문제입니다. 콩이 다른 것으로 변화하지는 않습니다.

따라합시다. "환경이 씨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주는 교훈입니다.

간혹 부부 싸움하다가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남편이 어느 사이에 그만 악마같이 변해서 아내에게 폭력을 쓰고, 폭언을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당신이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하는 아내의 비판에 남편은 이런 변명을 합니다.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너하고 사는 동안에 이렇게 됐다. 다 너 때문이다.' 이것이 정말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안 되는 얘기입니까? 말이 이상합니다.

가만히 보면 경건한 가정에서 깨끗하게 자란 사람은 배운 바가 없어서 욕을 못합니다. '그저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라고 합니다. 그 이상은 나쁜 말을 배우지 못했거든요. 그러나 가정에서 못된 것을 배우고 보고 자란사람은 입만 열었다 하면 흉한 말이 막 나옵니다. 그 욕설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래서 흔히들 '실패는 사생아'라고 말합니다. 보세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이라 하더라도, 지구가 두 동강이 나더라도 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그것이 오늘의 성경이요,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그가 무엇을 받고, 무엇을 들었느냐 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간혹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말할 때가있습니다. 심리학자는 무의식도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잠꼬대도 조심하세요. 그것도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꿈도 회개하세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까?

「모택동 어록집」에 보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는 꿈을 꿔도공산주의에 대해서 꿈을 꾸어라. 반동적인 것을 꿈꾸었다면 자아비판을 하라." 뭘 알고 하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의식의 세계, 사상의 세계, 행위의 세계까지 다 열매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런고로 소중한 것, 귀한 것을 심어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고야 좋은 열매를 기대할 것이니까 말입니다.

2차 대전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주 젊은 청년 하나가 총탄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군목이 말을 합니다. 이제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 대신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드리지요. 무엇이라고 쓸까요? 청년은

"어머니께는 제가 기쁘게 죽었다고 그렇게 써주세요."라고 대답합니다.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교회학교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적,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준 분이지요. 그 분께는 제가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고 써주세요."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군목은 그대로 청년의 어머니에게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으로부터 회답이 왔습니다.

"편지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사실 교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별로 열매가 없고 지겨워서 한 달 전에 사표를 냈는데 오늘 이 편지를 받아보고 내가 한 일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되기에 다시 교회학교 선생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에 철없이 들었던 한마디가 마음속에 심기어져서 전쟁터에서 죽은 청년의 생명을 인도했습니다. 심는다는 것도 좋지만 좋은 씨앗을 심어야 좋은 나무가 된다는 이 원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굳이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고 몸부림치지 안아도 됩니다. 선하게 사느니, 선행을 하느니, 봉사를 하느니 모두 다 하잘 것 없는 일입니다. 좋은 나무만 되면 언제라도 좋은 열매는 맺게 되어 있고, 또 그럴 기회는 오는 것입니다.

예컨대 성경으로 돌아가서 보십시다.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좋은 일 선한 일을 한다고 애를 썼습니까? 그러나 결국은 위선자가 되고, 외식주의자가 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버리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악한나무였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름대로는 가르치느라고 떠들어보았으나 결국은 거짓, 그것 외에는 거둘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16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열매로 그 나무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열매의 진실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회개하고,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 원리에 입각하여 예수님 말씀을 살펴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요 15:5)"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갈라디아서 6장의 말씀대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 것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거두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가되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열매는 반드시 뒤에 따라올 것입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말했습니다. "I think, therefore I a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여기에 이성을 소중하게여기는 인생관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도 "나는 생각함으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충만하고, 그 말씀에 감동 감격하고, 그것이 내 의지가 되기에,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내 지식, 내 의지 내 성품, 내 고집 그것으로부터 맺힌 열매가 무엇입니까?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읍시다. 이제 사무총회와 연말 결산을 앞두고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옛날 속담에  "개고리 3년 두어도 황모가 못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실적으로 생각하여 보면 근본적으로 못된 것을 두고는 아무리 가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그 종자를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일도 어떤 경우에는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올수도 있고, 때로는 마음의 교양삼아 드나들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 가지고 신앙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확신이 서던가요. 친구를 위해 교회나와주니까 되던가요. 혹은 좋은 설교를 들었다고 되던가요. 그가 누구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언젠가 한번은 하나님과 일대일로 부따쳐야 만나지는 그런 관계가 있고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구주로 영접하고 믿어서 근본이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미등면 소속이 변해집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가지 않고 여타의 인간 교양이나 수양을 가지고는 절대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내 마음에 사랑의 씨앗이 심겨지고 그 씨앗이 사랑의 생명으로 작용하게 될 때에 어느 사이에 나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마음속으로 맹세하며 사랑하겠다고 하지만 그런 사랑은 이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슴을 열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은혜 안에 있을 때, 말씀과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할 때에 알게 모르게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본ㅁ분 16∼18절에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항상 인정을 받는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52에 보면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열매는 믿음과 직결되는 것으로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그 진위가 결정됩니다. 올바른 믿음은 올바른 행위를 낳으며, 행위는 믿음을 더욱 성숙하게 합니다. 따라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로 좋은 신앙인지 아닌지 결정됩니다.

1) 빛의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2)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명령은 바로 전도입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하셨습니다. 연보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0,11)

3) 연보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0,11)

4) 연보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0,11)

믿음의 좋은 나무가 되어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인 빛의 열매, 전도의 열매, 연보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아름답고 풍성하게 맺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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