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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절망속에서 희망을 (사 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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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속에서 희망을 (사 40:1-5)

<'虛經營' 신드롬>
성탄절이 꼭 이틀 남았습니다. 금년에는 성탄 분위기가 별로 나지 않습니다. 아마 대통령 선거 때문인 것 같지요. 어쨌거나 대선이 끝났습니다. 한 10년 동안 조금 왼쪽으로 치우진 감이 없지 않았는데 국민들은 좌파 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보수측을 대변한다는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을 합할 경우 거의 7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이번 선거는 역대 대선 중에 가장 재미없는 게임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율 1위인 후보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싱거운 선거판에 재미를 불러  일으킨 후보가 한 사람 있습니다. 기호 8번 허경영씨입니다. "8번 찍으면 팔자가 핀다"는 플래카드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허경영씨는 기인(奇人)으로 소문난 사람입니다. 자신은 IQ가 430이며 대통령을 네 번 할 운세를 타고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내건 기발하기 짝이 없는 대선공약이었습니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신혼부부에게 1억원을 주고, 아이 하나를 낳을 때마다 양육비로 3천만 원씩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6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70만원의 건국 수당을 지급한다고도 했습니다. 고등학생들에게는 3년 동안 딱 한번만 시험을 보게 해서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했습니다. UN 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기겠다고도 했습니다. 특히 전국을 4개 도(道)로 축소시키겠다는 공약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역감정을 해소시키려면 경기도를 포함한 서울 지역, 충청도와 강원도를 하나로 묶은 충강도, 경북과 전북을 합한 경전도, 전남과 경남을 합한 전경도, 네 개의 도로 재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보통 사람이 볼 때 허무맹랑한, 대단히 비현실적인 공약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0.4%의 득표율을 올려 7위를 기록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누르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씨는 자기는 비록 본선 오프라인에서는 졌지만 인터넷 온라인에서는 1등을 했기 때문에 자기가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때묻지 않은 14세 청소년들부터 투표권을 주게 해서 다음 번에는 자기가 꼭 대통령이 되겠노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허경영이라는 이름을 허(虛), 즉 '빈 경영(經營)'이라고 풀이한다면 허경영에 걸 맞는 허공약(虛公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네티즌들이 허경영후보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정치 냉소증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대선 판도가 워낙 밋밋하고 재미거리가 없었던 차에 비록 황당한 공약들이기는 하지만 가장 통렬한 웃음거리를 준 후보가 허후보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허씨는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한번도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쓰지 않고 당당하게 정책 대결만 했기 때문에 더욱 더 큰 인기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허씨가 내건 공약들은 거의가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냥 듣기만 해도 괜히 기분이 좋고 절로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까?

<절망속에서 희망 찾기>
누가 생각해도 코웃음을 칠 한 기인의 이야기를 조금 장황하게 늘어놨습니다. 성탄절은 다가오는데 뭔가 어깨가 축 늘어진 분들이 생각나서 말씀드렸습니다. 웃음이 사라진 분들이 웃음을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미거리가 사라지고 인생이 무미건조한 분들이 즐거움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로 수많은 어민들이 시름에 잠겼습니다. 엄청난 수질 오염과 해양 생태계 파괴로 생계가 막막해졌습니다. 복구하는 데에만 10년에서 2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하루 바삐 이 분들이 웃음을 되찾고 태안 앞바다가 활기를 되찾았으면 합니다.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았으면 합니다!

내일의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찬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세상은 생지옥입니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가 포기할 때 몇 분 지나지 않아 죽고 맙니다. 그러나 물에 빠졌을 때 누가 건져준 경험을 가질 때에는 달라집니다. 똑같은 상태에서 물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20시간 이상을 물위를 뛰어다니며 버틸 수가 있다고 합니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지요.

텍사스의 주도(州都)인 오스틴에서 목회하는 제럴드 만(Gerald Mann)목사는 14년 사이에 60명 모이던 교회가 4천명으로 늘어난 비결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교회에 올 때 세 가지를 바란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들은 도움을 바라고, 자기를 맞아줄 따뜻한 가정 같은 곳을 바라고, 내일의 희망을 바랍니다." 현대인들은 무엇보다도 희망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참된 희망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막연히 내일에 희망을 걸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비참하지만 내일은 잘 될 것이다, 내일에 기대를 겁니다. 다음 번에 갖게 될 직업, 다음 번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 혹은 재혼하게 될 배우자, 혹은 새차 새옷 새집이 오늘 부족한 것을 매워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막상 다음 번에 새것을 가져봤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으로는 진정한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장밋빛 꿈을 접고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사는 사람들이지요. 이들은 내일에 대해 희망을 품는 사람을 몽상가라고 일축하면서 자기는 현실주의자라고 자처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은 지나치게 삭막하고 메말라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허경영씨처럼 좀 황당해 보여도 꿈을 갖는게 좋지, 아예 모든 꿈을 포기한 채 현실에만 안주하는 이들도 문제인 것입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혐오한 나머지 속세로부터 벗어나 고립된 삶을 살기 일쑤였습니다. 시몬 스타일라이츠(Simon Stylites)라는 시리아의 수도사는 지상에서 60피트나 올라간 기둥 꼭대기에서 고행과 금식하면서 37년 동안 살았습니다. 아무리 지상으로 내려오라고 해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 수도사, 즉 은자(隱者)의 삶이야말로 고결한 삶의 본보기라고 세상 사람들은 칭찬했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이고 신앙적인 방법으로 세상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술이나 마약, 도박 등에 탐닉해서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 빠져들수록 고통은 점점 더 가중되고 마침내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뚫릴 희망의 고속도로>
내일에 대한 헛된 기대를 품는 사람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사람들, 다 진정한 희망을 찾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진정한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본문 1절을 보세요.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기 "위로하라"는 말씀이 두 번씩이나 강조되었습니다. 위로하라는 말은 절망 한 가운데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유다 백성들에게 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돌 하나 남김없이 다 무너져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수많은 왕족들과 귀족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렇게 절망속에 빠진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희망을 선포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을 위로하여 희망을 안겨주라는 것입니다. 그 희망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유다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약속입니다. 모든 포로 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약속이지요!

2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나라를 잃고 절망 한가운데 빠진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라는 것입니다. 마치 죄수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감옥에 갇혀 복역을 하다가 형기 만료가 되면 석방되듯이 이제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난다는 것이지요!

본문 3-5절은 이와 같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유다 백성들의 모습을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제가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투 스타인 사단장님이나 쓰리 스타인 군단장님이 오실 때 몇 주 전부터 난리가 납니다. 대청소는 물론이고 길을 보수하고 진지를 구축하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하물며 포 스타인 군사령관님이나 육참 총장님, 혹은 국방 장관님 혹은 대통령께서 방문하신다고 하면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아마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VIP가 어느 지역을 방문할 때에도 대단한 준비 작업이 필요할 뿐 아니라 막상 오시는 날에는 붉은 카펫을 펼치고 팡파르를 울리고 하지 않겠습니까? 본문은 바로 이런 장면을 연상하시면 될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유다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바로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개선 행진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장차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해 사막에 길을 내고 곧게 닦으라는 것입니다. 모든 계곡을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고속도로를 만들어 승리의 개선 행렬을 준비하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주님의 영광이 만방에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목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면서 절망속에 빠진 유다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바벨론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고속도로를 내서 영광의 주님과 유다 백성들이 귀환할 준비를 하라는 말씀, 이 얼마나 희망에 가득찬 약속의 말씀입니까? 놀랍게도 이 위로와 희망의 말씀이 어찌나 좋았던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통하여 도래할 위로와 희망의 나라를 알리기 위하여 4복음서가 모두 인용할 정도입니다. 특히 세례 요한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닦고 곧게 하기 위한 준비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크리스마스에 거는 희망>
대강절을 의미하는 영어 'Advent'는 라틴어로 '온다'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영광의 주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계절이 대강절이지요. 주님이 오심으로 사 40: 1-5절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한 복역 기간이 형기 만료되어 석방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죄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기 예수님이 이 땅위에 나심으로 모든 낙심과 불평과 절망의 계곡이 메워질 것입니다. 문제 많고 고통 많고 시름 많던 산과 언덕이 깎여질 것입니다. 모든 외로움과 무기력증의 거친 길이 평탄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절망 한가운데 빠져 있을 때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하늘의 영광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위에 죄인으로 오셨습니다. 주님 오신 성탄절이 이틀 남았습니다. 절망속에 있는 분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통하여 희망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탄의 희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텍사스 주 달라스 인근에 알링톤이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있습니다. 알링톤에 사는 틸리 벌긴(Tillie Burgin)이라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틸리와 그녀의 가족들은 본래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작은 아들이 뇌종양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본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알링톤에서 아들의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던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이 귓전을 때렸습니다. "틸리야, 네가 한국에서 나를 위한 선교사로 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 텍사스 알링톤에서 나를 위한 선교사가 되어 줄 수 없겠니?" 틸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구체적인 방법은 몰랐지만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틸리는 이 이야기를 자기가 다니는 담임목사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은 생전 듣도 보지도 못했던 직책을 만들어 틸리에게 맡겼습니다. 'Minister of Missions', '선교 목사'라는 미국 교회 직분 중에는 대단히 생소한 직분이었지요. 목사님도 틸리도 도대체 'Minister of Missions'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른바 'job description'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직분을 맡은 첫 날 전기세를 못 낸 여자 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 여성의 문제를 해결해 준 틸리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성경공부를 함께 시작 할 수 없는지 물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처지였기에 그 여자는 즉시 동의했습니다. 성경 공부를 시작한 첫 날 7명이 참석했습니다. 바로 이 작은 바이블 스터디 모임이 'Mission Arlington'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Mission Arlington'은 254개 교회의 바이블 스터디 그룹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매주 1만 2천여명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틸리는 오늘도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하여 하루 20시간 씩 365일을 하루 같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왜 그렇게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힘들게 봉사하시는 거예요?" "그냥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란다"(I just loved him so much).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 틸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대강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틀 후에 태어나실 아기 예수님을 소망 중에 맞으십시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한 여러분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예수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2천년 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첫 번째 강림이며 예수님의 재림은 두 번째 강림입니다. 오늘 우리는 초림 주님이 아닌 재림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초림주 아기 예수님은 죄인으로 오셨지만 재림주 예수님은 심판주로서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즉 그리스도의 생일을 맞을 준비는 되어 있을지 모르는데 재림주의 강림을 맞을 준비는 되어 있으신지요?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재림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기다리십시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를 'HOLIDAY', 즉 공휴일이 아닌 'HOLY DAY', 즉 '거룩한 날'로 바꾸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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