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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푯대를 향하여 (창 50:15-21, 빌 3:10-16, 요 10: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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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대를 향하여 (창 50:15-21, 빌 3:10-16, 요 10:34-39)

1. 어떤 분의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읽고 많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변경시킬 수 없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변경 가능한 미래를 지향하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노릇했지만 오늘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라고 하는 사슬에 얽매여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희생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주셨듯이 오늘 우리들을 “과거”로부터도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약속의 땅 가나안을 지향하도록 하셨듯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열어놓으셨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기다리고 있는 미래를 지향하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이점에 있어서 요셉은 우리의 교사로 등장합니다. 그가 만일 과거에 얽매여 있었더라면 오늘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은 물론 그 주변 국가들을 7년 흉년에서 구해내는 명제상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하여 가나안 상인들에게 팔려가서 다시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게 되었을 때, 자신의 불행한 신세한탄만 하고, 과거 부모님에게 사랑받던 일에만 얽매여 있었다든지, 그가 다시 불운이 겹쳐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신세타령만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 인생은 그냥 불행을 안고 고통 속에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도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하여 가정 총무가 되었고,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거기서도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간수장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왕의 신하들의 꿈을 해석해 주고 결국 왕의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가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현실에 충실할 수 있었고, 축복된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이런 인생관을 소유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변할 줄 모르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어렸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꾼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비록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거기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불행한 현실 속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현실을 통하여 더 좋은 미래, 그에게 주셨던 꿈대로 바꾸어나가실 것을 믿었습니다. 나중에 야곱이 죽고 났을 때 그의 형들이 찾아와서 용서해 달라고 엎드려 빌었을 때 요셉이 한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창세기 본문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하셨나이다.”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요셉이 어디서 어떤 형편에 처했든지 하나님은 늘 요셉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의 범사를 형통하게 하셨더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아니 우리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과거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믿는 미래지향적인 신앙이 우리 앞에 어떤 난관에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힘과 승리를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2. 오늘이 금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즈음이 되면 우리는 다시 과거에 대한 회한에 빠지게 됩니다. 헛되게 보내버린 지난 1년에 대하여 후회하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나 직장, 사회,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잘못된 인간관계를 인한 실패 때문에 고통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가버린 과거사는 변경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반성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작심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밥 가스라고 하는 사람은 과거의 고통 때문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만일 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의 삶에 감동을 준다면 기분이 좀 더 나아질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이 고통이 다른 사람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면 기분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겪은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여러 사람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기분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옳고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보았지만 오히려 기분은 더 나빠졌습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려니 기대했으나 다소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 현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까지 해보았지만 주소지만 변경되었을 뿐 내면의 상태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 시도한 것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 용서하고 또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스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갑자기 머리가 깨끗해지기 시작했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과거로부터 해방 받았습니다. “과거”라는 애굽에서 탈출했습니다. 이제 그 앞에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축복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경험을 통해서 그가 내놓은 것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라.”고 하는 책입니다.

  밥 가스는 그 책 첫머리에 창41:51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나의 모든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셨다”고 하는 제목으로 과거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희생자로 살기를 거부하라고 했습니다. 공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동정심이나 구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해결책을 찾기로 다짐했을 때 치유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그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문제를 그 자체에 국한 시키라고 했습니다. 나를 무척 괴롭게 한 사람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을 원수 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원수 사탄이 나의 과거를 이용하여 나의 미래를 빼앗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셋째, 1요4:18에 “사랑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라고 했듯이 “완전한 사랑”이 우리 상처를 치료해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체험할 때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넷째, 단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 상처만 치료받는 것으로 멈추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때 내가 이미 받은 치유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가서 총리가 되고 난 다음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맏아들을 낳고 이름을 므낫세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잊어버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으니 잊게 되었다는 단순한 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인들 지난날의 고통들을 잊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노력은 불가능으로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잊게 해주셨습니다. 이리하여 요셉이 과거라는 감옥에서 탈출했을 때 둘째 아들을 낳고서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은 “창성함”이라는 뜻입니다. 므낫세가 과거와 관계된 이름이라고 한다면 에브라임은 미래와 관계된 이름입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열려지고 축복된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서 벗어났을 때 그 앞에 창성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단순히 과거를 잊자고 해서 잊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망년회”를 열 번 백번 해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만 우리를 과거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축복된 미래를 열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금년도 마지막 주일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탕자같이 아버지 품에 안기는 일입니다. 그럴 때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회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3. 오늘 서신 본문에서 사도 바울도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이미 바울은 4-6에서 자기가 자랑할 수 있는 과거를 죽 열거했습니다. 팔일 만에 할례 받은 것, 이스라엘 족속,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바리새인, 열심히 말하면 교회 박해자, 율법에 비추면 흠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 율법의 최고경지를 배운 사람이요, 공의회 의원이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헬라 철학을 배워 당시 세계적인 지성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거기다 로마시민권까지 소지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수 없었습니다. 자랑꺼리가 이만저만 많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상처뿐만 아니라 자랑꺼리라는 과거도 우리를 얽매는 오늘 나의 애굽입니다. 여러분 모태교인을 자랑합니까? 오래 믿었다고 신앙의 연륜을 자랑합니까? 교회 창립주역이라고 자랑합니까? 그동안 교회를 좌지우지해온 것을 자랑합니까? 교회에 엄청난 업적을 끼친 것을 자랑합니까? 직분을 자랑합니까? 이것이 여러분의 신앙의 발전을 막고,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아니 어쩌면 천국 가는 길을 막는 족쇄 역할을 할지도 모릅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

  여러분이 정녕 그리스도를 얻으려면 바울처럼 지난날의 훈장 같은 그 자랑거리들도 배설물처럼 버리십시오. 여러분이 정녕 그리스도에게 발견되려고 한다면 이런 자랑거리들을 오히려 해로 여기십시오. 그래야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될 줄 믿습니다.

  바울이 말한 다른 하나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의 고통이나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면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할 수 없습니다. 저 변화산의 제자들처럼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면서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은 주님이 우리 앞에 설정한 푯대를 놓치고 맙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우리가 바라보고 꾸준히 지향해야할 유일한 목표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다른 것 다 얻어도 예수 잃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것 다 버리고라도 예수님만 얻으면 여러분은 승리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마지막 주일에 과연 예수님을 얻으셨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복음서의 말씀은 유대인들의 숱한 방해와 박해와 공격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오직 목표만을 향하여 나아가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은 지난날 쌓은 업적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지난 세월 주님이 당하셨던 아프고 쓰린 경험들에 붙잡히지도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현실에도 불구하고 오직 십자가만을 향하여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까지 앞을 향하여 나가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죽음을 이기고, 무덤 문을 열고, 부활로 승리하시기까지 주님은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시 오실 때 영원한 승리를 쟁취하실 때까지 주님은 계속 그 길을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픈 과거도 내려놓으십시오. 화려한 과거라고 할지라도 집착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사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도 진행 중입니다.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님처럼 “다 이루었다.”고 할 그 날을 지향하며 푯대를 향하여 계속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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