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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적 아내상과 남편상! (엡 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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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적 아내상과 남편상! (엡 5:22~33)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는 원단메시지를 통해 사역을 포함한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 기본이 튼튼해야 함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것의 기초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부부관계입니다. 부부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교회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가정을 맨 마지막으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가정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것이 아닌 무형적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친히 만드시며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가정의 기본은 부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단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하도록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이혼이 일반화되어 버린 오늘날의 현실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가정의 기본이 되는 부부관계를 튼튼히 하여 어떠한 사단의 공격도 무력화시키는 복음적 부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복음적 아내상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2~24) 남편을 주님처럼 섬기며 복종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아내상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거부감이 생기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복종’이라는 말의 뉘앙스 때문에 마음이 열리지 않는 분들도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특히 남편에게 상처를 많이 받은 아내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상처받은 아내는 제외하고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은 아내만 남편을 주님 섬기듯 복종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아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그동안의 상처로 가슴에 쓴 뿌리가 깊이 박힌 모든 아내들에게 치유와 회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것이 가능하게 될까요?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는 언약 안에서 성령 충만하면 가능합니다. 내 인격으로는 할 수 없어도 내 앞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고 따르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의 속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막연한 복종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가정의 머리 됨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33절에서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며 이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남편의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가정이 반듯하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들에게 ‘아내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첫째로 꼽히는 대답이 ‘아내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성도 여러분, 남자들은 사업을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로 자존심을 상하게 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며 “힘내세요”라거나 “당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에요!”라는 등의 말 한마디만 해 주어도, 그 말이 설령 빈말일지언정 남편은 큰 위로를 받고 힘을 얻게 됩니다. 한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광고 멘트가 큰 히트를 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남자는 정말 여자하기 나름입니다. 남편 사랑을 받고 싶다면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이렇게 남편 대하기를 주님 대하듯이 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벧전 3:6) 바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남편으로서 자격 미달이었던 인물입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아브라함이 곡식을 구하기 위해 사라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라의 미모로 인해 애굽 사람들이 아내를 뺏기 위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웠던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자신의 누이동생이라 말하도록 시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라의 미모에 반한 애굽의 바로 왕은 사라를 아브라함의 누이로 여겨 궁으로 들여 아내로 삼으려 하였고 하나님께서 사라를 보호하여 주시지 않았다면 자칫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빼앗길 뻔하였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사라의 여종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멸시와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남편으로서 모자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라는 이런 아브라함을 주라고 칭하며 순종했던 것입니다. 사라는 남편의 현재 모습만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부족한 모습이 많은 남편이지만, 하나님께서 장차 가장 훌륭한 남편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이 이러한 믿음의 가정이 된 것은 아브라함 자신만의 믿음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믿음으로 남편을 존중해 준 사라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여 주는 만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만큼 남편이 세워지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음으로  여성도 여러분이 복음적 아내의 모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복음적 남편상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5)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하는 남편이 복음적 남편상입니다. 본문의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아무런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이 어떠하였습니까?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지닌 창세기 3장 문제-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단 종노릇하다가 영원한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저주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실 정도로 사랑하셨습니다. 사건과 문제는 인간이 저질러 놓았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예수님께서 대신 희생하셨습니다. 이는 완전한 희생적 사랑이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28절과 33절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계속하여 강조합니다.

앞에서 남편은 아내의 머리임을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이는 아내를 지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머리의 핵심 역할은 이해와 수용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고 받아 주는 만큼 아내는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아내가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산하게 될 때 생명력 있는 가정이 만들어집니다.

아내의 옛말은 ‘안해’입니다. 이는 ‘집안의 해’라는 의미입니다. 집안의 해가 구름에 가려있으면 그 빛을 발할 수 없게 됩니다. 남편 여러분은 아내를 가리고 있는 먹구름을 다 걷어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헌신적 사랑, 아가페 사랑으로 아내를 대할 때 비로소 아내는 빛을 발하게 됩니다.

옛사람들은 성공하는 인생을 위한 다섯 가지 능력으로 건(建)-건강관리, 처(妻)-부부의 화목, 사(事)-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 우(友)-좋은 친구, 재(財)-경제 축복을 꼽았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성공비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부부관계입니다.

아내의 머리가 되는 남편의 권위는 아내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이 전제가 될 때 세워진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시고 모든 남성도 여러분이 복음적 남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부부의 불행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자기중심적 삶은 부부관계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창세기 3장 사건 속에서 아담과 하와는 범죄의 순간에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하는 비참한 부부관계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결혼생활, 부부관계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에 대한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에 대한 복음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내 자신이 먼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는 말씀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나 부부 가운데 어느 한 쪽이 불신자라면 더욱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 가정학자는 남편과 아내를 들소와 나비에 비유하며 그 차이를 설명하였습니다. 남편은 들소처럼 무감각하고 아내는 나비같이 섬세하고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결혼 주례를 설 때 마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에는 ABCDE가 있습니다. A는 accept(용인하다)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 주라는 것입니다. B는 believe(믿다)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믿어 주어야 합니다. C는 care(돌보다)입니다. 상대를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D는 desire(기대하다)입니다. 오늘의 현실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E는 erase(지우다)입니다. 실수를 용서하고 지워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를 통해 복음 안에서 oneness를 이룸으로 복음적 부부의 모델, 복음적 가정의 모델이 되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주역으로 쓰임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복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없었다면 우리 가정은 깨어져 비참한 인생이 되었을 텐데 복음을 주셔서 가정을 세워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 속에 주어진 복음적 아내상과 남편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여호와께서 우리 앞서 행하시는 증거를 볼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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