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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적성숙의 길(1) (시 19: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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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성숙의 길(1) (시 19:7-14)

  얼마 전 세계뉴스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도 남부의 한 농부가 땅에 묻혀 있는 신생아를 발견하고 구조했다는 것입니다.  트랙터를 몰고 가는데 길바닥에 어린아이의 손이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땅을 파보니 살아 숨 쉬는 아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체중이 1.7kg인 이 여자 아기는 태어난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은 외할아버지가 아기 어머니의 동의하에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외할아버지등 2명을 살인 미수 혐의로 체포했고, 어머니도 공모 혐의로 기소했다고 합니다.  딸만 6명인 외할아버지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이 4명이며, 손녀 하나를 더 부양해하는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도에서는 여아보다는 남아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여성의 결혼 지참금이 너무 커서 가산이 파탄 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살아있는 아기를 그대로  땅에 묻는지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살아있는 아이를 땅속에 묻었는데 이틀이 지난 뒤에도 아이가 죽지 않고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인간의 생명력입니다.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니고, 죽인다고 죽는 것도 아닙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살아 있는 생명체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신비요, 힘입니다.

  영적인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새로운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신앙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생명은 반드시 꿈틀거리고, 자라납니다.  우리가 지금 한해 목표로 삼은 우리의 내적성숙은 바로 놀라운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거듭난 우리의 영혼은 반드시 내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성숙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명도 이처럼 놀라운데 영적인 생명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점점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요?  내적으로 성숙하는 길이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은 그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번에 나누어 성경을 통해 찾으려고 합니다. 

오늘 첫 번째로 내적성숙의 길은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성경은 능히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든다고 강조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떠나지 않게 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말씀에 관한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의 힘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지은 시편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이요, 말씀의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험을 아름다운 시를 통해 잘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말씀의 힘을 소개합니다.  말씀은 어떤 능력이 있을까요?  말씀은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말씀은 우둔한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말씀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말씀은 사람의 눈을 밝게 합니다.  이것이 말씀이 가진 놀라운 힘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소성케 되는 것보다 소중한 일이 없습니다.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기쁜 것보다 감사한 일이 없고, 영혼의 눈이 밝은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말씀으로 가능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 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냅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의 모습이나 이미지에서 그다지 큰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고기잡이를 했을 때 그날따라 한 마리의 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배에 올라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말씀,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깊은 감동을 받고 있던 순간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에 같으면 귀담아 듣지 않을 상황이지만 그날따라 주님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은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었는데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동료를 불러 들어 올릴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말씀의 힘입니다.

존 훌리(John Fully)라는 사람이 노벨상 수상자 400명들을 15년간 연구하여 ‘유대인과 기독교인’(Jews and Christian)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노벨상 수상자가 탁월한 지혜를 얻게 된 배경은 성경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수상자 중에서 97%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경을 가까이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힘입니다.  말씀의 능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에게 주어지는 노벨상의 수상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분명 말씀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도 여러분 모두에게 2008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다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말씀이 내 삶에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주신 말씀이 한 해 동안 내 삶의 방향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금년에도 말씀의 힘으로 승리하시고, 내적성숙의 목표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말씀의 맛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힘도 알아야 하겠지만, 말씀의 맛도 보아야 합니다.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어 체험되고, 경험될 때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 할지라도 말씀의 맛을 내가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좋은 말씀이라도 내가 그 말씀의 맛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바로 그 말씀의 맛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19편 103절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말씀의 맛을 보면 꿀보다 더 달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맛을 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맛을 경험해야 합니다.

  말씀의 맛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음식을 대하는 것과 같은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음식의 맛을 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합니다.  먹지 않으면 맛을 알 수가 없는 법입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말씀으로 하셨고 또한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는 것은 생명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먹지 않으면 말씀의 맛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맛을 알기 원하면 읽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의 돌아가는 일을 위해 신문을 읽고, 또 지적인 만족을 위해 양서를 읽어야 하겠지만, 영혼을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깊은 맛을 알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읽다가 한글을 띠는 분이 있습니다.

웨슬레는 말씀을 읽다가 은혜를 받고 18세기 혼돈에 빠졌던 영국을 구합니다.

슈바이처는 성경을 읽다가 감동을 받고 아프리카로 들어갑니다.

루터는 로마서를 읽다가 회심을 했고, 어거스틴은 성경을 읽다가 방탕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성경의 맛을 위해 읽어야 합니다.

  또한, 어떤 음식을 대하든지 가장 맛있게 느껴 질 때는 몹시 배가 고플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에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 말씀을 갈급해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말씀을 대할 때, 바로 그 속에 청량한 말씀의 기쁨과 감격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뛰어난 미각은 감각적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맛을 위해서도 영적인 감각이 필요합니다.  말씀의 맛은 영적인 감각을 통해 깊어지는 것입니다.  맛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 먹어서 자기 입맛에 맞다가 보면 맛있게 됩니다.  아이들을 보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입맛을 가지고 나오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키우면서 입맛을 넣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크면 누가 해 주는 것을 제일 잘 먹습니까?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입니다.  이게 심한 친구들은 장가가서도 어머니가 해 주는 것처럼 해 달라고 하잖아요.  자기 아내가 해 주는 것은 맛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음식 맛을 맞추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맛은 감각적인 것입니다.  점점 맛에 빠져 드는 것입니다.  성경의 맛도 감각으로 됩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가 말씀의 맛을 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은 꿀보다 더 귀한 말씀입니다.  말씀의 깊은 맛을 보면서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되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말씀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내적으로 성숙하는 길은 분명 말씀에 있습니다.  그 말씀의 힘을 알고, 말씀의 맛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말씀의 힘을 알고, 맛을 보았으면 이제 말씀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승리가 있고, 성공이 있고, 성숙한 길이 있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다윗이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다윗은 말씀의 뜻을 따를 것을 다짐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갑니다.  다윗의 성숙한 믿음의 열매는 바로 여기에서 절정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계속되는 말씀 속에서 말씀의 뜻을 따르는 길을 두 가지로 고백합니다.  하나는 죄를 짓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다른 하나는 긍정적으로 선을 행하며 살 것을 역시 다짐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이 성숙한 다윗의 신앙입니다. 

그는 말씀의 힘을 알고, 맛을 본 사람으로 이제 말씀의 뜻을 따라갈 것을 다짐하며 나아갑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선을 행하도록 말씀을 원리와 뜻을 붙잡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다윗의 성숙, 나의 성숙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은 무엇보다도 말씀의 뜻을 따라 지키고 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든 물건에는 사용설명서가 있습니다.  물건을 사면 언제나 따라오는 사용설명서를 잘 보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그 물건의 특성, 분해, 조립, 고장시의 대처방법, 보관 관리법 등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용설명서를 따르지 않으면 낭패를 당합니다.

  모든 물건은 반드시 자기가 아무리 아는 것이라도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사용설명서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근본 문제가 죄에 있으며, 그 해결책으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함으로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우리 죄 값을 치르시기 위해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 나셨음을 알려 주며, 우리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닮도록 변화시켜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성경은 인간 삶의 원리와 방향을 지시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대로 실천해서 지혜롭고 형통한 삶을 살도록 도와줍니다.  말씀은 뜻을 따르라고 주신 것입니다.

말씀은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인생의 사용설명서로 주신 것입니다.
말씀의 뜻을 따르면 우리가 성공하고 승리하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실패하고, 여전히 미숙하고 연약한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말씀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말씀의 원리로 행해야 합니다. 그 길이 내적성숙의 길이요, 형통한 삶이요, 복 받는 길이요, 잘되는 길입니다.

  미국의 체신부 장관을 지낸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미국에서 제일가는 백화점을 가진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체신부장관을 하던  시절에도 매주 토요일이면 필라델피아로 가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월요일이면 워싱턴으로 돌아와서 장관의 일을 할 정도로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사업으로 번 돈을 금주, 금연 운동과 실업자와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건립하는데 많이 썼습니다.  그는 전 세계에 YMCA 조직을 많이 세우고 건물도 많이 지어주었는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세워진 종로의 옛 YMCA 건물도 워너메이커의 기부금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날 즈음에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가치관은 9살 때 1달러 50센트를 주고 산 성경책에서 배웠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했고, 성경의 뜻을 따라 갔습니다.  성경덕분에 나는 80평생을 은혜로 살 수 있었습니다.

말씀은 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고,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내적성숙의 길은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의 힘을 알아야 하고, 말씀의 맛을 보아야 하고, 그리고 말씀의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럴 때 분명 우리는 내적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 모두 내적성숙을 위해 말씀을 붙잡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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