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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놓치지 말아야 할 긍휼의 때 (왕하 23: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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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말아야 할 긍휼의 때 (왕하 23:21-27)

오늘 본문은 남왕국 유다의 요시야 왕의 개혁운동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22절에 따르면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우리에게 있어서 광복절 이상으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키지 않던 것을 요시야가 부활시켰다는 것입니다. 24절에서는 그 외에도 요시야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서 신접한 자와 점쟁이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려한 그의 개혁운동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종합적으로 평가하기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평가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극찬입니다.

  요시야는 그의 아버지 아몬이 왕위에 오른 지 이년 만에 반역한 신복들에 의해 죽자 그 반역자들을 모두 처단한 국민에 의해 여덟 살의 나이에 왕이 되어 삼십일 년간 다스렸습니다(왕하21:23-24, 22:1). 왕하22:2에서도 우리는 이미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는 평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로 하여금 가장 열심 있고 철저한 개혁자가 되게 한 계기는 율법책의 발견이었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된지 열여덟째 해에(왕하22:3)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고(왕하22:8), 그 율법책을 전해 받은 서기관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게 되었습니다(왕하22:10).

그 율법책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는 곧 그의 옷을 찢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왕하22:11).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다”(왕하22:13)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는 온 백성을 불러 모으고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듣게 한 후(왕하23:1-2)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고 언약을 세웠으며 백성은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했습니다(왕하23:3).

요시야는 이때부터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성전에서 내다가 불사르고(왕하23:4) 유다 모든 성읍을 다니며 산당에서 우상을 섬기는 모든 제사장들과 분향하는 자들을 다 폐하고 산당을 헐어 불사르며 석상들은 부수고 목상들은 찍어 불에 태우고 빻아 가루를 만들어 뿌리게 하며 온갖 우상숭배의 관행을 철폐했습니다(왕하23:5-20). 이스라엘의 전 역사에 있어서 이렇게 철저한 신앙정화운동은 없었습니다. 본문 25절에서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한 말은 괜한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요시야의 개혁의 열심과 투철함이 그러했기에 오늘 본문 26-27절의 말씀은 더더욱 우리에게 놀랍고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과 그의 율법의 말씀을 향한 요시야의 열심히 아무리 컸어도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의 할아버지 므낫세 때의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과 성전까지도 버리시기로 이미 작정하신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그 멸망의 역사를 잠시 연기시키기는 했으나 취소시킬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긍휼의 때를 놓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의 시기가 지나버린 것이었습니다. 요시야 시대의 개혁운동은 가장 완벽하고 위대한 개혁운동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때를 놓친 운동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의 신앙과 열심만은 인정하셔서 그의 생전에 유다의 멸망을 보게 하시지는 않았지만 유다를 버리시려는 그의 작정을 돌이키지는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므낫세의 행악은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그러면 므낫세는 어떻게 하여 하나님을 그토록 격노하시게 했습니까? 므낫세는 오십오 년간 왕위에 있었습니다(왕하21:1) 하나님께서는 무려 오십오 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그에게 기회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긴 세월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겼습니다(왕하21:2-3).

그는 하나님의 성전 마당에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사악한 이방종교의 의식과 관행을 따르며 점쟁이들과 무당들을 가까이하여 온갖 사술을 행했고(왕하21:5-6) 백성들까지 꾀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악을 행하게 했던 것입니다(왕하21:9).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시며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왕하21:10):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왕하21:11-15). 므낫세는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했습니다(왕하21:16). 므낫세는 남 왕국 유다의 모든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죄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의 원조인 여로보암과 그 절정이었던 아합의 죄를 능가하여 애굽에서 나온 조상 때부터 그의 때까지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죄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중하고 중한 므낫세의 죄이지만 두 가지 시대적 요인을 고려하면 그의 죄는 더더욱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의 멸망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선왕 히스기야와 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므낫세의 아버지 히스기야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와 동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호세아 제삼년에 남왕국 유다의 왕이 되었으며, 이스라엘은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으로 있을 때 멸망했습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마땅히 이스라엘의 멸망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아버지 히스기야 왕의 개혁정신을 이어감으로써 유다가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어떤 왕이었습니까? 그는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린 왕이었습니다(왕하18:3-4).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우리는 왕하18:5-7에서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그의 증손자 요시야와 함께 유다왕국의 2대 개혁자의 하나로 손꼽히는 왕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는 병들어 죽게 되었고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선언까지 받았었습니다(왕하20:1). 그런데 그가 통곡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왕하20:2-3)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의 눈물을 보시고는 그를 삼 일 만에 낫게 하시고 그의 수명을 십오 년 연장해주실 뿐 아니라 그와 예루살렘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해주시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왕하20:5-6, 사38:9-20).

  히스기야의 병을 낫게 하시고 그를 살려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가 나을 것이고 삼일 만에 성전에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이사야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왕하20:8) 하자 이사야는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왕에게 임할 징표로서 해 그림자가 십도를 앞으로 나아갈 것과 십도를 뒤로 물러갈 것 중에서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지 택하라 했습니다(왕하20:9). 히스기야는 해 그림자가 뒤로 십도 물러가는 일이 더 어려우리라 생각하고는 그것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왕하20:10). 그래서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청대로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던 것입니다(왕하20:11).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래로 단 한 차례밖에 행하신 적이 없는 그 놀라운 일을 행하시며 치유의 확신을 주고 마음의 평안을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린 이가 바로 히스기야였던 것입니다.

  그런 히스기야 왕을 아버지로 둔 므낫세라면 마땅히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선왕의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된 발자취를 따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배신과 패역의 길을 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더 이상 그 어떤 것으로도 누그러뜨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유다와 예루살렘을 멸하시고자 하신 그의 결정과 그 결정을 돌이키지 않으시는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다 왕국과 그 백성의 장래는 결정이 난 것입니다. 그의 손자 요시야의 그 훌륭한 개혁의 의지와 실천도 이미 때를 놓친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요시야 당시의 여선지자 훌다의 예언대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훌다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왕하22:17). 하나님께서는 훌다를 통해 요시야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왕하22:19-20).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에게는 자신의 재위 중 유다 왕국이 멸망하지 않도록 연기해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를 향하여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는 않으셨습니다(본문 26절). 므낫세가 하나님을 너무나 격노하시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본문 27절).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을 향하여 진노의 불을 끄지 않으시자 요시야 이후의 유다는 처참한 역사를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석 달밖에 왕 노릇을 하지 못하고 이집트의 바로 느고에 의해 감금되어 폐위를 당하고 이집트로 끌려가 죽었습니다(왕하23:31-34). 바로 느고는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는 그로 하여금 백성에게 많은 세금을 걷어 자기에게 바치게 했습니다(왕하23:34-35). 그러나 여호야김은 새 강자로 떠오른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받아 그를 섬겨야 했으며(왕하24:1-2) 그의 사후에 왕위를 이은 아들 여호야긴 또한 왕이 된지 석 달 만에(왕하24:8) 또 다시 쳐들어온 느부갓네살에 의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습니다(왕하24:12).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해버렸습니다. 그는 또 비천한 자들만 남겨두고 여호야긴 왕과 그의 어머니와 아내들과 내시들과 고관대작들을 비롯한 모든 지도자와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는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했습니다(왕하24:13-17).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으로 세웠지만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또 다시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왕하25:1)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킨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도망을 치다가 사로잡혀 바벨론 왕 앞에 끌려가 심문을 당하고(왕하25:5-6) 자기 앞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봐야 했으며 자기의 두 눈을 뽑히고 놋 사슬로 결박을 당한 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왕하25:7).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과 모든 귀인의 집까지 다 불에 탔고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은 헐렸으며 비천한 자들만 남고 성 중에 남아 있던 백성은 모두 사로잡혀 가다가 죽임을 당하거나(왕하25:21) 바벨론까지 끌려갔습니다(왕하25:8-12). 그리고 바벨론의 군대는 집기이던 장식물이던 예루살렘 성전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놋과 금과 은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왕하25:13-17). 이렇게 유다는 완전한 멸망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 유다 왕국 멸망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역사적 교훈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유다 왕국 멸망의 원인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거나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인내를 오용한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역사를 통해 준엄한 교훈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악한 본보기를 따라간 것입니다. 요시야의 그 철저한 개혁의 업적이 유다 왕국의 쇠망의 향로를 바꾸어놓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께서 인내와 긍휼을 거두시는 때 곧 심판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때를 놓치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처럼 남과 북으로 나뉜 우리 민족은 특히 이 역사가 보여주는 몇 가지 사실을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이 결국 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멸망의 역사를 보고도 제 때에 돌아서지 않은 유다는 더 비참하게 망했다는 사실입니다. 제 때를 놓치고 이루어진 대대적인 개혁은 이미 쇠망의 길로 들어선 역사를 돌이킬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역사가 이미 있습니다. 우리의 북한 땅은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일컫던 도시가 있던 땅입니다. 한국교회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땅입니다. 한국사회와 교회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버리고 주체사상을 만들어내며 김일성-김정일 부자라는 우상을 섬기는 나라가 되었을 때 오늘과 같은 생지옥을 이루고 말았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북한을 동경하며 주체사상에 함몰된 일부 종김·종북 맹신집단들이 점차로 세를 불려가다가 급기야는 정권까지 장악한 역사가 최근 수년간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치하는 것이 우리의 살 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주의 몸 된 교회 박멸에 전력을 기울여온 세력과의 공조가 이 민족의 살 길인 양 국민을 세뇌하는 작업이 맹렬했던 것이 우리의 최근사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국가의 근간이 뒤흔들린다는 우려를 했던 것입니다.

이 역사의 흐름에 일단 제동을 걸어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긍휼의 때를 또 놓쳐버리고 흘려보내는 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와 이 민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며 바른 번영의 길로 확실하게 돌아서는 우리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은 히스기야의 시대에서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합니다. 다시 므낫세의 시대로 넘어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요시야의 시대가 온들 불타는 하나님의 진노를 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놓치지 말아야 할 긍휼의 때입니다. 우리 모두 바른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며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도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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