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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에 내린 만나 (출 16: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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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내린 만나 (출 16:21~31)

흔히 우리 인생을 가리켜 광야와 같다고 비유해서 말합니다.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광야의 특징이 우리 인생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특징이 여러 가지 있지만,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광야는 궁핍한 곳입니다. 물도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황무지입니다. 둘째로, 광야는 위험한 곳입니다. 곳곳에 구덩이가 있고, 독사와 전갈 등 무서운 동물이 있고, 흉악한 강도가 출몰하는 곳입니다. 셋째로, 광야는 불확실한 곳입니다. 사막의 모래 바람이 불어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얼마나 광활한지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광야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빈손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온갖 위험에 노출됩니다. 사고와 질병, 이런 저런 위험들이 즐비합니다. 사망의 골짜기도 도처에 있습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길을 못 찾아 방황하고 고민합니다.

그런데 광야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여러 가지 어려움 중에 가장 큰 것은 불확실성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정말 그렇죠. 아무리 어렵고 위험해도 미리 알 수 있다면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대비하면 됩니다. 미래가 불확실하기에 잘 대비한다고 해도 여전히 불안한 겁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똑똑해도 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머리가 가장 좋다는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는 천재니까 자기 인생을 알아서 척척 해결하며 살았을 것 같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역시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늘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하려고 1년 이상 곳곳에 이력서를 내봤지만 청년실업자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특허사무소에 취직한 후에는 쥐꼬리만 월급으로 생활고를 겪었습니다. 박사학위 심사를 받을 때는 여러 번 탈락해서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가정적으로는 부부 갈등과 자녀 문제로 늘 마음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인생에는 천재도 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느 미래학자가 했다는 말인데,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 한 가지뿐이다.” 미래학자도 별 수 없고,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인생은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힘겨운 게 인생입니다.

그러면 광야 같은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영영 없는 걸까요? 있습니다! 오늘 본문 성경이 그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이 시간 말씀을 상고하면서 그 비결을 잘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쪼록 광야 같은 인생길에 꼭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신뢰 :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라

본문을 잘 보면, 광야 인생길에 승리하는 비결 세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 삶 가운데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잘 분석해 보면 그 믿음이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됩니다. 시인하는(profess) 믿음, 그리고 신뢰하는(trust) 믿음입니다. 시인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적인 차원의 믿음입니다. 반면 신뢰하는 믿음이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때문에 마음이 편해지는 겁니다. 말하자면 정적인 차원의 믿음입니다. 만일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하다면 신뢰하는 믿음이 부족한 겁니다. 흔히 “믿음이 작다” “믿음이 크다” 이렇게 말할 때는 바로 신뢰하는 믿음의 분량을 말하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여행자가 등산을 하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벼랑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겁에 질려 소리칩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소? 누가 날 좀 구해 주세요!” 그때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여기 있노라. 나는 하나님이다.” “오, 하나님! 반갑습니다.” “내가 너를 구해줄 텐데, 먼저 네 믿음을 확인하겠다. 너 진짜 믿음이 있느냐?” “당연하죠. 매주일 교회에 나갑니다.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죠. 헌금도 한다고요.” “아니, 네가 정말 나를 믿느냐고?” “아멘! 믿습니다!” “그럼 좋다. 네 믿음을 테스트해 보겠다. 정말 나를 믿는다면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라. 그럼 내가 구해줄게.” 그러자 그는 아무 소리 못하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다른 사람 없소?”

우리도 믿는다고 하지만 이럴 때가 많습니다. 보통 때는 잘 믿는 것 같아도 막상 어려움에 봉착하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인간적으로 불안해하고, 인간적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고백도 합니다. 시인하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상황들이 전개되자 두려워하고 원망합니다. 출애굽기 16장은 출애굽한 지 한 달 쯤 지났을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아마 준비해온 식량이 다 떨어졌을 무렵인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출16:3 “ ...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애굽에서 고생할 때 해방시켜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그들은 애굽 생활을 그리워하고 원망합니다. 그들은 상황만 보고 있을 뿐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던 겁니다. 정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기도해야지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한심스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출16: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 너희가 해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무슨 말입니까? “내가 하나님 아니냐? 내가 너희들 먹여 줄께! 걱정마라!” 매일 아침에는 떡을 주고, 매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준다는 겁니다. 그 떡 이름이 뭡니까? 31절 보면 ‘만나’입니다. 만나는 히브리어 ‘만-후’(aWh @m;)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만-후는 “이것이 무엇이냐?”(출16:15)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이 하나님이 내려주신 떡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서로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 “이게 뭐지?” 그러다가 그 이름이 ‘만나’가 된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산물을 먹을 때까지 무려 40여년 간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성경을 잘 보면, 그 기간은 정확하게 39년 11개월(제1년 2월 15일~제41년 1월 15일)입니다.(출16:1,35, 수5:12 참조)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때 하루에 내려주신 양식의 분량이 얼마나 될까? 우리와 비교해 보면 실감이 날 겁니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니까 한국인이 하루 평균 1,048 그램(약 1 킬로그램)의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배불리 먹었으니까 대충 그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인구가 장정만 60만이니까 전체 인구를 추산하면 대충 300만 명 정도가 됩니다. 1인당 하루 식량을 1kg로 환산하면 하루 300만 kg 즉 3,000 t이 됩니다. 10t 대형 트럭 300대분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량을 매일 쏟아 부은 겁니다. ‘40년×365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을 하루도 굶기지 않으셨습니다.

한 마디로 기적입니다. 이를 가리켜 비상섭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연의 법칙 안에서 섭리하시는 것을 통상섭리(Ordinary Providence)라고 부르고, 자연법칙을 초월해서 섭리하시는 것은 비상섭리(Extraordinary Providence) 라고 부릅니다. 만나를 내려주신 것은 비상섭리요 기적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연법칙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때로는 자연법칙을 초월해서라도 모든 것을 제공해주십니다. 부성애적인 사랑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자식이 헐벗고 굶주리면 부모가 빚을 내서라도 먹이고 입힙니다. 물론 하나님은 빚을 낼 필요도 없는 분이지만, 비상섭리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광야 생활처럼 힘들고 불확실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만일 염려하고 걱정한다면 믿음이 부족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공중의 새들도 먹이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그 중에서도 택하신 자녀들을 책임져 주지 않겠느냐? 그러니 걱정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아라! 이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빽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사람도 의지하면 안 됩니다. 결국 책임져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시146:3~5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때때로 우리의 현실을 보고,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불안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대책입니다! 아무 것도 안 보여도 하나님만 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노후대책입니다. 죽기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사후대책도 됩니다. 죽어도 천국 그리고 영생입니다. 세상의 권세가, 저금통장이, 집문서가, 생명보험증권이 우리의 대책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본문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아침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날 먹을 것만 딱 주셨습니다. 넉넉하게 며칠 분을 주면 좋으련만 ...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대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만 있으면 내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쌓아두는 게 번거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약속을 꼭 지키십니다. 절대로 우리를 배반하거나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애송하는 복음송 중에 「오 신실하신 주」라는 노래가 있죠. 그 노랫말을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부디 이 노랫말이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진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광야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늘 평안한 마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순종 : 하나님 말씀만 따르라

광야 인생길에 승리 비결 두 번째는 순종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명령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이 됐습니다. 그런데 불순종하고 자기 멋대로 하면 화가 됐습니다. 똑같이 만나를 내려줘도 각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출16:16을 보시죠.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 ” 여기서 1 오멜은 약 2리터에 해당합니다. 한 사람이 먹을 충분한 양입니다. 이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어떤 결과가 나타났나요? 출16:17~18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이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청개구리들이 있기 마련이죠. 자기 멋대로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IQ(지능 지수)가 높은 것은 좋은데, 자기 머리만 믿고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잔머리를 굴리는 겁니다. I자가 조금 비딱해지면 J자가 됩니다. 그래서 JQ(잔머리 지수)라고 합니다. JQ가 높은 사람들은 단기적으로는 반짝반짝 하고 잘 되는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망합니다. 출16:19~20 “19 ...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 ” 많이 짊어지고 오느라 고생, 썩은 냄새가 진도해서 고생, 갖다 버리느라 고생, 주위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하나님 앞에 면목 없고 ... 좋은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순종을 테스트하고 연단해 가셨습니다. 출16:4 “ ...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또 신8:3 보면 “ ...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이 육신의 떡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삽니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할 때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증하십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하나님이 100% 보장(100% Guarantee)입니다. 시119:165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막힘이 없다는 겁니다. 축복의 대로(Highway)가 펼쳐집니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많은 재산을 물려주시렵니까?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려놓으시렵니까? 그래도 그런 것들이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신5:29 보세요! “ ...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오직 하나님의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영원히 복된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모 사립초등학교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특수층에 국한된 것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서로 자기 집 이야기로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아빠는 뭐다, 우리 할아버지는 뭐다 ... 그러다가 재산 자랑까지 합니다. 이런 건 아이들한테 말해주는 게 아닌데 ... 왜 그랬는지 모르죠. 한 아이가 그랬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부잔데 어디 어디에 몇 층짜리 빌딩을 내 이름으로 해 놓았다 ... ” 그 말을 들은 다른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에게 대뜸 물었습니다. “엄마, 내 이름으로 해 놓은 거 있어?” “애들이 무슨 소리야 ... 없어!” 하니까 그 날부터 그 아이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 이름으로 해 놓은 게 없는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이게 뭡니까? 재산이 있더라도 그것을 선용할지언정 의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말씀대로 살면 우리 자신도 우리 자녀들도 일생토록 형통할 줄로 믿습니다.


[3] 안식 : 하나님 안에 거하라

광야 인생 승리의 비결 세 번째는 영혼의 안식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안식을 누리고 새 힘을 얻으라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육체 외에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거함으로 영적인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에서 새 힘을 얻고 광야 인생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데 왜 곤고하고, 왜 실패합니까? 하나님 안에 그 영혼이 거함으로 안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철저히 요구하신 게 있습니다. 안식입니다! 23절. “ ...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 ” 이 말씀대로 백성들이 안식일을 준비하면서 6일째 이틀 분을 거두었고, 하루 동안 보관했는데도 어떻게 됐나요? 24절 보세요! “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만나를 내려주신 것도 기적이지만, 평일에는 하루 분 이상 보관하면 썩고 벌레가 생겼는데 안식일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도 기적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중증 청개구리들이 있었습니다. 27절 보세요.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허탕을 친 겁니다. 고생을 죽도록 하고 야단만 맞고 ... 혹시 어떤 사람은 전날 이틀 분을 준비하지 않았다가 쫄쫄 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셨나요? 안식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가지 말고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29절입니다.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나중에는 아예 율법으로 정해주십니다. 십계명 중에 4계명입니다. 출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 날은 뭐하라는 겁니까? 일하지 않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육체도 안식하지만, 무엇보다 영혼이 안식하라는 겁니다. 평일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해야 되지만, 특별히 안식일에는 집중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 듣고, 선을 행하고 ... 신령한 은혜를 얻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토요일 인식을 지키지 않나요? 예수님의 부활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안식 후 첫 날 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눅24:1 참조) 그 날을 주일이라 부르는 겁니다. 부활은 십자가 구원의 확증입니다. 죄로 죽을 인간을 재창조하신 날입니다. 안식일은 창조 기념일인데, 주일은 재창조 기념일입니다. 계1:10 보면 주일이란 말이 나옵니다. 계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 ” 여기서 주의 날(The Lord's Day)이 곧 주일(主日)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꼭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가까이 하고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기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Abide in Me, and I in you - KJV)는 말은 영적인 연합(Spiritual Union)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서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일(主日)은 주유일(注油日)입니다. 성령의 기름을 넣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절대 손해 보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아가 새 힘으로 승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욱 크게 축복하십니다! 보상하십니다! 이 사실을 꼭 믿으시고 주 안에서 참 안식을 얻고 그 힘으로 승리하시가 바랍니다.

여러분, 정말 인생은 광야처럼 힘듭니다. 모두들 살기 힘들다고 난리입니다.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광야 인생길에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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