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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이 다윗되기까지 (삼상 1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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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다윗되기까지 (삼상 16:6-13)

지난주간 부흥회를 가서 한 주간 섬겼던 곳은 저의 고향동네였습니다.

어릴적 성장해오던 고향 말입니다. 남다른 마음으로 집회를 하던 중 하나님은 많은 은혜를 허락하셨고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감동이었고 감격이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늦은 밤 돌아오는 중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시골 촌놈에게 참으로 존귀한 사람으로 이끌어 오셨구나 싶었습니다. 부모 없이 자란 나인데 참으로 열악했던 환경에서 성장했던 나인데 열다섯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장난감만드는 공장에 있던 나인데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250부씩 돌리고 공부를 해야 했던 나인데 결국 영양실조로 쓰러졌던 나인데 지금의 눈으로 보면 내일이 암울했던 나였는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그렇게도 암울하기만 했던 나 유재명을 최고의 작품으로 이끌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에게는 유재명이라는 사람을 여기까지 오게 하시는데 유재명이라는 사람을 만드시는데 그 어떠한 장애물도 암울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의 아주 촌놈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가문을 잘 타고난 그냥 지나가는 평범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왕중의 왕이었습니다. 성도님들이여 신약성경에서 어떻게 시작되는지 아십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입니다. 성경은 세상에 오실 하나님의 독생자를 일컬어 다윗의 자손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품고 있는 이스라엘국기의 별은 다윗의 별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은 무려 66장에 걸쳐서 다윗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만도 그의 이름을 59번이라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고 용사였으며 음유시인이었으니 그의 펜끝에서 쏟아져 나온 시편들은 오늘은 여전히 우리 모두를 감격하게 하지 않습니까 이런 다윗에 대한 성경의 처음 표현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요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처음 다윗은 사람의 마음에 합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드는 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보기에는 한 없이 부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 여덟중에 막내 아들입니다.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는 다윗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들 여덟중에 말째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말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학가톤으로 단순한 순서의 개념을 넘어 등급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미달입니다.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가장 늦게 태어났을 뿐 아니라 형제중에 제일 변변치 못한 아들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사무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느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보냄을 받았을 뿐입니다. 이새의 아들중에 한 아들을 선택하여 기름을부터 이스라엘왕으로 예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새는 자신의 아들들을 차례로 사무엘앞에 세웁니다. 처음 아들 엘리압 그리고 아비나답 삼마 하나같이 사람보기에 아버지가 보기에도 대단한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아니라 합니다.

사무엘은 다음 아들을 찾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말째인 학가톤은 그 시간에도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나올 수 있다는 대단한 가족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말째가 학가톤이 그 자리에 있으면 행여 가족행사에 누가 될까하여 다윗은 형제중에 제일 변변치 못한 학가톤이어서 양을 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사람마음에도 기준에 미달되는 다윗이었습니다. 부모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은 다윗을 함부로 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중에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를 방문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군대들이 40일동안 숨기에 바빳습니다. 대책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길 수 있다 합니다. 내가 저 골리앗을 무너뜨리겠다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큰 형 엘리압의 학가톤을 향한 외침을 보십시오 17:28절을 보니 늘 업수히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학가톤이었습니다. 단순한 막내가 아니라 등급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찾아내셨습니다. 사람앞에는 학가톤이었던 다윗을 향해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신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다윗은 학가톤이 아니라 한 없이 좋아보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이것은 지금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의 하나님의 앞에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다윗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대요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다윗의 인생에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니다. 학가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 학가톤의 삶에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비전을 담은 것입니다. 이제 너는 너만의 삶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너는 너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몬속에서 베드로를 계획하셨던 하나님이 사울속에서 바울을 계획하셨던 하나님이 학가톤속에서 왕중의 왕을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다윗의 본질은 학가톤입니다. 등급에 모자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시간 시간 하셨던 말씀입니다. 여기에 사람을 만드신 후에도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감격입니다.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 다윗은 학가톤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임을 하나님이 다윗의 인생에 개입하시니 다윗을 통해 위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제 다윗이 다윗되기까지의 보면 이렇습니다. 목동 학가톤이 왕이 되기까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셨다 내 삶에 하나님의 비전이 담겨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대단한 생각을 합니다. 앞길이 평강에 평강이 넘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비전이 한 사람의 삶에 개입하실 때 결코 그 삶이 핑크빛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심겨진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갑니까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윗이 다윗되기까지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환경과의 싸움도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이는 형제들의 질시와 멸시입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다윗을 죽이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자였습니다. 내 아들 다윗아 함께 식사하자 하면서 창을 던집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다윗 주변에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을 붙여 다윗을 만들어 가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만들어가는 원리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하고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을 인정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기다림의 싸움입니다. 때론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받되 조급함으로 그르칠때가 많이 있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는데 왜 빨리 이루어주시지 않는가 다윗이 다윗되기위해서는 바로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처음 학가톤의 신분에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금방 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다윗의 기름부으심은 헤브론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지만 다른 지파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33년을 다스리기 위해 기름부으심을 받습니다. 처음 기름부으심의 은혜가 제대로 펼쳐지기까지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 20년정도가 지난 뒤에야 온전한 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때론 20년의 기다림속에 많은 사람들이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환경속에서 결국 기다림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결국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가다말면 힘든 것만 남고 끝까지 가면 간증이 남는다


다윗이 다윗되기까지는

또하나 싸워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환경도 이겼습니다. 사울의 모진 시련도 참아 내었습니다. 전쟁도 이기고 골리앗도 이겼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철저히 게을러진 자신앞에 밀려오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여인의 문제는 여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학가톤이 다윗이 다윗되는데 있어 가장 독하게 싸워야 할 대상은 내 안의 나입니다. 자기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라는 능력과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과 배려 그리고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학가톤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대요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을 그리고 있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밀어버렸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환경과의 싸움에서 이겼고 기다림과의 싸움에서 이겼고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2008년 내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담고 내 마음에 하나님의 비전을 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사람으로 힘차게 출발합시다.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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