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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성도 (행 10:1~2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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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성도 (행 10:1~23a)

1. 아무 이상 없습니까?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 신체에 있어서 뭔가가 부족하거나 결핍된 것이 생겼다는 말이거나, 반대로 어떤 것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말입니다. 시력이 나빠져서 보는 것이 전과 같지 않거나, 듣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다든지, 피가 모자라 빈혈이 일어나고, 뼈와 뼈를 연결하는 관절 부분이 다 닳아서 괴롭기도 하고, 또 고혈압이나 당뇨 증세가 생기기도 합니다. 최근 한 조사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열 명 중 네 명이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합니다. 남성들은 주로 간장 질환과 고혈압 순으로 건강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여성은 고혈압, 신장 질환 순으로 건강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건강의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평소에 자신의 신체를 잘 살필 것을 권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기면 눈, 혀, 손, 피부, 특히 얼굴 피부 색깔 등,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잘 만 살피고 관찰하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겠지요.

이런 육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영적인 건강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결핍이나 이상증세가 있다면, 그 역시 잘 살펴 그때 그때 즉각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대단히 뛰어난 두 사람의 신앙의 선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말 두 분 다 우리가 따라 잡기에는 아득히 멀어 보이는 분들이지요. 그러나 대단히 뛰어난 신앙인이었던 이분들에게도 심각한 결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바로 그것을 살펴보면서, 여러분 자신을 점검하시고, 그리하여 더욱 건강한 영성을 가지고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2. 진단하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

1) 고넬료의 문제

오늘 본문 전반부에 등장하는 고넬료는 아주 특별하게 그 경건성이 뛰어났던 분입니다. 고넬료는 정통 로마인으로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파견된 군 지휘관이었습니다. 그의 계급은 ‘백부장’이었는데, ‘백부장’이라는 이름 그대로 100여명의 부하를 거느린 지휘관으로서, 오늘 우리로 치면 ‘대위’ 정도의 계급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행정 중심지는 가이사랴였는데, 여기에 로마 총독부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이사랴에는 총독부를 경비하면서 총독과 관리들 등 로마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군부대가 파견되었고, 고넬료는 바로 이 팔레스타인으로 파견된 “이탈리야대”라고 하는 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고넬료가 어떤 경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습니다. 아무튼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는데, 오늘 본문은 그의 경건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❶ 첫째로 고넬료는 하나님을 敬畏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문화와 문명과 국가의 힘을 자랑하던 로마, 주피터를 비롯한 많은 신들의 나라인 로마, 그 로마의 황제는 신의 장자이자 신 자체라고까지 하던 나라인 로마, 이러한 로마의 고급 군인인 그가 어떻게 자신이 정복자로 온 지역민의 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는지, 이것은 정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복자는 자신이 지배하는 민족과 그들의 신을 우습게 여깁니다. 자기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한 무능한 피지배국의 신을 뭐 그리 대단한 신이라고 떠받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2). 로마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뜻입니다. 절대자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나 미신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그를 바르게 존중하고 섬기는 태도를 “경외”라고 합니다. 또한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비록 로마인이었지만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그 예배를 통하여 유대 온 족속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22). 바로 이런 모습이 고넬료의 경건의 모습이었습니다.

❷ 둘째로 고넬료는 어려운 사람들을 救濟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무슨 자선단체나 이웃돕기 행사에 ‘金一封’을 내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금액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대부분의 행사에 반드시 ‘금일봉’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밀었습니다. 따라서 ‘가이사랴 주둔 로마 백부장 누구누구의 금일봉’이라는 이름으로, 한 지역의 치안을 맡은 로마정부의 대리자로서 지역의 가난한 서민을 돕는 정도는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고 말합니다(2). 그의 구제가 형식적인 구제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사실 지난 역사에 있어서 정복자는 압박하고 통제하고 빼앗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것이 정복자의 특권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 인류의 문화유적들이 영국이나 프랑스나 미국이나 일본으로 갔습니까? 그러나 고넬료는 이러한 정복자의 일상을 저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 자신의 재산의 상당수를 구제하는 일에 바쳤습니다. 그는 피지배자를 섬기는 자, 구제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그 지역 사람들을 구제하는 구제부장이 된 것입니다.

❸ 셋째로 고넬료는 항상 하나님께 祈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선 두 가지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항상, 늘, 무시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특히 오늘 본문은 그가 “제 구시 쯤 되어”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9시, 그러니까 오후 3시는 가장 바쁜 시간입니다. 로마 파견 부대의 중간 간부로서 업무가 많았을텐데도 그 과중한 임무, 그 많은 일들을 신속히 처리하고 기도 시간을 확보하여 기도하는 일에 우선했다는 것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을 보면 고넬료는 기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는 것, 기도를 즐기는 사람, 그리고 기도의 그 깊고 신비한 맛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대단히 뛰어난 경건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넬료의 경건에도 결정적인 결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이 훌륭한 경건을 아무런 쓸모가 없게 만드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환상 가운데 천사를 보내셔서 고넬료로 하여금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시몬 베드로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시몬 베드로가 고넬료의 ‘결정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그의 치명적인 결핍을 채워주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고넬료의 결핍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경건의 모습, 신자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추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속에 복음이 없다면, 고넬료와 같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서울의 어느 목사님은 자신이 교회를 개척한지 13,4년여 만에 교회가 서울 강남 지역에서 첫째, 둘째가는 교회로 성장했지만, 정작 자신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던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위기란 설교, 심방, 교인 훈련, 교재 편찬 등의 일들로 인하여 너무나 바쁜 나머지 영적으로 메말랐고 건강까지 나빠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자기 속에 복음의 능력과 복음에 대한 감격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감격,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 복음을 외칠 때에 일어날 그 능력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복음이 사라지자 성령의 역사도 따라서 사라지기 때문에 그의 사역과 생활은 그렇게 메말라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을 고민한 후에야 그 목사님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다시 복음에 매달렸습니다. 그분이 복음에 매달려서 복음의 감격을 회복했을 때,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자신을 누르고 있던 모든 문제들도 해결되었습니다. 아무리 아닌 척 해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으며, 성령의 충만함이 없다면, 그는 심각한 결핍증에 시달리는 환자일 뿐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너무나 특이하고 대단한 경건조차도 복음이 없고 성령이 없음으로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이 순간, 여러분 속에 주님의 복음이 살아서 퍼덕거리고 있습니까? 복음의 능력이 살아 용솟음 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화평과 자유와 기쁨과 충만한 역사 속에 거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속에 살아계신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와 그가 주시는 감동이 넘칩니까?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여러분은 고넬료처럼 이름뿐인 신자, 껍데기에 불과한 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2) 베드로의 문제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등장한 고넬료와는 달리 순수 유대인입니다. 또한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초대 교회의 공인된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전 유대 지방과 갈릴리, 그리고 사마리아 등의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순회 심방하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역과 함께 기회를 얻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에도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베드로에게는 가려진 하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만의 주님으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부요를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일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베드로의 문제였습니다.

편견(偏見)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AIDS가 확산되기 전에 인류가 안고 있던 불치의 병은 ‘편견’이었습니다. 백인이 인류와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에 흑인이나 황인종은 모든 면에서 열등하고 모자라다고 하여 무시한 이 편견의 역사는 얼마 전까지 이 세상을 주도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한 정치가는 “인류의 역사는 편견의 역사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만 해도 어느 지방과 어느 지방의 편견의 싸움이 곧 정치의 역사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개로 여겼으며, 실제로 개라고 불렀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은 인종적으로 교만과 증오에 가득차서 이방인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함께 식탁에 앉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에 있어서의 결핍 요소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설사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그는 속으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이 전해져야함에 대해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주 특이한 환상을 그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환상은 정통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혐오스러워하고 부정하게 여기는 동물들을 그릇에 담아서 베드로에게 내밀면서 그에게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선민인 자신이 더러워질 뿐 아니라, 아예 생각하기도 싫은 동물들인데도, 하나님의 충격적인 말씀은 그것을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못한 것은 저는 언제든 먹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혈통으로, 유대인의 양심으로, 또한 유대인의 신앙으로서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3번 반복된 후, 그 보자기 같이 생긴 그릇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환상은 우선 유대인들의 ‘음식에 관한 율법의 전통은 이제 예수 안에서 사라졌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잠시 후 이방인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이 환상의 의미를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34절에 나오는 그의 고백대로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종의 장벽이 무너졌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임을 속으로 거부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 편견을 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 주님은 베드로 자신을 통해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로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의 신앙생활에서 결핍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은 국경과 인종과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가졌던 이 편견이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아직도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 자신과 지식이나 경제적인 수준 등이 비슷한 사람과만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까? 평소에 나쁜 감정이나 혹 좋지 못한 일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시 외국으로 가서 복음 전하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부감을 갖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성경은 바로 그러한 태도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뜻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편견과 장벽을 뛰어넘어 주님의 위대한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여러분 역시 심각한 결핍증에 걸린 사람, 아니 이 사랑이 없으면 여러분을 신자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보이신 바로 그대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주님의 사랑의 복음을 가장 어려운 사람과,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오늘 여러분의 경건도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3. 건강하고 부족함이 없는 성도

말씀을 맺겠습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경건의 모양 뿐 아니라 경건의 내용과 그 질에 있어서도 제대로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건에는 빠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었으며, 따라서 성령께서 그의 속에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위대한 복음이 없고, 성령의 역사가 없는 신자의 경건은 참으로 헛된 것입니다.

명실상부한 주님의 수석 제자, 초대 교회의 지도자, 여러 교회를 순방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던 위대한 사역자였던 베드로, 그러나 그에게도 심각한 결핍이 있었습니다. 아직 그의 속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 되는 것, 그리고 모든 인간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결핍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이 주님의 중재로 만났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를 통하여 인종을 뛰어넘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사람에게서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성령님,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만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들이 없으면 그는 심각한 결핍증에 시달리는 사람, 즉 영적인 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신자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사람이지요.

인간의 신체에 반드시 필요한 5대 영양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비타민, 철분, 칼슘, 나트륨 등 3가지 무기염류,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입니다. 우리는 팔다리 다치는 것에는 신경을 쓰도, 우리 신체에 뭔가 하나 부족한 것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3가지 무기염류 중의 하나인 철분이 부족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철분이 부족하면 빈혈이 생기고, 이것이 악성 빈혈이 되면 생명이 위험하게 됩니다. 빈혈로 인하여 산소공급이 부족하게 되면 뇌세포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면 머리에 치명적인 손상이 가게 됩니다. 우리 몸에 아주 작은 양의 영양소라고 해도 그것이 부족하면 이러한 해를 끼치는데, 성도의 경건생활에 복음, 성령님, 그리고 사랑이 빠져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영적인 질병에 걸리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스스로에게 “나의 머리는 주님의 복음으로 충만한가?”, “내 속에 성령님께서 충만히 거하시는가?”,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를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것이 바로 건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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