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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시 19: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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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시 19:7~14)

숨기고 싶은 약점

모든 사람이 저마다 약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체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몸에 장애가 있어 고생하는 분도 있고, 몸에 큰 상처나 흉터가 있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갑자기 큰 병이 들어 고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신체적인 약점을 숨기기 원합니다. 몸에 병이 생기면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하고 부탁하거나 "온 성도들이 알고 함께 기도하게 해 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남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고 목사님만 알고 기도해주세요"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여 집사님은 한여름에도 늘 긴팔 옷만 입고 다녔습니다. 워낙 추위를 타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긴팔 안에 숨은 팔뚝에 아주 커다란 흉터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여 집사님은 깜짝 놀라면서 황급히 흉터를 감춥니다. 알고 보니 어렸을 때 화상을 입은 흉터 때문에 늘 그렇게 더워도 긴팔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에, 언어에 약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참 멀쩡한 분인데, 성격도 괜찮은 분인데 이상하게도 입만 떼면 말실수를 많이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기도 하고 괜히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손해 보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을 좀 줄이세요." 이 말은 말수를 좀 줄여서, 말을 좀 적게 해서 말의 약점을 감추라는 뜻입니다. 조금 전 말한 신체적인 약점은 숨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남이 볼까봐 늘 감추고 다니고 쉬쉬 하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이 알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잘만 감추면 됩니다. 말을 줄이고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말하기 전에 아주 잠시만, 다만 0.1초라도 생각하고 말하면 말실수를 그만큼 줄일 수 있습니다. 잘만 하면 말의 약점을 거의 다 감추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야, 저 사람 참 말을 아낀다. 참 쓸 만한 말만 골라서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마음속에 약점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속에 나쁜 생각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욕심이나 남을 미워하는 생각, 음란한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누가 그럴까요? 다 그렇지요. 예외가 없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마음속에 나쁜 생각 한 번 안 품어 본 사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다 마음의 약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속의 약점은 정말 숨기기가 쉽습니다. 앞서 신체적인 약점은 숨기기가 어렵지만 말의 약점은 조금만 노력하면 잘 숨길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마음속의 약점은 정말 철저하게 숨길 수 있습니다. 왜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나요? 못 들여다보지요.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던, 아무리 나쁜 생각을 하던 상관없이 표정관리만 잘 하면, 말로 표현만 안 하면 아무도 내 속을 모르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말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내가 은사를 받아서 사람 속을 꿰뚫어 본다." 저는 이런 분들 만나면 정말 무섭습니다. 혹시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큰일 아닙니까? 제가 이렇게 담임목사답게 점잖게 위장하고 있지만 누군가 제 속을 꿰뚫어보면 제가 나쁜 생각 하는 것, 미워하는 사람 다 탄로 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무섭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그런 일이 없습니다. 제가 상당히 교묘하게 위장을 잘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자, 정리해 봅시다. 신체적인 약점은 숨기기가 어렵다. 말의 약점은 비교적 숨기기가 쉽다. 마음속의 약점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겠습니까? 잘만 숨기면 된다는 말입니다. 말조심하고, 내 마음속을 절대 남에게 내보이지만 않으면 우리는 참 괜찮은 사람으로, 아주 인격적이고 훌륭한 사람 소리를 들으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을 조심하고 마음속 생각을 내보이지 않으려 해도,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다 몰라도, 그래서 괜찮은 사람 소리 듣고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까지도 다 꿰뚫어 보시는 분입니다. 역대상 28:9에 보면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참 귀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저도 이런 멋진 유언을 자녀들에게 남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을 다 아시고 의도를 다 아시기 때문에 절대 하나님 속일 생각 하지 말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속과 말조차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 부분까지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9편을 보면 7절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 율법, 교훈을 따르고 순종하라고 명한 다음 12절에 이르러 이런 말을 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겉으로 드러나는 허물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 숨긴 허물조차 없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무엇이냐? 14절입니다. 함께 읽지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까지도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까지도 그러므로 이 두 가지까지도 하나님께 열납되어야 진정으로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열납되는 제사, 열납되는 사람

여기서 '열납'이라는 말이 참 중요합니다. 한자로는 기쁠 열(悅), 바칠 납(納) 자를 써서 "기쁘게 바친다, 기쁘게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히브리말로는 '라촌'인데 역시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표준새번역에서는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이 '라촌'이라는 낱말이 가장 중요하게 쓰인 본문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특별히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바치는 소나 양 등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냐, 하나님이 받아주실 만한 제물이냐를 따질 때 이 '라촌'이라는 낱말이 아주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두 구절만 보지요.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레 1:3)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레 22:20)

히브리말로는 똑같은 '라촌'인데 시편 19편에서는 이 낱말을 '열납'이라고 번역하고 레위기에서는 '기쁘게 받으심'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따라서 '열납'이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는 뜻이며, 나아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제물이 하나님이 받아주실 만한 제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께 소나 양 등을 제물로 드릴 때 아무 것이나 드리면 절대 안 됩니다. 번제의 경우는 반드시 흠 없는 수컷을 드려야 하며, 곡식을 드리는 제사인 소제는 반드시 곡식의 고운 가루 위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아야 합니다. 속죄제나 속건제, 화목제 같은 제사도 다 각자 정해진 제물이 있습니다. 만약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이 정해진 제물 이외의 다른 제물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짐승을 제물로 드리던 간에 반드시 흠이 없어야 합니다.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리는데 상처가 있다든지, 신체부위에 이상이 있다든지, 발가락이 부족하다든지, 병이 들었다든지 아무튼 완전한 상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제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물은 소든지 양이든지 어떤 짐승이든지 반드시 '흠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디 상처나 병이 없다는 뜻이요 법적으로 따지자면 '비난할 점이 없는, 결백한'(blameless)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흠이 없어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들여 주신다는 말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 14절 말씀처럼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고, 받아들여지려면 말에도 심지어는 마음의 묵상까지도 전혀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말에 전혀 실수가 없어야 하고, 마음속에 품은 모든 생각조차도 흠 없이 깨끗하고 완전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이 열납하지도 않고 받아주시지도 않는다는 것십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큰일입니다. 왜요? 우리 중에 이렇게 흠 없고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세상에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그런 사람이요. 나는 흠이 하나도 없고 완벽한 사람이요"라고 자신 있게 손들 수 있는 분 계십니까? 없잖아요? 저도 손 못 듭니다.

우리가 결코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흠 하나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아무 흠도, 약점도 없는 완벽한 사람만 찾으신다면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 가운데 구원받을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열납될 만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열납하실 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불가능한 일일까요? 아니요. 가능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까짓 거 대충

첫 번째 방법은 이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까짓 거 대충" 방법입니다. 즉 "문제 있지만, 흠이 많지만 세상 사람들 다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자. 그럴 수도 있다. 다 그 놈이 그 놈이지 뭐 그리 다르냐? 하나님, 그냥 받아주세요. 이만하면 됐지요 뭐"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요? 지금 대통령 당선인을 배출한 모 정당에서 국회의원 공천을 하면서 잡음이 많은 모양입니다. 연일 뉴스와 신문에 계파 간 갈등이 어떻고 탈당을 하느니 마느니 참 시끄럽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것입니다. 올 4월 9일에 있을 제18대 국회의원 후보를 공천해야 하는데 문제는 공천을 하면서 당규 3조 2항에 해당되는 사람은 공천을 안 하겠다고 한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 3조 2항이란 뇌물이나 불법정치자금 등 부정부패와 관련되어 형이 확정된 사람은 공천하지 않는다는 조항인데 이 조항을 적용한다니까 한쪽에서 자기 쪽 사람을 겨냥한 음모라고 반발하면서, "그렇다면 이 조항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서 벌금형 받은 사람도 다 공천에서 빼라, 그러면 너희 쪽에서도 상당수가 걸릴 것이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옆에 서 있던 국회의원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어디 있어? 그런 식으로 하면 다 걸리지." 제가 특정 정당이나 어떤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없으니 아무나 다 지도자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글쎄요. 이게 맞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하나도 없으니 먼지 나도 괜찮다고 한다면 문제입니다. "나도 먼지 나고 나도 문제 있지만 나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언제 우리나라 정치가 깨끗하고 국민이 신뢰할 만한 정치인과 지도자가 세워지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한 영원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치도 그러한데 하물며 우리의 영적인 문제는 어떨까요? 하나님 앞에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 하나도 없으니 그냥 넘어가야 할까요? "남들도 다 문제 있고 흠이 많으니 나 정도면 양호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그냥 눈 감고 넘어갑시다"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요. 절대 안 됩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우리의 흠과 결점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반드시 흠이 없어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행동에, 우리의 입의 말과 마음속의 생각까지도 흠이 없어야만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 열납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첫 번째 방법, "그까이꺼 대충" 방법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둘째 방법은 이것입니다. "보혈의 공로" 방법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짐승으로 제사를 드릴 때 반드시 그 짐승의 피를 함께 드려야 합니다. 피 제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반드시 피제사를 드려야만 할까요? 이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고, 우리 자신도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매주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흠 없는 제물만 받으시는데 우리 중에 흠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다 흠도 많고 문제도 많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앞서 말한 첫 번째 방법처럼 "그까이꺼 대충, 흠도 있고 문제도 있지만 그냥 대충 넘어갑시다"라는 식으로는 안 된다고 했지요? 반드시 흠을 없애야 합니다. 반드시 흠 없고 죄 없는 상태가 되어야만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나온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는 우리의 모든 흠과 허물을 말끔히 씻어서 더러운 우리를 깨끗이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열납하실 만한 흠 없는 제물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찬송가 252장 1절)

이렇게 예수님의 피로 제사를 드리면 우리가 흠 없는 제물이 됩니다. 더럽고 추하고 흠 많은 우리,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우리가 이 피를 통하여 죄가 사해지고, 거룩한 성도가 되고, 하나님이 열납하실 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입술도 예수님의 피를 통해 정결해져야 합니다. 입만 떼면 욕하고 불평과 원망만 늘어놓던 더럽고 흠 많은 입술이, 늘 부정적인 말만 입에 달고 살며 남에게 상처 주고 남 비난하기만 하던 우리의 추한 말이 마치 하나님이 이사야의 입에 제단 숯불을 대서 깨끗케 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입이, 언어가 정결해져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입술이 되고,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고 말의 힘이 큽니다. 또한 내 입의 말뿐 아니라 내 마음의 묵상과 저 깊은 곳에 있는 생각까지도, 우리의 모든 사고방식까지도 다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되기를 바랍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모습만 거룩해서는 안 됩니다. 내 안에서 나가는 말까지도 거룩해져야 합니다. 심지어 내 저 속에 숨은 생각까지도, 남들이 절대 볼 수 없는 속마음까지도 깨끗하게 씻겨야 합니다. 이렇게 내 삶이, 그리고 내 말과 마음속 생각까지도 거룩해지고 흠이 없어야만 진정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봅시다. 이렇게 우리 삶과 말과 행동과 생각까지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케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피 공로를 의지해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즉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물과 헌신과 봉사가 어떤 동기에 의해 드려져야 할까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지해서 그 은혜에 감사하여 드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헌금을 드리고 아무리 열심히 봉사해도 하나님이 받아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빠지면 그것은 참다운 제사와 헌신봉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동기에 의해,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드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가사로 만든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인생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여져서 하나님께 열납되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내 모습이 너무 추한데, 하나님께 열납되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는 너무도 흠이 많은데 그래도 예수님의 보혈로 정케 하사 하나님 자녀 삼으시고 주님의 도구로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원하옵기는 겉으로 드러나는 내 모습,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 뿐 아니라 내 입의 말도, 그리고 내 속에 감추어져 있는 속마음까지도 정결케 하사 주님이 받으실만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혹시 그 동안 내 입의 말로 인해 실수하거나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내 마음속의 더러운 생각과 어그러진 인격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용서하여 주시고 내 말과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옵소서."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이 결심이 우리의 결심 되어 참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겉 사람과 저 속사람까지 온전히, 송두리째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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