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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감람나무에서 (롬 11: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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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감람나무에서 (롬 11:17-24)

부활주일을 앞두고 사순절이 시작되는 이 날 성찬예배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주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떡과 잔을 나누며 이것은 내 살이요 내 피라 하셨습니다. 성찬예식은 사람으로 시작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받는 떡은 영광스럽게도 주님의 살이어야 하고 우리의 마시는 잔은 주님의 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입술은 부정한데, 떡과 잔을 받아야 할 우리의 손은 추하고 허물이 많은데 성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찬을 받으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로마서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매 주일 낮 예배 시간마다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9장 3절을 통해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가슴속에는 이정도의 갈증이 있습니까? 무엇인가를 향하여 이정도 원하는 바는 있으십니까? 내가 죽게 될지라도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는 만큼 무엇인가 강력하게 원하는 것이 있고 그 원함이 여러분을 이끌고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원함이 내가 죽어도 돈을 벌어 볼거야, 내가 죽어도 출세를 해 볼거야 그 정도의 선이 아니라 또 다른 영혼을 가슴에 안고 또 다른 영혼이 구원받기를 갈망하며 부르짖는 부르짖음 말입니다. 바울에게 동족 유대인들이 예수 앞에 돌아올 수만 있다면, 저들이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눈물로 애절하게 호소했는데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는 이제 유대인들의 회복 가능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유대인들이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거하여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저들에게 믿음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부분에는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먼저 부르셨습니다. 성도가 성도됨의 시작은 언제부터입니까? 내가 주님 앞에 먼저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먼저 부르셨다고 느껴질 때부터 입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 끌려 교회를 나왔는데, 자식에게 아내에게 끌려 교회를 나왔는데 그래서 언제든지 내가 이렇게 신앙 생활하다가 그만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세상이 무어라 해도 내 신앙을 그만둘 수 없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음은 내가 주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고 느껴질 때부터이니 한 결 같이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시작을 경험했으니 알파의 하나님을 만나면서 부터입니다.

성도가 성도됨의 또 하나의 시작은 언제부터입니까? 용서의 은혜가 내 안에서 깨달아 질 때부터 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용서 받은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은혜, 성도가 성도됨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은혜를 경험했어도 병든 자에서 치료됨의 은혜를 경험했고 가난에서 부요함을 경험 했다 해도 만약에 저와 여러분 안에서 용서의 은혜가 경험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실 본질적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죄인이구나 나는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말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는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말씀의 뜻은 내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껴지는 만큼 비례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광채 안에서 나 자신이 벌거벗은 듯이 죄인임을 확인하고 나는 용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고백해 보았습니까? 여기에 눈물이 있고 감격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우리는 자격 없는 이방인이었는데 말입니다. 처음 자격이 주어졌던 유대인에게는 믿음이 믿음 되지 못하였는데, 처음 자격이 주어졌던 유대인에게는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였는데, 전혀 자격이 없던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믿음이 믿음 되고, 은혜가 은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의 이야기를 통해 자격이 없던 우리가 어떻게 은혜를 입게 되었는가를 그리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감람나무를 설명하면 감람나무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올리브 나무라고도 합니다. 올리브유가 생산되는 것이요 감람유가 생산되는 것입니다. 감람유는 거룩한 기름으로 불리워집니다. 감람유는 하나님께는 제사용으로 드려지고 제사장이 임직을 받아 기름부음을 받을 때 바로 감람유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며 성막과 성전에 모든 기구들을 세상에서 만들어 안으로 들여다 놓으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감람유를 발라 거룩하게 구별예식을 행한 뒤에 들여놓게 되어 있습니다. 성막 내에 등불을 켤때도 감람유를 사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감람나무는 평화와 안전을 상징하니 창세기 8장 10-11절에 보면 노아가 40주 이상을 노아 방주 안에 있다가 바깥세상이 궁금하여 새들을 내어 보냈고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와서 노아의 마음을 흥분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감람나무는 평화와 안전 그리고 소망을 상징하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감람나무 중에 감람나무 참감람나무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혹시 아시는지요?

오랜 날 동안 신앙생활 하셨던 어르신들, 이말 들어보셨는지요? 전도관에 박태선씨가 나는 감람나무라 외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감람나무라 이 말은 자기는 메시야라는 말이요 바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박태선은 박태선이지 절대로 감람나무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감람나무인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어떻게 입게 되었는가? 로마서 11장 17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입니다. 성도된 우리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돌감람나무라는 것입니다. 감람나무이기는 한데 돌감람나무입니다. 모양은 비슷한데 쓸모가 없는 것 입니다. 열매는 있는데 기름을 낼 수 없는 열매인 것입니다. 무성하기는 한데 유익을 줄 수 없는 나무입니다.

사사기 9장 8-9절에 보면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누가 우리의 왕이 되었으면 좋겠는가? 이때 온 나무들은 감람나무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나무들이 몰려가서 감람나무에게 부탁을 합니다. 네가 우리들의 왕이 되어라 그래서 우리들을 다스려라 합니다. 이때 감람나무가 말하기를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거절하고 겸손하게 자기의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왕이 되기를 거절하고 세상에서 화려해지기를 거절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기름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영광스러운 기름을 낼 수 없는 돌감람나무가 바로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접붙임은 돌감람나무를 잘라내고 참감람나무가 접붙임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혹시 시골에서 살아보셨는지요? 감을 심으면 감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고염나무라고 있습니다. 이 고염나무를 밑에서 자릅니다. 고염나무가 감나무이기는 한데 잎은 무성한데 열매는 엄지손가락 마디만하게 열립니다. 그 열매는 먹을 수가 없습니다.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감나무가 되는 과정은 고염나무를 잘라서 품종이 좋은 단감나무의 새순을 여기에 꽂고 끈으로 잘 묶고 흙으로 덮어주면 이것이 접붙이는 것입니다. 신기한건 나중에 자라는 건 단감나무가 자랍니다. 뿌리는 고염나무인데 진액은 고염나무 진액인데 신기한건 정말 맛있는 단감 열매들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실은 접붙임의 신비인데요 돌감람나무를 잘라내고 참감람나무를 접붙이면 자라는 것은 돌감람나무가 자라나요? 아니면 참감람나무가 자라나요? 참감람나무가 자라 감람유를 생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접붙임의 신비를 우선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돌감람나무를 잘라내고 참감람나무를 접붙인 것이 아니라 역으로 참감람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돌감람나무를 접붙였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원래 접붙일 때는 한 가지에 한 가지입니다. 한 나무에 한 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는 가지들은 참감람나무를 뿌리로 하고 수없이 많은 가지들이 접붙임의 은혜를 입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 참감람나무는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인 우리가 접붙여졌는데 그렇다면 여러분 물어봅시다. 성장 할 때는 참감람나무가 성장하나요? 아니면 돌감람나무가 성장하나요? 벌써 잊었군요 돌감람나무가 성장합니다. 위에 접붙였으니까요. 여러분 접붙이기는 했지만 안타깝게 열매는 여전히 별것 없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 대단해졌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예수를 믿어 봐도 별것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돌감람나무의 사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공급받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음적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주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뿌리는 참감람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원래는 아니었지만 옮겨진 것입니다. 원래는 세상에 속하여 세상에 심겨진 것들이었지만 옮겨져 접붙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접붙임을 받았지만 여전히 생긴 것은 돌감람나무입니다. 겉모양은 예수를 믿기 전이나 믿고 난 후 똑같은 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의 사는 원리가 달라졌습니다. 세상에 심겨져 세상의 원리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 심겨져 그리스도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겉모양은 여전히 돌감람나무 일뿐 아니라 열매도 돌감람나무 열매만 맺습니다. 하는 짓도 꼭 돌감람나무 짓만 합니다. 그래서 그런 나도 싫고 또 덕도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의 소망은 참감람나무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작은 예수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내가 예수를 본받은 것처럼 그대도 나를 본받으시오 라고 말하고 싶은게 우리입니다. 예수믿고 천사가 되고 싶은것이 우리입니다. 아니 예수를 믿었으면 천사 정도는 아니어도 구백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세상 사람들에게 비방당하지 않고 PD수첩에서 놀림감도 되지 않고 뉴스 후 에서도 놀림감이 되지 않을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까운건 무엇입니까? 너무도 부끄럽고 속상해서 세상사 람들이 비방하는 그 뉴스를 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들은 부정되고 나는 정결해서가 아니라 그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돌감람나무의 껍질을 벗고 참감람나무이고 싶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어 목사가 되었으니 좋은 목사이고 싶고, 정말 세상 앞에 흠도 점도 없는 참감람나무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아 살긴 살지만 여전히 우리의 모습은 돌감람나무여서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똑같이 좋아하고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똑같이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주님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주님이 싫어하는 것 나도 싫어하기를 원하는데 본질이 돌감람나무인지라 뿌리의 진액을 받아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 이면서도 여전히 내 모습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지적당해도 좋은만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내 한쪽 구석에는 세상 것들을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 이것이 내가 싫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 믿고 얼마나 좋아지기를 원합니까? 그러나 여전히 돌감람나무인것입니다. 지난 1월에 우리 아내와 3남매 아이들이 시골을 열차타고 다녀왔습니다. 나는 놓아두고... 3일만에 돌아왔는데 얼마나 좋아하고 기뻐하는지 “얘들아 좋았니?” “네 너무 좋았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궁금한거예요. 그 시골에서 3일내내 뭐가 좋았을까?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얘들아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니?” “말하면 안돼요” 그새 비밀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영원한 비밀이 어디있습니까? 성경은 항상 “혹이 가로되”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재미있었나 했더니 우리 아내와 3남매가 시골에 가서 어머니에게 화투를 배워서 3일 내내 화투를 치고 온 것입니다.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는지 올라오면서 “아빠에게는 말하지 않기다, 아빠에게 말하면 혼난다” 이렇게 말하고 온 것입니다.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내가 진짜 속상한 이유는 그들이 가서 화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왜 나를 빼놓았냐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돌감람나무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작은 예수이고 싶고 참감람나무이고 싶은데 아닌것입니다. 그래서 속이 상한것입니다.

어쩌면 이 싸움은 천국가는 그날까지의 싸움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날마다 나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세상에 살던 내가 잘리워져서 예수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당하여 그 뿌리의 진액을 공급받아 사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살지만 여전히 우리는 세상에 매여 허우적대는것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나 달라야 합니다. 겉모양은 똑같지만,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돈을 벌기도 하지만 우리는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 은혜를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자 되었은즉 이렇게 말합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받는자 되었은즉”, 받은자 되었은즉이 아닙니다. 과거가 아닙니다. 받을자 되었은즉 미래가 아닙니다. 과거, 현재, 미래 우리의 사는 이유는 날마다 그 은혜로 살고 은혜를 공급받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늘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살아도 산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고 결국에는 땔감이 될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늘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서 그 나무의 진액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늘 뿌리에 붙어있는 감람나무가 되어서 내가 비록 돌감람나무이지만 하는 것도 좀 그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날마다 그 은혜를 공급받지 않고는 세상을 이길 수 없고, 날마다 그 은혜를 공급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없노라, 그래서 날마다 그 은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되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갈급해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날 예배를 안 드렸는데도 괜찮다 하면 위험한 것입니다. 어느 날 기도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면 위험한 것입니다. 어느 날 찬양해야 할 사람이 찬양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내 모습은 그렇습니다. 어쩌면 은혜를 받아도 똑같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 받고 오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은혜 받으면 뭐해 똑같잖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심겨져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생수를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뿌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돈에 심겨져, 출세에 심겨져 허우적대다 보면 나중에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돌감람나무를 향한 바울의 경고는 무엇입니까? 자긍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긍할지라도 내가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너를 보존하는 것 이니라 입니다.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격 있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자 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져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지지 않고 세상에 심겨져도 될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출세만 하면,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음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하나님 아니면 안돼’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수많은 메시지 중에 단 하나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자식을 키우면서 사업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딱 하나 주시는 싸인은 무엇입니까? 이것입니다. ‘너는 나 아니면 안돼’, ‘너는 나 아니면 안돼’. 세상의 모두가 나 아니어도 된다고 말하지만 너는 내게 심겨졌어 나는 너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라 너는 나 아니면 안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무엇인가 내 힘으로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공간에 하나님을 채우시고 하나님과 그 문제의 매듭을 풀어갈 수 있는 복된 영성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18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라”입니다. 너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네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인심 쓰듯 믿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가 헌금하고 내가 봉사한다 하여 내가 교회에 인심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나를 지키시고 예수께로 말미암아 공급되는 그 뿌리의 진액으로 내가 사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앞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뿌리가 나를 보전하는 것입니다. 겉모양은 내가 화려하고 내가 무엇인가 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교회 개척한지 8년 만에 한 멋진 성도가 왔습니다. 청주에 살던 성도가 안산으로 이사를 왔고 청주에 살던 아는 목사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유목사님 아주 귀한 집사님이 안산으로 이사를 갑니다. 유목사님에게 많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유목사님을 소개했어요. 이번주일에 갈 겁니다. 잘해서 그 집사님하고 하나님 일 많이 하세요”.
“네 알았습니다. 목사님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일날 그분이 오셨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첫날 오자마자 눈물로 예배를 드리더라구요.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구나 생각했습니다. 예배 후에 내방으로 오셨습니다. 잠깐 기도를 하더니 “목사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목사님 비전이 크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제가 이 교회에 오면 목사님과 이 교회에 도움이 좀 되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그럼요 집사님 같은 분이 오시면 도움이 되지요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함께 해 봅시다” 이래야 되는 것인데 그러면 참감람나무가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돌감람나무의 열매가 내 안에 아직도 있는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지난 8년간 집사님 없이도 우리교회가 잘 왔거든요 앞으로도 집사님 안 계셔도 우리 교회는 잘 갈 겁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집사님이 우리교회에 오시려면 나를 도와주려고 오지 마세요. 나 도우려고 오시면 언젠가 집사님은 또 아프게 됩니다. 내가 이 교회에 필요 없나봐 하는 단계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나 도우려고 오지 말고, 예수님 도우려고 오지 말고 살려고 오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나무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나무를 보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인가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그 뿌리의 진액을 공급받아서 사는 것이 나이기 때문에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사는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 성찬을 통해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 영성에 공급되어 지기를 축복합니다. 성찬의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사죄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찬을 통해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모습은 돌감람나무이지만 나는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찬의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무엇인가를 결단해야 합니다. 죄와 세상을 끊지 못한 분이 있다면 그것을 끊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인가를 놓아버린 분이 있다면 사명의 결단을 하며 주의 떡과 잔을 받고 이 떡과 잔이 단순한 은혜가 아니라 능력이 되고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세상을 이긴 자 되게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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