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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물을 간직한 질그릇 (고후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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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간직한 질그릇 (고후 4:7-10)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

  인간을 향한 표현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존재의 물품이다’고 말했고 엥겔스는 인간을 가리켜 ‘관념의 생산자’라고 했습니다. 그 밖에도 인간에 대한 표현 중, ‘만물의 영장’, ‘상한 갈대’ 또는 ‘생각하는 존재’ 등, 그 표현이 매우 다양함을 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을 향하여 ‘질그릇’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은 질그릇과 같은 존재임을 말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64:8)고 표현했습니다. 질그릇은 스스로 빚어질 수 없음을 말함으로 인간은 스스로 온전해 질 수 없음을 말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아 애가서’ 에서 폐망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표현 중에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애4:2)라고 탄식했습니다. 깨어지기 쉬운 속성을 표현할 대에 질그릇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쉽게 깨어지고 무너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은 질그릇처럼 나약하고 연약한 존재, 그리고 쉽게 깨어지고 무너지는 존재인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서 그릇의 여러 종류를 말하면서, 무엇을 담을 수 있느냐에 그 가치를 두면서, 담을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을 말했습니다. 인간은 비록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질그릇 같을지라도 그 안에 무엇을 담을 수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는 내 안에 무엇을 담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 중심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인간의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보물을 담은 그릇이 될 때에 가치 있고 소중하며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그리스도인은)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고후4:7, 새번역)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보물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보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말했습니다. 이 보물의 능력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새번역)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보물은 무엇입니까?

  이 보물은 복음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 보물을 담은 질그릇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중심에서 벗어나 있거나 떠나지 않으시도록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으로 그 분이 주시는 지혜와 거룩함,  평강과 기쁨, 사랑과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는 하나님께로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1:30)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질그릇 같은 인간들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그 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에 가치있고 위대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보물을 담은 질그릇과 같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환경의 지배를 당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고후4:8)라고 했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인은 그 환경에 지배되지 않고 그 환경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그의 인생은 어떠한 우겨쌈을 당하는 박해와 위험 중에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의 환경이 그를 결코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죽음의 공포에도 지배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겨쌈을 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죄악과 유혹이 우리를 우겨쌀지라고 그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사단의 계속적인 공격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우겨싸는 환난과 고통과 괴로움을 깨뜨리며 살아갑니다. 어두운 환경을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단의 계속적인 공격을 무력하게 만드는 권세 있는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겨쌈을 당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4:8)라고 말했습니다. 답답한 일은 당한다는 말, ‘아포루메노이’는 혼란이나 걱정, 불안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우겨쌈을 당하는 것이 외부적인 불안과 고통이라면 답답한 일을 당한다는 것은 내적인 고통과 근심과 걱정 그리고 불안으로 인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답답한 일을 당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성령의 위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미국인 선교사가 오랫동안 아프리카에서 열정을 쏟아 선교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큰 희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피곤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선교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그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을 보았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을 때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들의 예포소리와 함께 부둣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습니다. 배에서 대통령이 내려오자 거기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고 많은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주단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후에 선교사는 홀로 초라하게 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휴가를 갔다 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큰 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부인마저 잃고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 깊은 고독감과 절망감이 그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때 마음으로부터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단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은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아니라 황금 길을 깔아 너를 마중해 주마. 사랑하는 아들아 실망하지 마라.’ 이 음성을 들은 선교사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발길을 돌려 아프리카에 돌아가 죽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이후에 이 선교사는 어떠한 일에도 낙망하지 않은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답답한 일을 당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안에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낙망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버려지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9)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그들의 간계와 위협으로 버림을 받아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구출하여 주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핍박과 고난 중에도 버려지지 않고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 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생산업자들은 발칸 산맥의 장미를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딴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장미는 깊은 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핍박 중에도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고, 어려운 중에도 버린바 되거나 망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곳에서 향기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타오르는 불을 치면 어떻게 됩니까? 불꽃이 흩어져 더 큰 불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성도나 교회를 핍박하면 할수록 성도의 신앙이나 교회는 시들기는커녕 더욱 번창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버려지거나 망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생명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의 영광에 참여함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의 모습은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며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습이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명력 있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내가 죽는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가 죽을 수 있을 때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수백 배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을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에 비로써 살아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곧,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고후2:14-16)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어느 대학촌에서 새롭게 주님의 사역을 시작한 의욕에 찬 젊은 전도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교양이 풍부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말씀을 전할까를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가 복음 전도에 연륜이 깊은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아들의 어두운 얼굴을 본 아버지가 인자하게 물었습니다. “얘야, 무슨 근심이라도 있니? 어서 말해보렴”, “아버지, 제가 목회를 시작한 곳은 학식과 교양을 갖춘 지식층의 사람들이 대부분예요. 그래서 설교의 초안을 잡으려면 아주 망설이게 되고 힘이 들어요.” “왜 망설이게 되느냐?” “예, 지질학에 대해서 뭘 인용하려면 그 방면에 뛰어난 교수가 있죠, 또 역사에서 적당한 예화를 들려고 하면 역사학 교수가 앞에 앉아 있고요, 무슨 영문학 재료를 이용하려고 하면 이번에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반론을 제기할 것 같아서요. 이를 어쩌죠?” 진지하게 아들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그런 것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주가 되셨다는 사실만을 전해 보렴. 오직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의 전할 바가 아니겠니? 그렇게 하면 네가 고민하는 것들이 깨끗이 해결될 것 같구나.”

  우리에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질그릇 같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바른 신앙인 것입니다.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인간일지라도,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그 분을 중심에 모시고 살 때에 질그릇 같은 모습이 죽고 위대한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질그릇만의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질그릇만의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보물을 담은 질그릇처럼 그리스도를 담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항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분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이 됨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가치 있고 능력 있으며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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