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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떤 인생을 살렵니까? (삼하 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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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생을 살렵니까? (삼하 6:1-23)

  이 세상에는 꼭 같은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복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6.25 동란 때 1951.9.15 U.N 군의 인천상륙작전은 남한군에게는 한없는 복이 되었지만  그러나 북한군에게는 큰 저주가 되었다.
  신령한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전1;18)  .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법궤도 마찬가지다. 이 법궤가 웃사에게는 저주가 되었고, 반대로 오벧에돔의 집에는 큰 복이 되었다. 그리고 이 법궤가 다윗에게는 큰 복이 되고 그의 아내 미갈에게는 엄청난 저주가 되었다.
 
1. 웃사와 오벧에돔

  법궤를 운반해 오는 책임을 맡은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대어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은,  자기 집에 하나님의 법궤가 20 년간이나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법궤를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너무도 무지하엿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는 바로 알지 못햇다.

  법궤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손으로 만질 수가 없었다(민4:15). 그리고 그 법궤에 손을 대지 않고 채를 양편 고리에 꿰어 사람들의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집에서 법궤를 운반할 때에 새 수레를 만들어 소들이 끌게 하였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들 좋은대로

하고, 자기들 편한대로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은 웃사가 낭패를 당햇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하게 지키고 순종해야지 대강대강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열심도 좋지만 주님 안에서의 열심, 진리 안에서의 열심어야 한다.

  예기치 않게 언약궤를 옮기려다 도리어 사람이 죽게 되자 다윗은  언약궤를 옮겨오는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오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임시로 머무르게 하엿는데, 이상한 것은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법궤가 그의 집에 머무는 석달 사이에 하나님이 그의 집을 크게 축복하셨다. 그의 가족과 가축과 밭의 소산에 풍성한 복이 임한 것이다. 

  그러면 웃사는 저주를 받았는데 거기에 비해 오벧에돔이 넘치는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오벧에돔은 기쁨으로 하나님의 법궤를 영접하였다. 그것은 곧 그가 하나님을 기쁨으로 영접한 것이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법궤를 영접한 것은 곧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다.

  그리고 웃사의 죽음을 보고 다윗까지도 매우 두려워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자기가 사는 다윗성으로 가져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였는데  오벧에돔이 기쁨으로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 집으로 영접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보다 더 바르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벧에돔은 그의 이름처럼 법궤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일꾼이 되었다. 오벧이란 '섬기는 자‘, 혹은 ’일꾼'이란 뜻이다. 그는 자기에게 기회가 왔을 때에 그 기회를  잃지 않고 잘 선용한 선한 일꾼이었다. 우리도 참으로 오벧에돔처럼 넘치는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소홀히 하지 말고 맡겨진 주의 일에 충성하다가
기회가 왔을 때에 그 기회를  잃지 않고 잘 선용하는 자들이 되자! 

2.다윗과 그의 아내 미갈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 집에 기쁘게 영접하여 충성스럽게 섬기므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을 보자 그동안 법궤를 매우 두려워했던 다윗왕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시 하나님의 법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된다.

  더우기 다윗은 블레셋을 정복함으로써(5:17-25) 국가적으로 점차 정치적, 군사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확립하였고, 이제 다윗은 신본주의적 왕국의 통치 이념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 그리고 예루살렘을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왕국의 중심지가 되게 하기 위해 이 일을 기쁘게 추진하였다.

  다윗이 다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법궤를 옮기는 일을 시도하고 그 법궤를 사람들이 메고 오는데 그는 얼마나 기뻤던지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것은 기쁨의 표현이다. 다윗 왕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가져오면서, 그리고 특별히 위해서 준비한 장막에 안치하면서 그는 몹시 기뻐했다.

  다윗은 언약궤 안치를 왕으로서 자신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생각햇고, 그때가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임을 생각하면서 그는 기쁨에 못이겨 여호와 앞에서 기뻐 춤을 추었다.

  다윗은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출 때 왕복을 벗고 에봇을 입고 있었다(14절).  에봇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입는 옷이다. 그는 왕의 옷을 벗고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평민의 옷을 입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왕복을 입고 더 이상 거드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그는 왕복을 벗고 겸손히 낮아진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면서도 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았다. 지금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행렬은 바로 왕의 행렬이었다. 다윗은 바로 그 왕되신 하나님 앞에 그의 신하였고, 그의 백성이며, 그의 종이었음을 보여주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그러한 모습을 본 그의 아내 미갈은 아주 달랐다. 그녀는 여호와의 궤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다윗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업신여기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빈정대고 업신여기는 말을 하였다.

  어째서 다윗과 미갈은 이렇게 서로의 가치관이 다른가?  이것은 분명하 여호와의 궤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울 왕의 영향을 그녀가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궤에 전혀 관심이 전혀 없었다(대상 13:3).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여기서 우리는 미갈과 다윗의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의 차이점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 자세가 늘 어떠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예배의 태도가 항상 어떠해야 하는지 교훈을 받게 된다. 우리는 웃사와 오벧에돔, 그리고 다윗과 미갈 중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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