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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주신 복 (창 26: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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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복 (창 26:12-33)

옛말에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또는 ”손재수가 들면 아무리 조심해도 소용없다, “화는 가히 요행으로 면치 못한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발자고가 말하기를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그것만 생각한다면 반드시 운이 트일 날이 있다 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요?

학식은 높으나 때를 못 만나 출세도 못하고 가난하여 형편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선비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는 詩文을 즐기며 넉넉하게 사는 이웃 마을의 박대감이 천복사의 비문을 구해 오는 사람에게 천금을 주겠다며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천복비는 그 곳에서 수 천리 밖에 있는 고대 명문의 비문으로 세상에 많이 회자 되고는 있지만 너무 깊은 산 속에 숨겨져 있어서 실제로 그 비문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박대감은 찾아온 선비가 학식이 높고 건장하여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적격이라는 판단이 들어 노자 돈을 넉넉히 주며 천복사의 비문을 구해 오면 사례도 후히 주고 출세 길도 열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선비에게는 자기의 운명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잡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고 험하여 왕복하려면 적어도 서너 달간은 고생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런 출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고생을 감수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선비는 수 천리 낯선 길을 산 넘고 물 건너 풍찬 노숙하며 발이 부르트도록 길을 재촉했지만 원래 먼 곳이어서 봄에 출발한 것이 계절이 바뀌어 어느덧 여름이 되었습니다.

길을 묻고 물어 어느 날 서산에 해가 저물 무렵 지친 몸으로 천복사의 아래 마을에 도착한 선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음 날이면 비문을 탁본하여 돌아가 그간의 고생을 뿌리치고 일신의 영화가 열릴 것이란 희망의 꿈을 꾸며 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날이 밝자 선비는 비문을 탁본할 지필묵과 좁쌀 주머니 등을 완비하고 발걸음도 가벼이 천복사로 올라가 주지승을 만나 목적을 말하니 주지 스님은 아주 깊은 산 속으로 그를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비 앞에 당도해 보니 아플사 이 일을 어쩌란 말입니까.

천복비는 간밤에 벼락을 맞아 형체도 없어지고 조각조차 맞출 수 없게 되어버려 선비의 희망과 천신만고는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지승은 하늘을 원망하며 절망하는 선비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시와 운이 맞지 않았구려. 하루만 일찍 당도했더라면 성사되었을 것을... 허나 가장 소중한 생명은 보존했으니 실망하지 말고 강태공처럼 때를 더 기다리시오. 그리고 가난을 원망하며 일시에 운명을 바꾸려는 욕망을 버리고 학문을 더 높이 갈고 닦으면 당신은 더 중하게 쓰일 때가 올 것이오. 당신의 학문은 그렇게 사소하게 쓰일 일이 아니오. 하늘은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사람을 넘어뜨리기도 한다오. 그러니 하늘의 운명을 따르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 하면서 이 선비를 위로합니다.

시127: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 어떤 일을 하든지 주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지, 그렇지 않고 애쓰고 힘쓴다고만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 입니다.

요즘 삼성의 이건희 회장님이 그의 아들에게 재산을 물러주기 위하여 여러 가지 편법을 사용하고, 비자금을 마련하는 가운데 그 중심에 있던 변호사가 변심을 해서 폭로하므로 삼성에 대한 특검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 또는 많은 재산과 권세를 물려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은 부모의 마음일 뿐 세상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설령 원하는 대로 권세와 재물을 물려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자식에게 득이 되느냐 아니면 오히려 독이 되느냐 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옛말에 '권불십년(權不十年), 재불백년(財不百年)이라 했습니다. 권력은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천대에 이르는 축복을 약속하고 있으며, 영원까지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지혜나 상식으로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므로 인간의 이해범위를 초월하는 일이기에 실감나지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물려받아야하고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는가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1. 땅의 축복을 받아야합니다.

창24:35-36절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이 말씀처럼 이삭은 아버지인 아브라함으로 부터 많은 재물과 가축과 종들을 상속받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창26:1절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살던 때에도 흉년이 들었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흉년이 들어서 부득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아버지 아브라함이 돌아가신 후에 이사하여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대풍을 맞게 됩니다. 요즈음에 경제가 어렵고, 농촌에서는 농사를 지어도 원가가 안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삭은 12-13절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창대하고 라는 말은 “거대하다, 세력이 아주 크다 하는 말이고 왕성하여 라는 말은 ”한창 성함이란 말인데 이 말을 합성하면 이삭은 엄청난 재벌이 됐는데 그것도 세력이 막강하고 활동력이 넘치며 무한한 가능성이 넘치는 거부가 되었다 라는 말입니다.

이삭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통치하는 그랄 땅에 이주하여 살고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땅에 대한 소유 개념이 확고한 시절이 아니므로 주인 없는 땅이 많았을 것이며 능력이 되는 만큼 개간해서 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즉 이삭이 흉년을 피해 객지에 와서 불모지를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었는데 그 첫 해에 엄청난 대풍이 들어 거부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12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 귀를 귀울려야합니다. 이삭이 열심히 일해서 또는 땅이 매우 비옥해서 좋은 농사방법을 동원하여 대풍이 된 원인도 조금은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므로 거부가 됐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은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많은 재물과 짐승과 종들을 물려받았지만 그 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2. 우물을 팠다는 사실입니다.

그랄 땅에 사는 이삭은 분명히 이주해온 나그네입니다. 불렛셋 사람들은 그런 연유로 이삭이 자신들의 땅에 들어와 살면서 자기들보다 더 잘 살게 된 것을 본 원주민인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기분이 상했을 것은 자명합니다.

4세기 교부였던 가이사랴의 바실은 말하기를 “사람들의 영혼에 뿌리내린 시기심보다 해로운 악덕은 없다. 라고 했습니다. “시기는 그의 활력을 갉아먹고 결국 그를 다 태워 없애는 질병이며,” 시기는 가장 미개한 형태의 증오, 라고 했습니다.

자기들도 똑같이 농사짓고 사는데 오직 이삭만이 농사가 대풍이 들고 거부가 된 이삭을 보면서 몹시 시기가 나고 못 마탕했을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농사와 축산의 근원이 되는 우물을 막고 메워버렸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이삭이 농사짓던 땅을 빼앗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이삭은 나그네이며 자신의 땅도 아니기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이삭이 살았던 팔레스틴 지역은 매우 건조한 기후와 부족한 강우량으로 물을 얻기 힘든 지역으로 광야에서 우물은 생명유지와 함께 번영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수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물이 있으면 살고 우물을 가지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물의 문제는 곧 생존과 번영의 문제였습니다.

17절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랄에서 우물을 빼앗기고 다시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거처를 마련합니다. 불모지의 땅을 피 땀 흘려 개간하여 한 해에 백배의 수학을 거둘 수 있는 땅을 하루아침에 빼앗겨버렸다는 것은 인생에서 더할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이었을 것입니다.

당장 식솔들과 수많은 가축들이 마실 물을 구할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서 이삭은 좌절하거나 또는 원망이나 항의를 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도전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랄 골짜기에 정착한 이삭은 또 다시 우물을 파기 시작하여 천신만고 끝에 생명의 근원인 물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파기만 하면 샘물이 솟아 나왔다는 것. 여기에 축복의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마5: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즉 화평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뜻으로 화평을 이루며 사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신다 는 말입니다. 즉 이삭이 용서와 관용과 화평을 이루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가 되셔서 가장 중요한 우물을 팔 때마다 샘물이 터지게 하시는 축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번성의 샘터 르호봇을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랄 골짜기에서 목축을 하는 그랄의 목자들이 이삭의 종들이 판 우물을 자기 것이라고 생떼를 쓰며 달려들어 다툼이 일어나자 이삭은 변변한 항의 한 번 없이 힘들어 판 그 우물을 다시 내어 주고 맙니다. 우물 즉 물은 당시의 사람들이나 지금의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생명수입니다. 특히 팔레스틴 지역은 비가 매우 적고 건기나 우기가 뚜렷한 곳으로 식수원을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삶속에서 생사가 달린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삭의 가정은 목축업으로 만약 물이 없다면 식솔들과 많은 종들, 많은 양 떼와 소 떼 낙타와 나귀등 짐승들의 생명은 말 그대로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이 되는 우물을 소유하는 일이 매우 절박한 일입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삭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으로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의지조차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삭은 관용했습니다. 포기하고 먼저 손해보고 먼저 양보하고 조용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언제나 긍정적적이고 도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선으로 대하는 너그럽고 온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은 인내했습니다. 다툼이 있을 때 가장 우리가 다스려야 할 부분은 바로 분노의 감정입니다. 이삭은 다툼이 있을 때 화를 내지 않고 참았습니다. 우물을 파놓으면 찾아와서 자기들의 것이라고 빼앗으면 이삭은 다른 우물을 찾아 피하여 갔고 다시 우물을 파야 했습니다. 이삭은 많은 종을 거느린 지도자로 화평을 위하여 계속해서 양보하고 피하는 이삭을 보면서 종들은 겁쟁이라고 수근 거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참고 또 참으면서 새 우물을 팠습니다. 새로운 우물을 찾아서 계속해서 도전한 것은 바로 믿음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방해받을 필요가 없는 우물을 얻으면서 이삭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습니다.

마5:39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마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이 말씀처럼 이삭은 애써 이룬 땅에서 내쫓기고, 우물을 파놓으면 빼앗기고, 또 파면 빼앗기더라도 결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온유와 관용을 실천하였기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22절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이 사실은 이삭이 힘이 약하고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어서 지금껏 양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삭은 지금 것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빼앗은 것이나 우물을 빼앗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과 인내를 시험하고 더 넓은 장소로 더 큰 축복으로 이끄시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에게 있어서 소중했던 것은 땅이나 우물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비단 이삭만은 아니었습니다.

26절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8절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이 말씀에서 알 수가 있듯이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계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는 사실을 불레셋의 왕 아비멜렉이 깨닫고 두려운 마음으로 화친하자고 찾아온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이삭이 잘되는 것이 못 마땅하고 배가 아파서 땅을 빼앗고 우물들을 빼앗고 못살게 했지만 이삭과 함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했으며 이삭을 괴롭힌 일로 인하여 큰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 자신들과 화친하기를 청하러 온 것입니다. 그리고 29절에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3. 이삭이 믿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입니다

3-4절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삭은 이 말씀을 굳게 믿고 그랄 땅을 떠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을 행하며 언제나 양보와 관용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블레셋사람들은 땅을 이삭의 땅을 빼앗고 내어 쫒고, 우물을 빼앗을 수 있었으나 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빼앗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본문의 이삭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형이며 그림자입니다. 잠16:32절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갈등과 다툼과 시기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용서와 관용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신의 축복도 필요하지만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생명수가 필요합니다. 물은 생명을 이어가는 필수 요소로 인간이나 짐승, 초목들도 물이 없이는 단 한순간도 생명을 유지 할 수 없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영혼은 항상 목마름과 갈증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생명수와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요즘 고급 호텔이나 마트의 세면대에는 수도꼭지가 없지만 센서에 의해서 자동으로 물이 나옵니다. 수도꼭지 밑에 겸손히 손을 내밀어 기다릴 때, 물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손을 내밀 듯 무슨 일이든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때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세상적인 것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본문의 이삭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바라고,선한마음으로 믿음의 절개를 지킬 때 하나님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이 땅에서도 축복을 허락하시고 영원이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물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전 인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에 이삭에게 내린 동일한 은혜가 내려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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