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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걸어가시는 분 (눅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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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걸어가시는 분 (눅 24:13-35)

序論: 낙심과 혼란에 빠진 제자들 (24:17-24) 

누가복음 24장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그 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와 예수님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들의 얼굴은 슬픔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17)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변 속에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들이 예수님께 걸었던 모든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입니다.(19-21) 예수님은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였고, 그들은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관리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버렸습니다. 그들의 기대는 다 깨어져 버렸습니다.

두 번째는 그들을 혼란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지 3일이 되었는데, 어떤 여자들로부터 ‘그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낙심과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가운데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만족스런 삶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질병, 경제적 어려움, 깨어진 관계, 정신적 고통은 여전히 지속됩니다. 예수님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던 자신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더욱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복도 받고 변화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는 더욱 서글퍼지고 자신만 외면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분노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낙심과 혼란과 분노에 빠져 있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해주셨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살펴보면서 거친 세상을 살며 하나님을 향해 실망하고 믿음이 식어진 사람들이 다시금 뜨거운 가슴 (burning heart) 을 회복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I. 예수님은 낙심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 원하시는 분이시다. (24:13-24)

오늘 본문을 보면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면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오셔서 함께 걸어가셨습니다.(15) 제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16)

또한 그들에게 두 번이나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17), “무슨 일이냐?”(19)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낙심과 혼란에 빠진 제자들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 보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찾아오시고 이 험한 세상을 우리와 함께 걸어가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아가 우리의 이야기 - 실망, 좌절, 분노, 혼란 -를 듣기 원하시고 묵묵히 듣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유학할 때 말씀을 묵상하다 이 사실을 깨달고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언어적 장벽, 자녀 문제, 공부에 대한 부담, 경제적 어려움 등 많은 일들이 저를 낙심하게 했습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 저는 혼자가 아니며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고, 나의 이야기를 듣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처럼 저도 마음에 쌓인 좌절, 실망, 두려움, 분노들을 주님 앞에 고백했고, 그 분은 저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셨습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꼭 기억하셔야 하는 사실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분은 지금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계시고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 원하십니다. 예수님께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을 다 이야기하고 맡기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 예수님은 적절하고 깊은 가르침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회복시키는 분이십니다.(24:25-27)

제자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끝까지 들으셨던 예수님은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먼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의 참된 뜻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26,2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그들의 마음은 다시금 불타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낙심과 혼란과 분노에 빠지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환경이 어렵다거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해 영광에 들어가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 받을 때 낙심했고,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셨을 때 그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낙심과 혼란의 근원에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놓여 있습니다. 낙심과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올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께서 바로 이 일을 해주십니다.

얼마 전 제 자신이 낙심과 혼란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주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 왜 나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되었느냐?”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공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영향력 사람이 되기 위해, 자녀들이 복을 받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가 낙심에 빠진 것은 앞에서 열거한 것을 내가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따르게 된 것은 아주 간단한 이유였습니다. 첫 번째, 그 분이 모순투성인 저를 너무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겨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고 가까이 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순간에 하나님은 저를 그 품에 품어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그 분이 모순투성인 저를 꾸중하고 정죄하는 대신에 저와 함께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저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그 분은 저 같은 사람에게도 영광스런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하나씩 깨닫게 해 주실 때 저의 마음에 다시금 불이 일어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성도님들,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를 형통한 삶으로 인도해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모순투성인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함께 고난을 받아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가장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은 형통의 순간이 아니라, 고난의 순간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와 부끄러움을 씻어주셨습니다. 나아가 그 분은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연약한 우리를 반드시 영광으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붙잡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타는 마음”을 다시금 가질 수 있습니다.


III. 예수님은 우리들의 눈을 밝게 하셔서 부활하신 자신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24:28-31)

대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엠마오에 도착을 했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간청을 합니다.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29) 이에 예수님께서 가셔서 그들과 함께 머무시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에 갑작스런 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손님으로 초대되셨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주인의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30)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가리어졌던 (16)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예수님을 비로소 알아보게(31)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낙심과 혼란에 빠진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과 동행하시며 그 이야기를 들어주십니다. 또한 적절하고 깊은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을 마음을 다시금 불타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밝히셔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비로소 보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가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며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는 행동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제자들의 영적인 눈이 밝아질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의 지적대로 이 표현은 누가 복음에서 이미 두 번 사용되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오병이어 사건으로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9:16) 또 하나는 최후의 만찬으로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22:19)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행동을 통해 자신이 제자들과 가졌던 이 친밀한 교제의 시간들을 기억하게 하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이해 속에서, 다시 한 번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며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한 번 그려보십시오.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요번 주 설교를 준비하며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의 마음을 가장 뜨겁게 한 것이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떡을 떼시는 축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볼 때, 그 분의 손에 붙잡힌 오병이어 속에 저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분은 오병이어와 같이 작은 저를 너무도 소중히 여기고 계셨습니다. 나아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부족한 저를 위해 자신을 찢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한 번 더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이 예수님이 저와 함께 하고 계심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도님들과 동행하시며 말씀을 깨닫게 하실 뿐만 아니라, 떡을 떼시고 나누어 주시며 성도님들께서 예수님과 나누었던 친밀한 교제의 시간들을 기억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너무 소중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해 자신을 찢어 주실 만큼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될 때 여러분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結論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사라지셨습니다. 그들은 즉시 유하던 집에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열한 제자와 함께 한 자들에게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다’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낙심과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외면하시지 않고 그들에게 찾아와 함께 걸으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적절한 가르침을 통해 낙심과 혼란에 빠지게 했던 그릇된 믿음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그 분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시켜 주시며 그 분이 살아계심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낙심한 성도들 있다면 다시금 뜨거운 가슴을 회복하고 영적인 눈이 열리어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담대히 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관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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