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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1절]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롬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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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롬 9:1-5)

  1966년 6월 12일 이스라엘이 아랍과 6일전쟁을 치룰 때에 일어난 일화입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 총장이 유대계학생들과 아랍계학생들을 모아놓고 당부를 했습니다. “자네들의 고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는데 자내들은 동요하지 말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학기말 시험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네.”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며칠 지나고 나서 유태인 학생들이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디 갔는지 알아봤더니 유대인 학생들은 “지금 우리 고국에 전쟁이 났는데 우리가 편안하게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있느냐”며 나라를 위해서 총을 들고 싸우기 위해서 고국으로 다 짐을 싸들고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총장은 또 아랍계 학생들을 찾았더니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랍학생들은 어디 갔는가 물어봤더니 그들은 본국에 차출명령을 받을까봐 무서워서 다 은신해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도망가서  숨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전쟁의 결과는 물어보나 마나일 것입니다. 300만도 안 되는 이스라엘이 1억이 넘는 아랍과 싸워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쟁의 승패는 이미 유대인 학생들의 정신력, 그들의 애국심에 의해서 결판났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래어이지만 요즘 우리에게 자주 사용되는 영어단어가 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귀족의 의무’, ‘지도층들의 도덕적 의무’ 이렇게 우리가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 로마에서부터 출발된 말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많은 특권과 지위와 부를 누렸습니다. 사회적인 신분으로서 그들의 지위는 보장되었다고 합니다. 한번 귀족이 되면 평생 귀족인 것입니다. 그 자녀도 귀족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사회의 지도자로서 나아가는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귀족들은 다른 국가의 귀족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라가 어려움 당할 때 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나가서 희생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기를 당했을 때, 나라가 어려움 당할 때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가장 앞장서서, 전방에 서서 싸우는 사람들이 로마의 귀족 자녀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귀족은 귀족으로서의 특권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귀족으로서의 자격과 그 의미와 책임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가리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이 말은 영국 황실에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 황실은 대대로 왕자나 공주들이 군복무를 다하기로 이름이 나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 나름대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입니다. 몇 일전 신문을 보니까 화제가 된 기사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왕위계승서열 3위인 해리왕자가 지금 23살인데 그가 아프가니스탄 교전지역에서 군복무 중에 있는 사진이 신문에 보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이것을 참으로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이미 현재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도 그가 공주 시절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운전병으로 병역의 의무를 마친 바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 황실의 자랑입니다. 그들은 특권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황실이라는 권위만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나라의 의무를 다하고 나라가 위기를 당할 때 제일 먼저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사람들이 바로 귀족들이고 황실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국의 긍지요 자부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인들도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 또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나라의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시민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지만, 동시에 우린 천국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의 삶을 삽니다. 우린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이요, 영원한 천국이 보장된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우리는 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참으로 이 사회에서 남보다 더 희생하고,  더 봉사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사회에서 교회나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우리하고 근본적으로 달라. 너희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냐? 너희들은 우리와는 삶이나 그 인격이나 행동이 달라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들은 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살더라도 기독교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살아야 되지 않느냐?” 하는 그들의 소망과 바람이 그들의 비판에 묻어난다고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초기 기독교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감당했다고 저는 자부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대해서 이런 잘못된 평가를 합니다. “교인들은 이 땅의 현실은 무관심하고 죽어서 가는 내세에만 관심이 있다.” “죽어서 가는 천당에만 관심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사회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인들은 현실에는 관심이 없이 오직 내세의 복이나 혹은 기복적인 데에만 관심이 있다” 이렇게 왜곡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기독교는 누구보다도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현실참여적인 종교입니다. 그리고 역사의식을 가진 종교입니다. 저는 그 대표적 예가 바로 1919년 3.1운동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1919년 3.1운동 너무나 잘 아시지 않습니까? 1910년 일본에 의해서 한국의 주권이 완전히 강탈당하고 한일합방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 만세를 부르면서 우리가 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선포한 사건이 바로 3.1운동만세사건입니다. 그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민족대표로서 거기 이름을 기록한 33인이 나오는데 그 33인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입니다. 교회의 목사님, 장로님, 전도사님 이런 분들이 민족대표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15명이 천도교 대표입니다. 그리고 2명이 불교대표입니다. 이것만 봐도 한국에 기독교가 얼마나 우리 동족의 현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참여하고 있는가를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만세운동을 주도한 그런 지역이 311개 지역이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주도한 지역이 78개 지역, 천도교 교인들이 주도한 지역이 66개 지역, 기독교와 천도교가 공동으로 주도한 지역이 42개 지역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가 만세운동을 일으킨 지역의 25%내지 28%를 주도했다는 것입니다. 또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사람이 19,000명이었는데 그 중 기독교인이 3,373명 약 17%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참 놀라운 기록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여러분 지금은 우리남한의 인구만 해도 약 5,000만 명이 됩니다만, 1919년 당시에는 남북한 인구를 다 합쳐도 2,000만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인은 20만내지 30만이었습니다. 2,000만 명 중에 20만~30만이면 1%내지 1.5%입니다.  전체 인구 중에 기독교인이 1%내지 1.5%밖에 안 되는데 17%가 운동하다가 구속당했습니다. 25%내지 28%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놀라운 수치입니다. 그만큼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사회참여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종교 가운데 종교시설이나 집회시설이 가장 많은 손상을 입은 종교가 바로 기독교였습니다. 수원 재암리교회는 우리가 잘 알듯이 수많은 교인들과 지역민을 교회 안에 들여보내놓고 문에 못을 박고 휘발유를 부어 불태워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배당 47동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24동이 일부 파괴되었으며, 41동이 손실을 입었다고 합니다. 3.1운동을 통해서 투옥된 교역자 수만 151명에 이르고, 고문으로 죽은 사람이 5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기독교가 얼마나 한국의 역사현실에 근접해 있었느냐를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분이 바로 육당 최남선 선생님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작가입니다. 그분도 바로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당시의 조선일보사장을 지낸 이상재 선생님도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그가 만세운동을 주도한 협의로 일경에 체포되어서 고문을 당할 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가 3.1운동을 시켰느냐?” 그 때 이상재 선생님은 하나님이 시켰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3.1운동 본부는 어디 있느냐” “하늘에 있다”고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3.1운동은 신앙의 발로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이 모든 포로에서 자유하기 위해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3.1운동을 일으켰고 대한민국이 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알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가 애국자가 되어야 된다고 말씀하고, 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런 길을 살아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도바울의 글을 한번 읽어봅시다. 1절과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로마서 9장 1장 1절~2절)

  오늘 사도바울이 어떤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그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을 위한 그릇, 사도로 택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주로 유대인보다는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더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 땅에서보다 외국, 이방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한 사도였습니다. 사도바울에 마음속에는 큰 근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근심이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마음속에는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고통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근심이고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느 곳에 가든지 먼저 유대인들을 찾아갔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거기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내 동족이 먼저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그는 소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증거하면 그들이 마음을 열고 그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데, 유대인들은 한결같이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에 고통이요 아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면 그들이 영원한 불 못에,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내 동족이 바로 그런 삶을 산다고 할 때 그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내 동족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내가 어떤 대가라도 다 치룰 수 있다고 그렇게 고백합니다. 3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다”

  오늘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나의 형제 골육 친척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좋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저주받아서 지옥 불에 던져지더라도, 내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을 위해서 너무 비통해하고 너무 가슴 아파하며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바울의 간절한 고백은 이제 10장 1절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구원을 얻게 함이라. 바울은 소원은 오직 한 가지, 내 동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 기도를 드린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입니다. 모세가 십계명판을 받으려고 시내산 위에 올라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를 만들고 춤을 추며 먹고 마시고 음란한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시려고 할 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생명을 건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정말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빼 주십시오. 제 이름을 하늘 생명책에서 지워주십시오.” 자기 생명을 담보로 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도 그 기도에 응답을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마음이었고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들은 나만 잘되면 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 나라는 망할지라도 나만 잘 되면 돼!”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89주년 3.1절 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이제 또 이명박 장로님이 대통령으로 지난 주간에 취임을 했는데,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면서 정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나라를 사랑해야 될 것인가를 이 시간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 기독교인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 무엇일까요?

  첫째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가장 큰 사명은 기도하는 사명입니다. 역사의 파수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파수꾼이 되어서 이 민족이 죄로 물들지 않도록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고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자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나라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잘 아시지요?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 나라를 빼앗긴 백성의 서러움을 여러분은 너무나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일제에 의해서 주권을 뺏기고 말도 뺏기고 재산도 뺏기고 모든 가족도 뺏겼을 때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갔습니까? 우리의 누님들이, 우리의 한국여성들은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서 갖가지의 만행들에 참으로 희생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나라 잃은 설움과 아픔인 것입니다.

시편 137편에 보면 이스라엘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는데 거기서 그들은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자기나라 고국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눈물짓던 모습들을 시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바벨론 강변에 그들은 수금을 걸어놓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눈물 흘리며 수금을 켰다는 것입니다. 고국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나라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외국에 나가도 대한민국으로서 여권을 가지고 가면 어디 가서도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 대한민국 참 훌륭한 나라입니다. 경제대국입니다. 축구 잘하는 나라입니다. 서울 올림픽을 무사히 치룬 나라입니다. 세상이 다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다면, 나라가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지 아시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좋은 나라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나라를 위해 더욱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서 안전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나라는 우리를 위해서 참으로 보호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나라를 막 욕합니다. “이런 나라에 왜 사는지 모르겠다.” “여기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여러분 외국에 나가보면 우리 대한민국처럼 살기 좋은 나라가 많지 않습니다. 그걸 아셔야합니다. 그래서 불평하는 분들은 외국에 내보내야합니다. 나가보면 대한민국 같은 나라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치안이 나쁘다하지만 미국에 가보십시오. 마음 놓고 밤거리 못 다닙니다. 그래도 한국은 아직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이 살기 좋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참 특별한 민족 아닙니까? 우리가 늘 부르는 애국가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런 가사를 가진 국가를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만이 특별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정말 살기 힘든 나라였지만 기독교가 들어와서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경제대국이 되고 교육 강국이 되었습니다. 세계10위안에 드는 그런 나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축복한 결과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나라에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더욱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않겠다.” 특별히 한국 초기 기독교를 보면 초기 기독교의 찬송가 14장이 애국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시간에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을 축복하셔서 이렇게 우리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은혜 안에 살게 하신 것이 주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도 잃어버려가고, 국가에 대한 고마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나라 사랑하는 첫 번째 길은 무엇입니까? 나라를 위해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번 성경통독새벽기도회에 나오셔서 새벽을 깨우면서 나라를 위해서, 위정자들을 위해서,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사랑하는 길은 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들은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무엇입니까? 어두움을 밝히는 것입니다. 부패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빛을 비출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구제하는 사람, 긍휼이 많은 사람, 남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사회의 사랑이 없는 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삭막하고 어두운 세상 가운데 사랑의 빛을 전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 교회에 대해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동시에 모든 우상숭배를 척결하고 범죄를 배척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그들이 우상을 숭배할 때, 그리고 범죄 할 때 하나님은 그때마다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오늘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축복받는 길이 무업니까? 말씀 안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다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물질우상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성의 우상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쾌락의 우상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민족이 될 때에 하나님이 이 민족을 더 귀하게 사용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상을 던져버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의 삶인 것입니다.

  태안에 기름유출사고가 일어나고 우리 기독교인들이 참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100만의 신화”라고 그럽니다. 일본의 한 도서지역에 기름이 유출되었는데 33만이 모여서 그 기름때를 다 제거해서 그것을 ‘일본의 기적’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100만 명이 모여서 그 일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참 놀랍습니다. 역시 한국인은 저력이 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기독교의 정신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태안에 봉사하는 데에도 절반이상이 교회단체고 기독교인들이 봉사자로 나섰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한국 기독교는 바로 역사참여적인 종교입니다. 애국하는 종교입니다. 우리 2008년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도 더욱 나라를 사랑하고 이 사회에 사랑을 실천하는 교인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민족복음화에 앞장서야 됩니다. 안창호선생님이 일찍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찰서 한 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10개를 세우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교회는 이 사회의 정신적 지주인 것입니다. 정의의 보루입니다. 이 사회의 양심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 민족이 복 받는 길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민족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이유는 예배당 좌석이 비어서 이것을 채우려고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명이고 민족을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기독교인 숫자가 지금 대략 865만이라고 통계를 냅니다. 1919년 당시에 20만 명이 좀 넘었다면 지금은 865만 명입니다. 아직 1,000만 명이 좀 되지 않는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5,000만 인구 중에서 약 20%가 기독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명 중에 2명이 기독교인이고 8명은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 동족들이 장차 어떤 일을 당할 것인지 생각하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되, 여러분 가족에게 먼저 복음을 증거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은 알지 못하다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지는 그 비참함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오늘 기회가 있을 때 복음 증거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복음을 증거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증거 하지 않을 때 그건 이미 죽은 기독교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만 예수 잘 믿다가 우리만 구원받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대한민국 민족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 한 동포가 구원받아야 합니다. 내 믿지 않는 가족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주님의 선택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3.1절 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다시금 여러분 마음속에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사랑을 실천하십시다. 민족복음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고 어둠이 있는 곳에 사랑의 빛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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