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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자랑해야 할 성전 (막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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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랑해야 할 성전 (막 13:1-2)

예수께서 유월절을 당하여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후 날마다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평범한 순례자의 한 사람으로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시켜 어린 나귀를 끌어오게 하여 그 나귀를 타고 사람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시는 바람에 예루살렘은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날 성전을 방문하신 예수는 성전 뜰에 가득한 장사꾼들을 보셨습니다.  거기에는 환전 수수료를 챙기며 순례객들이 성전에 납부할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용 짐승을 사고 파느라 분주한 장사꾼들과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여기저기서 순례객들을 부르며 흥정하는 장사꾼들의 외침과 짐승들의 울음소리는 예루살렘 성밖 가축시장과 다름이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성전이 이처럼 시장바닥으로 변한 광경을 보신 주님은 그들의 물건들을 뒤엎고 장사꾼들과 짐승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성경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다’ 책망하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날 예루살렘 성은 또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갈릴리에서 온 나사렛 사람 예수가 이런 일을 하였다는 소식을 보고받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찌하면 예수를 잡아 처리할까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월절을 지키러 온 많은 사람들 중에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많은 것을 알고 섣불리 체포하면 소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명절이 끝나면 조용히 해결하려고 음모를 꾸미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유월절을 앞 둔 한 주간 동안 제자들과 함께 날마다 성전을 방문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눅19:47).  유월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날이었습니다.  성전에서 밖으로 나가시는 길에 제자 중 한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한 규모에 감탄하고 감동이 되어 예수께 질문하였습니다.  ‘선생님 저 성전을 보세요.  선생님 보시기에 이 아름답게 장식한 돌들과 사람들이 물질을 바쳐 꾸민 건물들이 어떻습니까?’  이 제자는 이처럼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자랑하고 싶었고 예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짐작하였을 겁니다. 

이 제자가 그렇게 자랑할 만도 한 것은 그 성전은 헤롯 대제가 유대인들을 위하여 거금을 들여 세운 대단한 규모의 건축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정통 혈통을 이어받지 않고 로마의 신임을 얻어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을 받은 에돔 출신 헤롯은 이에 불만을 품고 있던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가 하스몬 왕가의 공주와 결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예루살렘 성전을 대대적으로 확장 보수하여 환심을 얻으려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스룹바벨 총독의 지휘 아래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였지만 두 번째 성전은 옛날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할 때 그 규모나 아름다움에서 초라한 작은 성전이었습니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고 외적들의 침입으로 많은 손상을 입은 성전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민족적 자존심에 남겨진 아픈 상처와도 같았습니다.  머리 회전이 빠른 헤롯은 여 기에 힌트를 얻어 유대인들의 성전을 거창하게 세워주면 민심이 자기에게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거금의 비용을 들여 화려한 대리석과 황금으로 장식한 헤롯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지 않고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논하지 말라’ 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모습이 대단히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내어쫓으셨을 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느냐?  당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리라면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할 때 예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다시 세우리라’ 하셨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는데 당신이 무슨 수로 삼일 동안에 세우겠다고 하느냐?’ 하며 비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46년간 심혈을 기울여 세운 이 성전, 헤롯이 내놓은 거액의 돈과 비록 없는 살림이었지만 성전 건축에 힘껏 바친 백성들의 세금과 헌금으로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이었으니 제자들이 마음 뿌듯하여 자랑할 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네가 지금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하지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대답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무슨 말씀인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수께서는 장차 예루살렘에 닥칠 끔찍한 재난을 미리 아시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물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아내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유대인들을 안타까이 여기신 주님은 그 아름답게 건설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 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23:37-38) 하고 탄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던 길에 예루살렘 성 가까이 오셨을 때 성을 보시고 울며 말씀하시기를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하셨습니다(누가복음 19:41-44). 

예수님의 왕 되심을 기대하던 제자가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싶었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세월이 흐르면 곧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큰 건물들과 돌들일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머지 않아 이스라엘에게 닥쳐올 무서운 심판의 날을 아시는 주님은 그 재난 중에 고통 받게 될 당신의 자녀들을 생각할 때에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위험에 노출된 새끼들을 날개 아래 모으려고 힘쓰는 어미 닭처럼 주께서는 팔을 벌리셨지만 예루살렘은 기어코 그 멸망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3년 이상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조차 곧 닥쳐올 예루살렘의 비극을 알아 차리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성전의 건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자랑스럽던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공격한 로마의 디토(Titus)장군에 의해 유린당하여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눈물 흘리며 탄식하셨던 것처럼 돌 위에 돌 하나 얹어있지 않을 정도로 완전하게 무너져 버릴 예루살렘의 멸망이 현실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무너진 성전은 지금껏 다시 회복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는 황금으로 돔을 덧칠한 모슬렘의 황금사원이 유대인의 성전을 대신하여 세워져 있을 뿐입니다.

이곳에서 목회를 하면서 제 나름대로 세운 ‘과거를 묻지 말라’원칙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를 방문하여 잠시 들리는 분이든 장기간 체류하며 출석하게 된 교인이든 그분들의 신상에 대하여 자세하게 캐묻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아야 할 권리도 없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영국 오기 전에 그 사람의 과거가 무엇이었는지 물을 수 없습니다.  해외에 나와 인생을 바꾸어 새롭게 살고 싶어하는 분들 중 어떤 분들은 간혹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일이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영국 오기 전에 어떤 교회에 출석하였는지는 늘 묻습니다.  제가 한국의 모든 교회를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분이 이전에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인가 초신자인가 파악하여 신앙생활에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를 참고하기 위함입니다.

영국 오시기 전에 어느 교회에 출석하셨습니까?  하는 질문에 어떤 분들은 스스럼 없이 대답하지만 어떤 분들은 머뭇거리고 굳이 밝히려 들지 않습니다.  뭐 이름 없는 동네의 작은 교회에 다니다 왔는데 어느 교회라고 하면 알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냥 작은 교회 다니다 왔습니다’ 하는 분이 있습니다.  교회도 학교나 회사처럼 무슨 등급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믿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세상에 알려진 큰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은 1등급 교회 교인이고 동네의 작은 교회는 3등급 교회라는 등급이 있습니까?  물론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지만 간혹 어떤 교인은 그런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큰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몇 년 전 아이들을 통해 들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어느 Youth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있는 어느 여학생이 마침 한국에서 온 남학생이 입단하자 반가워 ‘너 어디에서 왔니?’ 하고 물었더니 아주 느끼하고 기름진 목소리로 ‘나 강남에서 왔어 너는?’ 하더랍니다.  지방 읍 도시에서 살다 온 그 여학생은 그 남자 아이의 말투와 태도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고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며 그 남학생의 느끼한 말투를 흉내 내면서 배를 잡고 웃던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살고 무슨 아파트에 몇 평짜리에 살고 있다는 등, 어느 학교 출신이고 어떤 기업에서 일한다는 등 이런 외형적인 조건들로 사람의 가치를 계산하는 유치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마저도 어느 지역에 어떤 교회에 다니는 것에 대한 우월감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 교회에도 한국의 각 지역에서 다양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여기에 모인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들 중에는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한 분도 없다는 점입니다.  어느 특정 지역에 살고 대형교회에 다니던 분들을 폄하하려는 뜻이 아님을 잘 아실 줄 압니다. 

간혹 자기가 속한 교회의 목사, 교인 수, 다양한 프로그램, 심지어 대단한 건축비를 들여 세운 건물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속한 교회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닙니다.  애향심, 애국심, 애사심과 애교심이 있는데 어찌 교회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자랑이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헛된 자랑이 아니길 바랍니다.  제자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겉으로 드러나는 교회 건물이나 거기 출석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자랑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한 순례객들의 마음에 가득 차 있어야 할 진정한 기쁨과 자랑은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시고 오늘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게 하심이어야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성전에서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살게 하심을 감사하며 그 은혜와 능력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 최고의 자랑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해방과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그 절기에 오직 자신들의 안위와 경제적 이익들을 우선으로 여기고 그것을 위해 성전을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정치적 자유는 로마와 권력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제한된 범위에서 로마의 승인을 받아 신앙의 자유를 누렸지만 이미 그들은 하나님과 물질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사람들이었으니 그 신앙의 주권마저 사단에게 넘긴 사람들이었습니다.  해방과 자유의 권리를 얻음을 감사하는 유월절에 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정치적, 종교적 주권을 모두 빼앗긴 가련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성을 바라보시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고 우실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 건물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저런 성전이 하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위안을 삼았으니 그들의 자랑은 실로 허무한 것이었습니다.

성전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나 사두개인들과 같은 지도자들의 정치적 선전장과 경제적 이익을 얻는 시장이 되었고, 성전 제사의식은 백성들을 손 아귀에 쥐고 흔드는 정치적 이데올리기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성전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름만 있고 자기들이 그 성전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셨고 성전을 정화하셨지만 성전의 기득권을 쥐고 있던 권력자들은 ‘네가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느냐?  네가 진정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면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합니다.  네가 우리 조상을 광야에서 먹였던 모세처럼,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고 비를 내리게 했던 엘리야처럼 표적을 보이면 우리가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3일 동안 다시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3일 동안에 세우다니 무슨 엉뚱한 말인가 비웃었지만, 예수님은 성전이 곧 자신의 몸이고 사람들에 의해 그 몸이 무너지지만 3일 후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심이었습니다.  물론 아무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제물 되어 죽으심으로 성전에서 드리는 피 흘리는 제사를 단번에 완성하심을 의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죽임을 당하신 이후로 성전에서의 제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기능을 하던 성전의 의미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건물에 불과하였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음 받은 건물도 아니고 인간의 정치 야욕과 명예를 위하여 거금을 들여 세우고 치장한 헤롯 성전은 그 자리에 더 버티고 있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헛된 자랑거리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자랑해야 할 성전은 겉으로 보이는 웅장한 건물이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 당하심으로 우리의 참 성전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거룩한 피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 그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삶이 자랑거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무고한 형제의 피를 흘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자신들의 피 흘리는 십자가의 삶이어야 했습니다.

어제가 제89주년 3.1운동 기념일이었습니다.  민족의 자주권 회복을 위해 피 흘린 선진들의 고귀한 희생이 아름답습니다.  그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주권 회복을 위해 올바른 정신과 신앙고백으로 앞장 섰던 고귀한 선배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무엇을 자랑하고 무엇을 위해 고난을 자청해야 하는지요?    교회가 분연히 맞서 두 손을 들고 외치며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요?  그 동안 교회가 쌓아 올린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금전적 권리나 안티 크리스찬들에게 폭로되어 실추된 교회의 영광입니까?  지금 우리의 신앙이 정치적으로 억압 당하고 예배와 집회의 자유가 없는 세상입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라 한 것은 따지고 보면 모세처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보라는 주문입니다.  그러면 신뢰하겠다는 요구입니다.  경제문제, 무병장수, 성공출세를 보장해 주면 참 종교이고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겠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이 교회를 향해 그렇게 요구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런 사람들의 장단에 맞춰 춤 추면서 표적을 보이려고 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건물도 점점 크고 화려해지고 박수무당이 하는 해괴한 일들도 흉내를 내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의 본질과 사명인 것처럼 광고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다니면 부자도 되어야 하고 무병장수 해야 하고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도 많아져야 합니다.  명품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사람들이 저마다 외모 자랑하고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끼리 모여야 편한 사교 클럽 같은 교회도 등장합니다.  아니라고 변명해도 밖에서는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 똑 같은 행동을 하는 속물 근성을 자랑이라고 하니 세상이 교회를 비웃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은 세월이 흐르면 퇴색되고 무너집니다.  사건이 터지면 무너지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 웅장하고 화려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그랬습니다.  미국의 자존심이고 부유한 경제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도 정신 나간 사람들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남대문(숭례문)도 토지 보상에 불만과 앙심을 품은 한 노인에 의해 어처구니 없게 불타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이 진정으로 자랑해야 할 성전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새로운 성전 곧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닌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성전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부활의 능력과 참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곧 우리가 자랑해야 할 성전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드러내고 자량해야 할 참 성전입니다.  유명한 사람이나 건물이나 이벤트가 아닙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얻고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모인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 곧 교회가 진정한 자랑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 참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의 기쁨이고 자랑입니다.  성령이 거주하시는 전으로서의 성도 한 사람 한 영혼이 우리가 자랑해야 할 성전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모퉁잇돌이신 예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어 세워져 가는 성전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이달 3월은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는 은혜로운 기간입니다.  민족의 주권과 자유를 위하여 앞장 섰던 선배들의 소중한 정신을 기억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자유, 자주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죄와 사망에 억눌려 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과 함께 부활의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며 삽시다.  그 기쁨과 은혜와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자랑하는 주의 자녀들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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