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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태도(III) (롬 1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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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태도(III) (롬 12:6~13)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로마서 12:6-13

내일은 새 대통령과 정부조직이 국민들의 기대 속에 출발하는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습니다. 정부조직이 대통령의 원뜻대로 시작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개운치는 않지만, 몇 달 후 구성될 새 국회와 더불어 앞으로 5년 동안 잘 섬기기를 원합니다. 정치는 권력을 갖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해가는 과정입니다. 특정한 정치철학과 제도로 국민이 평화롭고 생산적이고 의미 있게 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정치는 정부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정부는 국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새 대통령의 정부는 과거에 보지 못했던 최상의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베풀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고맙게도 새 대통령은 “섬기는 대통령, 섬기는 정부”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같은 마음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을 바꾸고 장관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섬기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요 최고의 인물입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섬김의 대상, 섬김의 주체, 섬김의 은사, 섬김의 태도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효과적인 섬김에 대해 좀 더 나누고 싶습니다. 8절에 보면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라고 했습니다. ‘권위한다’는 말은 권위를 가졌다는 말이 아니라 ‘격려한다’는 뜻입니다. 격려는 우리 모두가 잘 해야 하지만 특별히 격려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나바 같은 사람입니다. ‘격려의 사람’이라고 불렸던 바나바는 다른 사람들이 사울을 싫어할 때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인사시키고, 계속 격려하여 바울로 만든 사람입니다.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격려를 하도 잘해서 바나바로 바꿨습니다. 우리는 격려의 은사가 부족하더라도 늘 격려를 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구제하는 사람은 성실함으로” 하라 했을 때 ‘성실함으로’란 ‘넉넉하게’라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언제나 덤을 주는 것입니다. 시간이든 돈이든 재주든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에 플러스알파를 얹어주면서 섬기라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하라는 말씀은 다스리는 은사, 즉 리더십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행정과 조직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의 눈에는 앞이 보입니다. 작은 회사를 맡으면 어떻게 큰 회사로 만들지 그 비전이 보입니다. 기획과 조직의 능력을 갖추고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일을 추진하여 성취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꼭 필요합니다. 젊은이가 이런 은사를 가졌다면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하다가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MBA(경영학석사)를 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 교회 젊은이들도 미국에서 MBA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은사가 없는 사람은 더 공부하고 싶은 의욕을 내지 않습니다. 다스리는 은사가 있는 사람들은 그 능력을 극대화시켜서 앞으로 큰 회사나 정부에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

은사에 대해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은사를 받은 것은 은사 없는 사람들을 비판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너는 왜 그런 것도 제대로 못하냐?” 이렇게 사람들을 야단치고 실망시키고 마음 아프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은사로 필요한 일들을 원만하고 효과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중에 큰 책임을 맡은 분들은 그동안 잘 섬겼기 때문에 더 큰 일을 맡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2교구의 이상희 집사님이 국방장관에 내정되었습니다. 그 분은 사령관 때나 합참의장 때나 참 잘 섬겼습니다. 지난 주일에 이 집사님을 만나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집사님에게 은혜 주셔서 이 나라를 튼튼하고 안전한 나라로 만들 수 있도록 최고의 섬김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그걸 사용해서 여러분이 있는 자리가 여러분 때문에 축복이 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들을 마음껏 사용해서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를 복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저의 세 딸 중에 둘은 관리하고 다스리는 은사가 없는 것 같아요. 자랄 때 그 아이들 방에 가보면 정돈되지 않고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좀 치워라!” 해도 잘 치우지 못하니 할머니가 가셔서 싹 치워주시곤 했어요. 그런데 이틀만 지나면 또 다시 흐트러져요. 하나는 이 은사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자기 물건들을 얼마나 잘 챙기는지, 그 애 방에 가면 항상 깨끗하고 산뜻해요. 서랍을 열어보면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요. 어릴 때 정리를 잘 하던 아이는 요즘도 잘 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여전히 잘 못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다스리는 은사를 가진 사위들을 주셨어요. 사위들은 신이 났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어질러진 것들을 착착 다 치워놓습니다. 아내는 자기 남편을 볼 때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인사를 들으면 더 잘 하고 싶어져요. 은사가 있기 때문에 잘 합니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아내에게 “집안 꼴이 이게 뭐야?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 한다면, 앞으로 최소한 40년은 더 같이 살아야 할 텐데 그런 소리를 듣고 어떻게 살아요? 나에게 은사를 주셨으면 그 은사를 활용해서 가정을 세워가는 것이 은사 받은 사람의 축복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마음껏 사용해서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다스리는 자의 태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함으로”(8절),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11절). 부지런하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게으르면 안 된다, 열심을 품고 하라는 것입니다. ‘열심(熱心)’에서 ‘열’은 열이 난다는 뜻이고, ‘심’은 마음이지요. 영어로는 ‘fervent in spirit', 즉 마음속에서 불이 활활 타오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 하는 것을 할 때 신나고 열심을 내지요. 오늘 1부 예배 때 바이올린과 비올라 이중주를 들으면서 아주 감격하고 감사했어요. 첫째 이유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잘 연주하기 위해서 그분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연습을 했겠습니까! 많은 시간과 레슨비를 바쳐 숙련된 솜씨로 하나님과 성도들을 위해서 찬양을 하니 그런 분들이 계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둘째 이유는 손가락만 까딱까딱하지 않고 온 몸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통해 그분들의 열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열정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열정적인 사람을 보면 힘이 생기고 기분이 좋습니다. 왜 주기철 목사님을 존경합니까? 신앙인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 강요를 받았을 때 그 가슴속에 일사각오, 일편단심, 이런 열정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위협도 목사님을 막지 못했습니다. 열정은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감동적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무엇을 해도 열정적으로 하십시오. 그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아름답습니다. 옛날 TV가 없던 시절에는 라디오로 축구경기 중계방송을 들었습니다. 열정적인 아나운서가 경기진행에 따라 흥분을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걸 듣는 사람도 같이 흥분합니다. 지난 월드컵 때도 차범근 감독이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기뻐할 때 그것이 시너지가 되어 우리도 얼마나 소리를 지르고 열광을 했습니까! 제 아내처럼 얌전한 사람도 벌떡 일어나더군요. 그런 모습 처음 봤어요.

열정은 아름답습니다. 열정은 일을 만듭니다. 열정은 에너지를 만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힘)을 받고” 즉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 충만을 주셔서 여러분 속에 강력한 에너지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 힘으로 섬길 때 아름답고, 감동과 축복이 나타납니다.

젊은 과부 룻은 자녀도 없이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왔습니다. 그 정도 되면 우울증에 빠질 만도 하지요. 하지만 룻은 달랐습니다. “어머니, 제가 밭에 나가 이삭을 주워오게 해주세요.” 젊은 이방 여자가 낯선 곳에 자기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보통 여자 같으면 “아휴, 따라오지 말걸. 오르밧처럼 고향에서 시집이나 갈 걸”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룻은 열정을 갖고 일하러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밭에 나가보니 젊은 남녀들이 추수를 하고 있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고 그냥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룻의 가슴속에는 ‘나와 어머니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저를 일꾼으로 써달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추수하다 떨어뜨리고 간 것을 줍게 허락해주세요.” 그 열정이 감동을 주어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룻은 잠시 쉬는 시간 외에는 열심히 일하여 여섯 바가지 정도를 주워 시어머니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여인입니까!

그러던 어느 날 룻은 밭주인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보통 여자라면 어려워서 피할 텐데 룻은 보아스에게 다가가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당신의 눈앞에 제가 마음에 들게 되길 원합니다.” 마음에 안 들겠습니까? 그리고 “저에게 이삭을 줍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룻은 보아스의 마음에 들어 보아스와 결혼을 했고, 그 결과 다윗왕의 할머니가 되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룻에게는 열정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힘 있게 열정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 글을 일찍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8살 되어서야 겨우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악성 베토벤은 음악선생님한테 “이 아이는 음악에 전혀 소질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어린 시절 담임선생님이 “교사 생활 12년에 이런 멍청이는 처음이야!” 했답니다. 월트 디즈니가 신문기자였을 때 편집국장이 “자네는 아이디어도, 글재주도 없으니 사표 쓰고 나가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분은 최고의 언론인상을 받지 않았습니까! 부족하고 모자라 보여도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습니다. 열정과 끈기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마음속에 열정이 불타고, 그 열정으로 꾸준히 정진해서 자기시대에 큰 공헌을 하고 인류에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성령께서 계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힘을 얻어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도 열정을 가지고 해야 될 것입니다.

8절 마지막에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즐겁고 밝은 태도로 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 부흥회 강사 목사님이 ‘웃음 바이러스’라는 설교를 하셨는데,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꼭 보세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웃으며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웃음은 건강과 성공의 비결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해서 우리를 실컷 웃기셨지요. 인생은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밝은 표정으로 말해야 합니다. 어두운 표정과 목소리로는 다투기 쉽습니다. 같은 말을 해도 밝게, 즐겁게 하십시오. 심는 대로 거둡니다. 여러분이 즐겁게 보이면 옆 사람들에게 전염이 됩니다. 이것은 결단이요 선택입니다. “행복은 선택이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이 역시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즐겁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즐거워서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 느낌을 갖도록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사야를 비롯한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사야 1~39장은 정죄입니다. 신랄하게 이스라엘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40~66장은 위로입니다. 과정은 어떠하든지 마지막은 반드시 좋게, 즐겁게 마무리 되고 위로와 평강을 기원하도록 우리의 대화 방법을 훈련해야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축복된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또 만나고 싶어 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느낌을 풍기는 사람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인생 자체가 괴롭고 어두운데 부정적이고 어두운 사람을 왜 만나려고 하겠습니까?

한국 교회가 기도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부족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도 예전에 많이 썼는데 이제는 안 쓰려고 노력합니다. 부족하지 않은 정도가 어느 정도입니까? 겨우 자기 몫만 챙기는 거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가난합니까? 우주를 창조하시고, 소유하시고 무엇이든 하시는 하나님께 왜 그렇게 기도를 합니까? 부족하지 않을 정도만 주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뭐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넉넉하게 주시옵소서.” 저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 이웃과 가족을 위해서 넉넉하게 주셔서 언제나 선을 베풀게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단어를 쓰면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변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잘 하고 단어를 잘 선택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즐겁게 하십시오.

말할 때는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고, 상대방이 말할 때는 행동과 표정으로 반응하면서 적극적인 대화를 해야 합니다.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다른 행동을 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재미없겠습니까? 예전에 제가 학생 때 교수님과 학생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았습니다. 저와 제 동기 한 명이 테이블 끝 쪽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어요. 교수님이 말씀하실 때 다른 학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저 쳐다보고 있는데 그 동기는 말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표현을 했어요. 그러니까 교수님은 그 학생만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생각하고 똑같이 해봤어요. 몇 번을 하자 교수님이 저에게도 눈길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수님과 친해지면 성적이 잘 나옵니다. 제 딸들을 공부시킬 때도 “학기 초에는 무조건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인사하고, 교수님이 좋다고 한 마디만 해놓아라” 했어요. 그러면 공부가 재미있지요.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은 열정을 가지고 하고, 무엇을 하든지 기분 좋게, 상쾌하게, 적극적으로 해서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축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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