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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파수꾼의 사명 (겔 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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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파수꾼의 사명(Blowing the Trumpet)
성경 : 겔 33:1-7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말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1-7)

금년은 10년 단위로 계산해 볼 때 여러 가지로 기념할 일이 많은 해입니다. 일제가 한국을 강제병합한 지 100주년이 되며, 한국전쟁 60주년, 4.19 혁명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노동 운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전태일 분신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30주년, 한.소 수교 20주년, 그리고 6.15 공동선언 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6.25전쟁은 가장 심한 동족상잔의 상처를 안겨주었고, 분단체제를 고착시킨 고통스런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민간인을 포함하여 500여만 명이 죽었고 1000만 이산가족이 발생하였습니다. 남편을 잃은 전쟁과부가 50만 명,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가 1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부모와 자식을 잃어버린 이산가족들은 평생의 한을 가슴에 품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6.25의 비극과 수치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국교회는 다시는 이러한 국가적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져서 북녘 땅에도 복음을 전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염원하기 위해 해마다 6.25전쟁을 상기하는 크고 작은 연합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교단은 기도한국 집회를 이미 3년째 계속하고 있고, 오늘 오후 서울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열립니다. 우리교회가 속해 있는 대구노회에서는 오는 8월 20일에 기도한국 집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는 금요일 밤에는 대기총과 나눔과 기쁨 주최로 『6.25 발발 60주년 구국기도회』가 우리교회당에서 열립니다. 우리 모두 민족과 역사를 의식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육로관광 실시, 개성공단 조성, 경의선 철도 개통 등 남북 간의 화해를 도모하는 고무적인 일들이 일어났지만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위협 등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경계를 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천안함 피폭사건으로 46명의 젊은 우리의 아들들을 잃게 된 것은 남북대치상태에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게다가 남한사회도 빈부격차의 확대로 인한 양극화, 부동산 문제, OECD 국가 중 1위에 올라선 높은 자살율과 이혼율, 세계 최저출산율, 좌우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 도덕과 가치관의 타락 등등으로 총체적인 난맥상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한국교회에 시급히 요청되는 사명은 민족의 파수꾼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이스라엘 민족의 파수꾼으로 삼으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과 한국교회 전체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민족의 파수꾼으로서 담당해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오늘 이 시간에 6.25전쟁을 상기하면서 민족의 파수꾼으로서의 한국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칼이 임함을 보고 경고해야 함 (= 늘 깨어서 다가올 위험을 경고함)

-3절=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6절=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파수꾼은 자신이 파수(把守) 책임을 맡은 지역을 부지런히 돌아보며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적군을 발견하는대로 속히 나팔을 불어 경고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파수꾼은 늘 깨어서 다가올 위험을 자기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일에 충성하는 자입니다. 

본문의 문맥을 잠시 살펴봅시다. 에스겔서는 남유다 패망 전후 시대에 걸쳐 주어진 예언들의 모음집입니다.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을 기점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그 이전에는 주로 심판 관련 예언이, 그리고 그 이후에는 회복 관련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서를 크게 나누면 전반부(32장까지)는 선민과 주변국가들에 대한 심판 예언을 수록했고, 후반부(33~48장)는 거룩한 종말론적 새 왕국의 이상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33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에 의한 선민의 회복을 다루는 33~39장까지의 개시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여호와의 회복 예언을 전할 도구로 부름받은 에스겔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사명을 부여하셨다는 내용이 다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민족 파수꾼으로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을 전해야 할 책임을 주셨습니다. 파수꾼은 항상 깨어 있으면서 다가오는 위험을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자입니다. 

2절에서 ‘칼(하레브)’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전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섬기며 불의를 행하자 이방나라를 사용하셔서 전쟁을 일으킬 것이었습니다. 

본절의 ‘파수꾼(초페)’은 주로 성벽 위에 배치되어 적군의 침입이나 움직임을 감지하여 알리는 책임을 가진 사람을 가리킵니다(삼상 14:16, 왕하 9:17-20). 이런 막중한 책임을 지닌 파수꾼이 자신의 직무에 태만하여 적군의 동태에 대해 바로 알리지 않는 경우 사형에 처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전쟁의 맥락과 관련하여 4,6,8절에서, 유다 백성의 파수꾼으로 세워진 에스겔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바르게 감당치 않을 경우에 유다 백성의 흘린 피가 파수꾼인 에스겔 자신에게 돌아갈 것임을 강조하시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파수꾼의 사명은 늘 깨어서 다가올 위험을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일입니다. 그는 경고의 나팔을 부는 일에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당시 전쟁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부는 ‘나팔(쇼파르)’은 수양의 뿔로 만들어졌습니다. 암 3:6에는 실제적인 전쟁을 경고하는 나팔소리에 대해 말하고 있고, 렘 6:17-19에는 유다 백성이 나팔소리와 같은 선지자의 외치는 메시지를 듣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와 있는데 이것은 영적 전쟁을 경고하는 나팔소리를 의미합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의미가 모두 전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나팔소리는 유다가 회개하지 않을 경우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는 실제적 전쟁에 대한 알림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전쟁의 원인이 된 유다 백성들의 영적 부패에 대한 경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의 주요 역할은 망대나 성벽에서 망을 보거나 나팔을 불어 위험을 경고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파수꾼은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동족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성을 방비하고, 위급한 상황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도피하거나 방어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파수꾼은 늘 깨어 있어야 했습니다. 만일 파수꾼이 졸다가 적이 침략하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백성들에게 경고하지 못하면 큰 재앙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파수꾼에게는 깨어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여러분, 파수꾼의 사명은 일차적으로 다가오는 위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어떤 위험이 다가오는지를 살펴 그것을 알려 공동체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안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을 위임받은 목회자는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를 위하여 세움을 받은 영적 파수꾼입니다. 목회자는 늘 영적으로 경성하여 교회 성도들에게 경고하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 듣기에 달콤한 축복과 위로의 말만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고 배척한다 해도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 영적으로 위기가 닥쳐온다면 시대를 분변하여 책망과 경고의 말씀까지도 단호하고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잠든 영혼을 말씀으로 깨우는 시대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파수꾼을 세우셔서 미구(未久)에 닥칠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파수꾼이었고, 사무엘은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잇는 과도기의 파수꾼이었습니다. 나단과 갓은 다윗 시대의 파수꾼이었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시대와 그 이후의 대표적인 파수꾼이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사야는 남 유다 웃시야 왕 때부터 5대에 걸쳐 60년간 파수꾼의 사명을 수행하였고, 예레미야는 남유다 요시야 왕 때부터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역시 5대에 걸쳐 50년간 파수꾼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20년 이상 파수꾼의 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시대마다 파수꾼을 세우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세우고 계십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일차적으로 그들은 바로 교회의 목회자들입니다. 목회자는 늘 깨어서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경고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파수꾼은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호 8:9을 보면,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라고 했습니다. 에브라임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파수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에브라임은 누구를 위한 파수꾼이겠습니까? 당연히 이방인들을 위한 파수꾼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에게 파수꾼의 사명이 있었다면 신약성도들에게도 선지자적인 파수꾼의 사명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모두 늘 깨어 자신을 살피고 이웃을 살펴 다가오는 위험을 먼저 발견하고 경고의 나팔을 부는 일에 충성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입의 말을 들어야 함 (= 하나님의 음성 듣기, 말씀 묵상과 기도)

7절=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파수꾼의 사명 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는 일입니다. 파수꾼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입의 말을 듣는 일에 몰입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여기 ‘내 입의 말을 듣고’ 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입니다. 영적 파수꾼으로 부름받은 에스겔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말씀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파수꾼이라면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으로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는 파수꾼으로 세움 받은 목회자에게는 가히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어느 목사님이 산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산모퉁이에서 한 청년이 수첩에 무언가 열심히 적으면서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등산객들이 “등산은 안하고 뭐 하는 짓이야” 라고 생각하며 그 청년을 쳐다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한참 후에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저는 새를 연구하는 논문을 쓰고 있는데요. 산마다 몇 마리의 새가 서식을 하고 있는지 세고 있었습니다. 이 산에는 한 20여 종의 산새가 살고 있네요.” 

그러자 목사님은 신기해하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이곳에 20마리의 새가 있다고? 참 신기하네,” 라고 말했습니다. 
“저 소리는 천연 기념물인 새이고요. 저 새는 짝을 찾고 있는 새이고요.”청년은 항상 새소리에 관심을 갖고 노력했기 때문에 모든 새소리를 구분하여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에 얼마나 귀기울이고 있습니까? 얼마나 들으려고 노력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항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마음으로 음성으로 우리에게 계속 전달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분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긴박한 상황이 오면 음성을 들려 달라고 떼를 씁니다. 왜 내게는 말씀하시지 않느냐고 눈물도 흘립니다. 
이제는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 보십시오.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설교 말씀을 되색임하여 듣고 또 들어보십시오. 당장은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어느 순간 항상 들려오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3. 하나님을 대신하여 죄인들에게 경고해야 함 (= 죄 책망, 바로서게 함) 

7절=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파수꾼의 사명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죄인들의 죄를 책망하고, 그들을 바로서게 하는 데 있습니다. “너는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하라.”
성경이 말하는 파수꾼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사 21: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파수꾼은 낮에는 늘 망대에 서서 파수하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장소에서 좌우를 살피는 존재입니다. 선지자에게 맡겨진 영적인 파수꾼의 책임은 이처럼 중요한 것이고 지속적인 각성이 요구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성경 속의 선지자들처럼 사람들의 죄와 잘못을 깨우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의무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죄 중에 빠진 사람들을 깨우쳐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교회의 주요한 기능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교회가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엄한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이 말씀은 죄인을 깨우치는 것은 파수꾼의 중요한 의무이며 이것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엄하게 물으신다는 것을 밝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임상심리학 전문가였던 폴 니그럿이라는 루마니아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목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목사가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1988년 비밀경찰의 엄청난 박해로 그는 손과 
왼쪽 발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그들 내외가 없는 시간에 비밀경찰이 집을 습격해 난장판을 만들고 아이들까지 핍박했습니다. 그는 루마니아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절망감을 친구에게 얘기했습니다. 그 때 낡은 종이 한 장을 친구가 건네주었습니다. 그것은 25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어느 장기수 그리스도인이 쓴 편지였습니다. 공산당은 온갖 고문으로도 그를 꺾지 못하자 결국 처형시켰습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쓴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의 주님, 저는 곧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당신을 보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위대한 전도자들, 주의 종들, 선교사들, 찬양대원들, 주님을 섬기는 그들 모두를 하루 빨리 보고 싶습니다. 순교자들이 면류관을 쓰고 주님의 발 앞에 면류관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주님, 그때 제가 천국의 행렬에 루마니아 죄수복을 입고 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당한 죄수로서 주님을 찬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폴 니그럿 목사님은 그 순교자의 편지를 읽으면서 자기도 루마니아 죄수로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순교를 각오한 그는 성벽 위에 서서 주야로 계속 잠잠치 않는 파수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오늘날 방송 사역을 통해 루마니아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것을 보며 주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성벽 위에 서서 주야로 계속 잠잠치 않는 파수꾼으로 하여금 성읍을 지키게 하며 찬송을 부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가리켜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 (You who remind the Lord of his promises)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And give Him no rest until He establishes) 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상기시키도록 파수꾼을 세우셨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파수꾼은 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해야 합니다. 

이는 가혹하고 무례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는 결코 쉬실 수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파수꾼도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하나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이 쉬지 말고 기도하며 또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기억하사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팔공산 국제불교테마공원 조성계획이 좌절되고, 전국 109곳의 템플스테이 사업에 국비가 지원되는 것이 중단되도록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팔을 불어야 할 때입니다. 이땅에 우상의 세력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교회는 진리의 봉화를 높이 들고 이웃을 섬기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오는 7월 워싱턴에서 북한 인권을 위한 횃불대회가 열립니다. 한·미 교계 대표 및 인권 운동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북한 실상을 고발하고, 탈북자 구출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대규모 집회와 기도회를 갖습니다. 워싱턴DC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의 기자회견, 백악관 후문에서의 기도회, 워싱턴 중앙장로교회에서의 기도회(강사: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 국회의사당 잔디밭에서의 대규모 시위, 연방 상하원의원실 방문 등의 일정을 통해 북한 백성들을 위한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려 합니다.

이번 횃불대회를 통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북한이 궁극적으로 선교가 가능하고 명목상의 교회가 아닌 참된 교회가 회복되는 땅이 되도록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파수꾼의 사명을 부여받은 공동체입니다. 민족의 파수꾼으로서의 교회의 사명은 늘 깨어서 다가올 위험을 경고하고 사람들의 죄를 깨우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 이 민족이 번영하려면 교회가 깨어 있어서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자리에서 6.25 기념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를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순오목사, 대구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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