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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 (약 2: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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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벗 아브라함 (약 2:14-24)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믿는 신자들을 가리키는 다양한 호칭이 등장합니다. 성도, 자녀, 신부, 종, 제자 등등. 그 중에 ‘친구’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과 우리가 대등한 존재인 것처럼 불러주는 파격적인 호칭입니다. 특별히 친구라는 호칭이 종종 ‘벗’이라는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친구라는 말보다 더 다정다감한 말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가리켜 ‘하나님의 벗’이라 표현한 성경 구절이 몇 개 있습니다. 대하20:7(여호사밧 왕의 기도 중에서) “ ...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Abraham your friend, ‘주의 벗 아브라함’-한글개역)의 자손 ... ” 사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Abraham my friend)의 자손아”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23절(하). “ ... 그는(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God's friend)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개인을 거명해서 ‘하나님의 벗’이라고 지칭한 예는 아브라함 외에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아브라함의 신앙이 훌륭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몇 번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조건 갖고 차별하지 않으시지만, 믿음은 차별하십니다. 똑같이 신앙생활 해도 ‘하나님의 벗’이란 호칭은 아무에게나 붙여주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벗’이란 호칭을 얻는 것은 정말 귀한 것입니다.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벗이란 호칭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의 벗은 어떤 사람인가?   

① 참 믿음을 가진 사람 : 행함이 있는 믿음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참 믿음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설명해 줍니다. 14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구원받을 만한 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로는 믿음이 있는 체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죽은 믿음이란 가짜 혹은 헛것이라는 겁니다. 

만일 하나님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알고 입술로만 부른다면, 그 믿음은 가짜라는 겁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들고 있습니다. 19절.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을 알아보고 말로 부르는 것은 귀신도 한다는 겁니다. 막5:7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외칩니다. 귀신의 반응이죠.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그런데 귀신이 다음에 무라고 합니까?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보지만 따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싫어하고 배척합니다. 이런 건 참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참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위까지를 포함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죠. 21절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사건을 언급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령에 낳은 독자를, 그것도 번제로 불에 태워 바치라는 겁니다. 그의 신앙을 시험해 본 거죠. 

그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죠?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칩니다. 물론 제단에 묶어 놓고 죽이려는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이 숫양을 예비하셔서 대신 번제로 받으시고 이삭은 살려주십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으로서는 이삭을 바친 겁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창22:12 “ ...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에게 믿음이 있지만, 이제 확실히 알겠다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왜 모르시겠습니까? 진작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행위로 표현된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시고 인정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건 훨씬 이전부터 아브라함은 그 마음속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의인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인간은 본래 죄인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이 원죄를 갖고 태어났고, 스스로 자범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누이 증거합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이 롬3:10이죠.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만인이 죄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오직 한 가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증거합니다.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우리 인간은 아무리 말씀대로 살려고 해도 불완전합니다.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가 죄인이지만 대속의 은혜를 통해 죄사함 받고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속의 은혜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십자가죠. 예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피흘려 죽었습니다. 십자가 대속이죠. 이 사실을 믿으면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기독교의 구원 교리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뭐라고 하죠?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 사망에서 구원받는다고 해서, 입술로만 나불거린다고 그냥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24절 보세요.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믿음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믿음의 증거로 행함이 뒤따라오지 않으면 가짜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나무와 열매의 관계를 생각해 보세요. 여기 사과나무가 있다고 가정해 보시죠. 아직 열매가 맺어지기 전에도 사과나무는 사과나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사과나무라고 한다면, 때가 되어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 시간이 흘러도 사과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사과나무가 아닌 겁니다.   

예수님도 나무 비유로 참 믿음을 설명해 주셨어요. 

마7:16~17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나무의 종류에 따라 각각 열매가 맺어지듯이 참 믿음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행위의 열매가 따라온다는 겁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지만, 행위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 믿음이 가짜이므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 가짜 믿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것은 행위구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구원인데, 그 믿음이 진짜라면 결과적으로 행위가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가짜 믿음에 대한 적절한 예가 성경에 나오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눅10:30

~37)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이 강도 만납니다. 강도가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제사장도, 레위인도 다 피해 갑니다. 오직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데려다 치료해 주고, 주막 주인에게 보살펴 달라고 부탁까지 합니다. 비용이 더 들면 다시 와서 주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P 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수님이 신학생들에게 이 본문으로 설교문을 작성해 보라고 과제를 주고 마감 일시와 제출 장소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갑자기 제출 장소를 바꿨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학생들이 변경된 장소로 달려갑니다. 교수님이 중간에 한 사람을 배치해서 쓰러져 있게 했습니다. 시험해 보려고 한 거죠. 그런데 신학생들이 모두 피해갑니다. 심지어 그 위로 건너 넘어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설교문을 잘 작성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말씀대로 사는 삶이 없다면 그게 무슨 믿음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 믿는 신자들을 비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애매한 것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달게 받아야 비난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한 가지는 언행의 불일치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말은 그럴 듯하게 잘 하는데, 사는 모습은 형편없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은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았죠. 구원 이후에 믿음으로 행한다고 하지만 늘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조금씩 변화되는 성화의 과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비록 완전하지 못하지만 변화되는 모습만 보여도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이게 참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어요. 참 믿음 즉 온전한 믿음은 ‘3H 신앙’(Head, Heart, Hand)이다! 말씀을 듣고 머리(Head)로 깨닫고, 가슴(Heart)이 뜨거워지고, 손(Hand)으로 행해야 참 믿음이라는 뜻이죠.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 마음속의 믿음을 행함으로 그 믿음이 참이라는 사실을 증거해 보였습니다. 

②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 : 교제, 순종, 헌신 

하나님의 벗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영어 격언 가운데 이런 게 있죠. “Out of Sight, Out of Mind.” 무슨 뜻인가요? 자주 만나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겁니다. 피가 섞인 친척이라도 자주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반대로, 남이라도 자주 만나면 친척 이상으로 친밀해집니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도 친밀한 교제가 없으면 관계가 서먹서먹해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매일 만나고 교제하면 하나님과 막역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늘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랬습니다. 

창18: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 ”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다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교제한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벗과 함께 교제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성경에서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출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face to face) 말씀하시며 ... ” 모세가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듯이 교제했다는 겁니다.   

벗은 교제할 뿐 아니라, 말을 들어줍니다. 순종이죠. 하나님의 벗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해 주셨어요. 

요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  

더 나아가 벗은 상대방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합니다. 만약 친구 사이에 아끼는 게 있으면 진짜 친구라고 볼 수 없죠. 하나님의 벗은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그는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바쳤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세요! 

창22:2,9~10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9 ...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slay) 하니” 

그는 이삭을 제단에 묶어 놓고 같을 들어 내리치려고 합니다. 완전히 도살하려고 한 겁니다. 하나님이 제지하셨으니 망정이지, 그냥 두었더라면 칼로 이삭의 목을 따고 말았을 겁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보다 귀중한 아들까지 아낌없이 바친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 앞에 아까운 게 있으면 아직 미성숙한 겁니다. 하나님은 뭐가 없어서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보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낌없이 드리면 더 풍성한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잘 안 됩니다.   

초등학생 아이가 주일날 교회 가려고 아침 집을 나섭니다. 그때 엄마가 500원 짜리 동전 두 개를 주면서 말합니다. “얘, 한 개는 헌금으로 드리고, 한 개는 용돈이니까 갖고 있다가 나중에 네가 써라.” 아이는 기분이 좋아서 교회로 갑니다. 교회 근처에 갔는데, 저기 친구가 갑니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 가다가 그만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동전 두 개가 떨어져 때굴때굴 굴러가다가 그 중 한 개가 하수구에 빠졌습니다. 그 때 아이가 소리칩니다. “아이고! 하나님께 드릴 헌금이 빠졌네.” 순발력이 대단하죠! 표시도 안 했을 텐데 그게 헌금이라니! 인간의 이기심이 이런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이런 마음이 발동되면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겁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벗’입니까?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늘 교제합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삽니까? 하나님의 일에 몸과 마음, 시간과 물질을 드리며 헌신합니까? 이런 질문에 ‘Yes’로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벗입니다. 반대로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아직은 하나님의 벗이란 호칭을 받기 어렵습니다. 

지난 주간 기분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 한 분을 만나 교제한 일입니다. 합참의장과 육사 교장을 역임한 대장 출신 이필섭 장로님(군군중앙교회)을 선교 일로 만났습니다. 그분은 세계기독군인연합회(AMCF : Association of Military Christian Fellowships) 회장인데 군 선교에 헌신한 분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 군대에 군 선교회를 조직하고 활성화시키는 일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 일환으로 매년 여러 나라 기독 장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금년에는 20개국 30명의 기독 장교가 내한합니다. 

그 훈련 프로그램 중 마지막 2박 3일은 각 교회로 흩어져 홈스테이 하면서 교회를 견학하는 것인데, 이 일을 위해 이 장로님을 만난 겁니다. 온유하면서도 선교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1시간 정도 교제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분의 신앙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인터넷에 들어가 간증 동영상(CTS-TV 「내가 매일 기쁘게」)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본래 불교 집안 출신인데 육사 4학년 때 예수님 영접한 이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현역 당시에도 그랬지만 특히 퇴역한 후 군 선교에 헌신해서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는 분입니다. 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데, 이미 신약 1000독과 구약 100독 이상을 했습니다. 1년에 한두 번씩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도 합니다. 필순이 넘은 고령이지만 1년에도 10개국 이상 순회하며 사역합니다. 사무실에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매일 표시해가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그분을 뵈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저 어르신을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겠구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벗이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참 믿음을 갖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순종하고 헌신함으로 하나님의 벗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도, 우리 주변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하나님의 벗이라 불러줄 수 있는 있는 그런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벗에게 어떤 축복이 주어지나?   

여러분, 하나님의 벗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익을 보려는 의도를 갖고 친구를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친구를 갖고 있으면 얼마나 많은 덕을 봅니까? 그럴진대 신실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벗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에게 큰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① 형통의 복 : 

우리가 하나님의 벗이 되면 형통의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든 복의 원천이신데, 하나님의 벗이 된 우리에게 얼마나 축복하시겠습니까? 시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 ”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두 말 할 필요가 없죠. 날마다 동행해주시고, 도와주시고, 형통케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런 형통의 복이 임했습니다. 그도 인생 가운데 시련이 많았지만 모리아산 번제 사건 이후 하나님이 그를 벗으로 인정하신 후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창24: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노후의 아브라함은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마치 하이웨이가 펼쳐진 것처럼 축복의 대로가 열린 겁니다. 

  
② 기도 응답의 복 :  

또 우리가 하나님의 벗이 되면 기도가 잘 돼요. 기도하면 척척 응답해 주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의 벗이 되면 하나님과 마음이 통합니다. “하나님 마음이 내 마음, 내 마음이 하나님 마음”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 기도가 얼마나 잘 응답되겠습니까! 예수님 도 말씀하셨습니다. 

요15:15~16 “15 ...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 16 ...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친구가 되면(하나님의 벗이 되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기도하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기도 응답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남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할 때도 다 들어주셨습니다. 자신을 배반하거 떠났지만, 소돔성이 심판을 받게 되자 그곳에 거주하던 조카 롯을 위해 기도하죠.(창18:22~33 참조) 소돔성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나요? 하나님이 당신의 벗인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롯을 불구덩이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창19:29)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복을 구하십니까? 누구나 그럴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벗’이 되는 게 최우선순위(First Priority)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너는 나의 벗이야!”( You're my friend!) 이렇게 인정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 됩니다. 복된 인생, 아름다운 인생이 됩니다. 아무쪼록 이런 원리를 깨닫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벗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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