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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정표(里程標)를 세우라 (렘 31: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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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里程標)를 세우라 (렘 31:21-22) 
 
 
사람이 사는 곳에는 도시나 마을의 지명이 있고 그곳을 알려주는 표식이 있습니다. 도로나 시설물을 따라서 주소가 정해져 있고 그곳을 정확히 찾을 수 있도록 위치와 거리를 알려 주는 이정표를 만들어 둡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자동차에 도로와 위치를 정확하게 안내해 주는 장치(navigation)가 있어서 초행길을 운전하는 사람도 큰 어려움 없이 찾아가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처녀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정표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받은 특권과 함께 그들이 지켜야 될 마땅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이 잘못된 길로 가게 되어 후손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렘 18:15). 선지자 예레미야는 지금이라도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이정표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1. 목마른 인생을 위하여

성경은 범죄한 인간이 사는 세상을 물이 없는 사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7:6에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1) 목마르고 갈급한 사람

옛날 아브라함의 집을 나온 하갈은 브엘세바 광야에서 그의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마실 물이 없어서 절망하며 통곡하였습니다(창 21:15-16). 사막은 물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서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렇지만 얼마 못가서 그 물이 떨어지고 나면 또 다시 목이 말라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여행을 하는 동안 가장 큰 어려움은 목마른 고통이었습니다(출 17:1). 이스라엘의 여호람왕은 모압과의 전쟁에 나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7일 동안 군사와 가축의 먹일 물을 찾지 못하고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나타나서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고 하였습니다. 바른길을 두고 잘못될 길로 가는 사람이 겪는 불행입니다(왕하 3:9-20). 

2) 생수의 근원을 잃었습니다.

생수의 근원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요 4:14). 하나님의 말씀이 생수입니다. 아모스 8:11에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생수입니다. 요한복음 7:37-39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물을 저장하지 못하는 웅덩이

예레미야 2:13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을 축복으로 주셨습니다(아 4:12). 생수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웅덩이를 만드는 일에 매달립니다. 인간의 지식이 발달하고 물질문명이 향상될수록 많은 사람이 이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목마른 인생에게 생수가 되지는 못합니다. 가장 필요한 시간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터진 웅덩이에 불가합니다. 야고보서 5:2-3에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2. 방황하는 백성을 위하여

22절에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방황의 원인은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8:15에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향하게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1) 길을 잃은 백성

길을 이탈하게 되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철길을 달리는 기차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제각기 정해진 그 길만 가야됩니다. 기차가 궤도를 이탈하거나 비행기가 항로를 벗어나게 되면 위험에 빠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반드시 가야될 바른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가야될 길을 잃게 되면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 2:18에 보면 그들이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고 또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2:23에 보면 발이 빠른 낙타가 어지러이 달리는 것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고 하였습니다. 2:36에는 그들이 길을 바꾸어 앗수르와 애굽을 부지런히 돌아다녔으나 수치만 당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른길을 두고 곁길로 갔으니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길

본문 말씀 21절에는 “큰 길(highway)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의 길입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요 1:4). 그 길은 만사가 형통케 되는 길입니다(신 29:9).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옛적 길 곧 선한 길’이라고 하였습니다(렘 6:16).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족장들이 갔던 길이기 때문입니다(신 7:8). 열왕의 조상 다윗이 갔던 길이기 때문입니다(왕상 2:3). 하나님의 백성은 그 길에서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신 5:32). 이스라엘이 그 길을 버렸기 때문에 멸망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다음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하고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렘 42:3).

3) 오직 하나의 길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이 가야될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4:6). 성경은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일러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행 4:12). 구약의 족장들과 선지자들, 신약의 사도들과 모든 성도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목표로 하고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기 때문에 찾는 자가 적습니다(마 7:14). 그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마 16:24).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목숨을 내어놓고 가야만 됩니다(마 16:25).

3.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비록 이방나라에서 포로 생활의 징벌을 받았지만 그들을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애칭을 썼습니다. 여기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싸리라”고 하신 것은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입니다.

1) 회복의 희망입니다.

이사야 6:13에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였습니다(사 6:13).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기 백성을 밤나무와 상수리나무를 베듯이 징벌하였지만 언젠가는 그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그루터기를 남겨두셨습니다. 지금은 바벨론 땅에 있으나 때가 되면 잃었던 조국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 길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를 만들고 길목에다 푯말을 세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6:1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2) 축복의 희망입니다.

22절에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싸리라.”고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는 연약한자를 의미하고 남자는 강한 자를 뜻합니다. 여자는 교회를 의미하고 남자는 세상을 뜻합니다. 이는 이사야 54:1에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고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능가하고 교회가 세상을 석권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받게 되는 신비로운 축복이며 또한 신약교회의 비전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어내는 것입니다(사 37:32).

3) 메시야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하신 구속사(救贖史)적 경륜을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범죄함으로 영원히 멸망에 이른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회복되는 극적인 상황은 죄와 죽음 아래 얽매인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롬 8:1-2). 멸망한 자기 백성을 슬퍼하며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메시야 시대의 환상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예레미야 31:31에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새 언약의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확실한 이정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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