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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색순교 (롬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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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순교 (롬 14:8) 
 
 
혹시 "백색순교"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순교라고 하면 흔히 신앙을 지키고자 피 흘려 목숨을 바치는'적색 순교'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박해시절의 순교자들처럼 피 흘리는 순교를 강요당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그렇다고 순교가 필요없는 시대가 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 놓고 목숨까지 바칠 자세로 일상에서 순교자적 결단을 내리며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대적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자신 안에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안락을 추구하고 편함을 추구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순교적 결단과 순교적 자세가 아니면 안됩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서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과학만능주의와 쾌락주의는 우리들에게 순교적인 신앙생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로 백색순교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고 증거 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훌륭한 순교자의 후손답게,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나를 끊어버리고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순교하는 마음으로 살 때, 이런 작은 순교를 실천할 때, 그 삶이 바로 증거의 삶이며 순교의 삶일 것입니다. 이것을 백색순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친히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킴으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백색순교신앙이 자신의 사명을 위해,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도 드리게 한 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느닷없이 뜬금없이 순교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백색순교자가 곧 적색순교, 피흘리는 순교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드에게 전투적인 용어라기보다는 기독교인이 사는 문화이며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바울이나, 스데반같이 손양원목사님이나 주기철목사님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순교의 제물이 되지않더라도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날마다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순교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은 교회력으로 순교자기념주일이며 또한 우리교회로서는 제자대학 3기생들이 졸업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날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 가지 시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하여가입니다. 
하여가는 (태조 : 이방원)이가 정몽주를 변심시키기 위해서 읖조린 시조입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두번째는 단심가입니다. 
단심가는 (정몽주)가 태조 이방원에게 자신의 충의를 밝히는 시조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그는 이 시조로로 답하고 난 뒤에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 우리 복음적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학이 있다면 단 하나의 신학 곧 순교신학이어야 하며, 신앙이 있다면 단 하나의 신앙 곧 순교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한 중국 청년이 미국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를 마치고 좋은 관리직을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미국 정부의 관리가 되기를 굳게 사양하고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왜 그처럼 좋은 자리를 거절하고 목사가 되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의화단 사건이 있었을 때에 중국의 내륙 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우상을 섬기는 큰 신당이 있었는데 하루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군인들에게 끌려서 그 신당으로 왔습니다. 

군인들은 그들에게 우상에게 절하고 신앙을 버리도록 위협했습니다. 우상에게 절을 하면 살려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군인들은 기독교인들을 한 줄로 세우고 우상 앞을 지나가며 절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끌려온 163명의 기독교인들은 절을 하기는커녕 고개도 숙이지 않고 우상 앞을 걸어 지나가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는 군인 앞에서 목이 땅에 떨어져 구르며 순교하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절만 한 번 하면 사는데, 163명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나는 어렸지만 그 사건은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조금만 잔꾀를 부리면 많은 이득을 보고 출세도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백색순교입니다. 

작은 죄만 허용해도 즐거울 수 있는데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죄는 누구나 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것조차도 가슴아파하고 회개하고 그런 작은 죄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것이 바로 백색순교입니다.   

편할 수도 있는데 결코 편한 길로 가지 않고 정해진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백색순교입니다. 
조금만 우회해도 편하고 넓은 길, 넓은 문으로 가면 편하겠지만 한사코 좁은길로 좁은 문으로 가는 것이 백색순교입니다.  

오늘 순교자기념주일에 맞추어서 3기 세계비전제자대학 졸업식을 하게 된 것도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3인의 법칙"이란게 있습니다. 
혼자 일때는 아무런 힘도 없지만 셋이 됐을때 힘을 발희 하는 놀라운 법칙을 3인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길거리에서 혼자 손가락질을 하고 있으면 별로 신경 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보이더라도 별 미친놈 다 보겠네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2사람이 같이 하고 3사람이 같이 하면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목회자 혼자, 혹은 교인 한 두 사람이 하는 것보다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열매로 훈련된 사람들이 함께 하면 교회와 세상을 바꿀수 있을 것을 확신하면서 제자대학에 임하고 있습니다. 오늘 졸업한 졸업생들이 목회자와 함께 한 방향을 주시한다면 다른 시선들도 따라 가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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