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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마 6:9-13, 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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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마 6:9-13, 26:41)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죄 사함, 용서를 위한 기도 다음에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라는 기도가 이어집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시험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기말고사 혹은 대학입시와 취업준비로 수고가 많습니다.  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분들은 어쩌면 날마다 시험 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아직 어린 청소년들은 시험 없는 세상에 살고프다고 하소연합니다.  언제쯤 시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요?  학교 시험이 끝나면 다 된 줄 알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시험들이 우리 인생의 길목에 버티고 기다립니다.  수험생 부모님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자녀들을 지켜보며 어서 빨리 시험이 끝났으면 합니다. 그렇지만 시험 준비하느라 애쓰는 자녀들에게 힘들면 포기하라 하지 않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자 격려하고 함께 노력합니다. 시험을 통과해야 자격도 갖추고 실력도 향상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남아공 월드컵 한국 축구팀이 선전하는 중입니다.  이미 지역 예선전을 통과하여 본선에 출전하였고 이제 16강에 진입하려는 문턱에 이르렀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시험입니다.  16강에 확실히 들어가려면 세계적인 수준의 두 팀은 물리쳐야 하는 고된 시험입니다. 이런 시험은 승리를 위해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할 과정이므로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응원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친구들의 나쁜 꾐이나 게으름의 유혹에 빠지면 부모는 꾸중과 회초리를 섞어가며 잘못된 생활을 고쳐주려고 애씁니다.  한참 공부할 나이에 나쁜 유혹에 정신을 팔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시험을 치루는 자녀를 돌보는 부모님의 마음과 똑같습니다. 영적 성장을 위한 시험은 어려워도 이겨내야 하고 힘들어도 통과해야 하지만, 나쁜 유혹에 빠진 자녀는 매를 때려서라도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매맞기 전에 처음부터 악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시기를 비는 것은 연약한 우리들이 드릴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시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귀가 주는 시험, 유혹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선과 악을 분별하기 위함이며, 믿음 성장을 위한 연단입니다. 시험 기간에는 힘들지만 견디고 통과하면 한층 성장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목표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나를 즐겁게 할 것인가 선택입니다. 이 시험에는 함정이나 속임수가 없습니다. 문제를 꽈배기처럼 비틀어 애매모호하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엉뚱한 답을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지 않고 명확한 답을 선택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든 사단으로부터 오는 유혹이든 시험을 이기는 모범 답안이 있습니다.  정답을 고를 수 있는 명확한 안내서가 있으니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명령하는 바를 따르면 하나님의 시험에 만족한 결과를 얻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책임과 의무가 부담스러워 기피하고 내 편리함을 추구하려는 나의 욕심이 정답을 선택하는 판단력을 흐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험이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단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처럼 우리 역시 말씀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에 깊이 잠기는 경건 훈련을 날마다 힘쓰시기 바랍니다.   

‘근묵자흑’ 近墨者黑 이라는 옛 말이 있습니다. 검은 묵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친구를 가까이 하면 나쁜 버릇에 물든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친구하였느냐에 따라 그 친구를 닮아갑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약4:4) 했습니다.  그리고‘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4:7, 8) 하였습니다.  세상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세상의 것이 더 좋아 보이며 하나님은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본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의 믿음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정입니다.  대표적인 시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일입니다(창22장).  명령에 순종하여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을 향해 여행하는 3일 길은 아브라함의 전 생애 가운데 가장 어려운 시험 기간이었습니다.  사환들을 산 아래 남겨두고 아들과 단 둘이 산을 향해 올라가는 아버지의 그의 머리 속에는 수 만 가지의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차라리 살만큼 산 나를 데려가시지 왜 하필 약속으로 주신 아들을 달라고 하시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약속을 의지하고 묵묵히 시험을 치룹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아브라함을 가리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히12:17) 하고 칭찬합니다.  하나님의 시험 주제는 언제나 약속과 믿음, 그리고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매일 아침 내리는 만나로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순종하는가 아닌가를 살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광야를 행진하여 목표하는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연단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런 뜻을 귀찮케 여기고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신을 섬기면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실까?  정말 우리를 벌하실까 아니면 우리를 붙들어 두시려고 겁주시려는 것일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떠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한두번 떠보고 만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수기 14:22절을 보면,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하고 탄식하셨습니다.  시편 95편의 시인은 이런 백성들을 가리켜 ‘그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조사)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시95:9)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슬쩍 떠보는 것, 혹은 조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자신들도 모르게 몸에 밴 죄악된 습성을 버리고, 죄로 가득한 가나안의 풍습에 물들지 않도록 예방하시려고 고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거듭거듭 반항하고 배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거부하고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영적 성장을 거부하는 영적 게으름입니다. 쉬운 일만 생각하고 어려움은 회피하면서 십자가 없는 영광을 꿈꾸는 것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대기업 회장의 독자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기업을 이끌어 가기로 정해졌다고 합시다.  때가 되면 그 아들이 회장 자리에 오르겠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빈둥거리며 놀다가 그 자리를 맡게 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시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입사 시험부터 공정하게 치르고 신입사원으로 시작하여 업무 능력을 키우고 능력에 따라 일거리를 맡기면서 점점 중요한 자리를 맡아가도록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먼저 자녀들이 세상을 이기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자녀들로 하여금 고된 연단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것이 더 큰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임을 깨닫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감당할 시험 외에는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아버지가 자녀에게 맡기는 시험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주시고 또한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처음부터 어리광 부리며 꾀를 피우고 어려운 시험을 회피하는 허약한 자녀로 살게 하시지 않습니다.  피할 길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시험을 만났을 때 허약하게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공정한 시험을 치루면 적절한 지혜도 주시고 이겨낼 힘도 주십니다(고전10:13).   그래서 시인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감사함으로 받고 믿음으로 통과하여 날마다 자라가는 믿음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시험은 사단이 주는 시험입니다. 사단의 시험은 시험당하는 사람을 파멸로 끝이 나게 하는 유혹,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보다는 나의 죄된 본성을 만족시켜 주는 일에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이 시험은 시험당하는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내가 시험당하는 중이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당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시험에 매료됩니다. 꿀맛처럼 달고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습니다. 마치 폭주족들이 겁없이 자동차를 모는 것처럼 긴장과 스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파멸입니다.  불나방이 불 주위를 맴돌다 타죽는 것처럼 결말은 죽음입니다.  파멸, 그것이 사단이 우리를 시험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심지어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예수께 찾아와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보라 하였습니다.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가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메시야의 사명을 이루시려는 예수님 앞에 사단의 시험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사람들에게 너의 능력을 보여줘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인정하고 존경하지 않겠느냐? 그럴듯한 말로 미혹합니다. 그러나 사단의 본심은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을 버리고 인간의 영광을 얻어 파멸로 이끌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단은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앞세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지 못하도록 막아선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였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 즉시 하나님 아들의 능력을 보여주며 사단의 기세를 당장에 꺾어버리고 깐죽거리는 사람들을 묵사발 만들었을텐데 예수님은 사단의 유도작전에 말리지 않고 자신의 사명완수를 향해 묵묵히 일하셨습니다. 
  
‘아무개가 아무래도 시험 들었나 봐’할 때 어떤 뜻으로 말합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건강에 적신호가 왔을 때 이겨내려고 눈물겹게 힘쓰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일까요?  그보다는 전혀 딴 사람이 되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염려할 때 하는 말입니다. 전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옛 사람의 성품이 끓어올라와  하나님의 자녀답지 않은 언행심사를 드러낼 때 염려하는 말입니다.  사단의 유혹에 노출되어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상황입니다. 

물질에 대한 태도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전과 같지 않고 상식과 도를 넘어 선다면 일단 조심해야 할 상황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법과 규칙도 무시하고 불법을 정당화하고 있다면 분명히 유혹에 빠진 사람입니다. 성실하게 믿음생활 하던 사람이 갑자기 나태함과 귀찮음에 빠졌다면 조심스럽게 살펴야 할 상황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고 불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용납하고 있다면 혹시 내가 시험에 든 것은 아닌가?  스스로 의심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욥이나 예수님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단에게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마귀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사단이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으니 근신하고 깨어있으라(벧전5:8) 하였습니다.  이 경고는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당부하는 말입니다.  대적 마귀가 굶주린 사자처럼 우리 주변을 맴돌며 먹이감을 노리고 있으니 그 유혹에 희생되지 맙시다. 어떤 짐승이 맹수들의 먹이감이 됩니까?  허약한 짐승, 병들고 어린 새끼들, 낙오된 짐승이나 상처 받아 피 흘리는 짐승, 한눈을 파는 짐승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로 사단의 먹이감이 됩니까?  허약한 믿음, 영혼의 병이 든 사람, 아직 어린 믿음, 공동체로부터 고립되어 나홀로 뒤쳐진 사람, 이런 저런 마음의 상처로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입니다.  피 냄새를 맡은 맹수처럼 사단은 상처난 영혼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사단이 무서운 줄 모르고 자기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우쭐대며 겁없이 나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단의 먹이감 신자들에게 근신하고 깨어있으라 경고합니다. 영적으로 깊은 잠을 자고 있던가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지 못하고 흐트러진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은 속히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베드로는 여러 차례 사단의 꾐에 넘어갔던 제자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하는 책망도 들었습니다. 조금 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정확한 신앙고백을 하여 다른 제자들 앞에서 칭찬을 들었지만 바로 이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무서운 책망을 들었습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즉시 앞을 가로막으며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예수님을 꾸짖듯 항의하다 그만 이런 책망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칭찬과 책망,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듣고 우쭐한 나머지 잠시 방심하였다가 순간적으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앞세우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연약한 우리들의 실상입니다.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것처럼 위험한 행동은 또 없습니다. 그 때가 바로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하였습니다.  영적 교만보다 더 위험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차라리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 다윗이‘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라’는 결심을 자주 보인 것은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지만, 때로는 형통할 때 교만한 마음으로 ‘나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큰 소리를 치다 실수를 했습니다(시30:6). 
        
다윗은 편안하고 형통할 때 충성스런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궁궐로 끌어들여 동침하는 시험에 빠졌습니다. 말년에 와서는 자기가 이루어 놓은 왕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고픈 마음에 하나님이 싫어하신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얼마 가지 않아 흐트러진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고난이 있고 삶의 풍랑이 심하여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때는 오히려 영적으로 건강한 시기였는데 모든 것이 잘 된다고 생각할 때 넘어졌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하였습니다. 

이런 시험은 피해야 할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나도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하나님의 의를 나도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지식으로 알거나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적극적으로 행하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죄와 악을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외면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험심으로 가득하여 사단의 유혹을 즐기는 신자라며 언젠가 무시무시한 고통으로 괴로워 할 날이 오고야 맙니다.  협박이나 공갈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타고 폭주하거나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식으로 신앙생활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딪히고 떨어지면 최소 중상 아니면 사망인데 왜 목숨을 걸고 모험을 시도합니까?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하여 깨어 기도합시다!  나는 괜찮다는 오만함으로 신앙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기 바랍니다.
     
사단이 성도를 미혹할 때 하나님은 그들이 그 시험을 어떻게 대응하는가 보십니다.  사단이 의로운 사람 욥을 넘어뜨리려고 잔혹한 고통을 안겼던 것처럼 때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도 내에서 고난도의 시험이 실시됩니다.  사단이 욥을 시험한 목적은 욥의 파멸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욥을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모진 시련을 이겨 낸 욥처럼 위대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너무 잘 아시는 분이시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까지 허락하시고 그 이상을 넘어설 때는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오히려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고 자기 능력 혹은 지식으로 사단의 시험에 대항하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전10:14)  때로는 피하는 것이 이기는 길인데 자신의 영성과 지식을 과신하고 사단의 유혹에 정면 대결하려다 패하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는‘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마26:41) 하신 말씀처럼 악한 상황, 죄 짓는 상황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피할 길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죄짓는 자리인 줄 알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유혹에 빠진 결과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 2) 하였습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악을 이기고 피할 길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오늘 만나는 시험을 감사함으로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은 냉정하게 거절하시고 물리칠 힘을 내게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럴 때 우리는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도와주세요’ 기도해야 합니다.  이 한 주간도 주의 말씀과 동행하며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복된 날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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