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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능력 (롬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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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 (롬 :16-17)
 

그저께 밤에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티비를 켰더니, 말기 암환자인 어느 부인의 투병생활을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많아야 40대 초반으로 보였고 자녀 가운데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부부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단란한 가정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암에 걸린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나 봅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 본 결과 손을 쓸 수 없는 말기였습니다. 그 부인은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자녀들을 두고 가야하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부인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일까?’ 하고 혼잣말로 물었습니다. 더구나 남편과 아이들이 운명하는 그 부인의 손을 잡고 눈물의 작별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너무나 애절했습니다. 2010년 한국여성의 기대수명이 82.5세인 점을 감안할 때 그 부인은 이것의 절반 밖에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장례식 장면에서 성도 아무개라고 쓴 명패를 보고서 그 부인이 그리스도인이었음을 알고서 마음에 위안을 받았습니다.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영혼의 구원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평균 기대 수명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죽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가온다는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언제 죽음을 만날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매일 죽을 날을 생각하면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야 어떻게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 가운데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살면 죽음의 불안을 느끼지 않고 희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앞에서 소개한 부인과 같이, 말기 암에 걸려서 몇 개월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 나왔다면, 어떤 태도를 보일 것 같습니까? 그 때에도 변함없이 삶만을 생각하면서,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면서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삶에 대한 집착은 허무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고, 이는 내일에 대한 희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희망도 죽음 앞에서는 절망으로 변하고 맙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죽음을 피상적인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실체로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시편 90편 12절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대 수명이 칠, 팔십 살에 불과한데, 마치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따금씩 자기에게 남은 날수를 셈해 보면서 자신이 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봅니다. 그뿐 아니라, 언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더라도 두려움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인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큰 사업을 경영할지라도, 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할지라도, 박사 학위를 몇 개씩 갖고 있더라도, 죽음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결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별 생각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평소에 나와 상관없던 것처럼 여겼던 죽음이 어느 날 불쑥 찾아와서 손을 내밉니다. 그럴 때 그 손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평소에 죽음은 동물원에 갇혀 있는 사자나 호랑이처럼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딴 길에서 사자나 호랑이를 만나듯이 죽음과 직접 마딱뜨리면 사정이 다를 것입니다. 그 때에도 남의 이야기하듯이 대수롭지 않게 죽음을 대할 수 있을까요? 

이 시간 저는 로마서 1장 16절로 17절에 근거해서, 죽음을 정복하는 복음의 능력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복음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복음(福音)이란 복된 소식이라는 뜻으로 헬라어 “유앙겔리온”을 번역한 것입니다. “유앙겔리온”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가스펠(gospel) 또는 ‘the Good News’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복음이 무엇이기에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복음인 이유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곧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복음이 무엇인지 다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복음의 내용을 이 같이 말씀합니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로 알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서 해방되어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바로 이것이 본문이 말씀하는 구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복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를 믿으면 죽음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이 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곧 구세주라는 사실을 구약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또한 그가 행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상세하게 예언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에 대한 최초의 예언은 창세기 3장 15절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어머니인 하와를 꾄 뱀을 저주하신 말씀으로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나오는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과연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탄생하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성이 모계가 아닌 부계를 통해 후손에게 계승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인류는 조상 아담의 후손들이므로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타고 나며, 아담의 범죄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5장 18절에 이르기를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는 죄가 없으셔야 하므로 아담의 후손으로 오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예언은 후에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의해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증언하기를 “22)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의 탄생 뿐 아니라, 그가 고난 받아 죽게 될 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했는데, 앞 부분은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에 의해서 뱀 곧 마귀가 치명적인 패배를 당할 것을 예언한 것이고, 뒷 부분은 뱀 곧 마귀에 의해 여자의 후손이 발꿈치를 상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고난을 받으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이같이 예언했습니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뿐 아니라,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 9장에 이르기를 “1)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하신 예언이 이를 의미합니다. 이 외에도, 창세기 22장 18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고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7장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몸에서 태어날 자식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나는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가서 5장 2절에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실 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편 16편에 이르기를 “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했는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시고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신다고 하신 것은 부활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상세한 예언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신약성경을 통해서 이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명명백백하게 입증한 사건입니다. 인류 역사상 죽음을 이긴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출현했습니다.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했던 정치적, 군사적인 영웅들도 있고, 수천 년 동안 인간들에게 감화를 끼친 위대한 사상가들도 있으며, 석가모니와 같은 위대한 종교가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업적은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아담의 후손으로서 우리와 같은 타락한 본성을 지녔으므로 죽음에게 삼키우고 말았습니다. 역사는 그들의 죽음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그들의 죽음을 증명하는 묘지가 우리 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무덤에 장사되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복음이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에 이르기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복음이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온갖 차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들과 가난한 나라들 간에 뚜렷한 차별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간에 엄연한 차별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 11조 1항에 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헌법의 규정과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부자는 한없는 기회를 누리지만 가난한 자는 기회를 얻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차별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인종이나 국적이나 학연이나 지연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 복된 소식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두 번째로, 복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이유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을 때 복음이 우리의 구원과 관련해서 놀라운 일을 행합니다. 

첫째로, 복음은 죄 사함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이르기를 “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는 참회를 통해서 없앨 수 없습니다. 고행이나 자선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상쇄시킬 수도 없습니다. 또는 무슨 깨달음을 통해서 죄를 없앨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9장에 이르기를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복음을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심령에 뿌려져서 정하게 하십니다.

둘째로, 복음은 우리를 의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 이르기를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미하며 이는 복음을 믿는 자를 말합니다. 복음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로운 자라는 판정을 받습니다. 

셋째로, 복음은 우리를 중생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이르기를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이 곧 중생이요 거듭남입니다. 마귀의 종이었던 우리가 복음을 믿을 때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중생한 자들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넷째로, 복음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이르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믿을 때 우리는 새 사람이 됩니다. 이전에 믿기 전의 성품이 사라지고 예수님을 닮아 온유한 성품을 갖게 됩니다. 이전의 악한 성품이 사라지고 선하고 거룩한 성품을 갖게 됩니다. 복음을 믿으면 좋아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복음을 믿을 때,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가 성결한 성도가 되었으며, 돈의 노예가 되어 살던 세리장 삭개오가 변화 받아 자기의 재산 중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선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섯째로, 복음은 우리를 복음의 증인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믿기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체포하여 옥에 넘기는 일을 자기의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뵌 이후로 핍박자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하였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습니다. 

여섯째로, 복음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에 이르기를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말씀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해방되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나 믿는 자들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복음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시다면 이제 복음이 능력이 성도님들의 속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믿으므로 성도님들은 죄 사함의 은총을 받았고, 의롭다 함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복음의 증인이 되었으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웠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이 복음은 사도에게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습니다. 복음을 믿을 때 죄인이 의인이 됩니다. 복음을 믿을 때 구습과 죄악에 얽매여 살던 사람이 변하여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새 사람이 됩니다. 

이제,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므로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이 가진 독침인 죄를 해결해 주셨으므로 죽음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권세를 부리지 못하며, 천국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라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서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죽는 것도 유익한 이유는, 육신의 죽음은 주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여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며 복음을 전하는데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이 성도님들의 생생한 신앙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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