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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심과 보내심 (갈 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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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과 보내심 (갈 1:11-24)

 
엊그제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한 감사원의 중간 감사 결과 발표를 지켜보면서 몹시 화가 났습니다.
오죽하면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이 아닌 조선일보 국제부장이 '모두 군법회의 감이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군대가 도대체 어느 나라 군대입니까? 우리 군대가 이 정도로 썩어 있는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감사 결과에는 최하류 국가의 부패 군대에서나 상상해 볼 수 있는 요소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조작 보고, 은폐 보고, 허위 보고, 왜곡 보고, 지연 보고 ... 발표에 따르면 감사원은 군 당국에 징계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가벼운 인사 조치로 끝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군형법에 따라 엄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매우 강한 어조로 자신이 전한 복음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단호히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갈라디아 교회 안에 들어온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문제 삼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라고 비방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지만 복음을 왜곡하고 변질시키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단호하게 반박했던 것입니다.

그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이지 율법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행위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것을 뭔가 부족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어떤 공로나 자격이 요구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론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문에 그는 다른 복음은 없다고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6~7)

사도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누구에게 속했는가 하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속했는가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벗어난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에게 속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습니까? 교회를 개척한 목사라도 주인 행세를 하면 아니 됩니다. 

교회를 부흥시킨 목사라도 결코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원로목사를 따르는 교인들과 담임목사를 따르는 교인들이 주도권을 놓고 싸우고 있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어서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사용하시기 위해서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복음을 전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주님의 복음을 널리 전하도록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파의 목적이 있어서 부르셨고 그 목적을 이루시려고 우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교회와 교회의 일꾼들은 그 옛날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이요 또한 보내심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일꾼으로 보내심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의 행적을 통해서 그 방도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는 먼저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왜 아라비아로 갔습니까? 준비 기간입니다. 주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 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준비하셨습니다. 아라비아에서의 기간은 준비 기간입니다. 우리도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보내심을 받은 일꾼들은 말씀과 기도로 훈련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는 다메섹으로 갔고 그 후에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다메섹은 그에게 있어서 부끄러운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곳입니다. 솔직히 피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에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나바의 도움을 받아 사도들과 사귀게 되었고 거기서도 자기가 공격하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행적은 오늘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교회의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후 그는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기 위해서 그 어디든지 나아갔습니다.
자기의 고향인 다소로 갔습니다. 세계 선교의 전초 기지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옥 교회를 세웠습니다.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전도했습니다. 마게도니야 지역에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마침내 죄수의 신분으로 제국의 심장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보내심을 받은 일꾼의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군대가 왜 있습니까? 적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있는 것 아닙니까? 국민들에게 거짓말이나 하는 지휘관이나 군대는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왜 교회로 부르셨습니까? 복음을 전하도록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까닭은 오직 증인으로 보내시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 옛날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고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그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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