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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 (마 16: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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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 (마 16:17-19)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 多樣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한국교회, 미국교회, 영국교회, 북한의 지하교회, 중국의 삼자교회가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이름이 붙은 교회도 있습니다(루터교회). 루터교회는, 종교개혁자 M. Luther의 개혁신학을 추종하는 자들이 모인 교회입니다(D. Bohoeffer). 代議政治하는 장로교회도 있습니다. 감독 정치하는 監理敎會도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개혁교회지만, 주교 정치하는 성공회도 있습니다. 세례성례 베풀 때, 온 몸을 완전히 물에 담가서 浸禮하는 침례교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장로교회 경우, 같은 장로정치를 하는 교회지만 통합측, 합동측, 기장측, 고신측, 대신측, 교단이 참 많습니다. 특히, 합동측 계열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군소교단들이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들은, 이처럼 참 다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교회를 믿습니다.” 

주후 381년에 제정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있습니다(사도신조와 함께 대단히 중요한 공교회의 신조).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아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우리는 하나의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합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교회정치나, 제도나, 전통이 모두 하나다는 말이 아닙니다. 동일한 복음, 동일한 主님, 동일한 성령님 안에서 지상의 모든 교회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만, ‘교회는 하나의 교회이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찬송부르지 않습니까? “온 세계 모든 교회 한 몸을 이루어, 한 주님 섬기면서, 한 믿음 가지네, 한 이름 찬송하고, 한 성경 읽으며, 다같은 소망 품고 늘 은혜 받도다”(600, 2). 아멘. 

이런 하나의 교회는, 사도적인 교회이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 16-18). 예수님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주님께서 친히 세우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어디에다 주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다 하셨습니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이 말씀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에 따르면, “우리는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 말은, 교회가 사도적인 교회가 되지 못할 때, ‘교회의 교회됨’이 상실되고 만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사도성 결핍이,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합니다. 로마천주교회는, 사도권을 계승한 자로 생각하는 ‘로마교황’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받은 主敎(사제, 신부)가 다스리는 교회를 가리켜서 ‘사도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천주교회는 로마교황이 임명한 주교(사제, 신부)가 없는 교회를 사도적인 교회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로마교황이 임명한 주교가 다스리는 교회 밖(외)에는 구원이 없다”고까지 합니다. 로마천주교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개신교회는 사도적인 교회가 아닙니다(교황이 임명한 주교가 없는 교회이기 때문). 로마천주교회가 왜 그렇게 주장합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너는 베드로라(반석)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오해하기 때문입니다(마 16, 18).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모든 권한을 ‘사도 베드로’에게 위임했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자신의 모든 권한을 ‘교황에게 위임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교황은, 사도 베드로로부터 위임받은 사도권을 각 지역에 있는 主敎에게 나누어 준다는 겁니다. 이런 신학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마 교황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받은 주교가 다스리는 교회 속에만 ‘사도적인 교회’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사도 베드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생각합니다. 교황은, 누굽니까? ‘사도 베드로의 대리자’입니다(베드로 수위권, 교황 수위권). 

정말,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한 자가, 베드로입니까? 또 베드로를 대신한 자가, 정말 로마 교황입니까? 그렇잖지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분은 베드로가 아니라 성령하나님이시라 증언합니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한다고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오셔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요 14, 16). 

그런데 로마천주교회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신 그 반석을 ‘베드로 개인’이라고 본 것입니다(너무나 큰 오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은 ‘베드로 個人’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반석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고백한 베드로의 그 신앙을 말합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그 믿음, 그리고 그 고백이 있는 곳에, 주님께서 주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장로교회의 始祖인 개혁자 칼빈은, 베드로가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교회의 반석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교황이 베드로의 권한을 대신하는 대리자도 아닙니다. 주께서 세우시는 주님의 교회의 반석은, 주님을 믿는 믿음과 그 고백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이와 유사한 분쟁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나는 개척자인 바울에게 속하였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후임목사인 아볼로에게 속한 자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나는 바울파, 나는 아볼로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해서 밝히지 않습니까?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개척자),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후임목회자),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느니라.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니라(각각 자기 상을 받음).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주님의 교회는, 그 어떤 특정한 ‘사람이’ (베드로가, 교황이, 목회자가) 반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그 믿음 고백이, 교회가 세워지는 반석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그 믿음과 그 고백이 있느냐가 문제겠지요.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主시라 할 수 없느니라”말씀했습니다(고전 12, 3). 그렇습니다. 정말, 그러합니다.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옵니까? 깨닫습니까?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도,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지 못합니까?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예레미야, 엘리야, 혹은 선지자 중 하나로만 알았습니까? 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聖人 中 한 분으로만 압니까? 그렇게만 인정합니까? 이스라엘의 국사요, 산헤드린공회원이요, 최고의 율법학자였던 니고데모도, 왜 거듭남의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까?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 말씀 듣고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줄, 하나님이신 줄, 몰랐습니까? 특히 유대종교 지도자들 - 서기관, 바리새인들, 그들은 앞장서서 예수님 반대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원흉이 되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예수님도, 성령 하나님으로 하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보혜사 성령하나님을 진리의 영이라, 내가 가르친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리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그 놀라운 믿음과 그 고백은, 혈육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 성령에 의한 믿음, 하나님 아버지에 의한 믿음과 고백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교회의 반석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게 하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곳에 주님의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68주년 맞는 우리교회가 이와 같은 반석 위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로 든든하게 서기를 기대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이 땅의 교회를 다스리시는 ‘성령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응답하는 교회되기를 소원하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와 같은 건강한 교회로, 점점 더 든든하게 서 가는 주님의 교회라고 믿습니다. 

68주년 맞는 우리교회는, 70주년 되는 2012년을 앞두고(꼭 2년 앞) 󰡔정릉교회 70년, 그 새로운 시작󰡕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고자 합니다. 한국교회 역사가 126년입니다. 우리교회는 70주년 되는 2012년을 기점삼아 앞으로 100주년․120주년 그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며, 이곳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그 마음’, ‘初心을 회복’ 하고자 합니다. 흔히,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합니다. 지나온 과거 역사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2000년 전, 갈릴리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운동하셨던 ‘하나님 나라 본래의 자리’를 되찾는 교회가 되자는 겁니다. 

女人들이, 빈 무덤에서 예수님의 屍身을 찾고 있을 때, 흰옷 입은 청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빈 무덤 소식).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재회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상기시켜주면서 명령하지 않았습니까?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마 28, 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시겠다고 하셨을까요? 갈릴리가 어떤 곳이기에 그렇습니까? 갈릴리와 예루살렘은 아주 대조적인 땅입니다. 예루살렘이 죽임과 죽음의 땅이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거부하던 율법주의자들의 본부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땅입니다. 그러나 갈릴리는 생명의 땅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사건이 일어나던 곳입니다. 

호숫가에서, 광야에서, 팔복산상에서, 죄인 세리의 집에서, 고기 잡던 어부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이 있던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이 선포되고, 가르침이 있고, 병자와 귀신들이 고침 받던 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서도 시작된 자리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던 곳입니다. 그 처음 부르심의 자리, 하나님 나라 사건이 일어났던 그 자리로 가라는 거지요. 거기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하나님 나라운동을 시작하자는 명령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교회도 70주년을 기점으로, 빈 무덤의 두려움과 절망의 자리인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로 가서 부활하신 主님과 함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일구는 교회가 되자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OECD나라 중 최저출산율 나라입니다. 급속한 고령화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고령화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출산율만이 문제의 요인은 아닙니다. 교회가 젊은이들, 다음 세대를 품고 세우지 못한 면도 많습니다. 6년 전, 제가 우리교회 부임했을 때, 당장 5년 뒤(지금!) 10년 뒤가 걱정되었습니다. 120년 역사가 넘은 서울의 모 교회는, 지금 교회학교 교사들 평균연령이 56세라고 합니다. 젊은 교사들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5년 동안 우리와 늘 함께 예배하며 지내시던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성도님들 300명 장례를 했습니다. 우리교회에도 70세 이상 되신 어르신 교우들 450명이 넘게 계십니다. 아무리 장수시대라고 하지만, 10년 내에 이 정든 교회를 거의 떠나실 분들이십니다.

교회가 다음 세대를 품고, 다음 세대를 세우자는 것은, 결코 어르신들을 홀대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위대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자는 운동입니다. 후손들을 믿음으로 축복하자는 운동입니다. 창세기 족장사를 보면(아브라함↠이삭↠야곱, 그리고 요셉으로), 아주 영롱한 아름다운 자태가 있습니다. 族長들이 나이 많아서 죽을 때가 되면, 마지막으로 꼭 하는 일 하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언약을 繼承시켜주면서 福을 비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복을 빕니다. 이삭은 그 아들 야곱에게 복을 빌었습니다. 야곱도 지팡이를 의지하고 서서 있는 힘을 다해 그 아들들과 요셉의 두 아들들에게 복을 빈 후에, 침상에 그 발을 모으고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위대한 족장들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지난 5월 16일 주일, 3부예배 마쳤을 때, 두 청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그마한 선물을 들고 왔습니다. 스승의 주일이라고. 화분 하나!, 󰡔그 청년 바보 의사󰡕 책 한권. 그 책의 내용은, 고려대학교의과대학을 졸업한 내과 전문의, 안수현(영락교회)이라는 33살에 죽은 청년의 믿음, 삶의 이야깁니다. 그 책 첫 글 글머리에, 前 예수병원 원장이셨던 설대위(David Seel) 선교사님의 글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환자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저를 찾아온 두 청년의 목적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서른 셋, 예수님과 같은 나이에 예수님의 痕迹을 좇아 달려가던 ‘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처럼, 우리교회를 통해서 ‘예수님 좇아가며 사는 삶을 알고, 배웠노라’고, 또 ‘그리 살아보겠노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마음이 담긴 선물과 청년들의 찾아옴을 보고, 저는 우리교회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교회가, 위대한 믿음을 전수해 주는 교회구나 확인할 수 있어서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이 계속되는, 반석 위에 세워져가는 使徒的 敎會임을 확인할 수 있어서입니다. 죽음의 땅, 죽임의 땅인 예루살렘의 빈 무덤을 떠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가 기다리고 계시는 ‘갈릴리’로 가십시다.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主님과 함께 다시 한 번 더 힘차게 하나님 나라 운동 시작하는 교회가 되십시다. 아멘.

[기도] 

68년 전, 이곳 정릉골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선조들의 믿음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 안에서, 한 성령님 안에서, 한 믿음 안에서 하나 되게 하옵소서. 사도들이 전해 준, 복음을 계승하는 사도적인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를 세우고 축복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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