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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의 3단계 신앙 (벧후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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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3단계 신앙 (벧후 3:17-18)


이 시간 “신앙의 3단계”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의 모든 삶 속에는 단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유치부가 있고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가 있듯 학문에도 단계가 있고, 어떤 일에든지 단계가 있습니다. 초보자와 숙련자는 분명 다릅니다. 그 단계를 무시하고 뛰어넘으려다가 시행착오를 당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발하여 홍해 광야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생활화하기까지 더 배우고 더 믿고 더 받고 더 경건에 이르기를 수없이 연습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의 초점은 예수를 아는데 있습니다. 얼마나 예수를 아느냐에 신앙의 단계는 달라집니다. 얼마나 주님을 아십니까? 그래서 본문에 베드로는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냥 나온 말씀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일생 삶을 통해 나온 체험담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신앙의 3단계가 있었습니다.

1. 베드로의 신앙의 첫 단계는 예수 발견의 단계입니다.

눅5:8-10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서 예수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알았다 해봐야 랍비 선생의 한 사람이란 것 정도였습니다. 고기도 잡지 못하고 허탈감에 빠져 그물을 씻고 있던 어느 날 예수가 나타나 깊은 데로 나아가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대낮에 깊은데 나가서 투망을 던지면 어떻게 됩니까? 고기가 밑으로 빠져서 다 도망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깊은데 나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말도 되지 않았지만 당시 랍비는 사회에서 존경 받는 위치였으므로 베드로는 예수님 체면을 보아서라도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 그물이 찢어질 만큼 그물 가득히 두 배에 가득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야말로 보통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를 무시했던 자신을 생각하며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외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예수 발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에서 뭔가 발견해야 합니다. 교회 출석하면서도 뭔가 하나님에 대해서 깨닫고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하나님은 위대하시구나.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구나, 성경은 틀림없는 말씀이구나.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뭔가 발견하고 깨달아야 그 신앙은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골1:6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했습니다. 뭔가 발견하고 깨들으셔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전해 주신 성도의 간증입니다. 그 때는 믿지 않을 때인데 부인이 귀신 들려 무당을 데려와 궂을 했답니다. 무당이 남편에게 앞에 가서 빌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종교성이 없는 남편이 어떻게 빌어야 할지 몰라 주일학교 다닐 때 배운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촛불이 갑자기 꺼지는 것이었습니다. 촛불이 꺼졌다고 말하니 무당이 놀라 큰 일났다면서 다시 가서 잘 빌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엎디어 있다가 다시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시 촛불이 꺼졌습니다. 이것을 본 무당은 이 집에 궂하다가 자기가 죽게 생겼다고 가버리더랍니다. 이 일을 당한 남편은 대체 예수 신이 어떤 신이길래 주기도문만 하면 불이 꺼지는가 내가 이왕 종교를 택하려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귀신도 두려워 하는 하나님을 섬기자면서 그 때부터 교회 나와 기도하다가 부인의 병도 낫고 참 신자가 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뭔가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자들처럼 체험을 많이 하십시오. 그들도 체험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무수한 기적은 제자들에게 체험 통해 믿음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체험하는 것도 체험입니다. 남이 한 체험도 간접적 체험입니다. 체험은 믿음의 귀한 거름입니다. 무엇을 총해서든지 예수를 발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베드로 신앙의 두 번째 단계는 예수 확신의 단계입니다.

예수를 계속 체험해 가던 베드로는 예수가 보통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나의 생명의 구주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3-14절)

그러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예수님을 존경하는 스승을 지나 자신의 구주로 고백한 것입니다. 정확하게 보고 확신한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예수를 존경해도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사랑을 받았다 해도 나를 피로 사신 예수, 나의 주인이시고 왕이시고 신랑 되신 예수, 오셨고 오시고 계시며 다시 오실 나의 구주 예수로 믿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온갖 말씀은 다 예수를 알려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놀라운 것을 보았다고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이지 교만케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믿을 것 같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도마에게 창자국과 못자국을 만지게 한 것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도마는 만지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이 마음에 믿어진다면 은혜를 받은 것이고 아직 믿어지지 않는다면 믿음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베드로 신앙의 세 번째 단계는 예수를 따르는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요21:19에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초보자는 고백과 삶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시자 “그리 마옵소서” 하며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앞서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만찬에서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여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대답했지만 예수님 말씀대로 밤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은 바로 성령 충만 받기 전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겨우 예수를 알고 믿을 정도의 감동으로 사셔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 받은 베드로는 헤롯이 음모하여 죽이려고 가두어도 믿음과 사명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전에 베드로는 주를 위하여 직업도 버리고 가정도 버렸으나 생명을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 받고는 목숨까지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비겁하던 사람이 용감해지고, 무식하던 사람이 지혜롭게 되었습니다. 어린 계집종 앞에서도 당당하지 못하던 그가 이스라엘 공회 앞에서도 기탄없이 말하게 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 박해를 견디다 못해 돌아오던 중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외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는 네가 도망쳐 나온 로마에 네 대신 가노라.”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나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없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혔다고 합니다. 이것은 베드로 신앙의 극치입니다. 성령이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하에 있었을 때 일입니다. 영국의 백작이 인도의 한 영주에게 트럭을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백작이 영주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놀랐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가 보내준 트럭은 쓰지 않고 여전히 소를 부려서 짐을 나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작은 영주가 보는 앞에서 트럭에 휘발유를 넣고 짐을 싣게 하고는 시운전을 해 보였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본 영주는 깜짝 놀랐습니다. 트럭 한 대가 소 수십 마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 많다고 할지라도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 더 온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저주의 불신 가운데서 구원하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기사와 표적, 성령의 외적인 역사,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의 말씀,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영생과 상급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감화 감동에 머물지 말고 더욱 성령에 충만하셔서 그리스도를 알고 모셔드리고 순종하고 온전히 따르는 참 알곡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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