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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택의 은혜 (롬 9: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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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은혜 (롬 9:6-18)


요즘 계절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5월의 태양이 역시 아름답습니다. 멀리갈 것도 없고 6층 식당 베란다에 가보면 얼마나 많이 꽃들이 만발해있는지 모릅니다. 그것만 봐도 아침고요에 간것보다 더 좋은 듯합니다. 올림픽 대로를 마석기도원 왕래하기 위해 다녀보면 그 올림픽 대로 양편에도 예쁜꽃들이 얼마나 많이 만발해 있는지 모릅니다. 그걸 볼때 무엇을 느낍니까? 

하나님의 신비는 놀랍다. 하나님께서 어디서 가져다 이렇게 심으셨을까. 또 색이 다 다릅니다. 빨간색, 하얀색, 진홍색, 노랑색 어떻게 그렇게 색깔이 다 다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습니다. 여러분 겨울에 눈이 오면 우리가 고생하지만 봄이되면 이렇게 좋은 날씨가 주어지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여름이 되면 여름되고 성수기 계절이 오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것을 보면 참 신비롭습니다. 

또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것, 생명의 출산, 생명의 신비 그것도 참 놀라운 것 같습니다. 어디서 그런 아이가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아이가 태어나서 가정에 재롱둥이가 되고 모두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가장 신비스러운 것은 어떻게 나같은 사람이 구원받았을까. 예수믿고 구원받았을까. 우리가  설교후에 310장을 부르겠습니다만은 부를때마다 그런생각이 듭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같이 읽어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이 쓸데없는 나 같은 못난 사람을 왜 구속해 주실까 구속이 뭔가요? 구원해 주는지. 왜 나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는지 알수가 없는겁니다.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내가 뭐 잘났나. 내가 뭐 착한 일을 많이 했나, 내가 집안이 좋은가, 뭐 빽이 있는가? 돈이 많은가? 나같은 사람을 불러주시고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저같은 경우에 강원도 시골 동계올림픽 때문에 이름이 나오지 강원도 평창 누가 알기나 합니까. 그 시골에 살았는데 서울 유명한신길동에 와서 목회를 하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목사가 돼서 말입니다. 이해가 안됩니다. 그래서 이걸 이해하는 것은 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됩니다. 

권사님들은 실감 나실 겁니다. 자녀들을 낳고 기르고 존경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되는 겁니다. 옛날에 어려울 땐 아침마다 연탄 꾸러 다녔는데 말입니다. 새끼줄에 연탄끼고 다니던 것 기억나시나요? 아침에 쌀꺼리가 없어서 옆집에 바가지들고가서 쌀 한 대빡만 빌려달라 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그래도 오늘날은 먹고 입는것 걱정하지 않잖습니까. 이 아름다운 예배당에 와서 이 근사한 목사앞에서 아름다운 성가대의 찬양과 말씀을 듣는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안됩니다.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거져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거져주시는 선물이지 내 공로 때문에 얻은게 아닙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니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밖에 설명이 안됩니다. 

또 한가지 신비가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그럽니다. 자신은 무당의 아들입니다. 자신이 교회나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합니다. 학교다닐때도 교회다니는 친구있으면 일부러 미워하고 때려주고 했답니다. 교회는 거짓말 쟁이들만있다고 목사가 기도하라고 하고 신발훔쳐가는데가 교회라고 하면서 목사가 먹고살려고 십일조 내라고 그러는거라고 그 내용을 보면 그런거라고 이렇게 핍박을 했는데 자기가 예수믿고 집사가되고 권세가되고 장로가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 이게 놀라운 겁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믿을 수 있다는 것 이것 큰 축복인 줄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 책을 읽는데 그럽니다. 그 목사님이 기도원에 갔는데 기도할 제목이 있어서 밤에 기도를 하는데 옆에 어떤 분이 와서 기도를 하는데 주여 믿음주옵소서. 믿음주옵소서. 믿습니다. 믿습니다.밤새도록 악을 쓰는데 뭔가 안믿어졌는지 믿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겁니다. 아니 저사람은 뭐가 저렇게 안믿어지나 자신은 감사하더랍니다. 난 다믿어지는데, 여러분 성경에 안믿어지는게 있습니까? 다 믿어집니다.

오병이어 예수님이 떡 다섯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니까 5000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았더라. 믿어지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어떤사람은 그게 안믿어 진다는 것입니다. 옆에사람은 믿습니다하다가 머리를 바닥에 박으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저렇게까지.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러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믿어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넜다. 마른땅같이 그게 믿어지면 은혜입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런데 어떤분은 그게 안믿어 진다는 겁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갈릴리바다를 걸어가셨느냐. 안믿어진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겁니다. 여러분은 믿어지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참 놀라운 겁니다. 믿어지시는 분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믿어지면 참감사합니다. 인사하세요. 믿어진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안믿어지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때문입니다. 그럼 이게 어떻게 믿어집니까? 내가 예수님을 보았나, 아브라함이 내 육신적인 조상도 아니고 어떻게 믿어지겠습니까. 그게 뭡니까? 성령의 은혜입니다. 

찬송가 310장 3절입니다. 왜 내게 성령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믿을 수 없는데 믿어진다는 게 뭡니까? 성령께서 내 마음에 믿음을 주셨다는 겁니다.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겁니다. 믿음은 뭐냐? 성령의 선물입니다. 어떤분은 안믿어 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려운 겁니다. 아무리 데려다 놔도 못믿겠답니다. 도무지 못믿겠답니다. 목사말이 거짓말이지 한마디도 믿을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믿어지니까 여러오셔서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봉사도하고 그러는 겁니다. 이게 참 감사한 겁니다. 믿어진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중에 축복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일이 내가 예수님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목사의 설교가 믿어진다는 것, 이게 어떻게 된 것이야면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셨다는 겁니다. 

찬송가에 답이 좀 있습니다. 찬송가90장 1절.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주 예수를 내가 알기전 날 먼저 사랑했다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가 예수 믿고서야 교회나와서야 성경을 얻고서야 예수님이 누군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예수안에서 나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내가 그분을 알기전에 그분이 나를 알았습니다. 나를 이미 그때부터 사랑하셨습니다. 이게뭐냐? 예정입니다. 

하나님이 만세 전에 나를 아시고 예지하시고 아시고 그리고 나를 선택하시고 때가 되어 나를 불러주신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뭐라 부릅니까? 나의 친구라고 부릅니다. 90장 후렴입니다. 저 포도비유 같으니 참좋은 나의 친구 예수님을 여러분의 친구라고 부른다는 것이 기막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친구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너희가 내 뜻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고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만세전에 나를 선택하셨고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도바울은 오늘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공부한지 오래되서 많이 잊어버리셨을겁니다. 로마서9장 1절부터 5절까지 말씀을 가지고 2달전에 함께 생각했던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바울은 끊이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나는 예수믿고 구원받았는데 이방인에게가서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덜컥덜컥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변화됩니다. 새로워집니다. 그런데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안믿습니다. 거부하는 겁니다. 마음이 완악하게 굳었고 돌같이 굳어버렸습니다. 이게 너무나 안타까운 겁니다. 왜 우리동족은 예수를 안믿을까. 이게 너무나 안타깝죠. 나만 예수믿고 집사되고 권사가 되었다. 

그런데 고향에 가니까 아직 우리 어머니는 고목나무에 물떠놓고 귀신섬기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왜 우리 어머니가 복음을 못믿으실까. 왜 하나님을 못믿으실까 너무나 안타까운겁니다. 이게 사도바울의 심정입니다. 자기 동족을 보니까 마음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왜 동족 유대인들 그들은 어떤 백성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닌가. 택함받은 선민이 아닌가. 더구나 그들에게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겐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과 율법과 예배와 약속들 그리고 믿음의 조상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다 유대인들의 조상입니다. 얼마나 믿음좋은 조상들이 많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지금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걸보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내 백성 골육 친척을 구원할수만 있다면 내 이름이 그리스도에게 저주를 받아 끊어져도 좋습니다. 모세는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하늘 생명책에 명부에서 내 이름이 지워져도 나는 좋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안타까운 겁니다. 

그럼 우리 이스라엘 백성은 완전히 멸망당한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은 끝인가. 왜? 선민 이스라엘을 통해서 온 이방민족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이들은 쓸데가 없는 겁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거절하면 이들에겐 심판과 지옥의 멸망이 있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영감을 주셨습니다. 바울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오직 약속의씨만이 자녀가 될 수 있어. 그래서 바울이 깊이 깨달았습니다. 

6절 7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바울은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럼 끝난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은 여기서 끝난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한 것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깨달은 진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에도 2종류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자녀가 있고 영적인 자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이 쉽게 예를 들은것이 이스마엘의 예를 듭니다. 이스마엘은 육신의 자녀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갈대아 우르를 떠났는데 약속하신 자녀를 주시지 않으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애굽의 여종인 하갈과 아브라함이 동침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누구냐? 사라에게서 날 이삭, 어리지만 그 이삭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약속의 씨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났다하여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구나. 육신적으로 이스라엘백성이라고 해서 다 구원받은 백성이 아니구나. 이스라엘 백성중에서도 구원받을 백성이 있고 구원받지 못할 백성이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사의 자녀라고 다 구원받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직 그가 성령으로 거듭난자라야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은 백성이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8절 9절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육신의 자녀는 이스마엘을 가르킵니다.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자녀라야 합니다. 

그러면 약속의 자녀가 어떻게 생겼느냐.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천사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의 집에 방문했을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년 이맘때쯤 너에게 자녀가 있을 것이다. 그 이름을 이삭이라하라. 그게 뭐에요. 하나님의 말씀 약속으로태어난 자녀가 바로 이삭이에요. 그래서 이삭만이 진정한 너의 후손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선택받았지만 이스마엘은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정통유대인의 족보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스마엘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는 에돔인의 조상이 됩니다. 

이 예를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은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본부인이 아니고 여종에게서 나았기 때문에 버림받았고 이삭은 본부인 사라에게서 나았기 때문에 약속의 자녀가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바울은 그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를 듭니다. 누구의 예를 듭니까. 이삭의 두아들의 예를 듭니다. 이삭에게 두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에서요 하나는 야곱인데 둘이 쌍둥이인데 에서가 조금 빨리나오고 야곱이 조금 뒤에 나왔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뒤꿈치를 잡은자. 야곱이라고 지었습니다. 자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주십니다. 

11절 12절 13절입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에서와 야곱은 이삭의 정통자녀이니까 둘다 선택받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뭐에요? 야곱은 내가 그를 사랑하였으나 에서는 내가 그를 미워하였다. 저놈 미워주겠어 그런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이 에서와 야곱중에 에서는 버리고 야곱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남인 동생인 야곱이 그 가정의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거기서 밀려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서와 야곱은 무슨 차이냐는 겁니다.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버리고 조건이 뭐냐라는 겁니다. 놀라운것은 그들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전에 택하심을 따라되는 하나님의 행위로 말미암지않고 부르시는 이로 말이암아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은 선택하시고 에서는 버리셨다. 이게 무엇입니까? 예정론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칼빈의 이중예정이라고 부릅니다. 선택과 유기 혹은 선택과 포기라고 부릅니다. 한사람은 선택해서 구원하시고 한사람은 선택해서 버리셨다. 그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아니 왜 하나님이 불의 하신가.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 에서와 야곱을 봐. 오히려 에서가 더 인간적이더라. 야곱은 욕심도 얼마나 많은데. 팥죽 한그릇에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축복 빼앗으려고. 물론 영적인 축복을 사모하는 마음은 있지만은 물론 반대로 에서는 영적인 축복에 욕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야곱은 선택하시고 에서는 버리셨느냐를 뭐로 설명하느냐는 말입니다. 이게 설명이 잘 안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하셨으면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자가 없습니다. 

21절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한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토기장이 마음대로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자주 질문합니다. 엿장수가 엿을 파는데 고무신이나 냄비쪼가리나 스뎅이나를 가져오면 엿을 줍니다. 그런데 그 양반이 손에 뭘 잡고 있습니까? 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엿장수가 1분에 가위를 몇 번이나 치는줄 아시나요? 엿장수 맘대로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버리든 그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래저래 간섭할 분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학적으로 그것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그럽니다. 어떤사람은 하나님께서 목사로 세워주시고 장로로세워주시고 권사로 세워주시고 성가대원으로 세워주시고 그럼 허강희사모님이 불평하실수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왜 여자로 만드셔서 사모가 되게 하셨어요 나는 목사가 되고 싶었는데 불평할 수 없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건 내가 결정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독재자와 같으냐? 자신의 마음대로 이사람은 멸망으로 지옥으로 이사람은 구원으로 이래가지고 누구는 예수 안믿을려고 안믿을려고 해도 결국 마지막에 죽기전에 5분전에 예수믿게 만들고 말입니다. 어떤사람은 믿으려고 해도 교회만오면 시험거리가 생겨서 넘어지고 자빠지고 마음이 점점 강팍해져서 결국 교회를 떠나고 결국 구원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예정되는게 아니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예정론은 결정론이나 운명론이 아닙니다. 운명이라는게 뭡니까? 저사람은 망할 운명이야 저사람은 혼자살 팔자라고. 이렇게 결정되 있는게 아닙니다. 운명론이 결정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다 아십니다. 왜? 전지 전증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지의 능력으로 다 아십니다. 제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야곱과 에서가 어떤삶을 살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이미 아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정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예지의 능력에서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믿음안에서 얼마든지 바꿔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칼빈의 이중예정 어떤 사람은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멸망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여기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고 기도했던분이 누구냐면 유명한 신학자 칼바르트입니다. 칼바르트의 은총의 선택론에 보면 거기에 결론을 얻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영원히 복받기로 예정해 놓으셨고 어떤 사람은 멸망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 멸망받기로 예정된 사람의 저주와 죄와 모든 불행을 누가 감당했느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유기와 포기, 불행과 저주는 예수님이 다 짊어 지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이미 해결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제 유기가 없습니다. 멸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들을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 히브리서4장 10절에 보면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오늘날 주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가 마음을 강퍅게 하지 말아라. 강퍅이라는게 뭡니까?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애굽의 바로에게는 10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왜? 모세가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때마다 바로가 회개했습니다. 미안하다고. 내가 이스라엘 백성 보낼게. 그러나 금방 마음이 또 변합니다. 또 안보내주고 두 번째 재앙이 있고 또 마음이 변하고. 10번을 결국 어겼습니다. 마음이 강퍅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게 아닙니다. 그 스스로가 마음을 자꾸 완악하게 만들어 간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열고 겸손함으로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면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겁니다. 무덤을 파고 있는 겁니다.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시길 바랍니다. 주여 무슨말씀을 하시든 제가 듣겠나이다. 종이 듣겠나이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이런심정으로 들으시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0절에 경고하고 있습니다.오늘 너희가 주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가 마음을 강퍅게 완고하게 하지 말라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광야40년을 지나면서 그들이 저 가나안땅에 가서 12명의 정탐꾼이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2명의 믿음의 보고는 받지않고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받고 그것에 동해서 결국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하다가 결국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강퍅하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예정되었고 선택받은 존재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너무 감사한 겁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아닙니다. 

14절 15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십니다. 불공평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자에게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오늘 16절 말씀에도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실 때 우리가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푸시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푸시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린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다 잘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구원을 이루느니라. 축복을 이루느니라. 그 말씀입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이 강퍅해지기 때문에 자꾸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복음에서 멀어지고 교회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받는게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나 율법으로 구원받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가 착하고 덜착하고 별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뭐뭍은 개가 뭐뭍은 개? 그렇습니다. 똥 뭍은개가 재 뭍은 개 나무란다라고 합니다. 똥뭍은거나 재뭍은거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거기 무슨 의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로 구원받는게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한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불평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저사람처럼 만들지 않았냐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불평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목이 잘 가라앉고 쉬어서 늘이렇게 기도하고 있지만 하나님앞에 제가 하나님 반승상목사는 목소리가 좋아서 그렇게 찬양을 해도 목도 안 쉬던데 마석기도원가서 집회안도하는데 찬양인도하는데 하나님 저는 왜 그런 목소리를 안주셨나요 불평입니다. 제가 불평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뭐라하실까요? 불평하지 말고 너에게 주어진 것 가지고 열심히해라 하실겁니다. 제가 불평하면 불평분자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 버림 받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목소리가 약하면 살살 마이크를 키워서 이야기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찬양의 은사를 주신 목사님은 그 목사님대로 또 다른 설교의 은사가 있는 분읜 그 은사대로 하나님앞에 충성하는 것이지 왜 내게 저런 것 안줬냐고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린 불평하면 안됩니다. 

쉬운예로 어느 고아원에 10명의 고아들이 있습니다. 고아원의 처지가 늘 그렇습니다. 한 어떤 아이가 없는 재벌이 고아원에 와가지고 고아중에 한 아이를 입양해 갔습니다. 그럼 한 아이는 입양되는 순간부터 재벌집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감사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뽑히지 않는 9명의 아이는 불평할 수 있습니까? 불평할 수 없습니다. 왜 쟤만 데려가고 우리는 안데려가고 이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대로 데려 간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감사할 조건이 많습니다. 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선택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것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인도에 태어났던가 불교가 많은 태국에 태어났으면 거긴 99.9%가 불교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부모도 불교인 동네에도 불교 사원밖에 없습니다. 우린 감사한 것입니다.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불공평하시다. 그러면 태국의 99.9%가 불교인인데 거기 태어난 사람은 구원 못받겠네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단지 우리는 내가 구원 받음에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태국에도 구원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이가서 복음을 전하니까. 그러나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내가 선택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감사한 겁니다.  내가 예수믿고 와 있는것이 감사한 겁니다. 제가 목사가 된것도 감사한겁니다. 학교다닐때 저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우리반에도. 그러나 제가 하나님앞에 목사가 된것 너무나 감사합니다. 

또 목회의 현장이 많이 있겠지만 우리교회가 더 많이 부흥하면 더 감사하겠지만 물론 지금 이렇게 교인들이 모인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한국교회의 90%이하는 100명 이하입니다. 한국 교회의 90% 이상의 교회는 100명이 안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10%만이 300명 이상 모이는 교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10%중에 3%내지 4%안에 드는 교회입니다. 그것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것도 불평합니다. 교회가 몇천명이 모여야 되는데 몇만명이 모여야 되는데 빨리 부흥이 안되서 큰일났네. 우리교회가 한국교회에 3%안에 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물론 저도 때론 그럽니다. 여러분이 하도 그러니까 저도 때로는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나도 5천명정도되는 교회가서 목회좀 해봤으면 좋겠다. 그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옛날이야기 해서 미안하지만 시골 양평에서 목회할 때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봅니다. 자고나면 교인이 늡니다. 주일되면 10명 20명씩 몰려옵니다. 희한합니다. 물론 그 교회가 그 지역에서 오래된 교회여서 일수도 있습니다. 통합측 교회 감리교도 많은데 우리 기장교회로 다 몰려오는 겁니다. 오면 떠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1년이면 100명씩 늘어가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쏟아 부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1년에 100명씩 늡니다. 예산이 1억씩 늘어갑니다. 지금 생각해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교회와도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1년에 100명씩만 늘어라. 그런데 그게 안됩니다. 건축을 안해서 그런가해서 건축도 했는데 그래도 안됩니다. 내가 노력을 안해서 그런가. 부목사님들이 양평이 더 훌륭해서 그런가 아니 우리 목사님들이 연륜이 더 많고 훌륭합니다. 그럼 장로님들이 양평보다 못한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장로님들도 다 훌륭합니다. 그럼 왜 그런가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사람은 신길동이 더 많습니다. 양평읍보다도. 왜 그럴까? 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되는 것이지 인간이 노력만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교회는 철야기도하다가 부흥되었대. 철야기도 안하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철야기도 한다고 다 부흥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에다 은혜를 부어주셔야 합니다. 놀랍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어야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노력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러면 다 구원받지요. 노력해서. 돈많으면 돈주고 구원을 사지요. 부흥을 사지요. 하지만 안됩니다. 그건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결론적으로 나같은것이 무엇인데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자녀삼으시고 구원하셨을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나같은 사람을 어찌 사랑하셨습니까. 이 형평없는 존재를. 내가 좋아서 그랬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를 구원하는것이 내 마음에 들어서 그랬다 하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 보면 그 선하신 기쁘신 뜻대로 그랬습니다. 그 기쁘신뜻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여기와 계신 것, 또 성경 말씀이 믿어지는 것,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교회나올 생각을 하게 된 것, 모두가 성령의 역사고, 성령의 인도하심이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믿음주신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다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감사하셔야 합니다. 선택받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가 여기에 올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전도해 보셨을 겁니다. 초청주일 하면서 말입니다. 전도하기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가서 돈벌어 오라면 돈벌어 오겠습니다. 택시해서 하루 5만원 못벌겠어. 그런데 전도하는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100명을 만나도 한명이 믿을까 말까합니다. 한번 와주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것도 그 다음주에 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전도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전도가 어렵고 데려다놔도 믿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예수믿습니까 안믿습니까? 예수 믿습니다. 그 어려운 전도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구원받은 것,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이것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도하기 힘들면 힘들수록 나같은 사람이 전도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 이건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이 감사함을 바울이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또 성령께서 나를 여기 인도하셨고 나를 만세전에 택하셔서 구원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이 복주신것,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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