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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집을 지으십시오! (사 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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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집을 지으십시오! (사 54:1-3) 
 

1. 믿음이란?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저와 여러분에게 아주 익숙하면서도 항상 모자란다고 느끼는 한 “단어”로부터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영국 런던을 공습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공습이 있던 어느 날 밤, 한 아버지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폭탄 맞은 건물에서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언제 또 다시 자신들이 사는 건물에 폭탄이 떨어질 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가능한 한 빨리 은신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아버지는 마당에 독일군이 투하한 폭탄으로 생긴 커다란 구덩이를 보고서는 얼른 그 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딸에게도 거기로 뛰어내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에 일어난 폭발로 인하여 잔뜩 겁을 먹은 데다, 폭탄이 떨어져 생긴 큰 구덩이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더 당황한 소녀는 그리로 뛰어내리지는 못하고 “아빠, 아빠가 안 보여!” 하면서 울기만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는 비행기 소리가 다시 들렸고, 바로 뒤이어 가까운 어딘가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더니 어딘가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불빛과 아군이 적기를 향해 쏘아대는 백색 예광탄 불빛으로 어둔 밤이 환해졌습니다. 

그러자 어린 딸의 공포심은 더 커지면서 더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구덩이 속에 있던 아빠에게는 딸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밖이 불빛과 예광탄으로 인하여 더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빠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빠는 네가 보여.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뛰어내려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제야 소녀는 폭탄이 만든 엄청나게 큰 구덩이 속으로 펄쩍 뛰어내렸습니다. 아빠의 모습이 보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빠가 그 구덩이 속에 있다는 것, 아빠의 말 대로 거기로 뛰어내리는 것이 자신에게 최선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포병 출신이라 잘 아는 데요, 포탄은 떨어진 그 자리에 다시 떨어질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아빠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믿음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셨습니까? 

독일군의 폭탄이 떨어지고, 하늘에서는 비행기 소리와 함께 아군이 쏘는 총소리가 들려오고, 폭탄을 맞은 주변 건물들은 불에 타는 등의 극한의 상황에 있을지라도, 소녀가 믿고 행동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두운 밤, 깊은 구덩이로 먼저 들어간 아빠가 보이지 않고, 아빠가 오라고 하는 그 구덩이가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아빠니까 믿고 순종하여 뛰어내린 그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지금 여러분의 처지, 형편이 어떠하냐’보다 ‘여러분과 함께 계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이것을 전제로 하여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믿음은 집을 짓는 것!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을 살펴볼까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했음에도, 그것이 주는 경고의 메시지를 무시한 남 유다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바로 이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예언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예언의 주된 내용은 유다의 마지막, 즉 죄를 범하는 유다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도자들과 장래가 촉망되는 유능한 젊은이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가거나 죽게 될 것이고, 그 외 많은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죽을 것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바벨론 지역이나 아프리카 등지로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아직은 현실이 되지 않았지만, 머잖아 현실이 될 것이기에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비참한 종말이 유다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사야의 예언은 그대로 되어, 주전 586년,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임을 자랑하며 영화를 구가하던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여 성전과 성읍을 비롯하여 남은 것 거의 없이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고, 백성들은 죽거나 노예로 끌려가 이방의 종노릇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유다의 종말은 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유다의 끝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망하는 이사야에게 그 이후에 일어날 일, 즉 회복에 관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보지 않아도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보다, 그 뒤에 일어날 새로운 일을 더 굳게 믿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사야가 지금 자신의 눈에 뻔히 보이는 것보다 더 믿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1) 노래하라!

첫째로 오늘 본문은 “너는 노래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노래할지어다’라는 말은 ‘큰 소리로 외치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 말씀을 받고 있는 이사야에게 노래할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와 민족의 멸망을 예고하셨고, 또 그것을 알면서도 돌이키지 않고 멸망으로 치닫는 백성들을 바라보는 선지자에게 ‘노래하라’고 해서 노래할 마음이 생기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지자의 이런 마음을 아셨습니다. 1절,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 유다는 황폐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앞으로, 그리고 심판의 날에는 더 심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유다의 모습을 하나님은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여인, 그리고 남편 없이 “홀로 된 여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낳지 못한 여인, 아니 남편이 없어 자식을 낳을 수 없어 홀로 살아가는 여인의 그 황량함, 외로움, 삶의 즐거움도 꿈도 소망도 가질 수 없는 형편! 여러분, 이런 형편의 여인들에게 남편 있는 여인이 얼마나 부럽겠으며, 자식 있는 여인이 얼마나 부럽겠으며, 임신한 여인이 부럽고, 해산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여인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표현을 통하여 지금 유다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을 당신께서도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노래할지어다. …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하나님께서 노래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황량하고 쓸쓸하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께서 장차 남편 있는 여인의 자식보다 더 많은 자식을 줄 것이기 때문에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다의 멸망 이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또 메시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크고 넓고 놀라울 지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귀환하였고, 무엇보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그대로 실현되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어느 교회에서 우리 교회처럼 송구영신예배 때 다음해를 위한 <약속의 말씀>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 집사님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약속의 말씀으로 뽑고는 너무나 황당해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분이 일찍 남편을 잃은 과부이고 또 자녀가 없는 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는 말씀을 받았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지요. 남편도 없고, 설사 재혼을 해도 이미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났고 …. 결국 그 집사님은 이 말씀 때문에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님을 만나 이 본문이 말하는 자식은 육신으로 낳는 자녀가 아니라 믿음으로 낳는 자녀요, 복음으로 낳는 자녀라는 말씀과, 따라서 ‘전도하여 복음으로 자녀를 낳으라’,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여 믿음의 자녀를 키우라’고 권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그 여 집사님은 어떤 여인들보다 많은 자녀를 둔 엄마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말하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비록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노래를 부릅니까? 행복한 사람이 노래합니까, 불행한 사람이 노래합니까? 건강한 사람이 노래합니까, 병든 사람이 노래합니까? 돈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노래합니까, 아니면 가난하고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노래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유했을 때, 높이 오를 때, 잘 될 때, 노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마치 잉태치 못하고 생산치 못하며 구로치 못하는 사람과 같은 처지에 있을지라도, 남편도 자식도 없이 홀로 된 여인과 같은 처지일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찬송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종교개혁자 Martin Luther는 “기독교인은 어떤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마음속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고 … 찬송과 기쁨의 표현을 할 수 있는 …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으로 기뻐할 뿐 아니라 그 기쁨을 찬송으로 표현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John Wesley 목사의 1747년 9월 24일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더니 자살하려던 한 여인이 그 찬송 소리를 듣고 은혜를 받아서 다시 돌이켜 소망을 얻었다.” 믿음은 어떤 환경에서도 찬송을 부르는 것이고, 그리고 그 찬송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 청년이 삼십년 동안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이니 그 가정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서도 가족들은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을 고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자 그만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과 그 가족이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하나님은 범사에 찬양할 때 큰 능력으로 역사하신다”고 설교했습니다. 청년은 그 말씀에 감동을 받아 가족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기도는 했지만 찬송을 부르지는 않았는데, 이제부터 하나님을 향해 찬송을 불러봅시다”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동안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비난하고 따돌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아버지로 인하여 감사하며 찬송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버지를 통해서 저희 가족을 축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온 가족들은 하나님을 찬송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하루, 이틀, 아버지는 자신에 대한 가족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과, 원망과 불평과 따돌림으로 일관하던 가족들이 도리어 자신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주일, 가족들이 교회에 가자 몰래 그 뒤를 따라가 교회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아버지에게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술을 끊으려고 노력하더니 드디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건강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비록 지금 자신의 형편이 최악이라고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누가 나를 위로해주고, 누가 나에게 희망을 주고, 어떤 사람이 나를 도와 줄 것인가’ 고민하지 마시고, 여러분을 반드시 도와주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찬송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장막 터를 넓히라!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은 “네 장막 터를 넓히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2절,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여러분, 이 말씀은 당시 유다의 상황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시 경제사정이 너무나 엉망이어서 불경기도 그런 불경기가 없는 상황인데다가, 인구까지 줄어들어 빈집들이 늘어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나라가 망하여 모든 건물과 집들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니 있는 집도 줄이고 모든 것을 졸라매야 할 상황인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오히려 ‘집을 더 넓고 크게 지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십시오. 마치 황폐한 들판과도 같은 유다의 상황, 인구가 점점 줄어가는 지역에 아파트를 지어봐야 빈집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인데, 거기에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큰 천막을 치고, 또 큰 집을 지어라는 말씀,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비웃으며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바로 여기에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믿음의 정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비록 지금은 아무 것도 없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우실 것을 믿고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영국 여류 작가 George Eliot은 “가만히 앉아서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일어나서 행동하라. 그리하면 주님이 너희와 함께하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행하신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적들 가운데, 엘리사의 제자의 부인에게 일어난 기적이 하나 있습니다. 제자의 부인 중 한 사람이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아시다 시피 저의 남편은 이미 죽었고 … 남은 것은 빚과 어린 두 아이 뿐입니다. 그런데 빚 준 사람이 와서 빚을 갚지 않으면 제 아이들을 데려가서 자신의 종으로 삼겠다고 합니다(왕하4:1).” 오늘로 치면 신학생이던 남편을 먼저 보낸 후 남겨진 빚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던 이 부인은 이제 그 빚 때문에 두 아이를 종으로 보내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스승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때 엘리사는 뭐라고 했습니까?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왕하4:2b).” 여인은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왕하4:2c).”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라(왕하4:3).”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빈 그릇을 빌릴 수 있는 대로 빌렸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하여 그가 빌려온 그릇이란 그릇은 있는 대로 전부 다 기름으로 가득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장막, 혹 집을 넓고 크게 지어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빌린 그릇 수대로, 믿음으로 지은 집의 크기만큼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 집의 크기만큼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대로, 그 믿음의 크기만큼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어떤 상황에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되, 믿음의 집을 짓는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꿈이 실재가 되고,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 주님의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복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준비하는 사람에게 큰 은총과 큰 복을 주십니다. “안 돼, 못해” 하기보다 “하나님이 하실 거야! 하나님이 주실 거야!”하면서 믿음의 그릇을 키우십시오! 아무리 가진 것이 없고, 지금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그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3) 열방을 얻을 것이다!

세 번째로 오늘 본문은 “열방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3절,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여러분, 이 말씀이 이사야와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황당하게 들렸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이스라엘은 열국의 노리갯감입니다. 강대국마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스라엘을 짓밟았습니다. 중동과 아시아 제국들이 아프리카로 가면서 짓밟고, 아프리카 대국들이 중동으로 아시아로 가면서 짓밟고, 로마가 중동지역이나 이집트로 직접 가는 대신 이스라엘을 거쳐서 아프리카나 중동으로 가면서 짓밟고 …. 열방을 얻기는커녕 늘 열방에 짓밟히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리라!” 나라가 넓어진다는 뜻이며, 열방을 거느리게 되리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➊ 우선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된 유대 땅이 재건되고 열국에 흩어져 있던 백성들이 돌아옴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➋ 그리고 보다 더 넓은 의미로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운동, 교회 운동으로 말미암아 이방 세계가 개종되어 주님의 백성이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인데, 이 예언 역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주님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 끝으로 확산되어 지난 2000년 동안 구원받은 무리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➌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믿고 기쁘게 찬양하고, 장막 터를 넓혀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고,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좌우 사방 동서남북에서 수많은 무리들이 교회로 들어오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또한 그대로 이루어져 많은 교회들이 전도의 놀라운 알곡들을 거두고 있으며, 선교의 열매들을 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믿어야 할 세 번째의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은 여러분이 이웃과 주변과 세상과 열방에 뒤지고 있거나, 혹은 세상의 힘과 권세에 눌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열방을 불러 모으는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미국의 종교학자 Harvey Cox 박사는 “교회의 사명은 복음의 선포와 성도들 간의 교제, 그리고 세상을 향한 봉사”라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믿는 성도들 간에는 나눔의 교제가 있으며, 세상을 향해 몸과 시간과 물질로 봉사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세상은 교회와 성도들을 주목할 것이고, 또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겨 들어올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열방을 모으는 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로 인하여 열방을 모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서 열방을 주께로 모으는 자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믿음을 가진 성도의 모습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집의 크기만큼 채워질 것이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나라와 유다 민족이 곧 멸망하리라는 최후통첩과도 같은 메시지를 듣고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도리어 더 악해지면서 하나님과 더 멀어져갔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인하여 그 땅은 폐허가 될 것이고 백성들은 죽거나 사로잡혀 갈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노래하라, 집을 지어라, 열방을 얻어라!” 성도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말씀과 그의 능력을 믿고 노래하는 것이고, 아무도 없는 빈터에 하나님의 백성이 가득 채워질 줄 믿고 집을 짓는 것이며, 비록 지금은 열방의 노리갯감이지만 장차 열방을 불러 모을 자가 될 줄로 믿고 온 세상을 향하여 두 손 들어 축복하는 것입니다. 

어느 성경 교사가 성경을 강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하나님 외에는 기댈 것이 하나도 없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아무런 힘도 없고, 해답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 계시는 그런 곳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그냥 침몰할 수밖에 없는 처지 말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너무나 절망스러운 나머지 자기 교회의 담임 목사를 찾아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목사님, 지금 저의 처지는 엉망입니다.” “얼마나 엉망인데요?” 그러자 그 사람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면서 신음하듯이 말했습니다. “예, 얼마나 엉망이냐 하면, 가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그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얼굴이 환해지면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확실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기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고 다만 하나님만 가진 사람은 분명히 가장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고, 큰 승리를 얻을 사람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비록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에게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모든 것을 잃고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자신이나 가족들의 몸이 아픕니까? 돈 문제나 사람 문제로 괴로우십니까? 풀리지 않는 골치 아픈 문제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 모든 경우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사람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강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입니다. 그 어떤 장애물도 극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미래로, 미지의 세계로 담대하게 나아가게 만듭니다. 

여러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 여러분의 가정과 삶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주님을 향하여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이 채워주실 줄 믿고 믿음의 큰 집을 짓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믿음으로 노래하고 집을 짓는 사람의 그 집을 가득 채워주십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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