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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은 거래가 아니다 (엡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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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거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엡2:1-8

   
20세기의 욥이라 불리우는 호레이시오 게이츠 스파훠드- 그는 변호사요 시카고 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였으며 신학교 이사이자 운영위원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디 교회에서 회계집사로 섬기었으며 또한 부동산 사업가이기도 하였습니다.
   
때는 1871년으로 시카고에는 대화재가 있었습니다. 그로인하여 무디 교회도 불탔으며 미시간 호 근처의 수많은 별장들도 불에 타 없어졌던 큰 화재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후 그의 가족은 교회의 재건을 우선으로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충격으로 인하여 병을 얻어 의사가 환경을 바꾸어보라는 권유를 합니다. 그래서 교수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자기는 재건의 뒷마무리를 위하여 부인과 세 딸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고 파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합니다. 
   
1873년 11월15일 많은 승객을 태운 불란서의 호화 유람선은 뉴욕 항을 출발합니다. 그런데 22일 새벽2시 그 배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영국의 철갑선 ‘록키안’호와 정면충돌을 하게 됩니다. 승객 226명을 태운 배는 바다 속으로 침몰하였으며 부인만이 록키안 호에 의해서 구조가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사건의 일들은 시간상 여기서 멈추기로 합니다. 
  
사건을 접한 교수는 눈앞이 캄캄한 현실에 절망을 하게 됩니다. 그는 부인을 만나러 가던 중 딸들이 수장된 바다 위라는 선장의 말을 듣고 선실에서 밤을 새워 오열을 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새벽 3시경 되어 아직 까지 한번 도 체험해보지 않았던 평안이 그의 마음을 위로하며 한 소절의 기도가 흘러나옵니다. 

“It is well my soul - 내 영혼이 편하다”

그리고 스패훠드가 부인을 만났을 때 역시 걱정하던 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평안한 모습의 부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을 위로하러 왔던 무디 목사는 이들의 모습과 이들이 들려준 찬송시에 감동을 받았으며 그도 작곡을 할 수 이었으나 더 훌륭한 작곡가를 통하여 찬송시를 찬송가로 태어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입니다.
   
어찌 보면 미친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리고 상식에 벗어난 이야기라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비난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실화이며 믿음의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스패훠드 교수의 믿음은 '거래하지 않는 믿음' 즉 믿음이 무엇인가라는 정의였던 것입니다. 
믿음은 거래가 아닙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며 이를순종함이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브래태니커 백과사전은 - 믿음을 신의 은총을 강조하는 종교에서 믿음은 신이 직접 주는 내적인 확신이나 사랑의 태도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믿음은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인 역사적인 계시에 대해 신의 감동을 받아 나타내는 인간의 반응이며 따라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위키 백과사전은 - 믿음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믿음이란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인들마저도 믿음을 어떠한 소원성취의 주문과 같이 혼돈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구절은 우리의 거래에 맞추어 적용하는 소원의 현장에서 예수라는 이름의 주문을 부르고 그것에 믿음이란 것을 적용하는 시대의  잘못된 주소 믿음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때로는 마찬가지의 잘못을 저지름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란 땅에 본분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복음의 씨를 뿌리다 보니 세상의 꿈을 증거 하고자 잘못된 믿음을 외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의 기독교가 걷고 있는 잘못된 신앙의 길이며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의 믿음의 잘못된 주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정확히 정립하여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엡2:4-8절을 읽겠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는 대가라는 어떤 목적이 전제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대명 카페인용)***

"내가 이정도로 기도했으면, 하나님도 이 정도는 복 주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이정도로 참았으면, 이제는 도와주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이정도로 헌금(헌신)했으면, 축복의 징조라도 보여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은, 참은 것이 아니라, 벼른 것이며 복음적인 관점에서는 믿음이 아니라, 흥정이며 기도가 아니라, 거래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급함! 하나님도 아십니다. 
우리의 절박함! 하나님도 아십니다. 
우리의 애절함을, 우리의 필요함을, 하나님도 아십니다.  
우리의 기도소리도, 신음소리도, 믿음의 수고도,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계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번제이야기 (창22),  스패훠드 교수의 초월된 신앙이야기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진정한 믿음이며, 우리의 믿음이 이러한 수준까지 이르기를 주님은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고 앙탈하면서 가면 된다고 하면, '왜 가야 하느냐'고 저항을 합니다. 그리고 거래 내용이 수용되어야만 내가 믿는 기독교가 진정한 종교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에는 타협이나 협상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참 사랑에는 채찍이 있으며, 영적인 믿음에는 무조건이란 대가가 동반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이를 히브리기자는 11:1-3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보이는 것과 같이 경험으로 인한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잘못된 신앙의 극치, 그것은 벼르거나, 거래하거나, 흥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꿈쩍도 안하실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며 몇 날, 몇 달을 두고도, 기도의 응답이나 징조가 없어도 여전히 기도시간만 되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이란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응답이나 축복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의지로 인하여 변할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목적은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으며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땅에서 잘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잘되는 것이며, 천국 가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굳건한 반석위에 믿음의 씨를 뿌리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우리의 흥정이나 거래의 뿌리는, 불신앙이며 교만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거래하지 않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시는 기쁨이 여러분의 신앙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것이 거래가 아닌 참 응답을 받는 믿음인 것입니다. 

내가 믿는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계시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셨으며 영원한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계시의 역사이고, 복음이며 믿음의 근거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잘났어도 피조물은 흙에 불과합니다.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존재들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르치려 하고, 협박(?)을 하는 기도를 간절히 합니다, 거래하는 것을 믿음이라는 허울로 바꾸어 눈물을 뿌려가면서 고백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의 시작은 계시의 신앙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기도가 나의 욕심을 채우려는 수단으로 삼으려 하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아담 이후의 세계에 조성된 사단의 간계이며 악마가 조성한 죄라는 간사함이 우리를 속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의 믿음에 형통함을 주시기도 하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간절한 우리의 기도에 신속한 응답으로 영광을 나타내시기도 하신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은, 응답이나 해결이나 형통이 본래 목적이 아니라 내적변화와, 주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함으로 젊은 사자와 같은 야성을 가지게 하시고.. 세상을 이기며, 마귀를 통쾌하게 섬멸케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이신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그 이름의 거룩함 때문에/ 아들로 하여금 영광 받게 하시고자 또한 그 이름으로 보증이 하였기에 이 땅에서의 역사적 능력을 이루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날 때, 믿음을 갖는 것/ 희망이 보일 때, 참고 인내하는 것 /기분이 좋을 때, 찬송하며 감사 하는 것 / 건강이 점점 호전될 때, 열심을 내어 부르짖는 것 /손 바닥만한 징조가 보일 때, 기도실로 나아가는 것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절대적 복종이라는 것을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꿈쩍도 안하실 때/ 상황이 더욱 안 좋아 질 때 /기도하는 문제가 요동치 않을 때 / 앞이 안 보일 때 / 감정이 최악일 때 / 건강이 점점 안 좋아 질 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믿음의 참된 것입니다. 신앙의 절대적인 진리이며 생명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거래와 흥정이 아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무슨 이득이 될때' 그리고 '상대방의 장점이 보일 때'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것은 사랑이란 미명아래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래하는 사랑은 언제 가는 변하고, 한계를 만나게 되고, 증오와 욕심이 중심을 장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세상 적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게 손해가 되고' 오히려 '십자가가 되고' '상대방의 단점까지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참사랑이며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보다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이며 우리는 그 안에 거하여 이 땅에서 증거하고 이후의 때에 사랑의 영원함에 거하는 궁극적 소망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공로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참았다면, 그것도 그분의 은혜였을 겁니다. 우리가 많은 고난을 견뎠다면, 그것도 역시 그분의 은혜였을 겁니다. 
우리가 하루에 서너 시간씩 기도했다면, 그것 또한, 주님이 기도의 영을 부어 주셨기 때문일 겁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종의 직분이 더 해가면 갈수록 나의 믿음이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시간이, 주님과의 사귐의 시간이 아니라, 기도의 공로와 응답을 '흥정하는 시간이 될까'를 걱정합니다. 
   
다윗의 돌팔매는 거래의 성립이 아니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함락은 흥정의 대가가 아니라는 것이며 나아만의 문둥병은 그의 능력을 보아서가 아니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계시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순종이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는 믿음이란 선물을 손에 붙들고, 스패훠드 교수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소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러한 믿음의 거목이 되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갈망해 봅니다." 
우리는 주의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들이기에 감사 이외에 드릴 것 없음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나안 입성을 이룬 이스라엘민족의 순종에 이은 복종에는 요단강이 갈라졌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역사의 진행은! 그 역사의 증거는! 누구와 누구에게서 이루셨는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 믿고 의심치 않으면 받은 줄 믿으라 하시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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