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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부모는 축복의 권세를 사용하라 (히 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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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축복의 권세를 사용하라 (히 11:20-22)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히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록펠러 어머니가 록펠러에게 10가지 유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유언이 기가 막히게 축복된 말씀이었습니다. 록펠러는 가난하여 9살부터 남의 집 점원으로 일을 했는데 어머니가 물려준 신앙을 물려받은 거예요. 어머니가 자녀에게 아무 것도 물려주지 못하고 이 신앙을 물려주었는데 록펠러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잘 섬겨라.   
3. 주일 예배를 본 교회에서 드려라.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아라.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7.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성하며 기도하라.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9. 남을 도울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10.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에 앉아라.   

록펠러가 어려서부터 어머니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것을 평생 지키며 살았더니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재산 많이 물려 주지 못할까봐 조바심 하지 마세요. 록펠러 어머니처럼 자녀를 마음껏 축복하고 축복의 비결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이삭과 야곱이 나옵니다. 믿음에 관하여 믿음의 영웅들에 대해 소개하다가 이삭과 야곱에 이르러 딱 한 가지를 말씀하는데 믿음으로 아들들을 축복한 것을 말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축복할 때 믿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기뻐하시며 칭찬하십니다. 여러분도 이삭과 야곱처럼 축복의 권세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권세를 부지런히 사용하므로 믿음을 인정받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축복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백성을 축복할 특별한 권세를 부여하셨습니다. 제사장, 선지자, 레위지파의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축복권을 주셨습니다. 이 축복권은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 특히 목회자들에게도 주셨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자식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제사장이었으나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자 그대로 되어 한나가 자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모에게도 축복권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모가 자식을 축복하는데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야곱은 요셉의 각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 한대로 되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축복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댁이라는 제사장이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역시 온 힘을 쏟아 축복을 합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그리고 열두 아들에게 축복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축복들이 단순히 듣기 좋으라고 해 주는 덕담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는데 대단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축복대로 다 되지 않았습니까?  에서는 뒤늦게 이삭에게 달려가 축복을 간청했지만 야곱에게 했던 것과 같은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결국 물질적으로는 거부가 되었으나 신령한 복과는 영영 멀어지지 않았습니까?  

에서가 처음에 하나님의 축복을 시시하게 여기고 팥죽 한그릇과 바꾸는 망령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영적인 축복과 상관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두 아들을 데려오게 한 후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왼편에 차자인 에브라임이 오게 하고, 오른 편에 장자 므낫세를 오게 합니다. 구약에서 오른 손은 더 큰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야곱이 손을 바꾸었습니다.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오른 손을 얹고, 장자인 므낫세에게 왼 손을 얹었습니다. 그렇게 축복을 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나님은 요셉을 두번 놀라게 하십니다. '네 아들이 내 아들이다'라고 하셔서 놀라게 하셨고, 축복을 어긋나게 해서 놀라게 하십니다.   

요셉은 당황했습니다. 급히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아버지 잘못됐습니다. 손을 바꾸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야곱이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손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의외의 말을 합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곱의 축복대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중에 가장 큰 지파가 되었습니다. 축복은 전승됩니다. 믿음은 전승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은 전승됩니다. 할아버지의 믿음이 아버지에게로, 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에게로 전승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삭에게로, 이삭의 믿음이 야곱에게로, 야곱의 믿음이 12지파에게로 전승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요즘 우리들의 문제는 단절입니다. 자녀들과의 대화가 단절된 것이 문제입니다.  아버지는 옛날 자랄 때 고생한 이야기만 하니 자녀들과는 대화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대간의 격차가 너무 심해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문화적으로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정은 세대간의 간격이 넓어보입니다.   

그러나 세대와 문화간이 거리가 없는 민족이 지구상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나라를 잃고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자녀를 낳으면 그 아이를 율법으로 양육합니다. 어린 아이때부터 교육을 시킵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율법의 아이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게 하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공통분모가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변하고 문화가 달라지고 세대간의 격차가 있어도 별다른 문제 없이 한 가족의 줄기를 만듭니다.   우리의 문제는 아버지의 세대가 다르고, 아들의 세대가 다르고 손자 세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통점이 없습니다. 가정의 공통분모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세대간의 격차, 문화적인 격차는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메시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자녀들에게 이 믿음을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인 사회에서 가부장적인 제도에서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무너지니까 허탈해 졌습니다. 정신적인 지주처럼 여기던 것이 없어졌습니다.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가정의 뿌리가 없어졌습니다. 정신적 지주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가정의 뿌리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정, 믿음을 전승시키는 가정, 유언을 믿음으로 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2. 어떻게 소중한 축복권을 활용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축복하는 이가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그 축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축복이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고 하는 것입니다.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축복은 전수됩니다. 아버지의 축복이 아들에게 갑니다. 할아버지의 축복이 아버지에게 오고, 아버지의 축복이 아들에게 가서  축복은 수 천대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전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자녀를 축복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아버지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살았고, 나그네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매일 축복하십시오. 축복의 소리를 듣고 자란 자녀와 욕을 먹고 자란 자녀는 다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잘못한다 하더라도 자녀가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한다'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리고 야단을 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그렇더라도 우리 부모님이 믿는 하나님은 진짜야'라고 느껴야 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이런 말을 자기 입으로 해야 합니다. 자신의 혀는 축복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으십시오.   축복을 주려면 은혜가 있어야 하고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축복이 됩니다. 내 자신이 불만스럽고 억울한 사람이 어떻게 남을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축복은 내게서 흘러 넘쳐야 하는 것이지 내가 목마르면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날마다 감격이요, 감동이요, 풍성함이요,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현재를 바라보지 말고 앞을 내다보고 축복해야 한다.(20,22)   

현재는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현재를 바라보지 말고 미래에 하나님이 그를 만들어 쓰실 것을 내다보고 축복해야 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것을 그 부모도, 형들도, 자신도 몰랐을 것이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통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씨는 그가 쓴 책「사랑만한 교육은 없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겸손을 가르치면서도 어머니는 '우리 수성이는 지도력이 뛰어나서…'라는 말을 항상 입버릇처럼 하셨습니다. 자녀들은 반은 타고난 성품대로, 반은 부모님들의 덕담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성이 뿐만 아닙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장점을 크게 부각시켜 지나가는 말처럼, 주슬처럼 아이들의 뇌리에 박히도록 심어주시곤 하셨습니다. 수억이는 어릴 적부터 끈기 하나는 아무도 못따라갔어. 수인이는 목소리가 우렁차 나중에 한몫 할거야. 수윤이는 머리가 비상해서… 수정이는 꼼꼼하고 계산이 빨라서…. 그 덕분인지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 덕담대로 풀린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끊임없는 덕담은 자식들의 울타리를 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자신감으로 인생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 속담이 있습니다.  한마디 덕담도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말 그대로 결실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드려진 축복은 또한 얼마나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 자녀교육의 첫 번째 원리는 '자녀를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축복을 받는 순간 내가 중요한 존재이며 축복받을만한 가치를 가졌다는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높은 가치부여는 축복으로 나타납니다.  

'나야말로 중요한 존재이다. 정말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이것처럼 값진 자기 인식이 또 어디 있습니까? 더 나아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깊은 암시를 받게 됩니다.   이래서 축복은 가장 큰 격려인 것입니다. 또한 축복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를 깨우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위는 자녀들의 삶에 경건의 의미를 심게 됩니다.  부모가 축복기도해주는 모습을 보고 어린 자녀가 부모보다 큰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비난 문화와 저주 문화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전체적인 우리 삶에 사회적인 분위기는 비난하고 망신주는 거예요. 그저 닥치는대로 비난하고 저주하고 망신을 주는 것을 당연시하고 살아 왔습니다.  대통령도 비난하고  재벌도 비난하고  선생님들도 비난하고 검찰 법관 모조리 비난하고 공격하는 겁니다.  근래는 교회도 무조건 비난하고 목사도 비난하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 전반에 걸쳐 비난과 저주 그리고 망신주는 것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래서 모골이 송연한 저주가 담긴 욕설이 아무에게나 자연스럽게 오고갑니다. 심지어 자기 자녀들을 향해서도 축복을 하기는 커녕 저주섞인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놓습니다.  망할 놈, 썩을 놈, 벼락 맞을 놈, 이 얼마나 무서운 저주입니까?  그런데 이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저주가 담긴 욕설들이 가득한 세상이 아닙니까?  그것도 사랑과 축복을 마음껏 쏟아부어주어야 할 어린 자녀들을 향해서도 여과되지 않고 무서운 독화살같이 날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래서는 큰 일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우리들이 예수의 사랑으로 안아주고 안수해 주고 God bless you! 하고 축복해 주는 이런 나라를 만들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서로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칭찬하며 축복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모두 이제는 안아야 되고, 이제는 사랑해야 되고 이제는 모두 너, 나 할것없이 축복을 빌어주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들춰내고 비난하고 저주하며 욕하는 이런 문화가 아침햇살에 깨끗이 녹아 없어지는 안개처럼 걷어지고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주시는 축복만이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이 사회에 가득하게 하여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축복된 일에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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