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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아이와 같이 (막 10: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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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이 (막 10:13-16)


13살의 어린 존(John)이 다니던 제일독립교회는 오래된 건물이라 비만 오면 지붕이 새고 교회 마당은 포장이 안 되어 진흙탕이 되기가 일쑤였습니다. 양말과 구두가 젖는 것을 물론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불평만 늘어놓을 뿐 아무도 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을 바라보던 존은 교회마당 입구를 벽돌로 포장해야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음날부터 존은 하루 7센트 임금의 일부를 쪼개어 벽돌 한 장씩 사서 새벽에 교회마당에 깔기 시작했습니다. 

넓고 긴 마당 입구를 혼자 포장하려면 2년도 족히 넘게 걸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한 달도 채 못되어 일어났습니다. 담임목사였던 존 챔버스(John Chambers)는 몇 주일 째 벽돌을 까는 사람이 누군가 궁금했습니다. 주인공을 알아내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교회로 나섰습니다. 교회입구에 들어서자 존이 벽돌을 나르며 길을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벽돌 담은 리어카를 끌고 와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른들도 하지 않는 일을 존이 하였습니다. 모습을 지켜보던 챔버스 목사는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었습니다. 챔버스 목사는 존을 위해 마음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린 존이 어른들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갚아 주세요." 챔버스 목사는 주일 설교 때 교인들에게 존이 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교인들은 존의 신앙과 헌신에 감격하며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반성했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 교회 마당 입구 포장뿐 아니라 낡은 교회 건물을 헐고 새로운 교회로 건축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어린 존과 벽돌 한 장 한 장이 만들어낸 역사였습니다. 어린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린 존은 훗날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본문에 '어린아이' 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 매 절마다 '어린아이' 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예수께서 아이들을 축복하며 기도해주실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꾸짖으며 예수께 다가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께서 화를 내시며 말씀하십니다.“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을 어린아이들을 통해 교훈하신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지녀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첫째로 순진하여야 합니다

레오 버스카글리아((Leo Buscaglia)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Living, Loving, Learning)' 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고는 난폭해져 식구들을 향해 욕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욕을 퍼붓습니다.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간호사와 의사에게까지 포악하게 대하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가끔 만나던 동네의 어린아이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그러자 가족들은 "네가 할아버지를 만나 보라" 며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린아이가 만난 후로 할아버지가 변한 것입니다. 태도가 아주 부드러워져서 사람들도 만나고 얘기도 하였습니다. 이상히 여긴 가족들이 어린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할아버지한테 무슨 얘기를 했니?"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그 시간에 무얼 했니?”어린아이는 대답합니다. "할아버지랑 함께 울었어요." 어린아이는 할아버지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울었을 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는 어린아이를 껴안는 순간 사랑을 느꼈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사랑할 때 능력이 솟아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어린아이를 통하여 어른들의 거짓됨을 보게 하십니다. 어린아이를 내세워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 하였을 때 예수께서 어린아이의 무엇을 보고 말씀하셨습니까? 어린아이의 순진성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꾸미거나 가식이 없습니다. 체면도 모릅니다. 솔직합니다.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말하고, 갖고 싶은 그대로 말합니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순수함에 때가 묻었다는 뜻입니다. 어린이들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지만 어른들은 가식으로 꾸밉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델을 어린아이로 삼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린아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말과 행동, 마음씨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때가 묻은 성숙함으로부터 순수하며 순전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겸손하여야 합니다

미국 독립 당시 정치가이며 사상가로 알려진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청년 때 일입니다. 이웃에 사는 노인 댁을 방문한 후 그가 집을 나설 때입니다. 그 집에는 천정보다 낮은 들보가 있었습니다. 노인은 프랭클린이 머리를 부딪힐까 주의를 주었습니다. "머리를 숙여요." 그러나 들보를 미처 보지 못한 프랭클린은 왜 저러시나 생각하는 사이에 그만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말합니다. "여보게 젊은이, 자네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머리를 자주 숙이면 숙일수록 그만큼 부딪치는 일이 적을 걸세." 프랭클린은 그 말을 평생 동안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귀하게 쓰십니다. 어린아이의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열왕기상 3장 7절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솔로몬은 자신을 가리켜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다윗 왕에 의해 국토가 확장되었고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왕위를 계승시키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 솔로몬을 세웠겠습니까?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그는 남다른 통찰력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 자기를 낮추어 작은 아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겸손한 솔로몬을 사랑하셔서 남다른 지혜를 주셨습니다. 

어린아이를 통하여 어른들의 교만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들은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뜻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누구의 말도 다 들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호랑이하고도 말하고, 토끼하고 얘기하고, 새들과 꽃들과도 대화를 나눕니다. 어린아이는 누구와도 곧 친해집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것이 안됩니다. 불신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왜 겸손해지지 못합니까? 자기(自己)라는 것을 죽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주님께 넘겨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라면서 자기의 주장과 생각과 자존심을 더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누가 자존심을 건드리면 금방 불쾌해집니다. 자존심을 쳐서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로 신뢰하여야 합니다

중세 시절 독일의 어느 성당에서 찬양대원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한 어린아이가 지휘자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슨 일이니?" 지휘자가 물었습니다. "저, 찬양대원이 되고 싶어서요." 소년의 대답에 지휘자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합니다. "찬양대는 어른만 하게 되어 있어. 어린아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안 되겠다. 네가 찬양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지만." 그러자 어린아이는 맑은 눈빛으로 지휘자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지휘자님, 그러나 주님께서 저를 쓰시겠다고 하시는데요.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왔어요." 주님께서 쓰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들은 지휘자는 그만 감동을 받고 어린이를 찬양대원으로 발탁합니다. 소년은 믿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찬양도 탁월하게 잘하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어린아이는 훗날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일으킨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어린아이 같이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골리앗을 눕힐 때 칼과 창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하였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외치면서 어린아이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훗날 왕이 된 다윗은 법궤가 성으로 들어올 때 얼마나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었던지 아내 미갈이 체신 머리 없이 춤을 춘다고 나무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고백합니다. 사무엘하 6장 21절입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나를 택하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여호와의 앞에서 뛰놀리라." 어린아이같이 주님을 믿는 것은 유치하게 믿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의 은혜를 기대하는 믿음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신뢰할 때 하나님은 상급을 베푸십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되려면 어린 아이 같이 되어야 한다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는(doing) 것도 중요하지만 되는(being)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를 통하여 어른들의 불신을 보게 합니다. 어린아이는 걱정이 없습니다. 근심이 없습니다. 고민이 없습니다. 부모만 있으면 만족입니다. 어린아이는 절대 신뢰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를 통하여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믿음은 순수하게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낡아버린 어른의 마음을 버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테레사(Madre Teresa)수녀의 말입니다. "어린아이를 죽이지 마십시오. 키우기 어렵거든 나에게 주십시오. 어린아이에게 상처를 입히지 마십시오. 오히려 어린아이를 바라볼 때 어른의 상처가 낫게 됩니다."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복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가 됩니다. 영적으로 어린아이 같아져야 합니다. 보다 더 순수한 모습이 되시기 바랍니다. 보다 더 자신을 낮추어 겸손해져야 합니다. 보다 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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