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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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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16)
 

최근 기독교인들에게 관심을 끄는 영화가 상영 중에 있습니다.  '회복'이란 영화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현재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나는 실제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2008년 봄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40키로 떨어진 아리엘이라는 작은 마을에 예수를 믿는 유대인가족 ‘아미’네 집에 뜻밖의 선물바구니가 배달되었습니다.  사탕과 초콜릿이 잔뜩 들어있던 바구니를 여는 순간, 폭탄이 터졌고 아미는 끔찍한 부상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테러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로의 위협이 아닌, 같은 민족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예수를 열심히 전하는 유대인 전도자 가정을 향한 폭탄테러로부터 방화, 폭력, 살인, 가택연금은 물론 주일 예배를 방해하는 훼방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강한 저항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 유대인들을 '메시아닉쥬(Messianic Jew)' 믿는 자, 혹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기를 소원하며 매우 위험한 현장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마지막은 바로 그들 속에서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메시아닉쥬는 지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주님을 믿고 전하는 모든 유대인들이 해당됩니다.  베드로, 바울, 사도들, 초대교회성도들, 또 본문에 등장하는 디모데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들은 지금 시대 못지않은 많은 핍박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은 이방인이 아닌 동족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를 신실히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때문에 모든 삶의 방향과 길을 바꾸고 믿음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입니다.  본문에서도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주님을 믿는 자를 이렇게 부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이것보다 더 귀한 호칭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또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전합니다.  오늘 그것을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유혹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디모데전서를 함께 읽었습니다.  디모데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바울의 마지막생애에 보낸 편지이기에 마치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디모데는 바울의 뒤를 이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사역자의 길을 가는 자이기에 이 편지를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구구절절이 바울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열심히 달려갈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바울은 귀한 교훈을 전합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디모데전서의 마지막부분으로서 디모데 자신의 경건과 믿음의 삶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당시 메시아닉쥬라고 할 수 있는 디모데를 향하여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여기에서 바울은 먼저 '이것들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들'은 앞에 언급한 것을 말합니다.  3절 이하에서 바울은 당시 몇 가지 피할 것을 강조합니다.  

우선 다른 교훈을 말하는 자를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고 투기와 분쟁과 비방을 악한 생각을 하고,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잃어버린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의 유혹, 물질의 미혹, 세상의 욕심을 버리라, 피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으로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것으로 사람이 교만하여 패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런 미혹, 유혹, 욕심을 버리고, 피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런 것에서 늘 자유하고,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언제나 감사하며 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불교가 강한 나라입니다.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교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시대마다 불교에서는 그들이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현대불교역사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두 인물이 있습니다.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입니다.  이들은 불교인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존경하는 인물들입니다.  성철스님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최근 법정스님도 타계했습니다.  법정스님이 떠난 이후 그의 사상과 책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가 평생 강조한 것은 한마디로 '무소유'였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무소유의 책을 무소유한 사람들이 소유하기 위해 난리가 났었습니다.  보통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법정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욕심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늘 욕심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는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떠난 뒤에 그의 가르침과 사상이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이미 성경에서 강조된 것입니다.  본문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그래서 모든 욕심과 유혹을 버리고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믿음의 길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여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엡4:22-24)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유혹을 멀리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미혹을 피하기 바랍니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세상의 욕심을 떨쳐버리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심령으로 새롭게 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의 현장에서 늘 자유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이렇게 이어집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먼저 피할 것을 말한 뒤에 이젠 취할 것, 따를 것을 말합니다.  따를 것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의,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라고 강조합니다.  우리 믿음생활에 너무도 친숙하고, 많이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묶는다면 그것은 '선'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르고 참된 삶의 행동, 성령이 기뻐하시는 소중한 열매, 주님의 뒤를 따르며 갖추어야 할 제자도의 모습입니다.  믿는 자는 날마다 악을 피하고, 선을 취하고, 그것을 따르라고 하나님의 사람을 향해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피할 것만 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피한 뒤에는 취해야 하고, 행동하고 따라야 함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악을 미워하고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악을 버리고 이젠 선을 행해야 합니다.  바르고 참된 삶, 인생에 소중한 가치가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믿음의 성숙은 바로 여기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서 이것을 잘 알려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절은 악을 멀리하고 죄를 버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말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도 말아야 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도 앉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복 있는 자의 삶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2절에서 이제 적극적인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경건을 쌓아가야 합니다.  악을 피하고 이젠 선을 추구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계절적으로 지금은 봄입니다.  요즈음은 봄 같지도 않은 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봄은 봄입니다.  거리에 많은 꽃들이 만발해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다 보면 옆집에 높이 솟아오른 목련이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 교회마당에도 목련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목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성도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분이십니다.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인데 그의 고향에 봄이면 목련이 너무도 아름답게 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을 생각하며 목련꽃만 보면 걸음을 멈추게 한다고 합니다.  목련은 봄을 대표하는 꽃의 하나로 예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목련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는데, 옥처럼 깨끗한 나무라고해서 옥수, 옥같은 꽃에 난초 같은 향기가 있다고 옥란, 난초 같은 나무라고해서 목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고 목련,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해서 북향화로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목련의 꽃말은 사모함, 순수, 깨끗함을 상징합니다.  하얀 목련이 절정에 이르는 때에 우리는 삶을 돌아보고, 선을 따르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살전5:15)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고 또 볼 수 없는 찬란한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장 순결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14절에서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여러분, 악을 멀리하고, 선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주님의 제자로서 항상 선을 따르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싸움을 싸우라고 말합니다.  특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가는 길임을 알려줍니다.

바울의 삶은 한마디로 싸움의 삶이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뒤부터 그는 평생 싸우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날마다 싸우고 싸우다가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무엇과 싸웠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려주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영적싸움이고, 믿음의 싸움이고, 선한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싸우다가 그는 승리하고 영광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믿는 자의 삶은 싸움의 삶입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던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싸움에 도입합니다.  영적전투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싸우며 삽니다.  싸움의 대상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닙니다.  매일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싸우고, 싸움을 보며 살지만, 실제로 그들은 우리 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싸우는 싸움의 대상은 사탄이요, 악의 영들이요, 세상이요, 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든 싸움입니다.  믿음의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자기에게 지면 다 지지만, 자기에게 이기면 모든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바로 '조절'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라는 것이 바로 조절을 의미합니다.  조절하지 못하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여지없이 패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잘 조절하는 자가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조절에 있습니다.  체중조절, 특히 호흡조절이 중요합니다.  운동의 꽃이라고 하는 마라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장거리나 단거리나 마라톤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호흡조절입니다.  무조건 힘만 믿고 달리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체력을 강하고 훈련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호흡조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완주하지 못하고, 좋은 기록을 낼 수 없습니다.  마라톤만이 아닙니다.  수영, 양궁, 역도, 사격, 골프 등 모두 호흡조절이 필수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자기와의 싸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조절입니다.  특히 호흡조절입니다.  자기를 조절하지 못하면 패하고 맙니다.  하지만 자기를 조절하는 자는 모든 싸움에 승리합니다.  우리가 패하는 이유는 오직 조절에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무엇보다도 조절하는 힘이 생깁니다.  은혜와 사랑의 능력과 힘도 역시 조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내 모든 삶의 현장에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가 자기와의 싸움, 믿음의 선한 싸움의 승패를 갈라놓습니다.  

믿음으로 살던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바로 조절입니다.  자기를 조절할 때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자기조절을 실패할 때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그랬고,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그들이 실패한 현장에는 조절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조절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나를 조절하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우리는 싸우며 가는 자들입니다.  이번 한주간도 싸우며 살아갑니다.  모든 싸움, 특히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조절하는 힘을 갖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부르신 것보다 다정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는 것보다 인정받는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날마다 선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싸움을 잘 싸워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한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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