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 신앙의 삶 (행 1:1~5)

  • 잡초 잡초
  • 309
  • 0

첨부 1


부활 신앙의 삶 (행 1:1~5)


(행1:1-5)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1.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요13:1,3)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베드로 차례가 되자 ‘주님,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렵니까?’ 라며 거절하자 예수께서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내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며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발을 씻는 행위는 십자가의 피로 인간의 죄를 씻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씻어 깨끗함을 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를 배신하여 팔 자가 누구인지를 아시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요13:3-1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마음이 괴로우셔서,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니라.” 그리고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가롯 유다가 떡 조각을 받은 뒤 사탄이 그에게 들어가자 그는 곧 바로 나갔습니다. 예수를 팔아넘기기 위해 대제사장을 찾아나간 것이었습니다.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 잠시 동안은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느니라.” 간단히 말해 조금 있으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깨닫지 못하고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니라.” 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여, 왜 지금은 내가 따라갈 수 없습니까? 나는 주를 위하는 일이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며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 십자가 죽음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따라가겠노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하노니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니라.” 며 그의 앞일들을 예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련(一連)의 말씀으로 제자들이 근심과 슬픔,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와서 하나님 나라로 영접할 것인 즉 믿음을 확실히 하여 염려하지 말고 평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1-4입니다.

(요14: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이렇게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막연하게나마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신다는 말씀에  더욱 더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앞으로 보혜사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면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일들을 행할 것이고,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12-19입니다.

(요14:12-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슬픔이나 걱정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과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혜사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영원토록 성령이 함께 하셔서 지금까지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것들이 생각나게 하여 깨닫게 하시며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능력있는 제자들이 되어 예수께서 하셨던 일보다 더 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오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4:25-28입니다. 
(요14:25-28)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예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이 강림하게 되면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며 그 기쁨은 모진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 나타나는 영원한 기쁨, 그 어느 누구도 빼앗을 자가 없는 영원한 기쁨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고 물으셨지만 제자들의 믿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예수께서 이렇게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시고 성경에 예언된 대로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다시 썩어질 몸이 아니라 썩지 아니하는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낮고 비천한 몸이 아니라 영광과 존귀한 몸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약한 육체가 아니라 강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몸으로 다시 사신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몸, 죽음이 지배하는 몸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는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고전15:54-58) 

세상을 지배하는 사망권세를 이기는 자가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러한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으로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되면 그는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를 고린도 후서5:17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 “새 것”에 대한 헬라어는 질적(質的)으로 새로운 것을 뜻하는 ‘카이노스’(kainos)입니다.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뜻하는 ‘네오스’(neos)와는 다른, 삶의 질이 전혀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태중의 아이가 열 달만에 세상에 태어날 때 그 아이는 신생아(新生兒)로서 ‘네오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신생아이지만 죄 중에 잉태되고 죄 중에 태어나 죄 중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네오스’는 죄의 지배 아래, 사망의 지배 아래 사는 존재일 뿐입니다. 시간적으로 볼 때 신생아이지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늙고 병들어 죽는 여전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이노스’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지배 아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지배 아래 사는 몸, 부활 생명이 지배하는 몸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네오스’의 존재로 태어났을지라도 예수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카이노스’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예수 믿으면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생명이 있기 때문에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부활 신앙의 삶을 언제부터 누릴 수 있게 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해서 부활 신앙을 가지게 되었겠습니까? 예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지 사흘 만에 최초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아 근심하자 흰 입은 두 천사가 “(눅24:5-8)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그제서야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제자들에게 달려가 부활을 전합니다. 이에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단숨에 달려와 무덤 안으로 들어가 역시 빈 무덤만을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요20:9-10)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자기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예수님이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을 전했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열 한 제자가 식사하고 있을 때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또 완고하게 고집을 피우며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책망하셨습니다.(막16:12-15)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왜 그렇게 놀라며 의심하느냐? 내 손과 발을 보라. 나다! 자, 만져 보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으나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느니라.” 고 말씀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셨으나 그들은 너무 기뻐서 오히려 믿지 못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기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갖다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생선을 받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모세의 율법책과 예언서와 시편에서 나에 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과 또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이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파될 것이 기록되어 있느니라. 너희는 이 일에 대한 증인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눅24:36-49) 

바로 이 자리에 제자 도마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을 때 그는 예수님의 손바닥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또 그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며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8일 후에 제자들은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고 거기에는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도 문이 잠겼는데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고 말씀하시며 도마에게 “(요20:27-29)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고 하시자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며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며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바닥에 넣어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지고 그 말씀을 듣고 감격했지만 그들의 삶에 부활 신앙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했지만 그가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서도 베드로는 고향으로 돌아가 고기잡은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보고 만지고 믿었지만 베드로의 생활에 전혀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고향을 돌아간 베드로를 찾아 가신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렇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세 번씩이나 물으시자 베드로는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주님,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자기 자신이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일이 생각나서 몹시도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하고 똑같이 대답하므로 예수님에 대한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으나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전처럼 자신있게 호언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용서와 사랑으로 다시 찾아주시고 사명까지 주시는 예수님 앞에 감격했지만 갈릴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부활 신앙, 새롭게 변화된 부활 신앙의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사명이 그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눅24:36-49)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때때로 제자들에게 나타나 자기가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많이 보여 주시며, 사도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1:4-11)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이 지켜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시자 구름에 가려 다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올라가실 때 그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왜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신 이 예수님은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니라.’ 고 예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다시 전했습니다. 

그 후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 강림을 위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행1:12-14) 그렇게 기도에 힘쓰는 중 50일째 되는 날, 즉 오순절이 되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혀처럼 생긴 불이 나타나더니 그것이 갈라져 각 사람 위에와 닿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그들도 알지 못하는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많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난 바람 같은 이 소리를 듣고 몰려든 군중들은 각자 자기 나라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놀라 이상히 여기며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다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각자 태어난 나라의 말로 들리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우리가 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각자 우리 말로 듣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모두 놀라고 당황하여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하고 서로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큰 소리로 이렇게 증거합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여러분, 이 일을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모두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이 일에 대해서 예언자 요엘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행2:17-21)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사람 여러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 증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높임을 받으셔서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 받아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役事)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자 베드로가 ‘여러분, 모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님의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과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실 멀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하고 예수의 부활과 약속하신 성령을 증거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복음 전도를 받아들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받았는데 그 날에 제자의 수가 3,000명이나 추가되었습니다. 그 후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기적이 많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부활 신앙이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시므로 새롭게 변화된 모습, 부활 신앙의 삶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으므로 베드로가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믿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 부활을 증거하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두려움을 모두 떨쳐버리고 이렇게 부활을 담대히 그리고 확신있게 증거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은 자신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받게 되리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 전에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 고 하신 말씀대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모든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라는 말씀 그대로 보혜사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강림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행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고 증거했습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대로 진리의 성령을 받은(요14:17,요14:26)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예수의 부활을 전하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행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예수께서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갈 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구걸하자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우리를 보라.’ 고 말합니다. 그 앉은뱅이가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자 그대로 시행되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부활하게 되는 믿는 믿음만이 아닙니다. 부활 신앙은 그 믿음을 가지고 부활의 삶으로 변화되어 나타나야만 합니다. 다시 사는 부활 신앙만으로도 영원한 기쁨을 오늘 나타내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들처럼 어떠한 악의 세력도, 어떠한 위협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와 순교하면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었던 배경은 부활 신앙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삶의 현장에 나타나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황제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극심하게 박해할 당시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의 권면에 따라 로마를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탈출하던 베드로가 ‘아피아 가도’(Via Appia)에서 아무래도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게 여겨져 기도합니다. 

‘주여, 무엇이 잘못되었나이까?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나이까? 슬프옵니다. 어떻게 당신을 따라야 하나이까?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에 빛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께서 “로마에서 내 양들이 나를 부르고 있노라. 네가 내 양들을 버리니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려고 로마에 가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아마도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했던 것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요21:16-17)며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을 먹이지 아니하고 그 양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시 로마로 들어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기까지 맡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양을 먹이는 사명을 다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무려 7명의 제자들이 그 끔찍한 십자가에서 처형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순교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 부활의 신앙이 약속하신 성령의 강림으로 근심이 기쁨으로, 두려움이 강하고 담대함으로, 어두움이 생명의 빛으로 새롭게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의 부활 신앙위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므로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며 능력있는 삶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바는 반드시 성취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시고 부어주십니다. 성도 여러분의 부활 신앙이 성령과 함께 하시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무엇을 구하든지 그대로 이루어지는 복된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