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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돌립시다 (고전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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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께 영광돌립시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의 견해에 대해 반박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인 것과 같이 성도들이 부활할 것이 진실임을 밝히며 증명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들이 받고 그 가운데 선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제자들에게 보이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와 같이 복음의 핵심이 되는 것은 죄로 인하여 죽어야 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요,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될 소망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에 대하여 반박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은 자의 부활의 증거임을 진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심은 곧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 되셨음을 교훈하면서, 사망이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았듯이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을 강조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류에 죄가 들어와 사망이 임하였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정성은 성도들의 구원 문제의 핵심이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할 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핵심이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거짓이면 모든 믿는 자의 믿음이 헛됨을 강조하면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성도들이 더욱 불쌍한 자 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음을 주장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들이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성도들에게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 것을 명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수고하는 것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임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 소망이 진실임을 증거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면 자신이 먹고 마시자고 할 것이라고 증거함으로써 부활의 진정성을 역설적으로 증거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의 어떻게 죽은 자들이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대답합니다.
땅에 뿌려지는 씨가 죽어 썩지 아니하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밀이 아무런 형상이 없어도 그것이 자라서 형체를 갖게 됨을 진술하면서 하나님께서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신다고 증거합니다.

이는 씨가 썩어서 죽는 것 같지만 생명으로 태어나듯이 사람의 육체가 죽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어 부활하게 하신다는 것을 교훈한 것이며, 그 형체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심을 교훈한 것입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도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것임을 밝힘으로써 부활체가 세상에서의 육신과는 다른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이 될 것임을 진술했습니다.

밀레(Millet, Jean Francois 1817-1875)의 '만종'(晩鍾)은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친 농부가 저녁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기도하는 전원적인 풍경이나, 이 그림은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이 아니라 이 그림을 통하여 은은히 들리는 교회의 종소리와 함께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슬프나 신앙적인 메세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 하며 흔히들 쇠스랑과 씨감자를 담는 망태기로 알고 있는 부부의 발밑에 있는 망태기 속에 씨감자가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애지중지하던 아기의 시체가 담겨있는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하며 이들은 배고프지만 씨감자를 감사함으로 심으면서 겨울을 지나 봄에 감자를 30. 60, 100배의 수확을 거두리라 믿으며. 슬픈 속에서 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아기를 땅에 묻는다는 입장을 펴기도합니다. 육체는 썩지만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나타나신 것처럼 이 아기도 주께서 부활에 동참케 해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자연적 해석을 허용치 않는  이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하여 부정하려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사실을 다르게 설명하여 버리려는 시도들도 있어 왔습니다

도적해 갔다는 설과 옮겨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의 수가 많았고 당시에 지키던 사람을 놓쳤을 때에는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일들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돈을 받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마 28:11-15)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카르타고 출생의 교회 저술가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가 저술한 「호교론(Apologeticus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합니다. 

“주님의 특필할 부활과 승천의 평판이, 오늘날에는 각처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유대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신사태가 발생한 때는 하나도 남김없이 황제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고대의 습관에 따라 우리들의 주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일을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전달했다. 티베리우스는 일제히 일을 원로원에 위탁하고,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부인했다.” 라고.
부활은 로마 황제까지도 알았던 사실입니다. 

사기설이 있습니다

이는 사도들과 그 밖의 증인들이 군중들에게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는데 부활했다고 하여 허위 사실을 믿게 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죽으심으로 상심한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을 들고 나간 것을 볼 때 사기를 쳤다고 보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거짓된 것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예수의 부활을 허위로 선전했다면 기독교가 2천년 후인 오늘까지 존재할 수 없고 점차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없을 것입니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만일 예수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해서 예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들어 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중 한사람이라도 본심에 돌아갔더라면 예수의 부활이란 전부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순교를 하면서까지 입증한 제자들의 진실성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벌써 그런 사람과는 말할 필요 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절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기절 한 것 뿐인데 죽었다고 생각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이 확실함은 찔린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요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백부장과 군인들이 죽었다고 선포했습니다

(막 15: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유향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막 16:1-2)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주님 자신이 죽었다고 선언 하셨습니다

(계 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죽은 가운데서 살아 나셨습니다

주의 나타나심에 관하여  환상설  착각설(Optical Illusion Theory 과 환각설(Hallucination Theory)  강령설(Spiritualistic Theory) 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환상을 본다는 것을 더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이들 모두가 한꺼번에 환상이나 환영을 보았다고 보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모두가 동시에 똑같은 심리가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똑같이 동일한 환상을 일시에 오 백 여명이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본 자들은 그의 열두 제자와 오백여 명이나 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 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 중에 절반이나 그때까지 생존해 있음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바울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신에게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셨음을 증거함으로써 복음의 진정성을 증거함에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주님은 친히 부활하시어 살과 뼈가 있다고 하십니다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여인들이 부활의 주님을 발을 붙잡았습니다

(마 28: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부활의 주님이 음식을 잡수십니다

(눅 24:42-43)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부활 하시어 40일간 함께하셨습니다

(행 1:3-8)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회의적이던 도마가 주님을 만져 보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요 20:27-28)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러므로 환상이나 착각이나 강령이 아닌 부활의 사실입니다

이외에도 다른 무덤설과 빈 굴설 신화설이 있으나 다 잘못된 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행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카이로 근처에 있는 쿠프 왕의 피라미드라고 합니다. 그것은 기원전2800-2300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서 30년 동안 십만 명을 동원해서 2. 5톤이나 되는 큰 돌을 230만개나 쌓아 올려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그 웅대한 모습은 부활에 대한 소망의 상징이기는 하나 아직 부활은 아닌 것입니다. 

한편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이 묻혔던 것으로 전해지는 빈 무덤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불가사의 입니다. 다른 어떤 종교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며 기독교만은 참된 구원의 종교로 만드는 사실입니다.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설교 중간에 나서서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한 가지를 가졌소.'그러자 그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우리는 메디나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 있는 관이 있어서 정말 마호메트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하지만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 가면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소?' '고맙소.' 스탠라 존스는 이렇게 대답한 뒤 계속 이야기했다. '당신의 말이 그대로 사실인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다른 점이오. 우리의 주님은 부활하셨소.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빈 무덤밖에 없는 것이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며, 성도들이 부활에 관한 소망과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써 보았음직한 모나미 볼펜. 그 볼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나미 153'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그 유래는 이렇다 합니다. 모나미 회사의 사장은 교인이었고, 모나미 회사를 세우기 전 여러가지 사업을 하면서 교회에 충성을 했습니다. 사업은 언제나 부침이 심했습니다.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습니다. 사업이 안될 때는 실의에 빠졌고 교회 일에도 자연 게을러졌다 합니다. 

실의에 빠진 그는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일곱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합니다. '제자들은 말씀대로 그물을 던진 결과 153마리의 큰 수확을 얻었다. 그만한 양이면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다. 그들은 처음에 자기들에게 친절하게 말씀하신 그분이 주님이신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중에 요한이 가장 먼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님이시라는 요한의 말에 베드로는 창피해서 겉옷을 두른 후 바다로 뛰어들었다. 주님은 떡과 함께 제자들이 잡은 생선도 드셨다.' 

모나미(Mon Ami)는 '나의 친구'되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불어이며, '153'은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의 숫자로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가리킨다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업이 어떤 어려움에 처하든지 나의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경영하면 153의 풍성한 결실을 얻고, 그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한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합니다. '나의 친구 예수' 얼마나 정답고 얼마나 좋은 표현인가요. 실의에서 용기를 갖게 하신 주님, 그리고 우리의 사업을 지켜 주시는 주님, 그 주님이 바로 부활하신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신성을 드러내심과 함께 대속의 사역을 완성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은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패퇴시키시고 승리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기독교의 진리는 곧 예수님의 탄생·수난·부활·승천·재림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생애의 줄거리입니다. 신자들의 자랑거리요 신앙생활의 근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돌리며 떡과 잔을 받으며 사명 감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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