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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주 달려 죽은 십자가 (마 27: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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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달려 죽은 십자가 (마 27:38~54)


미국인 한 청년이 일본 오사카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배에 탑습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선교사훈련을 받았고 이제 꿈이 부풀어서 선교지로 가고 있는 젊은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나 구원할 영혼들을 생각할 때 너무 가슴이 벅차왔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을 위해 선상에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마침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서 배 밑에 내려가서 잠시 잠이들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심하게 요동치는것을 느꼈습니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것도 느껴졌습니다. 그는 놀라 갑판위로 뛰어올라오니 그 폭우속에서 배가 침몰직전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구명조끼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물어빠진 채로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구명조끼를 입지않고 있었습니다. 다가간 선교사는 자신의 구명조끼를 할머니에게 입혀드렸습니다. 그리고 배는 완전히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젊은 선교사는 그곳에서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설교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할머니 나중에 구조되면 다른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세요 제가 할머니대신 죽고 제 생명을 할머니께 드리는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모든사람의 죄를 위해 죽었고 자기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설교를 그 할머니에게 그 위기의 순간에 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젊은 선교사는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그 할머니는 다행히 구조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방방곡곡을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나는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를 대신해 죽은 그 청년이야기가 그 분이 내 죄를 위해 그 청년처럼 죽었다고 합니다. 나는 예수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나를 대신해 죽은 그 젊은 청년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하며 때로는 마음이 벅차올라 울기도 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나중에 유명한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대신 자기를 위해 희생당한 그 젊은 청년을 생각하면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십자가 사건의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께서는 우리가 죽어야 할자리에 그 분이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희생당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대속의 죽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고난주간은 십자가를 묵상하는 주간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하고 바라보는 주간이 바로 고난주간 입니다. 

십자가는 복음의 중요한 주제 입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우리의 구원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많은 찬송은 십자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른 십자가 십자가, 또 주 달려죽은 십자가, 갈보리 십자가, 십자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보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그럴겁니다. 나뭇가지 그 십자가 서로 얽혀놓은거 그게 어떻게 인간을 구원한단 말인가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은 한없이 미련한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에겐 구원의 능력이 되는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십자가속에 하나님은 구원의 비밀을 담아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피흘리심으로 일류의 모든죄를 대속하셨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분이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주실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처형, 십자가의 형틀, 그것은 헤로도톳스라는 역사가에 의해서 증언되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페르시아인들이 십자가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를 통해 전례되어 왔습니다. 대개 노예나 비 로마인들에게 그 십자가 형틀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였기에 로마인들은 제외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정치적인 반란자나 극악무도한 살인자들, 강도들을 십자가형으로 처결했다고 합니다. 구약에서도 나무에달려 죽인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개 하나님을 모욕하는 신성모독자, 우상숭배자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아서 부끄럽게 하고 경계를 삼던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명기 21장 22절에 보면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니가 그를 죽여 나무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위에 밤새도록 두지말고 그리고 마지막에 나무에 달린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페르시아제국의 십자가형이나 유대인들의 습관적인 나무에 달아죽이는 형이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저주와 수치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죽음일지라도 너무나 수치스러운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행하기 전에 그 사형수를 참으로 모진 채찍으로 때려서 거의 반 정신을 잃은 상태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의 온몸에는 피가 낭자히 흐르고 그의 옷가지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달려야 될 그 육중한 십자가를 지고 그는 형장까지 걸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형장에 도착하면 사형수의 옷을 발가벗긴 다음 수평대에 몸을 고정시킵니다. 그 눕혀놓은 십자가위에 사람을 눕힙니다. 그리고 양손 팔목에 대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두 다리 발못을 어긋맞겨서 그리고 거기에 또 대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세워놓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몸이 무게중심 때문에 밑으로 흐를때 그 대못으로 오는 아픔과 진통이 이루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규하는 순간입니다. 

사람에 따라 하루 때로는 삼일까지 생명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과피를 다 흘렸을 때 마지막 진을 뺀후에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방치해서 독수리들이 와서 그것을 밥으로 삼는다고도 합니다. 참으로 불행한 죽음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부인의 삶을 선물해 줍니다. 십자가를 볼때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욕망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의 필요를 포기하는 결단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찬송 149장에 의하면 주 달려 죽으신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기에 어떤 욕심이 잉태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 욕심을 온전히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는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모든사람이 하루를 시작하는 오전 9시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제9시라고 하는 오후 3시까지 6시간 십자가상에서 고통을 당하시다가 마지막 절규와 함께 숨을 거두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7가지 가상7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그 말씀을 중심으로해서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십자가는 치욕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수치와 모욕, 저주와 조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십자가가 아닙니다. 오늘 많은 여성분들은 십자가 귀걸이를 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목걸이를 다는 것입니다. 장식품으로 십자가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결코 장식품이 아닙니다. 수치와 저주의 상징입니다. 

38절부터 41절까지 읽습니다.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예수님은 누구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까. 강도들과함께 흉악한 강도들과 함께 말은 강도들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정치적인 반란자라든가 아마 극악무도한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사람이 누구와함께 죽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사람들과 함께 십자가에 매여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 죽음은 수치스러운 죽음이였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39절에 보니까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를 보고 모욕했다고 그랬습니다. 외인들은 이상한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을 비웃을 때는 고개를 흔드는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말할 때 누가 고개를 흔들면 이상하게 생각해보십시오. 고개를 약간 흔들며 그들은 예수님을 모욕하는 언사를 퍼부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부터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41절에 보니까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누구를 희롱했습니까.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남은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마지막 44절에 가면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같이 욕하더라. 누구를 욕했습니까?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치욕의 십자가의 증거들인것입니다. 이것만이 아니죠. 예수님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채찍을 맞으셨을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씌여져서 날카로운 가시가 움직일때마다 예수님의 머리에 깊숙이 파고 들었을 것입니다. 뇌를 찌르는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로마군병들은 예수님에게 조롱하며 침을 뱉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발기발기 벗겼습니다. 우리가 성화같은데 보면 예수님이 겉옷은 벗지만 속옷은 걸치고 있는 모습인데 실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발가벗겨졌다고 주석가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 

예수님이 왜 이런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해야만 했을까요? 바로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그 엄청난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그 모욕과 수치를 다 참으셨습니다. 왜? 우리가 얻을 구원의 기쁨을 바라보시면서. 내가 지금은 이 십자가에서 죽어가지만 이 조롱을 당하지만 나로인해 저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을 것을 생각하시면서 예수님이 인내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아버지여 할만하시어든 이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분은 인간적으로 십자가의 고난이 너무나 두려웠지만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치욕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조롱당해 보셨습니까. 전도하다가 비난받아 보셨습니까 오히려 감사하게 여기셔야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당한 십자가의 조롱에 비하면 내가 전도하다가 받는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전도하다가 그것 때문에 못합니다. 남이 나를 비웃을까봐못합니다. 교인이잖아 저거, 전도하러 왔잖아 저거. 그 말 듣기가 두려워서, 정말 그렇습니까.? 예수 때문에 조롱받는것이 그렇게 두려우십니까. 주님은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서 발가벗겨짐을 당하시고 엄청난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는데 말입니다. 십자가는 치욕은 십자가입니다. 

두 번째로 십자가는 고독의 십자가입니다. 45절 46절읽습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제 육시부터 제 구시까지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여기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움이 짙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크게 소리지르시며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바꿔말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오늘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을 경험하셔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단절되는 그것을 예수님은 경험하셔야 했습니다. 왜 버림 당하셨습니까?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하셔야 했습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중에 가장 비참한 경험이 뭔가요? 버림당하는 감정입니다. 누군가에게 버림당할 때. 오랫동안 우정을 쌓은 친구에게 버림당할 때의 심정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당한 아내의 마음. 아내로부터 버림당한 남편의 심정 또한 부모에게 버림당한 자식. 혹은 자식에게 버림당한 나이 많은 원로하신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비참하고 괘롭겠습니까. 사람이 누군가에게 믿었던 사람에게 버림당한다는 것 굉장한 고통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6절에 보니까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그랬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다하시고 제자들로부터도 버림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독의 아픔입니다. 버림받았다는 것은 홀로남았다는 겁니다. 고독하다는 겁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옆에 있다면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 떠나고 예수님 혼자 있습니다. 고독의 아픔입니다. 십자가는 고독의 십자가입니다. 고독만이 아니라 십자가는 고통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물 한방울까지 다 흘려버리셨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영적인 목마름, 육체적인 목마름이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독의 십자가였습니다. 때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고독할때가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가상 7언중에 또 한가지는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소개됩니다.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수님은 그 죽음의 순간에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로마 군병들의 죄를 용서해주시도록 하나님앞에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그런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그분은 기도하십니다.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구속의 역사를 일으키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들을 용서하십니다. 우리도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시면 다른 것 생각하시말고 용서를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우리들을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형제와 이웃을 용서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고 그를 넓은 사라으로 안아주고 그리고 그를 용서하는 사랑의 의미가 이 십자가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의 허물을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네 번째로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두 글자입니다. 그 사랑은 보통사랑이 아닙니다.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누구를 구원하기위해 내가 그 사람대신 죽어가는 자리에 서는 것. 그것이 바로 희생의 사랑이고 아가페의 사랑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대신 죽으신 그 사랑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당연히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할 자리에 있었지만 주님이 우리대신 그 죄값을 치루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표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려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를 묵상하고 바라보면서도 사랑의 깊은 마음을 마음깊이 품지 못한다면 십자가는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겁니다. 이 놀라운 구속의 사랑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넘치도록 부어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 번째 십자가는 성취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 구원이 완성되는 그런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니까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보면 테텔레스타이, 이 말은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완성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예술가들이 어떤 작품에 몰입을 해서 그 작품을 만드는데 몇일, 몇 달, 몇 년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소리지른다고 합니다. 

그게 뭡니까?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한방울 물한방울 남김없이 다 흘려 주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십자가에서 완성되고 성취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는 성취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미완성이 아닙니다. 완성하셨습니다. 

또한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에는 지불완료의 의미가 있습니다. 장사하는 상인들이 물건을 받고 물건대금으로 값을 치루는데 값을 다 치뤘다 완납했다 그것이 바로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지불완료, 그분은 바로 우리 모두의 죄값을 다 치뤘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죄값을 남김없이 다 치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는 길을 열어주신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취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십자가, 그것이 성취의 십자가입니다. 오늘 성경에 이 구원이 완성되는 순간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와 성전을 가로막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50절 51절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어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성소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는 극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번 대 속죄일에 온 백성의 죄를 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성소는 제사장들이 번제를 드리기 위해 매일매일 드나드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는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있는 큰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아래서부터 찢어진게 아니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건 사람이 찢은게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으로 직접찢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고 우리 인간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열리는 놀라운 표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누구든지 자기의 공로가 아니라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의 축복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음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이 열려졌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성취의 순간에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던 로마백부장은 위대한 고백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54절입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이 백부장은 이방인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유대인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십자가에 예수님을 처형하는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집행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마지막 고백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저 유대인들은 예수가 사기꾼이라고 못박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오늘 이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속해서 고통당하며 죽으신 그분이 바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요 메시아요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치욕의 십자가입니다.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성취의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한주간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죄를 대속하신 놀라우신 사랑의 십자가. 그 십자가를 생각하시면서 이제는 자신을 부정하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사랑을 마음에 품고 형제를 사랑하며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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