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종려주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마 21:1~10)

  • 잡초 잡초
  • 270
  • 0

첨부 1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마 21:1~10)


예수님의 33년 생애를 구분한다면 사생애와 공생애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생애는 유년 시절부터 30세에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까지를 말합니다. 이 기간에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으며 육친의 부모님을 받드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는 인류 구원을 위해 일하신 수세 후부터 십자가가에 죽으시기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사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거의 다 갈릴리와 사마리아 유다 지역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당시의 서울이며 성전이 있어서 모든 예배와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는 자주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활동 무대는 언제나 갈릴리와 베다니 가버나움 사마리아 베뢰아 등 소외되고 무시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생애 기간 중 주님의 사역을 가만히 살펴보면 언제나 그의 사역의 방향이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어부가 저인망 그물을 쳐서 멀리서부터 고기를 몰아 가지고 한 번에 끌러 올리듯 주님은 언제나 예루살렘을 생각하시면서 움직이셨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도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성전이 있습니다. 헤롯 왕가가 40년을 걸쳐서 새로 지은 웅장한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손으로 지은 성전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헐어 버리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새 성전을 일으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요2:19)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실 사건을 의미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곳입니다.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교제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몸을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한 제물로 드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발걸음은 예루살렘을 향하여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잡히시고 재판 받으시고 무죄한 판결을 받았지만 정직하지 못한 권력과 폭도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그의 사역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장면입니다. 
주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길가에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외치며 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 나무 가지를 꺾어 주님을 환영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이렇게 사람들이 환영한 때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요12:13절에서도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왕으로 환영했습니다.
이것이 종려 주일의 의미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 이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 사실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① 선지자들이 예언했습니다.(마21:5)
이미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주님이 왕으로 오실 것에 대하여 예언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 스가랴 9:9절에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라고 말함니다. 

② 태어날 때부터 왕으로 나셨습니다. (마2:2)
예수님이 탄생할 때에 동방의 박사들이 동방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헤롯왕에게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태어날 때 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 나셨습니다.

③ 사람들이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눅19:3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주님을 왕으로서 환영하였습니다. 눅 19:38절에서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대중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④ 예수님도 자신을 왕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막15:2) 
예수님이 잡히셔서 빌라도에게 끌려 갔을 때에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네가 정말로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물었고 “주님은 네 말이 옳도다”라고 자신이 왕이심을 분명히 했씀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대하여 여러가지로 억울한 모함을 하여 고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 말씀도 자신을 변명하거나 변호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왕이냐?” 하고 묻는 질문에는 단호히 그렇다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⑤ 로마 정부가 공식적으로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인정했습니다.(마27:37)
마27:37절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 죄목을 기록하는 명패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기록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자칭” 유대인이라고 쓰라고 주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도 총독은 “나의 쓸 것을 썻다” 라고 하면서 유대인들의 요구를 묵살하였습니다. 

⑥ 온 세상이 예수를 왕이라고 인정합니다.
예수님이 못 박힌 십자가 위에 쓰여 있던 명패가 그것을 증거 합니다. 명패는 히브리어와 로마어 그리고 헬라어 3개 국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종교적인 언어입니다. 헬라어는 철학적인 학문적인 언어입니다. 그리고 로마어는 법률과 정치적인 언어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와 학문과 철학이 그리고 모든 정치가 예수는 만왕의 왕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온 세상 아니 온 우주의 왕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왕이십니까?
본문 5절에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왕은 말을 타고 다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시 서민들의 운송 수단인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왕으로 입성하십니다. 겸손한 왕이시기에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세리도 문둥병자도, 때로는 사회의 지탄의 대상인 창녀조차도, 주님은 그들에게 친구가 되셨고 위로 자가 되셨습니다. 
겸손한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마20:28절에 주님은 이 땅에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왕이라는 의미는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신 통치자이십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전에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 삼으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고 예수님이 어떤 왕인지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피하였습니다.(요6:15)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 자신이 만 왕의 왕이신 것을 드러내셨고 사람들로부터 왕으로 영접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왕은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우리를 다스리고 섭리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의 지배 아래 있고 우리는 그를 섬겨야 합니다. 때로 그분의 섭리가 자신에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주님을 나의 인생의 왕으로 모심 사람은 그의 뜻을 발견하려고 애쓰고 주님의 뜻 앞에 눈물어린 순종을 드립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갓 결혼한 젊은 부부가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이웃을 열심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이것을 목적하고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5년이 지나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깊은 실망을 느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낙심치 말자고 위로도 하고 희망을 갖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10년째 되던 해 드디어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뛸 뜻이 기뻐하였으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해산달이 다가오면서 다니엘과 에스더라는 아들 딸의 이름도 지어 두었으며 아기 방을 온갖 것으로 꾸며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윽고 산기가 있어 병원에 갔습니다. 

무서운 진통이 있은 후 사내아이를 분만하였고 고통이 사라지고 아기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보여 주지를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요구한 후 간호원이 데려온 아이를 본 엄마는 까무라쳤습니다. 온 몸과 얼굴이 뒤틀린 흉측스런 기형아였던 것입니다. 주님께 그렇게도 잘하고 기도했는데 말입니다.
나중에야 안 남편은 더욱 절망으로 사색이 되었습니다.
"오 하나님! 어쩌다가 우리에게 이런 형벌을" 하고 부르짖으며 통곡했습니다. 아내는 깨어난 후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원도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병실의 아내를 찾아왔습니다.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씻고 남편의 손을 잡았습니다.
"여보, 밤새도록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을 어떤 가정에 주면 가장 사랑으로 키울까 하고 지금부터 15년간 고심하시며 찾으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생각하시다가 우리 부부 가정에 맡겨지면 제일 많은 사랑을 받으리라 결정하시고 우리 가정에 주신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키우겠습니다. 당신도 이 생명을 도와주세요." 남편도 울고 아내도 울고 들어왔던 간호원도 따라 울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주님의 섭리를 믿는 성도는 어떤 고난이나 환난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믿는 자들에게 선하게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 되심을 믿고 그분을 나의 인생의 왕으로 영접하였다면 그분의 다스림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은 내 인생에 큰 고난과 환난이 주어졌어도 그 환경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하신 왕이시며 겸손하신 왕은 우리의 연약함을 모른척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허물을 무조건 허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의 왕되심과 그 통치를 받아드리는 사람에게 용서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네왕이 네게 임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왕 나의 예수님이 내게 오셨습니다. 왕이신 주님에게 순종합시다. 그분의 통치에 복종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