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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담장을 헐라 (창 2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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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담장을 헐라 (창 22:1~18)


1. 요즘 애완견을 자식같이 키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매일 목욕시켜주고, 철따라 옷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외출할 때 포대기로 가슴에 안고, 예방접종도 해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주고 수술도 해줍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애완견이 갑작스런 사고로 죽으면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서 심각한 우울증, 거식증, 알콜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애견사망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동물이지만, 이토록 끔찍하게 돌보고 사랑합니다. 

한편, 1964년 미국 뉴욕에서 제노베스(Genovese)라는 20대 후반의 처녀가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근처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여 살해된 사건이 있습니다. 뉴욕같은 거대 도시에서 이런 종류의 사건은 <뉴욕 타임즈>의 짤막한 기사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건 발생 2주일이 지나서 <뉴옥 타임즈> 1면 톱기사로 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그 기사는 미국 전역을 충격에 몰아넣었습니다. 그 기사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퀸스 구에 살고 있는 38명의 충실한 시민들은 살인자가 거리를 활보하면서 한 여자를 세 차례나 습격하여 칼로 찌르는 장면을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들의 두런거리는 소리와 침실에서 불 밝히는 소리에 놀라 살인자는 두 번이나 모습을 감추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안심하고는 다시 돌아와서 그녀를 쫓아가면서 칼로 찔렀다. 그동안 경찰에 연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숨을 거둔 다음에 한 증인이 마침내 경찰에 알렸을 따름이었다.”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 p.202-203)

애완견에 대한 지극한 사랑, 이와 대조적으로 한 사람이 살해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신고도 하지 않는 대중의 무관심, 인간의 이중성입니다. 자신이 알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 자기와 관련되는 것, 자기 이해관계에 관련되는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서는 엄청난 관심을 갖지만, 자기와 관련없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입니다. 

2.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이 100세 때 얻은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엄청난 명령을 내립니다. 번제라는 것은 소나 양 같은 동물을 제물로 잡아 불로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그것도 100세에 얻은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을 죽여서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은 이방인들에게는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아브라함에게 그런 어처구니 없는 명령, 감당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립니까?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믿음이 어떠한지, 그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테스트 하신 것입니다. 1절을 봅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그 일 후” 란, 앞의 21장 사건 이후란 말입니다. 21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그의 첩 하갈과 그 소생 이스마엘을 집안에서 내쫓은 사건이 나옵니다. 내막은 이렇습니다. 이삭이 젖을 뗀 날에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첩의 소생 이스마엘이 사라의 아들 이삭을 놀린 것입니다. 이것을 본 사라가 남편에게 압력을 넣어서 첩 하갈과 그 소생 이스마엘을 집안에서 쫓아내버린 것입니다. 

하갈은 사라의 여종이었는데,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였을 때 아브라함의 첩이 되어 아들 이스마엘을 낳아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안에 이스마엘이 태어나면서 웃음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게 된 것입니다. 그 때부터, 하갈과 그 소생 이스마엘이 미워보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기회를 보다가 아들 이삭이 놀림을 받는 것을 포착하여 쫓아낸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병을 318명을 거느릴만큼 부자였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애굽에 내려가든지, 불레셋에 가든지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과 사라의 신앙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입니다. 내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만 사랑하였습니다. 첩의 소생을 미워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축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 담장을 더 놓게 쌓았습니다. 받은 축복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삭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스마엘을 내쫓은 셈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 너는 온 인류에게 축복을 나눠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복을 많이 받았지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습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신앙, 이기적인 신앙으로는 온 인류에게 복을 나눠주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수준의 신앙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100세 때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 걸어 잠급니다. 새로 지은 넓은 평수의 아파트 일수록 더 복잡해서 찾아가기 힘듭니다. 처음 가면, 지하 어디에 주차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잘못 주차하면, 엉뚱한 집에 들어갑니다. 관리인이 여기 저기 있어서 낯선 사람의 출입을 막습니다. 자기만의 성을 높이 쌓아가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도 걸어 잠급니다. 옆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릅니다.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또 만나지도 못합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 내 가족만 행복하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이런 것이 평온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건이 터질 때에는 그렇게 걸어 잠그고도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 김길태 같은 사람이 언제 나를 덮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혼자 다니기가 겁이 납니다.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풍요로워지면 삶의 질도 높아질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더 불안하고 삭막합니다. 

3. 이삭을 드리라,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소극적인 의미로는, 너의 소중한 것을 숨겨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너의 보배를 담장 속에 감추지 말라, 좋은 것을 혼자 움켜쥐지 말라, 혼자 누리지 말라, 너의 담장을 높이 쌓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의미로는, 너의 소중한 것을 내놓으라는 뜻입니다.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웃음, 기쁨은 혼자 누릴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삭을 내놓아야 합니다. 웃음을 우리 집안에 가두어 두지 말고, 담장을 헐고 집 밖으로 나가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타인의 행복과 기쁨을 위하여 집 밖으로 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제가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불편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입니다. 처음에는 “안녕하세요” 라고 가볍게 인사할 뿐 아니라, 날씨를 언급하며 가벼운 대화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때, 부담스러워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엘리베이터 층 수를 알려주는 숫자를 보면서 그 짧은 시간을 떼우곤 했습니다. 

저는 인사하는데, 상대방은 저를 보는척 마는척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낯선 아가씨가 타면, 저를 이상한 짐승을 대하듯이 슬쩍 보고는 외면해버리는 것입니다. 얼굴을 대하려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불쾌한지 모릅니다. 제가 그런 짐승이 아닌데 말입니다. 
세상이 이렇습니다. 얼마나 불안하고 삭막하고 서로에게 무관심한지 모릅니다. 
개인주의 때문에 공동체적 유대감이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팔을 움직이면 자기 힘으로 팔을 움직이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태양 에너지로 움직입니다. 태양에너지가 녹색식물에 들어가고, 그 식물이 음식을 통해 내 몸에 들어옵니다. 결국은 태양에너지가 내 몸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것이 힘이 되어 팔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나와 태양 에너지, 나 주위의 식물, 동물, 사람 모두 별개가 아니라 한 생명으로 결탁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죽으면 나도 죽는 것입니다. 그들이 병들면 나도 병드는 것입니다. 환경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한 것입니다. 

일본인 요시노 히로시가 쓴 <생명>이란 시가 이런 필연적 관계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 완결이 안 되는 / 만들어짐의 과정.
꽃도 암꽃술과 수술로 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 불충분하고
벌레나 바람이 찾아와 / 암꽃술과 수술을 연결하는 것.
생명은 제 안에 결여를 갖고 / 그것을 타자가 채워 주는 것.”

내가 누리는 생명, 영생, 나의 구원, 나의 기쁨, 나의 행복,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생명, 온전한 기쁨, 온전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내 놓을 때, 다른 사람과 나눌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연결될 때, 온전한 생명, 온전한 구원, 온전한 기쁨, 온전한 행복이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는 이삭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내놓아야 할 이삭, 여러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삭, 어쩌면 여러분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이삭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혼자 움켜쥐고, 혼자 누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놓으십시오.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이웃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내놓으십시오. 

4. 그런데 이삭을 내놓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제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일 수 있습니까? 그토록 소중한 것을 어떻게 내놓을 수 있습니까?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능하도록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여호와이레, 여호와 하나님께서 숫양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니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순종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축복이 됨을 믿으십시오. 말씀에 대한 100% 믿음을 가지십시오. 조금이라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수학적으로는 100-1=99입니다. 그러나, 영적공식은 다릅니다. 영적으로는 100-1=0입니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완전히 실패합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실 때, 베드로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 위로 걸어 예수님께 갔습니다.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였을 때, 바로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의심하면 실패합니다. 

100%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나에게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100%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실천 100%입니다. 
말씀에 대한 100% 믿음+순종 100%= 긍정 200% 믿음
긍정 200% 믿음은 기적을 이루어냅니다. 물 위로 걷는 기적, 이삭을 살리고 더 큰 축복을 받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셨음을 믿고 순종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5. 이삭을 내놓았을 때, 아브라함은 이삭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삭을 되돌려 받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17-18절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세 가지 축복입니다. 먼저, 아브라함 자신이 큰 복을 받습니다. 둘째, 그의 후손이 크게 번성합니다. 셋째, 그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담장을 헐고 여러분의 이삭을 내놓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큰 복을 받고, 여러분의 후손이 번성하고 잘 되며, 여러분의 후손을 통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는 축복의 가문들이 되실 줄 믿습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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