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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을 이기는 성도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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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이기는 성도 (마 4:1~11)
 
 
1. 시험 없는 인생은 없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험(페이라조, πειρά́ζω)”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일이 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시험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시험, 즉 테스트하다’는 뜻인데,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사랑이 참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 충성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동기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시험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말의 다른 의미는 ‘유혹’입니다. 즉 시험의 두 번째 의미는 부정적인 것으로 사람을 실패로 유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로 사람의 삶을 흔들어놓거나 옳은 길에서 떠나도록 위협하는 것으로서, 그 모양은 고난, 핍박, 유혹 등이며, 여기에는 정신적인 부담이나 걱정, 위험, 불확실성, 불신이 수반됩니다. 

즉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쪽,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사람을 끌어가는 것이죠. ‘내게 오지 않았으면 …’ 하는 것,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 면서 불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병이 들었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어떤 일에 실패했거나, 돈을 잃는 등의 손해를 보았거나, 혹은 失職을 했거나, 그리고 가까운 사람과 다투었거나 결별했을 때 등으로,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이나 삶을 흔들어 넘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의미의 시험은 사탄이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시험 역시 후자의 것입니다. 

이러한 시험은 세 가지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곽선희 목사는 말했습니다. “언제나(whenever), 누구에게나(whoever), 어디서나(wherever)!” 시험은 언제나 있습니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우리의 형편을 고려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약한 사람에게만 아니라 강한 사람에게도 시험이 찾아오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의롭게 사는 사람에게도 찾아오고, 슬픈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기뻐하는 사람에게도 옵니다. 그리고 시험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가정에도, 직장에도, 일반 사회에도, 교회에도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에도 있습니다. 시험이 없는 곳이라고 하여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지만 그곳에도 시험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육신을 입은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성도이기 때문에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는데, 이 시험이라는 것이, 그리고 사탄이 성도 여러분들을 가만 둘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2. 시험을 이기는 법

1) 예수님의 시험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 예수님은 갈릴리 북쪽의 나사렛에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요한의 사역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있던 요단강으로 가셨는데, 바로 이때로부터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리는 사건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곧바로 광야로 가셨습니다. 마가는 마가복음 1장 12절에서 “곧”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숨 돌릴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곧바로 광야로 가셨다는 것과, 거기서 40일 동안 禁食하셨음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광야에서의 40일 금식 끝에, 역시 숨 돌릴 여유도 없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그 시작을 하자마자 시험들만 한 일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시작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얼마나 주의를 하고 신경을 씁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시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당하신 예수님의 시험은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한 목소리로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즉 성령의 인도로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했습니다(마4:1, 눅4:1). 그러나 마가는 같은 표현이라도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아주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왜 성령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메시아로서의 공적인 사역을 막 시작하신 예수님을 시험의 현장으로 인도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세례 받으신 것과 같은 차원으로서, 스스로를 낮추어 사람과 같이 되셨기에 사람들이 당하는 시험을 예수님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시험에서 승리하심으로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에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임을 스스로 입증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을 통하여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한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셔야 했고, 아담이 잃었던 천국을 회복할 張本人이심을 드러내셔야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예수님을 시험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➊ 사탄은 예수님께서 육신적으로 가장 힘들 때 시험했습니다. 본문의 상황에서 예수님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40일 동안 금식하여 굶주리신 예수님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배고픔의 문제’입니다. 40일 금식! 상상이 되십니까? 그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3).”고 유혹했습니다. 아마 사탄은 조롱하는 투로 말했을 것입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렇다면 어찌해서 광야에 홀로 이렇게 굶주리고 있는가? 

하나님이 정말 너를 사랑한다면 굳이 40일이나 굶어가면서 사역을 준비하라고 하실까?” 이렇게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는 가정을 해가면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 즉 신분에 대한 시험이고,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 혹은 욕구와 관련된 것이었지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유혹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것으로 시험합니다.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입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생명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北韓 同胞가 그러하고, 아프리카 奧地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 물 부족, 양식 부족, 약품 부족과 그에 따른 여러 질병들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누려야할 것들이 없어 힘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는 생존의 욕구(Survival need), 사랑과 소속감의 욕구(Belonging need), 힘의 욕구(Power need), 자유의 욕구(Freedom need), 그리고 즐거움의 욕구(Fun need)라고 하는데요(William Glasser). 이런 기본적인 욕구를 다 채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굶주리신 예수님을 향해 사탄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하면서 시험했듯이, 사탄은 가장 기본적인 필요들, 특히 여러분들이 그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여러분을 시험합니다. “왜 하나님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네게 주지 않았을까? 지금 네가 기본적인 것조차도 갖지 못했는데도 왜 하나님은 모른 척 하실까? 네가 혼자서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도 도와주지 않는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시고 또 정말 너를 사랑하는 것일까? 네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면, 이렇게 굶주리도록,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이를 때까지, 이렇게 아프고 병들기까지, 왜 가만 계셨을까?” 이렇게 물으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 이 말씀은 모세가 광야생활이 거의 끝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입니다. 애굽에서 400년 넘게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세상의 가치관이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나무 열매도 없으며, 또 물고기도 잡을 수 없는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런 훈련이 40년 동안 계속 되었고, 이스라엘은 아무 부족함 없이 그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먹었고, 메추라기 고기도 먹었으며, 또 물이 없는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물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해서 사탄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떡이나 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먹을 것이 없어도 살 수 있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부인하면서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삶의 기본적인 것들이 없다고, 또 채워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극한의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며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리라는 확신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삶의 기본적인 필요들보다 더 우선이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 바랍니다.

➋ 예수님께서 첫 번째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본 사탄은 곧바로 예수님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고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의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이 “성전 꼭대기”는 “성전의 날개 벽, 프테뤼기온”이라고도 하고, 성전 외벽의 어느 지점이라고도 하며, “기드론 골짜기 위로 튀어나온 웅장한 행각의 지붕 가장자리”라고 하는가 하면, 요세푸스는 “높이가 약 450피트(137m)나 되는 아찔한 높이의 벽으로 성전 뜰 남동쪽에 있는 것(요세푸스의 고대사, 15장 412).”이라고도 했습니다. 

유대 傳承에 의하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이곳에서 골짜기 아래로 내던져져서 순교했다는 바로 그 까마득한 절벽과도 같은 곳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인도했고, 거기서 유혹의 말을 던졌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6).” 

이것은 시편 91편 11,12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을 “그 사자들을 명하사 … 지키게 하시리라.”고 약속하셨는데, 사탄은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에게 ‘과연 하나님이 이 말씀대로 너를 보호하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라’고 유혹했습니다. 사실 사탄의 시험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다칠 분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수종들 필요도 없지요. 그러면 왜 이것이 유혹입니까? 요즘은 보기 힘듭니다만, 제가 대학이나 신학교 다닐 때, 학교 높은 곳에 올라가 “민족 민주 통일”을 외치면서 뛰어내린 학생들이 간혹 있었고, 거기서 뛰어내리겠다고 정부와 학교와 경찰을 위협한 학생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 그가 영웅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본다면, 정말 효과적이고 아주 쉽게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탄은 바로 이 점을 노렸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사라! 인기를 끌어라! 사람들을 네 주위로 불러 모으라! 그리고 왕이 되어라! 당신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느냐?’

이 두 번째 시험은 예수님에게 섬기는 종으로, 십자가를 질 희생양으로 오신 것을 포기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쉬운 방법으로 사로잡아 인기인이 되고, 이 땅의 임금이 되 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로 가지 말고, 이렇게 쉬운 길이 있으니 이 길로 가라’고 유혹한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奸巧한 意圖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 16절을 인용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셨느니라(7).”고 하셨습니다. 옛적에 므리바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광야라는 환경이 더 이상 나아지지 않자, 하나님께서 정말 자신들과 함께 계시는 지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계신 증거를 요구했지요. 

그때, 하나님은 바위에서 물을 내심으로 자신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그들이 자신을 믿지 않고 시험한 것에 대해 징계하셨습니다. 광야가 끝난 후, 모세는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에게 이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다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신6:16). 즉 가는 길이 험하고 힘들다고 하나님이 계시니 안 계시니 의심하고, 자기가 보기에 편한 길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여러분에게 ‘쉽게, 편하게, 적당하게 살라’고 유혹합니다. 도덕적인 기준, 신앙적인 가치, 有益無益의 여부, 남들이 어떻고말고. 그리고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 다 무시하고 ‘쉽고 편하고 빠른 길로 가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편하고 쉽고 빠르면 무조건 좋아하며, 수고와 희생을 싫어하는 便利主義와 安逸主義가 팽배해 있고, 인기와 명예와 권세를 얻기만 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썼는지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길로만, 주님의 말씀대로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 길이 광야 길이고,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

➌ 두 번째 시험에서 실패한 사탄은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예수님께 天下萬國과 그 모든 榮光을 보여주었습니다. 名譽, 權力, 財物 등 사람들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보여준 것이죠. 그러면서 사탄은 예수님에게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제안했습니다(9). 사탄은 마치 자신이 온 세상의 주인인 양, 예수님이 자기에게 절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豪言壯談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 거짓이죠. 왜냐하면 사단은 그것을 줄 權限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사탄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그에게 절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절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 번째 시험은 ‘누구를 섬길 것이냐’ 하는 시험입니다. 그리고 섬길 대상에 따라 이 땅의 복, 즉 영광이 달라진다는 유혹입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신명기 6장 3절로 대답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10).”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좇는 자는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경고를 무시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을 뿐 아니라, 모세 대신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했던 사탄은 예수님께도 자기와 한편이 되자고 유혹하면서, 그렇게만 하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누리게 해주겠다고 유혹한 것이죠.

이제 사탄은 여러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절하기만 하면, 그리고 죄와 타협하기만 하면, 명예와 부를 누리게 해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에게 욕심이 있는 한 이 유혹은 항상 달콤한 유혹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욕심이 무엇입니까? 보다 높이, 보다 넓게, 보다 크게, 보다 많이! 높은 직위, 넓은 땅과 집, 많은 재물 …. 사탄은 이러한 욕망을 이용하여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너는 더 가질 수 있어. 너는 더 높이 오를 수 있어. 너는 남들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어. 단 내게 절을 해야 해! 그리고 편법을 써야 한다는 것이 걸리긴 하지만, 그러나 걱정하지 마. 다들 그렇게 하니까!’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서 죄와 타협합니다. 그러나 잠시는 괜찮아 보이지만, 사탄에게 머리 숙이고, 不法과 便法을 행한 것은 결국 다 드러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탄은 여러분이 아직 가지지 못했다고 속이고, 그래서 자기에게 절하고,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그것을 가지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그것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가진 것을 빼앗고, 여러분을 자신의 노예와 죄의 노예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셨듯이, 여러분들도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선언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타협이나 불법이나 편법을 쓰지 않겠다’고 외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방법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사탄은 예수님을 세 가지로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➀ 첫째는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대로 예수님은 시험당하기 전에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whenever), 누구에게나(whoever), 어디서나(wherever)” 다가오는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기도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힘이 생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노인이라도 힘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건장한 壯丁이라도 힘이 없습니다. 혼란스럽고 답답할 때 기도하면 지혜를 주셔서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시고 역사합니다.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로 모든 시험을 이기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➁ 두 번째로 예수님은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말씀으로 시험을 이긴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말씀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탄의 시험은 성경퀴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이 삶이 되고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자신의 신념이 되고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와 각종 모임 때 전해지는 말씀을 귀담아서 잘 듣고, 그것을 실천하고 되새김으로서 말씀의 인격, 말씀의 영성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은 시험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➂ 세 번째로 예수님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시험을 이겼습니다. 여러분들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만 시험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世上이 얼마나 惡합니까? 또 人生이라는 것이, 우리의 肉身이라는 것이 얼마나 弱합니까? 그리고 우리는 本性的으로 하나님보다는 世上的이고 人間的인 것들을, 善보다는 惡을 더 좋아합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은 시험을 이기기에는 너무나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을 위해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세상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지만, 성령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시고, 모든 시험을 이기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시험을 이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처럼 하면 이긴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고 했습니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이죠? 시험은 결코 기쁜 것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고, 골치 아프고, 괴롭고, 슬픈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고보는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왜요? 시험 속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험은 여러분을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복주기 위해, 상주기 위해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통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능력과 기도의 힘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험은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고, 여러분을 믿음 위에 바로 서게 해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그러므로 이제 시험을 당해서 실망하거나 落心했던 태도를 버립시다. 不快하게 여겼던 것, 짜증내고 忿怒했던 것, 하나님을 향해 ‘왜 나에게 이런 시험을 주십니까?’ 하면서 怨望했던 그 모든 것을 다 버립시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시험을 기뻐하고 시험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으려면, “기도, 말씀, 성령 충만!”이라는 믿음의 무기를 잘 갖추어야 합니다. “시간 불문(whenever), 사람 불문(whoever), 장소 불문(wherever)”하여 다가오는 시험!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시험을 이깁니다. 말씀이 그의 인격과 삶에 녹아 있는 사람은 시험을 이깁니다. 성령님과 친밀하고 충만한 성도는 시험을 이깁니다.

오직 기도, 말씀, 성령 충만을 갖춘 사람만이 시험을 이기고, 그 시험이 주는 유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도하여 시험을 이기고 시험의 유익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말씀으로 시험을 이겨 그 유익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성령 충만하여 시험을 이기고 그 유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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