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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시 1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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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시 139:1~6)


금년부터 우리교회 새벽기도회는 창세기의 말씀부터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인도자가 바뀌어도 본문은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자손을 번성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생가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받을 때 이미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기에 이제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초조하게 지내고 있을 때 아내가 제안을 합니다.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엉겁결에 승낙을 했고, 결국 아브라함과 하갈사이에서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러자 하갈은 태도가 완전히 돌변합니다.  

이제 자기가 사라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사라를 멸시합니다.  화가 난 사라는 하갈을 학대합니다.  그러자 이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하갈은 집을 나옵니다.  그녀가 광야의 길을 헤매며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후손이 번성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뜻밖의 위로와 힘을 얻었던 하갈은 하나님을 만난 그곳에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창16:13)  

하갈은 자기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살피시는 하나님,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나를 보살피시는 살아 계신이의 샘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갈이 발견한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처음으로 살피시는 하나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살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역사와 신실한 신앙인의 삶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바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믿음과 신앙으로 고백한 다윗의 시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매구절마다 '나를 살피신다, 아신다, 감찰하신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고, 이것이 다윗인생을 지탱하고 힘을 주었던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또한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고백이고, 신앙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를 믿는 백성들의 무엇을 살피실까요?  다윗은 여기에서 3가지 살피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첫째는 나의 생각입니다. 

본문 1절,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여기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생각을 아신다고 말합니다.  밝히 아신다고 말합니다.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신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생각을 살피신다는 말은 나의 속을 아신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겉을 봅니다.  아니 겉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속까지도 보시고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마음, 생각, 나의 속을 꿰뚫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의 생각과 속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인간의 모든 것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생각한대로 다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이 말을 낳고 말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인격을 낳고 인격이 삶을 낳는다'  참 귀한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생각한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고, 행동이 계속 반복되면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습관이 인격을 만듭니다.  바로 그 인격이 그 사람의 삶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처음부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리처럼 계속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의 처음과 끝만 한번 연결해 보십시오.  '생각이 삶을 만든다'것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결국 어떤 삶을 사느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로마서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12:3)  

로마서는 크게 2부분으로 나눕니다.  전반부는 11장까지로서 주로 교리를 강조하고, 후반부는 12장부터 마지막까지로서 실천, 삶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먼저 교리와 신학을 말한 뒤 12장에 들어와 그리스도인의 실천하는 삶을 강조하는데, 그 중에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을 말했습니다.  인간의 생활, 특히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은 모두 생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생각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의 권면 속에서 우리는 지혜로운 생각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먼저 마땅한 생각이고, 은혜로운 생각이며, 그리고 믿음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땅한 것이 아니면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속은 은혜로운 생각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는 것을 지금 마치 내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생각은 넓게 보는 것이고, 멀리 보는 것이며, 깊이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근시안적으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멀리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멀리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각은 10년, 20년을 앞서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장래를 생각하면서 오늘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생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나의 생각을 살피십니다.  그래서 이제 지혜롭게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것을 생각하고, 은혜로운 생각을 하고, 무엇보다도 믿음의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나의 말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만 아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의 말도 살피고, 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소통의 존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사람에게만 언어를 주셨고, 사람은 말로 소통하며 자기의사를 표시하면서 힘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로 대화하고 소통합니다.  사랑이 소통이고, 교제가 소통이고, 심지어 설교도 소통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것이 바로 말인데, 어떤 말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갓난아이의 말이 그렇다고 봅니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옹알이를 합니다.  그러면서 뭔가 자기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아이의 말은 사실 제대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그런데도 신통하게 그 말을 엄마가 알아듣습니다.  아이가 무슨 옹알이를 해도 그 말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말로만 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다윗이 나의 생각을 아신다고 말하면서 여기 '통촉'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통촉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형편을 헤아리고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말을 알아듣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위에서 낮은 우리의 소리를 선명히 알아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엄마와 같이 옹알이하는 우리의 말까지도 다 알아들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가 말하며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보통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옹알이를 들으시고,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하나님을 통해 힘과 위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에 칠흑 같은 어두움의 때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갔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잘 몰랐습니다.  하루도 눈물 없이는 지내기가 힘들었던 세월입니다.  원통하고 분하기도 했고, 답답하고 괴롭기도 했습니다.  그런 힘들과 어려운 때에 다윗은 나를 살피시고, 나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이 존전 앞으로 달려가 때론 부르짖으며, 때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말,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일으키셨고, 힘을 주셨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나의 말을 아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출애굽시대에 광야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열두지파의 대표를 뽑아 가나안을 탐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가 달랐습니다.  특히 열지파의 대표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백성들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으로 보고하며 백성들을 설득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평하기 시작했고,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도저히 들어가지도 못할 가나안으로 어떻게 들어가겠느냐고 말합니다.  이런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의 말이 하늘에 사무칠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민14:28)

여러분, 이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지만 또한 두렵고 떨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온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들은 대로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간다고 말하는 자는 가고, 못 간다고 말하는 자는 못 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한다고 말하는 자는 하고, 못한다고 말하는 자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 축복을 말하면 축복을 주고, 만약 저주를 말하면 저주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대로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살피십니다.  이런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위로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말, 좋은 말,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말한 대로 하나님이 시행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말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날마다 기도하고, 좋은 말, 바르게 말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나의 행위입니다.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기 하나님이 나의 행위를 아신다고 말합니다.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신다고 말합니다.  여기 '익히'라는 말은 '확실히, 또렷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가 확실히 드러나고, 또렷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도 아시고, 말도 아시지만 행위를 아십니다.  생각, 말, 행위 이것은 곧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은 전부 드러나고,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통찰하고, 살피고,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그의 이 고백은 2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그가 범죄의 행위를 아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그가 이런 죄를 범할 당시 그는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누구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행위를 또렷이 보고 계셨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의 소리가 들려올 때 그가 겸손히 엎드린 것도 하나님이 아시고, 그분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바로 이것을 깊이 깨달은 뒤에 여기 나의 행위를 아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참되게 살기를 다짐합니다.  

그래서 139편 마지막에는 그의 결단과 헌신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이것이 바로 다윗의 신앙입니다.  

신앙인도 잘못할 수 있고,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나의 행위가 완전하지 못합니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을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연약한 행위를 인정하고 다윗처럼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해 달라고 간구하고 다짐해야 합니다.  날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주를 의지하며 악을 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 행위라는 말의 다른 측면은 그의 시련과 아픔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정말 다윗처럼 신실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에 대해 신실했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신실했습니다.  그는 나라가 어려울 때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습니다.  비겁하고 도망가거나 움츠려 들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울왕이 번민하고, 고민하며 심한 우울증으로 육체의 고통을 받을 때 가까이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입니다.  사울에게 다윗은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그는 광기가 발동하여 독을 품고, 온 병력을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덤벼들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너무도 아쉬웠고, 속상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선한 행위를 한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통과 시련이었습니다.  그때가 참 힘들었던 생애였습니다.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자기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때 다윗이 발견한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나를 살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나의 행위를 아시고, 나의 사정과 형편을 익히 아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중심을 아신다는 믿음이 고통과 시련의 때를 이기고 감당할 수 있는 위로요 힘이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지금 다윗은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를 진정 살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갈처럼 그의 인생에  '브엘라해로이'를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렵고 힘드십니까?  속상하고 답답하십니까?  아무도 나의 사정을 몰라주는 것 같아 외롭고 고독하십니까?  그럴 때마다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형편과 행위를 아시고, 눈물과 고통을 아시고, 나의 억울함과 곤란함을 기억하십니다.  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엘리사 호프만(Elisha Hoffman)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3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레바논의 작은 교회에서 평생 헌신적으로 목회를 했습니다.  그는 설교 준비나 찬송시를 짓기 위해 서재에 있는 시간 외에는 성도의 가정을 돌아보며 상담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1894년 이른 봄 어느 날, 그는 가난한 성도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때 그 집 부인이 무슨 일엔가 비통해 하면서 들어오는 목사를 보자 통곡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의 가정에 시련이 닥친 것입니다.  선하게 살던 가정에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그는 간절히 기도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힘들고 어려운 성도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무거운 짐, 우리의 곤고한 상황, 나의 억울하고 힘든 모든 일들을 하나님은 아시고, 살피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돌아보신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는 집에 들어와 바로 시를 적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노래가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예수..'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브엘라해로이'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을 아시고, 나의 말을 감찰하시고, 나의 행위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굳게 믿으며 이제 나의 악한 행위를 내려놓고 선한 길을 가야 합니다.  또한 나의 약한 모습도 내려놓고 주님의 돌보심속에 힘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께 늘 지혜로운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께 가장 선한 말, 기도와 찬송으로 승리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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