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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삶을 사는 기초(7) : 은혜 (창 26: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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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삶을 사는 기초(7) : 은혜 (창 26:6~15)
  

달나라에 우주선을 보내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사람을 가리켜 사람들은 스스로 위대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위대함의 뒷면에 가려있는 사람은 너무나 보잘 것이 없다는 것을 잊고 산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산 자로서 신앙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뒷면에는 부끄러운 모습이 있다. 못된 습관과 기질 하나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 

창12:12을 보면 기근을 만난 아브라함은 정말 위기 앞에서 한 없이 약해져 있다. 아내를 누이라고 부르기로 작정했는데 이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누군가 자기와 자기 아내를 해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위기 모면술이 오히려 어려움을 더 크게 직면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가까스레 가정 파괴의 위기를 벗어난 아브라함이 되었지만 그는 창20:1~18을 보면 그랄에 거주하면서 다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이런 바보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사람의 삶에서 부딪힌 경험은 오늘을 사는 교훈이 되는 법인데 건망증에 걸린 사람처럼 또 다시 아내를 누이라고 말하는 일을 계속한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이야기는 오늘 본문인 창26:1 이하의 말씀이다. 이런 임기응변적 위기 모면술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생애에만 기록되고 거기서 끝나야 했다. 그런데 그 아들 이삭도 그랄에 거하며 블레셋 사람 앞에서 그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말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성경을 보면 아버지의 장점인 믿음이 이삭에게 전달되고 계승되었다. 그런데 이 부자사이에서 ‘이럴수가’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아버지의 약점인 임기응변술이 아들 이삭에게도 계승되었다. 

나는 그 동안 이 반복적인 것이 못마땅했다. 장점만 기록할 일이지, 이런 이야기는 약점에 관한 기술이 아닌가? 왜 적혀 있는가?

계22:18~19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렇다면 맘대로 가감해서는 안된다. 족장들의 장점을 기록한 것이 마땅하다면 그들의 약점도 기록하는 것이 마땅한 이유인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형편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도대체 누구인가? 인간은 죄인이다. 그리고 그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은 헤세드, 즉 사랑이다. 오늘 본문은 바로 하나님을 알려준다.

  
1. 인간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임을 알려주신다.

창26:9~11을 보라. 아비멜렉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남편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본다. 그때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어찌 아내를 너의 누이라 하였느냐?”고 말을 하면서 우리가 잘못 알아 남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범할 뻔 하였다고 한다. 창26:11을 보면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이삭의 가정을 무너지는 자리에서 건져 내신다. 그리고 왕의 입을 통해 돌봄의 명령을 내게 한다. 이것이 언약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다루는 신실한 모습이다. 

창12:1~3에서 언약을 맺은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고 하셨다. 못난 처세술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삭에게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자신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되시려 아비멜렉을 움직이신 것이다.
  

2. 인간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받은 자손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임을 알려주신다.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26:24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농사를 지어 100배의 소득을 얻은 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함께 하심 때문이며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하신 것처럼 여호와가 복을 언약하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복이 있으라.’고 언약하신 하나님이기에 그 자손은 당연히 복을 받고 있다. 나의 못난 모습과 상관이 없다. 복을 받은 것 같지 않아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하나님을 믿고 또 대를 이어 하나님을 믿는다면 아브라함을 위하여 이삭에게 복 주시듯 복을 주신다. 

우리 주변에는 사람의 생각으로 복 받을 것 같지 못한 이들이 복을 받고 있음을 많이 본다. 생김새며, 말씨며, 행동 하나 하나가 너무도 교양이 없는데 총장님의 아내요, 사장님의 아내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나의 약점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느냐가 중요하다. 실패하고 이혼하고 배반하는 등 이런 연약성이 문제가 아니다. 언약을 받은 백성이 되어 사느냐가 중요하다. 누구든지 복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받은 자녀는 복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26:28, 눅22:20에서 새 언약을 받았다. 새 언약의 떡과 잔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복의 사람이 될 일만 남아 있다.
  

3. 인간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임을 알려 주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용하셔야 한다. 그 아들 이삭을 사용하셔야 한다. 이 가정이 민족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지면 열방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복을 받게 되는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부르셨을 때 창12:3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아브라함에게만 복을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온 세상 사람이 잘 되는 것이었다. 죄와 우상의 땅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듯이 온 세상 사람들도 구원해 내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사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연약성의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아브라함과 이삭, 심지어 사기꾼이 되어버린 야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열방의 온 세상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뜨겁기에 하나님은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더라도 구원에 열심을 품으셨다. 구원 행동을 중단할 수 없기에 당신의 계획을 진행시켜 갈 뿐이다. 그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뜨거운 열심과 행동이 약점을 지닌 사람을 사용하신다. 버려도 될 것 같은 사람, 못난 버릇을 물려주는 부전자전 가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쳐서, 두드려서, 변화시켜서, 깨쳐서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아브라함의 씨를 이삭, 야곱, 요셉을 통해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예수를 보내신다. 그리고 그 아들을 죽게 하기까지 하신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약점 많고 연약한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 같지 않은 연약한 자를 위해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오셔서 대신 죽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람을 확증시키는 이 그리스도의 죽으심, 얼마나 큰 은혜인가? 사실 연약한 내가 쓰임 받는 것은 한 마디로 은혜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받을 자격이 없는 나에게 구원과 축복, 영생과 기름진 복을 주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 분의 신실하심이 베푸시는 손길이다. 거기에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세상에서 이 보다 큰 은혜는 없다. 이 보다 큰 사랑은 없다. 그래서 내가 나 된 것은 나의 실력이 아니다. 내가 정상에 서고 내가 오늘까지 호흡하며 살아있는 것은 나의 재능이 아니다. 죄 때문에, 연약성 때문에 벌써 죽었어야 할 나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고전15:10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라고 증언하였다. 정말 감사하신 은혜다. 사울이 바울 되고 핍박자가 전도자가 되고 약점과 실수 투성이의 사람이 새 사람으로 쓰임 받는 것은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은혜다. 갚을 길 없는 은혜다. 

신자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은혜에 젖고 은혜 안에 살고 은혜를 전하고 은혜를 느끼는 것이 신앙 생활의 기초다.  

은혜를 사모하라. 은혜를 더욱 구하라. 은혜에 목욕하라. 

교회는 은혜의 목욕탕이다. 은혜를 전하고 은혜 때문에 울고 춤추고, 은혜 때문에 감격하는 당신이 되어야 신나는 신앙 생활이 열린다. 진짜 크리스챤이 된 것이다. 은혜를 모르면 다 모르는 것이다. 은혜를 알면 다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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