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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린 문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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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 (계 3:7~13)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오늘은 여섯번째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빌라델비아는 B.C. 159~138 버가모의 앗탈루스(Attalus) 2세, 필라델푸스 (Philadelphus)가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빌라델비아’라고 불렀던 곳입니다.   그리스어로 사랑이라는 말 ‘필리아’ Φιλία와 형제라는 말 ‘아델포스’ άδελφός 두 단어의 합성어로 ‘형제사랑’이라는 좋은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책망은 없고 칭찬만 들은 좋은 교회로 알려져 오늘날도 세계 곳곳에 이 좋은 이름을 사용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시는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22장22절을 보면,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신 하나님은 유다의  궁내대신이었던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에게 정권을 맡기고 예루살렘 시민과 유다 왕국의 아비가 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실 때 ‘다윗의 열쇠’를 주신다는 말로 비유하셨습니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신 왕 중의 왕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의 통치자이심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로부터 왕권을 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으로 오셨고 약속대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으로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절대 주권을 가진 그분이 이 교회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활짝 열린 문이 있습니다.   적은 능력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지켰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힘이 있어야 큰 일을 한다고들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직 사람의 힘만 의지하는 것은 인본주의적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이 힘이 있어서 대제국 애굽에서 탈출하였으며 가나안의 족속들과의 싸움에서 이겼을까요?   힘이 있어야 이긴다는 생각을 했다면 히브리인 자신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자신들이 더 잘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을 통과하고 바란 광야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광야 여행은 약 1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 앞에 있으니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두려운 마음이 있던 그들은 먼저 정탐군을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고 40일간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백성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12명의 정탐군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한결같이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하였고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가나안 사람들을 이길 수 없으니 포기하고 돌아가자 선동하였습니다.   

10명의 정탐군들이 보여준 부정적인 태도와 그들의 말을 듣고 밤을 새워 통곡하며 절망에 빠졌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힘과 자신들의 힘을 비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 말처럼 가나안 사람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메뚜기떼처럼 초라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체격도 건장했고 강력한 무기와 든든한 성벽을 쌓고 사는 정착민이었지만 자신들은 무기도 변변찮고 전쟁의 경험도 없는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1년이 넘게 험한 광야를 통과해온 지친 나그네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처지를 볼 때 아무리 생각해도 가나안 족속과 싸워 이긴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은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불가능했음을 왜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정탐군들의 보고를 듣는 순간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가나안 사람들의 힘이 더 크게 보여 두려운 생각이 온 이스라엘 백성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들어가라 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의 문이 닫히고 영의 눈이 닫혀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그 열린 문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후  가나안 정복을 바로 눈 앞에 둔 신세대들에게 주는 모세의 간절한 당부와 명령이  신명기 7장17절 이하에 나옵니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그들을 두려워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너는 그들을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라’ (신7:17-21)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나보다 큰 상대를 만났을 때 내가 가진 적은 능력은 나를 오그라들게 만드는 부정적 생각을 가져다 줍니다.    내가 가진 것과 상대편이 가진 병력과 화력을 단순비교하면 싸우기도 전에 겁이 나고 싸울 의지를 잃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너희 마음에 우리가 어떻게 우리보다 숫자가 더 많은 가나안 사람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염려하게 될 것이지만 그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4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기 전에 먼저 지난 날 우리와 함께 하셨던 능력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의 적장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나간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갔습니다.   다윗의 형들이나 사울 왕이 보기에 다윗은 도무지 골리앗의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당사자 골리앗이 볼 때 우습기 한이 없는 상대가 아니었겠습니까?   나무 막대기를 들고 겁도 없이 싸우러 나오는 소년 다윗을 본 골리앗은 제 정신이 아닌 아이를 대하듯 업신여기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골리앗 보다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싸움의 촛점을 맞추고 나갔습니다.    어차피 다윗이 거인 골리앗과 맞붙어 씨름을 하거나 격투기를 하려는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물맷돌을 던져 상대방의 급소에 명중시킴으로 일격에 쓰러뜨리려는 전략을 가지고 나간 싸움이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이 싸움을 이기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하며 힘을 다해 돌을 던졌습니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을 의지한 결과 싸움은 다윗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교회였지만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책망할 것이 없고 칭찬거리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복음이 마음 밭에 떨어지면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았으며 힘을 다해 그 말씀을 지켜 살려고 하였습니다.    힘이 약하다 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쉽게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지금으로 말하면 교인 숫자도 많지 않고 세상에서 유명하거나 돈이 많은 부자들도 없는 동네 작은 교회 중의 하나였습니다.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보니 예배당 건물도 작고 시설도 변변치 않은 평범한 교회입니다.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큰 집회나 행사를 여는 것은 마음 뿐이지 실행에 옮길만한 능력이 없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 교인들은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들처럼 부유하지 못하고 세상이 알아주는 뛰어난 인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럽히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은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교인들이 많아져 재정이 넉넉해지면 더 큰 건물을 짓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교회가 점점 커지면 작았을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는 큰 교회가 작은 교회들이 할 수 없는 큰 일을 할 수 있으니 장점입니다.    그렇다고 능력이 없는 작은 교회는 실패하였고 능력이 많은 큰 교회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의 일곱 교회들을 차례로 살펴보며 깨달은 것은 예수께서 보시는 관점은 사람의 관점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가진 건물의 크기나 교인의 숫자와 재정적 능력 등은 교회가 교회다움을 드러내는데 결정적인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보시는 기준은 그런 외형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거짓없는 믿음과 삶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교회들에게 ‘내가 너의 사정과 형편을 알고 너의 행위를 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능력은 학력이나 재력이나 권력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없어도 얼마든지 사랑의 능력과 믿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은 그 능력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사람들로부터 홀대를 받는 교회인 듯 보입니다.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시던 주님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사단의 회는 사단의 앞잡이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던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지만 유대인이면 유대인답게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 받아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아 죽게한 자들이니 진정한 유대인이라 할 수 없고 자칭 유대인이며 사단의 회라는 오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에서 언급했던 사단의 회, 즉 자칭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의 훼방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됩니다.     일찌감치 소아시아 지방으로 이주하여 자리 잡고 있던 부유한 유대인 상인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아시아 지방에 전파되어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자 유대인들은 가진 재물과 권력을 남용하여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가난한 기독교인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돈으로 현지 권력자들을 매수하여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게 하였고 돈으로 신앙 양심을 사고팔도록 강요하거나 유혹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나 교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깨끗한 믿음을 지켰으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이 빌라델비아에서도 일어납니다.    부유한 유대 상인들이 회당을 독점하고 기독교인들의 회당 출입을 방해하거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가난한 기독교인들을 멸시하고 인격적인 모독으로 핍박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고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신실한 교인들이었습니다.    

이런 교회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약속이 무엇입니까?    자칭 유대인이라하나 거짓말하는 몇 사람을 네게 주어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게 하리라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훼방하던 그들이 오히려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 숙이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런 사건을 통해 주께서 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시편 23편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노래했던 다윗의 찬송이 생각나십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괴롭히고 멸시하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을 위한 잔치를 베푸시고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심으로 다윗을 존귀한 자로 인정하셨습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인내의 말씀을 잘 지켰으니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이 시험은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사람들을 시험할 때라고 합니다.    보통 어려운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그러나 주의 인내의 말씀을 잘 지킨 사람들은 그 시험을 잘 이기도록 지켜주신다는 보장을 주십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이 하시는 약속이니 분명히 지키실 약속입니다.    그 시험의 때가 길어지기 전에 속히 임하여 신실한 사람들을 건지실 것이니 네가 가진 그 믿음을 굳게 잡아 어느 누구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격려하십니다.    지금까지 잘 견디었으니 조금만 더 견디고 굳게 잡으면 됩니다.    

찬송가 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불 같은 시험이 많지만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이 크시니 우리가 이기고 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시험하실 때 불 같은 시험으로 단련하십니다.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를 때 각각 그 공력이 나타날 것이니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들은 그 시험에 불타 없어집니다(고전3:12).    그러나 누구든지 불 같은 시험의 날에 불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상을 받게 됩니다.   금 같은 믿음으로 지은 집들은 도리어 정금 같이 나올 것이니 이기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굳게 잡고 따라가기 바랍니다.   

솔로몬이 세운 구약의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왕상7:21).   야긴은 오른쪽에 보아스는 왼쪽에 세운 기둥인데 야긴은 ‘그가 세우신다’는 뜻이며, 보아스는 ‘능력이 그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두 기둥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세우시고 능력이 오직 그분에게 있다는 고백이 담긴 증거의 기둥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고된 시험과 어려움 앞에서 비록 적은 능력이지만 그것으로 주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성도, 하나님의 주인되심과 그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증거하는 신실한 간증자들이 하나님 집의 든든한 기둥들입니다.  

끝으로,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빌라델비아가 주후 17년 대지진으로 무너진 후 로마제국이 이 도시를 재건하였을 때 Neocaesarea, 즉 Caesar’s New City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고 이긴 자들에게는 로마 황제의 이름보다 더 큰 만왕의 왕 하나님의 이름을 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진 분은 새로운 이스라엘 새 예루살렘 성전의 열쇠를 가진 분으로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 열쇠로 복음의 문을 열으셨으니 어느 누구도 닫을 사람이 없고 만 천하에 주의 복음이 전파됩니다.    그 열린 문으로 만국 백성들이 새 예루살렘을 향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고 다시는 세상으로 나가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십니다.     

어려운 환경과 시험 가운데 인내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주의 자녀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의 집에 든든한 기둥들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지고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 새겨지는 영광스런 상급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연약하나 주님은 강하십니다.   내게 있는 적은 능력으로도 이 큰 은혜를 누리게 하시니 그 힘은 주께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십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넉넉하게 받는 주의 종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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