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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벤에셀 (삼상 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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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 (삼상 7:12~14) 
 
 
지난 2월 18일이 우리교회가 창립된지 2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기도 중에 여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에벤에셀'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했고 오늘 함께 나누게 된 것입니다.

'에벤에셀'은 사무엘이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그 승리의 전투장소인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기념비를 세우고 붙인 기념비의 이름입니다. 그 뜻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0년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대적인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 참패를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삼상 4:1을 보십시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20년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20년 전 블렛과의 전투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이며 제사장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때 불레셋군대에 의해서 이스라엘 군인이 3만4000여명이나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엘리 제사장은 기가막혀서 의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이번 전투에서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다시는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투할 생각이 싹 달아날 만큼 확실한 대 승리는 거두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처럼 20년전의 실패와 20년후의 성공 사이에는 무엇이 달랐습니까?  분명하고 확연하게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이 다른 것을 찾는 것은 오늘 20년이 된 우리교회에 주신 대단한 의미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1. 우상타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20년 전에 어떻게 했습니까? 엘리 제사장은 영적으로 무기력하고 비둔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세상 중심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먹고 마시고 여색을 추구하는 것을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도 우상을 섬겼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서 죽었는데 저승사자가 나타나 천당과 지옥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선택이 가능하다면 두 군데를 비교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천당을 보니까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만 하고 영 따분해 보였다. 그런데 지옥을 보니까 디스코장에서 늘씬한 아가씨가 춤을 추고 있고 사람들이 몹시 흥겨워보였다. 속으로 나는 아무래도 지옥체질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갔다. 그런데 예전에 보았던 그 지옥이 아니라 몹시 뜨겁고 고통스런 곳이었다. 그래서 저승사자에게 왜 그 때 보여준 것이랑 다르냐고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저승사자가 말하길 음 그건 홍보용이었어. 라고 하더란다.
홍보용에 속지 맙시다. 

이시대는 말씀이 희귀하고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우상을 섬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고 따랐던 이방신들 중에는 바알과 아스다롯이 가장 인기있는 신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부부신으로 생산의 신이요, 음란한 신이었습니다. 또한 몰렉신은 어린아이를 희생제물로 삼는 무서운 신이었습니다. 이러한 우상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며 그 신들에게 희생되는 생명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20년 전에는 이것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두 번 째 전투에서는 사무엘의 명령대로 바알과 아스다롯을 다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겼습니다. 미스바에 모인 백성들은 함께 회개하면서 함께 기도드리고 함께 신앙을 회복해가며 신앙공동체를 세워 나갔습니다. 

2. 기도가 살아 있었습니다.
  
20년 전에는 기도회없이 전투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앞장을 섰고, 언약궤까지 앞세워 전투를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기도 없이 전쟁에 나가는 것은 편리주의를 쫓아가는 것입니다. 땀흘려 기도하는 것은 어쩌면 옛날에 가마솥에 밭을 짓는 것과 같이 불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마솥에 하는 밥은 불을 조정하기만 하면 9가지 맙맛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한 전기밥솥은 오직 한가지 밥맛만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씨없는 수박, 씨없는 감, 씨없는 포도 등등이 나옵니다. 왜요? 편리하라 그렇습니다 그런데 씨가 없다는 것은 곧 종자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씨를 제거해 버렸으니 그것이 과연 진짜 과일이겠습니까? 생식능력을 재거해버렸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온전한 생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씨없는 과일처럼 기도없는 그리스도인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인생은 편리할지는 모르지만 인생의 9지 맛을 낼 수 있는 그런 오묘함을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은혜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년 후의 블레셋과의 전투는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온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기도총회를 열였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 가장 많이 도우셨습니까? 기도할 때입니다. 그래서 시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셨습니다. 대하 14장을 보면 구스 사람 세라가 100만 군대를 거느리고 유다를 공격했을 때도 아사왕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기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원리가 적용된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없이 무슨 일을 먼저 시작하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원치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일을 앞에 놓고 미스바의 기도로 준비해야만 할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악한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3. 기념비를 세우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실패했을 때도 실패의 기념비라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왜 실패했는지를 거울로 삼게 됩니다. 다음에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신들은 실패했을지라도 후세들이라도 실패하지 않기를 위해서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20년 전의 전투를 기록하고 있는 삼상 4장를 눈을 씻고 보아도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오직 한 여인 엘리제사장의 며느리이며 브느하스의 아내가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산기가 있었고 남편도 죽고 시아버지도 죽고 언약궤도 빼앗겼다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됨으로 아들을 해산하고 죽어가면서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 즉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한 것 뿐입니다.
실패한 역사도 역사입니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입니다. 이것을 지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박물관을 만들고 기념관을 만들고 역사교훈장으로 삼아야 합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다 쓴 다음 그 참고로 했던 옛 기록들을 싹 없애 버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본래 있던 정신 사상의 모습이 그만 잃어져 버렸습니다. 김부식은 원래 중국 숭배주의자이므로 그의 눈에는 우리 옛부터 오는 말이나 생각이 모두 하찮한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부끄럽다 하여 모두 한문식으로 고쳐 버리고 그 남은 모습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삼국사기"는 옛날 일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모르게 가려 버린 것이 더 많은 지도 모릅니다. 김부식만 그랬겠습니까? 지금도 그렇습니다. 새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전엣 것은 그 자취를 알 수 없이 없애 버리려 합니다. 그래야 자기 공로가 드러나는 것 같아서일까요? 그러나 그런 문화는 발전이 없습니다. 문화는 비록 원수의 것이라도 보존을 하는데서 발달하고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2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20년의 역사 가운데는 자랑스러운 것도 있겠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우리교회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은 싸움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해 감사하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을 영웅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 승전의 자리에서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광을 결코 자기에게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승리하였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벤에셀의 기념돌를 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일을 시작할 때에 기도드리는 일이 중요한 것처럼 일을 해내는 과정 가운데서도 기도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일을 끝낸 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급할 때는 기도하면서 애원하지만 일이 끝나면 은혜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벤에셀에 '도움의 돌(stone of help)'을 세운 후 오가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잘 섬기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이렇게 할 때 오늘 말씀에 무어라고 했습니까?13~14절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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