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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는 만나처럼 (출 1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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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만나처럼 (출 16:1~12)

  
‘필립 얀시’라는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작가가 있습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지성인입니다.  그의 저서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있습니다.  1998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한국에서도 많이 읽혀지는 책입니다.  
그는 ‘은혜’라는 단어가 이 시대 최고의 단어라고 강조합니다.  은혜의 소중한 메시지를 성경과 현실을 대비시키면서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이런 예화로 끝을 맺습니다.  

오래전 영국에서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공연은 남아공의 변화를 축하하기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대부분 록밴드인 음악으로 진행된 공연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제작진은 오페라 가수 제시 노만을 마지막 순서로 짜 놓았습니다.  광란의 음악이 절정에 달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제시 노만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물결치는 아프리카 전통 옷을 입은 흑인 여인 노만이 무대 위를 걸어 나갑니다.  

악단도 없고, 악기도 없었습니다.  분위기가 가라앉아 누군가가 다른 음악을 듣자고 외쳐 대고 있었습니다.  노만은 아카펠라로 천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잔잔히 흐르는 그의 노래가 울려 펴지자 그날 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치던 관중들이 노만이 부르는 은혜의 아리아 앞에 돌연 침묵에 잠긴 것입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노래가 2절에 이르자 군중들은 완전히 노만의 손안에 들어
와 있었습니다.   3절을 부를 때 팬들은 기억속에서 거의 잊혀진 가사를 더듬으며 따라 불렀습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그리고 4절에 이르자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그렇게 감동적인 공연은 끝났습니다.  나중에 노만은 그날, 그순간 무슨 권능이 임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지만 필립 얀시는 당시의 광경을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세상은 은혜에 목말라 있다, 은혜
가 임할 때 세상은 그 앞에서 침묵에 잠긴다’ 

세상은 은혜에 목말라 있습니다.  은혜가 임할 때 세상은 모두 잠잠해 집니다.  세상만이 아니라 믿는 자도 은혜에 목말라 있습니다.  은혜가 임할 때 우리 모두는 개인과 공동체에 새 시대를 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그 은혜를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로 나왔습니다.  오늘도 은혜가 임하기를 기대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은혜는 강물처럼 촉촉하고, 불길처럼 뜨거우며, 은혜는 바람처럼 강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는 만나처럼 임합니다.  출애굽이후 광야여정에 빼놓을 수 없던 것이 만나입니다.  그렇다면 만나처럼 임하는 은혜는 과연 무엇일까요?  만나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첫째는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이 탈출한 뒤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야곱과 가족들이 기근을 피해 애급으로 내려간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자 이스라엘은 고역과 노동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애급을 빠져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너 가나안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 광야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신 광야는 당시 광야의 어느 곳보다도 불모의 땅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지치고 힘든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자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또한 12절에서 이렇게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필요한 양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저녁에는 고기를 주고, 아침에는 떡으로 먹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신 것이 바로 ‘만나’
입니다.  만나는 그들이 생전 처음 본 양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뭐야’라고 물었는데, 바로 그 말에서 만나가 되었습니다.  만나는 ‘이것이 무엇이냐’는 뜻으로 꿀 섞은 과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3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이렇게 백성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만나와 같고, 만나는 먹는 것이요, 우리 삶에 필요한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독특한 음식문화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우리만큼 음식에 민감한 민족이 없고, 우리보다 음식이 풍성한 나라가 없습니다.  아마도 너무도 못 먹고 굶주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릿고개를 넘어간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사할 때도 ‘진지 드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많이 드세요’가 가장 정겨운 인사입니다.  배탈이 나든지 말든지 일단 많이 먹으라고 권하고, 많이 먹어야 기분이 좋습니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고, 급기야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
도 좋다’는 말까지도 나왔습니다.  

한번 상을 차리면 상다리가 부서지도록, 상위에 그릇이 많이 숟가락 놓을 자리도 없도록 차려야 합니다.  그러고도 차린 거 없으니 많이 드시라고 말하는 민족입니다.  이처럼 잘 먹는 민족, 많이 먹는 민족이기에, 음식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관심이 많고, 눈이 번쩍 떠지는 법입니다.

믿는 자에게 은혜가 이런 것입니다.  은혜가 중심이요 관심이고, 은혜하면 눈이 떠지고, 은혜를 말하면 먹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번 식사를 통해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가 양식이기에 은혜를 먹어야 하고, 배불리 먹고, 풍족히 먹고, 넉넉히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은혜에 굶주리고, 목마르고,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가 임하는 곳을 찾아야 하고, 은혜를 풍족히 먹어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기억나는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 자매는 한국에서 아주 착실히 믿음생활하면서 교회를 다니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온 청년입니다.  주변에 한인교회가 많지 않던 마을에서 자매는 한인교회를 어렵게 찾다가 제가 섬기는 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가 저와 통화하면서 처음 언급한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예배가 고파요’

여러분, 우리는 은혜에 고파야 합니다.  예배가 고파야 하고, 기도에 목말라야 합니다.  
교회에 가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먹지 않으면 우리는 한순간도 살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합니다.  은혜는 양식이기에 먹어야 합니다.  먹어도, 먹어도 또 고프고 고파야 합니다.  그렇게 풍족한 은혜를 받아야 우리 육신과 영혼이 살고, 건강하게 우리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은혜는 양식입니다.  풍성하게 은혜를 먹고, 마시면서 영혼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매일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만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여기에 보면 만나를 양식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일용할 양식, 날마다의 양식으로 강조합니다.  그래서 만나를 설명하는 16장의 내용에서 많이 강조하는 말이 ‘날마다, 매일, 일용할 양식’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은 매일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필요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에 보면 모세는 만나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혹 양식이 모자랄까 염려하여 남은 것을 더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게 거둔 것은 반드시 다음날 아침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만나의 의미입니다.  만나는 양식이요, 특히 일용할 양식입니다.  은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은혜는 매일 필요하고, 매순간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아무리 많이 미리 받아도 그것으로 평생 은혜 없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순간 받아야 하는 은혜가 있고, 오늘이 아니면 받지 못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로 현재와 미래를 지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지금, 매일 받아야 할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보좌로 날마다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라”  여기에서 성령 충만을 말씀합니다.  성령 충만이 바로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성령 충만은 술 취하는 것과 비교됩니다.  술에 취하듯, 성령에도 취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 충만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선포합니다.  성령 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여기 성령 충만을 문법적으로 현재형을 쓰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성령 충만을 매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날그날, 그때그때 받으라는 것입니다.  매순간 성령 충만이 필요하고, 매일 은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양식이고, 또한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날, 매일, 매순간, 날마다의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내일이 아니고, 어제도 아닙니다.  바로 오늘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필요한 양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매일 우리 육체의 필요한 양식을 구하듯이, 매일 영혼에 필요한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은혜로 하루를 살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은혜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양식이고, 특히 매일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은혜를 받고, 오늘 필요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은혜를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로 날마다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광야는 인간이 노력해서 얻을 수 없는 현장입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기술력 있는 인간도, 힘 있고 건강한 사람도 소용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한사람도 굶어죽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광야에서의 만나와 메추라기는 바로 이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삭막한 현장에서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광야요, 만나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유독 강조하는 것이 바로 ‘하늘에서, 하나님께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주도하고, 하나님이 섭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현현, 임재,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많이 나타났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광야에서는 어떤 유능하거나 실력 있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이끄심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그것이 나타납니다.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나도, 메추라기도, 물도, 거처도, 모든 것 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사실 은혜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물론 내가 수고하고 땀흘려 얻었다고 말하겠지만, 믿는 자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것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간섭하시고, 도우신 결과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달라집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고,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나의 힘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임을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만나였습니다.  그것이 곧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가 유독 만나이겠습니까?  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생활이 마칠 즈음에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 2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만나를 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였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만나라는 것은 결국 우리는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사는 인생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도 사탄의 시험을 이기시면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이 떡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이후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2-35)

말씀이 양식이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한 은혜가 없습니다.  우리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을 믿는 것은 결국 그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시고,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 중에 그분의 말씀이 가장 큰 은혜요, 선물이요, 축복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은혜는 만나처럼 임합니다.  은혜는 먹는 것이고, 매일 먹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한주간도, 한 해 동안 은혜로 승리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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