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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2)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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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2) (살전 5:16~18)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지난 주일에는 이 말씀 가운데 “항상 기뻐하라”는 부분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부분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기독교는 기도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한 시간 예배드리는 동안에도 여러 번 기도를 올립니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없어서는 아니 될 행위입니다. 계시록 8장 3-4절에 보면, 한 천사가 금향로를 들고 제단 곁에 섰는데 많은 향을 받았습니다.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향연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매우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렇다고 기도는 예배를 드릴 때만 올리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숨 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기도를 호흡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호흡과 같습니다. 우리는 낮에 깨어 있을 때 뿐 아니라 밤에 잠자면서도 숨을 쉽니다. 숨 쉬는 것은 조금도 힘이 들지 않으며, 오히려 숨을 쉬지 못하면 고통을 느낍니다. 단 몇 분만 숨을 쉬지 못해도 죽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항상 숨을 쉬어야 살듯이, 기도 역시 항상 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에 힘쓰는 성도는 영적인 활력이 넘치는데,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에 힘쓰면 시련과 역경을 겁내지 않고 담대하게 이겨내지만, 기도를 등한히 하면 영적 삶이 무기력해 지며 작은 시련 앞에서도 용기를 잃고 낙심합니다. 

기도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을 보세요. 그들이 위대한 생애를 살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기도생활에 힘쓴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주신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자격을 부여해 주셨습니다(히 4:16). 우리는 이 기도의 특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랑의 교통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랑의 교통을 나누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통이란, 의사소통, 또는 친교, 교제 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소통하고 친교를 나누려면 서로 간에 대화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필요하듯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 자녀 된 성도들 간에도 대화가 필요합니다. 문제아(問題兒)들을 보면 하나 같이 부모와 대화의 통로가 막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역시 대화의 결핍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대화는 성도들의 영적인 삶에도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로써 하나님과 소통하는 성도는 고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살기 때문에 늘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련을 만났을 때에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한없는 위로를 부어주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할 일이 많고 바쁘다고 기도를 등한히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할 시간도 낼 수 없으리만치 바쁘다면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 설정되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기도를 등한히 한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이 고갈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를 등한히 하는 것은 마치 호흡에 이상이 생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는 결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소통이 막힌 것을 의미합니다. 그 심령이 곤비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인 가운데는 기도가 무엇인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기도가 너무 어렵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나는 기도하라는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됩니다.”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이제 겨우 “엄마, 아빠” 밖에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를 보세요. 아직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엄마, 아빠와 단절된 채 살아가던가요? 자기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엄마, 아빠와 아이 사이에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며 한없는 사랑이 오갑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기도할 때 반드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법이 없습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면 됩니다. 반드시 말을 해야 하는 법도 없습니다. 마음으로 묵상하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묵상까지 다 아시고 기쁘게 받으십니다. 이렇게 기도를 이해하게 되면, 기도하는 시간이 즐거워집니다. 

19세기 중엽에 영국인 월포드 목사는 맹인이었지만 신구약 성경을 모두 암송하였을 뿐 아니라 기도생활에 힘썼습니다. 그는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내 기도하는 그 시간”이라는 찬송가를 작사했는데, 이 찬송가는 절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더 없이 즐거운 일입니다.

찬송가 480장을 보면, 기도의 기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 “기도하는 이 시간 주께 무릎 꿇고 우리 구세주 앞에 다 나옵니다 
믿음으로 나가면 주가 보살피사 크신 은사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 속에 기쁨 충만하네”

이 찬송시를 작사한 사람은 화니 제인 크로스비(1820-1915) 라는 여성도입니다. 그녀는 생후 6개월 만에 눈병에 걸렸는데 돌팔이 의사가 처방을 잘못해서 맹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크로스비는 오히려 실명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면서 무려 9천 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속에는 화니 크로스비가 작사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만 24곡이 실려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으니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그러나 크로스비 여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짐으로 오히려 소경이라는 장애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온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유익과 기쁨을 주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기도가 이처럼 우리 마음에 큰 기쁨을 주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답답하게 막혔던 우리 영혼의 숨통이 트입니다. 매연으로 가득한 장소를 빠져나와서 깊은 숲속에서 맑은 공기를 호흡할 때 느끼는 상쾌함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말만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고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도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간혹 보면,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늘어놓고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는, 그래서는 진정한 소통이나 친교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할 말만 일사천리로 아뢰고 끝내면 안 됩니다. 조용히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할 말이 없거든 성경을 읽고 감동을 주는 구절을 붙잡고 곰곰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또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훌륭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이지만, 이와 더불어 중요한 기능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아뢰고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노라면, 우리의 지혜와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무슨 어려운 일을 만나든지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 된 성도들이 무엇을 구하든지 기꺼이 들어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기도할 용기를 북돋우어 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기도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를 만능으로 알고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어주는 줄로 아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십시오. 육신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기대를 실망시킬 때가 있지만,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항상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자주 구할수록 많이 구할수록 기뻐하십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 이르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구할 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구할지라도, 아무리 어렵고 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무한하시며, 하나님의 부요하심은 측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풍성하시므로 우리가 무엇을 구할 때 항상 후히 주시며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십니다(마 7: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미리 다 아시고 주시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구하기만 하면 후하게 응답하시마 약속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아서 얻지 못한다면 아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사야 58장 9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신속하게 응답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한 가지, 기도할 때 유의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악한 동기로 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이르기를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기 욕심을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아니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런 기도를 응답해 주시면 오히려 우리가 욕심에 눈이 멀어 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끼시기 때문에 그런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할 때 이것은 구해도 되고 저것은 구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정욕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혹 기도 응답이 더디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되 가장 적합한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성경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서 낭패를 본 예가 있는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그 때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건성으로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입으로는 기도 하면서 머릿속은 온갖 걱정과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집중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천지의 주재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정돈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얍복 강가에서 기도했던 야곱을 보십시오. 창세기 32장 24절 이하에는 이같이 증언합니다.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26)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28)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미천한 인간이 어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간절한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이처럼 파격적인 응답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 간절함은 끈기와도 통합니다. 한두 번 기도해 보고 그만 두지 말고 응답을 받기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2)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눅 18:)

또 이르시기를 “6)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이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과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뇌물을 바칠 형편도 못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과부는 생면부지의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재판관이 이 과부의 청을 들어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찾아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드디어 이 재판관은 과부의 끈덕진 호소에 두 손을 다 들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얻지 못함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요, 기도해도 얻지 못함은 간절하게 구하지 않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쓰심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단지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빚을 지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빚쟁이가 빚진 자에게 갚기를 요구하듯이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먼저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하던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번은 이스라엘 자손이 울며 말하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다보면 생선도 먹을 수 없고, 수박이나 부추나 파나 마늘 같은 것도 먹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원망과 불평의 빌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무역도 할 수 없는 광야에서 매일 같이 만나를 내려서 이스라엘 자손을 먹이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처럼 적합한 음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맛도 좋고 영양가도 골고루 들어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모세에게 가서 하나님께 구해서 고기를 먹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매일 만나를 주셔서 양식 걱정을 하지 않게 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기왕이면 하나님께 기도해서 고기도 먹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고 광야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을 들추어내어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호소를 들으시고 메추라기 떼를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진 사방에 내리는 메추라기를 잡아서 싫증이 나도록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예, 감사할 줄 몰랐던 것이 재앙의 원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감사가 없이 드리는 제사는 아무리 살진 송아지를 제물로 바칠지라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합니다. 감사가 없이 단지 의무적으로 드리는 예배 역시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십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가 빠진 기도는 원망이요 아우성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우리 마음 문이 열리고, 영안이 밝아지고, 마땅히 구할 바를 알게 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더욱 풍성한 기도 응답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기도생활에 힘쓰는 것은 그 사람이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반면에, 기도를 등한히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영적으로 잠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셨지만, 그들은 다 졸며 자다가 주님을 버리고 도주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우리도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재물을 얻기 위해, 또는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합니다. 생활은 유족해 졌지만, 믿음을 지켜나가기에는 매우 불리한 시대입니다. 특히, 마귀는 물질로써 성도들을 시험합니다. 요즘 성도들이 받는 시험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물질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돈을 사랑하면 시험에 들고 맙니다. 

그리고 현대는 이단과 사이비가 기승을 부립니다. 복음의 진리를 왜곡한 가르침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가 노리는 것은 불신자들이 아니고 교회에 속한 신자들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는 사자 같은 마귀도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을 넘볼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 앞에서 마귀는 패하여 물러갑니다. 

아무쪼록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항상 기도생활에 힘씀으로 하나님과 사랑의 교통을 나누는 가운데 영적 생명력이 충만한 삶,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는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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