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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마 10: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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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
(마 10:34-39)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
제목이 섬뜩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는데,  우리 주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데, 상한 갈대도 꺽지 않으시는 분이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분인데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합니다.  
본문은 아주 힘주어 강조까지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여태까지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러 오신 줄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주님이 탄생하실 때는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라고 하셨는데, 도대체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다니요?   그러면서 36절에는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하십니다.  연결하면 받은 검으로 가족들과 싸우라, 찔러라 이것입니다.  오해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영적 성장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주님이 오신 첫 번째 목적
본문을 이해하는 첫 단추는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둘이라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목적은 화평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드려진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요일 2:2, 개정)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신 두 번째 목적
그러나 화평만이 주님께서 오신 목적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34절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화평만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신 두 번째 목적은 검을 주어 우리가 사단 마귀와 싸우게 하신 것입니다.  
마 10장은 제자, 곧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두님을 믿음으로 첫 번째 목적은 달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두 번째 목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강조하기를,  이제는  검을 줄 터이니 사단 마귀와 영적 전쟁을 싸워 이겨라, 이것입니다.  
엡 6:10-1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 주님은 믿는 여러분들에게 영적 전쟁을 선포하며 이를 위해 검, 곧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을 받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이 바로 영적 전쟁을 위한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계속해서 엡 6:13-17까지 말씀하십니다.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겨 놓고 싸우라
그런데 여러분,  사단 마귀가 셉니까? 여러분이 셉니까?  누가 능력이 큽니까?  누가 맨손으로 하늘을 날아다닙니까?  사단 마귀는 영적 세계의 존재입니다.  차원이 다른 데, 우리는 싸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싸우라고 하시는 주님!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경기는 체급별로 합니다.  덩치가 한 목 하는 것입니다. 45kg의 라이트플라이급과  90kg의 헤비급은 그 주먹의 파워가 다릅니다.  ‘타이슨’ 이라는 헤비급 참피온의 주먹은 1-1.6ton의 힘이 있습니다.  주먹 한방에 헤비급을 다 KO시켰습니다.  우리와 사단 마귀는 체급 정도 다른 것 이상입니다.  그런데 싸우라고 주님이 하십니까?  
그러니까,  영적 전쟁은  세상 무기- 북한이 쏴대는 다연장 포, 미사일 가지고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적 전쟁은 주님이 미리 싸워서 다 이겨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사단의 최고의 무기-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다 이겨 놓고 싸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기도 세상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사단도 벌벌 떠는 성령의 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가기만 하면 이깁니다.    “예수이름으로 예수이름으로 마귀는 쫓긴다 ×2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누가 나를 괴롭히리요 예수이름으로 나아갈 때 마귀는 쫓긴다”  할렐루야!

성령 하나님의 지혜
마귀는 예수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으로 쫓고 이깁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 말씀, 성령의 검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분별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에나 성령의 검을 휘둘러서는 안됩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전신갑주을 입고 싸우되  싸움의 대상이, 다시 말하면 칼을 휘두를 대상이 혈과 육이 아니라고 분별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하나님의 지혜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34절 말씀은 주님께서 오신 목적 중 2번째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이구나!  이것이 분별을 잘 한 것입니다.  36절, 집안 식구가 원수구나 하고 오늘 집에 가서 시어머니에게, 또 며느리에게 칼 휘두르면 안됩니다.  
본문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계속해서 2가지가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구별하고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화평과 검,  딸이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어떻게 원수입니까?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의 지혜로  이 둘을 구별하고 검을 쓰는 것입니다.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 하면서 때가 되어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습니다.  40년 동안 짚고 다녔던, 의지하고 다녔던 지팡이를 던지라고 합니다.  순종하여 던졌더니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놀라서 피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여태까지 의지하고 다녔던 것이 뱀이었다는 것입니다.  실체를 보여 주니 모세가 놀랄 수 밖에요.  주님은 삶의 실체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연이어 다시 잡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잡으니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광야 훈련을 마치고 파송을 하면서 보여 주신 것은 사단도 요리하라는 것입니다.  우상의 우두머리 태양신 바로에게 보내니 네가 가서 그를 요리하라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말씀은 제자들을 세우시고 파송하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검을 가지고 사단 마귀와 싸우라,  사단을 요리하라.  너는 이길 수 있으니 하나님의 지혜로 잘 다루어서 회쳐 먹어라, 이것입니다. 

복어는 독이 있습니다.  테트로톡신(tetrotoxin)이라는 강력한 신경독소로써, 영하 20도에서 얼려도 6시간 이상 끓여도 건조해도 독소가 파괴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명태처럼 갓 잡은 생태로, 얼린 동태로, 그냥 건조 시킨 북어로, 반쯤 말린 코다리로,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서 말린 황태로, 새끼인 노가리로,  뱃속에 알이 없어 홀쭉한 홀태로, 알이 많아 알배기로 어떻게 먹어도 되는 명태처럼 요리하면 안됩니다.  복어에 대한 최상의 지혜가 있는 전문가 요리가에게 맡겨서 독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잘 구분하고 분별해서(주로 장기나 생식에 관계되는 부분에 있다) 칼로 제거하고 요리해야 복지리 같은 가장 맛있는 요리 중에 하나가 되어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딤후 2:4에 보면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군사된 이들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군인도 사람인데 자기 생활이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면  군복 입을 자격 없습니다. 
지혜로운 군사는 자기 생활도 하고 있지만, 얽매이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학생은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공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인터넷으로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만,  인터넷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헨드폰으로 정말 편한 생활을 하지만, 설교시간에 문자 보내지 않습니다.  

38절에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는데,  이 십자가도 같은 맥락으로 구별을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원래 저주의 표입니다.  못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사형 선거를 받는 사형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십자가를 사형당할 죄도 없이,  내가 지고 가서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내 대신 지고 가서 사형당하셔서 우리 모두가 죽지 않고 살게 되었으니 승리의 표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십자가는 저주의 표가 아니라, 내가 희생하는 승리의 표가 되었습니다. 

37절 하나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것이 화근입니다.  주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것이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나 다 가진 자기 생활이지만,  얽매이게 하는 원수가 되고 저주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바로 여기에 검을 사용해서 저주거리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주의 표가 아니라, 승리의 표를 가지고 희생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며느리를 위해서 시아버지 시어머니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시부모를 위해서 며느리는 맞벌이 해도, 매번 안부를 묻고, 만난 것도 가끔 해 드리고, 아양도 떨고 힘들지만 십자가 지듯이 해 보십시오.   남편은 자기가 밖에서 힘들어도 고생 많다고 말함으로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러면 반찬이 달라지는 서비스를 경험하는 승리의 십자가를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을 아무렇게나 막 휘두르지 말고 지혜롭게 잘 써서 사단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하는 승리의 역사를 다 누리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연교회 이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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