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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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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히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 어느 교회 청년들이 수련회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버스 제일 뒷자리에 남자 청년이 앉았는데 왼편에 얼굴이 자유롭게(?) 생긴 여자 청년이 앉았고, 오른 편에는 얼굴이 질서정연하게 생긴 여자 청년이 앉았습니다. 버스가 한참을 달린 후 모두 다 정신없이 조는데 남자 청년이 문득 깨어서 보니 얼굴이 자유분방하게 생긴 여자 청년이 자기 어께에 기대고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살짝 밀치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시험에 들게 마옵소서.” 

그리고 또 한참 달리다 보니 이번에는 얼굴이 질서정연하게 생긴 청년이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간절히 소망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그리고 환경과 처지에 따라 그 마음과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말고 굳게 잡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는 도리”, 즉 믿음의 고백입니다.(hold firmly to the faith we profess.) “믿음의 도리”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메시아, 구세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믿음의 도리”를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지키라는 것입니다. ‘광야의 소리’로 일컬어지고 있던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당시 갈릴리 지역 통치자인 헤롯 왕의 불륜을 책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헤롯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아라비아 왕 아레타스의 딸을 버리고 그의 조카이자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적 전통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패륜(悖倫)이었습니다.

(레20:21)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의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세례 요한의 책망은 헤롯의 이러한 무분별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촉구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헤롯의 난잡한 생활과 악행은 유대 백성들에게 적지 않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헤롯에 대한 요한의 공공연한 책망은 많은 백성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불만과 요한의 직선적인 공격은 헤롯의 권력 구조에 위기감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헤롯은 자신에 대한 반감 분위기의 진원지(震源地)라고 생각한 세례 요한을 체포하게 된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요한은 제자들을 통해 외부의 소식을 들으며 예수의 활동에 대해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곧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행적에 대한 관심이 그 누구보다 컸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 일,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사람을 치유하신 일, 수많은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신 일 등을 보고하자 그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야가 바로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눅7:19)라고 묻도록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구세주)이심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미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러 나오실 때 성령을 통해서 메시아이심을 깨달았었습니다.

(마3:13-17)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께서 세례받으시기 위해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고 소개하므로 인류 구원을 위한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고 예수께 몰려가는 것을 보고서도 비난하거나 제지하기는 커녕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며 오히려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로 적극적으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의 권능과 명성을 시기하는 자기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듣게 하여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해서 예수께 보내어 묻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계시는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눅7: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시며 믿음이 흔들려 넘어지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굳게 잡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로 세례 요한을 들었습니다. 

(눅7:24-28)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흔하고 하잘것없는 갈대처럼 약하고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 땅에는 일신상(一身上)의 부귀와 안락을 위해 마치 바람 앞에 선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앙 양심마저 팔아 넘겨버리는 배도자(背道者)들과 매국노들이 수두룩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이 사람들의 여론이나 세상의 유혹에 동요되지 않고 거룩한 소명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서슬 푸른 헤롯 왕일지라도 권력을 두려워하거나 그에 타협하지 아니하고 거침없는 ‘광야의 소리’가 되어 그의 죄악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다 투옥되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갈대를 보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면 너희가 보기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권력에 빌붙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사는 졸개들은 왕궁에 있다! 그러나 요한은 거칠고 누더기 가까운 값싼 약대 털옷을 입었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세례 요한이 권력자들에게 아부하고 그들의 귀에 달콤한 말만 골라 들려주었더라면 얼마든지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궁의 회유 따위에 넘어가거나 무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의 치부까지도 과감히 책망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자요 또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선지자였기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이 바로 구약 마지막 성경 말라기 3:1에서 예언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눅7: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앞서 보내심을 받은 인물로서 세례 요한은 그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예수를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즉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아로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 믿고 회개하라며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을 두고 예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흔들리는 갈대가 되기보다는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처럼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아 예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복된 성도, 하나님 나라의 큰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엡 6:24)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의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고(고전 15:58)”, “믿음의 도리를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축복에 참예한 자가 됩니다.”(히3:14) 구약 시대 욥은 “믿음의 도리를 끝까지 견고히 잡아” 마침내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은 어떠한 환경이나 형편 처지에서도 견고하며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욥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할 만큼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고, 수많은 가축들과 하인들을 거느린 동방의 거부였습니다. 욥의 자녀들은 저마다 생일이 되면 형제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베풀어 서로 형제애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렇게 생일잔치가 끝나면 반드시 자녀들 수대로 일일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비 모르는 사이 자녀들이 혹시 하나님을 욕되게 하거나 알지 못하는 사이 죄를 범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하나님 앞에 속죄의 예배를 드려 가정을 거룩하고 온전하게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욥이었기에 하나님 말씀에 심사가 뒤틀린 사탄이 이렇게 반박합니다.

(욥1:9-11)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께서 욥의 소유물을 넘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십니다.

(욥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 욥에 대해 허락받은 만큼 욥의 모든 소유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욥은 영문도 모른 채, 이해하기 힘든 고난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각처에서 도적 떼들이 몰려와 그 많은 가축들을 몽땅 약탈해갔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양 떼와 목동들을 살라 버렸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들과 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잔치를 벌이다가 갑작스런 강풍에 집이 무너져 모두 한 날 한 시에 깔려 죽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이 바람에 날아가고, 자녀들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모든 소유물을 맡기신 그대로 한 순간에 모든 소유물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도 알지 못하고 환난을 당한 욥이 이런 혹독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욥1:20-22)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의 고백은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욥은 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빌4:11-12)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할 줄 아는 믿음을 가지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이미 배운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모든 것이 풍성하게 있을 때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후에나 흔들림이 없이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욥의 소유를 넉넉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우겼지만 그는 모든 소유를 잃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온 사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욥2:3)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합니다.(눅 12:15)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존재가 되느냐입니다. 욥은 소유의 유무에 따라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모든 소유를 다 잃었을지라도 여전히 믿음을 온전히 굳게 지켜 입술로라도 죄를 범하지 아니한 진정한 믿음의 부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욥의 믿음은 소유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욥과 같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의 도리를 굳게 지키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에 대해 사탄에게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고 말씀하자 사탄이 이번에는 이렇게 욥의 믿음을 시비합니다.

(욥2:4-5)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의 모든 소유를 빼앗아 욥의 신앙을 흔들려다 실패한 사탄은 이번에는 그의 건강을 빼앗아 그의 신앙을 흔들려고 시도합니다. 사탄의 논리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일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뼈와 살을 치면 당장 하나님을 저주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욥의 믿음을 신뢰하시는 하나님께서 욥의 생명은 해하지 말고 몸을 치도록 허락하십니다.

(욥2: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사탄의 시험에 욥은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악성 종기가 나서 고생합니다.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욥의 아내까지 나서서 욥의 믿음을 조롱하며 저주를 퍼붓습니다. 

(욥2: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럼에도 욥은 자기 아내를 향해 “(욥2:10)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했습니다.” 욥은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욥의 믿음은 소유나 몸의 건강에 따라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욥의 믿음은 아내나 친구들의 조롱과 공박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그로 인해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라면 복 뿐만 아니라 재앙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같은 믿음이 아니라, 고난과 환난의 이유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끝까지 믿는 믿음을 온전히 지켜 범죄하지 아니하는 거룩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을 뿐만 아니라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생활이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히4:15)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다, 죄가 전혀 없으셨어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죄를 범하시지도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인간과 똑같이 유혹을 받아 범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예수께서 인간과 같이 되셔서 인간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경험하셨음에도 죄를 범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우리와 똑같이 공감하시는 분으로서 능히 인간을 도우실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는 것은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같이 범죄할 가능성이 있는 연약함을 지니셨지만 범죄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연약하여 죄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만 합니다. “은혜의 보좌”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기 위해 죄가 없으셔도 부당하게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부당하게 십자가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여 그 고난의 아픔과 슬픔을 참으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전서2:19-20을 보겠습니다.

(벧전2:19-20)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여기 “아름답다”말의 헬라어 뜻은 ‘은혜’입니다. 죄가 전혀 없으심에도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당하시면서 죄를 범하지 않으신 모습이 아름답고, 그 은혜로 믿음의 도리를 굳게 지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보좌,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벧전2:22-24)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께서는 자신을 팔아먹은 가롯 유다를 저주하거나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참으시고 사랑하시며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 부인한 베드로를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셔서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 변함없으신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침을 뱉고 가시관을 씌우며 채찍질을 가한 무리들에게 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조롱하며 멸시하고 희롱하며 십자가의 고통을 가한 자들을 위협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죄까지도 담당하셔서 십자가에 희생되셨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험을 받으시되 죄를 범하지 않으시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살 동안 어떠한 시험을 받을지라도 믿음의 도리를 굳게 지키며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거룩한 신앙생활로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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