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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합시다 (고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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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위합시다 (고전 10:31)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희랍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는 우상 숭배가 성행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사람들의 모임이 주로 신전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종교 생활에서 필수적인 부분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누구라도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생계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법정에 호소하지 않고도 살 수가 있었으나 고린도와 같은 도시에서는 이교의 생활권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팔고 있는 모든 고기는 각종 이교 신전에서 제물로 바쳤던 것들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사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우상 제물에 관한 문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성도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원리를 설명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행동은 그것이 먹는 것이든 마시는 것이든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명함으로써 성도의 삶의 원리가 되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먹고 마심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서 모든 삶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도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성도는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행동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와 관련하여 교훈한 것인데 다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하여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육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물을 먹는 것은 그 제단에 참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예로 들어 우상 제물을 먹는 자들 은 우상의 제단에 참예하는 것이 됨을 밝혔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하여 시장에서 파는 것에 대하여 묻지 말고 먹을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불신자 중 상에 차려 놓은 것이 우상의 제물임을 말하면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만이 천지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우상 제물이라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더라도 다른 사람에 의해 비방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에 꺼림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거나 실족케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가 되므로 성도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유의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하여 자신의 먹을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인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봉사 정신에 근거한 행동 원리입니다. 
바울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잔을 마시는 동시에 우상의 잔을 마실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먹을 먹음과 동시에 귀신의 떡을 뗌으로써 우상과 교제할 수 없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바울은 성도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성도가 그리스도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성도는 주의 종이므로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영광 돌려야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끊임없는 모순 속에 살아가는 것이 사실인지 모릅니다. 어느 주일날 새벽 2시에 마흔 살의 '아트 토리스'(Torres)라는 사람이 취중 운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새크라멘토의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문제는 그가 캘리포니아 주 의회 상원 의원이며 십대 젊은이들의 취중 운전 단속법을 초안한 장본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흥미 있는 기사거리를 발견한 기자들이 월요일 아침에 그의 집으로 찾아갔으나 헛걸음을 한 것을 알고는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그것은 그가 유치장에서 나오는 길로 자기가 작성한 한 법안 공청을 받으러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자들은 그의 법안 초안이 취중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인의 전반적인 삶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이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미국에서 백화점으로 성공한 좋은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그 가운데 중산층들에게 널리 알려진 백화점은 페니( J.C.Penny)러 합니다. 미국전역에 자그만치 1,660개 점포망을 가진 대규모 백화점이라 합니다. 이 백화점 주인 페니(J.C.Penny)는 19세기말에서부터 95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이 백화점을 운영하는데 기본원칙을 고수하였다고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33)라는 말씀이었다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교훈입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묶여서 일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커다란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밀라노의 한 유명한 백작의 부탁으로 최후의 만찬을 3년 간 그렸습니다. 그림 한 장을 그리는데 3년이나 걸렸으니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었겠습니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 그림을 백작에게 보여주기 전에 먼저 미술가인 친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친구가 깜짝 놀랐습니다. “우와! 대단한 걸작이다. 특히 예수님 손에 있는 잔이 정말 빛이 나는군.” 

친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붓으로 그 잔을 지워버렸습니다. “예수님 얼굴보다 더 빛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돼. 예수님 얼굴이 가장 빛이 나야지, 예수님 손에 있는 잔이라도 예수님보다 더 빛이 나면 안 돼.” 그리고는 예수님의 손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손으로 고쳐 그렸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빛이 나도록 그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익태는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교회에서 태극기를 걸고 「올드랭 사인」을 부르는 교포들을 보면서 애국가를 만들 결심을 했다. 안익태는 부다페스트 음악학교에 재학중이던 1935년 드디어 애국가를 완성했다. 훗날 애국가가 불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다. 『애국가는 내 작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감을 조국의 백성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나면서 소경된 사람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 소경된 것이 자기의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 소경된 것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님의 하시는 일, 즉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함이었습니다.

(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11장에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보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명 감당해야 합니다. 
죽을 병에 걸린 이유가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 살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은 물론 병든 자들을 보실 때도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할 존귀한 존재들로 보셨습니다. 

전도자 죤 번연이 신앙 때문에 베드포드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에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의 몸이었다. 그 때에 죤 번연은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더욱 두려웠던 것은 여러 사람이 자기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복음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될까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될까봐 더욱 걱정스럽고 염려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만일 그 사다리를 오를 때 내가 만일 떨고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적들에게 하나님의 길과 그 분의 백성들에 대한 비난의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것 때문에 더욱 걱정스러웠는데 그것은 내가 핼쓱한 얼굴을 지닌 채 무릎을 덜덜 떨며 죽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죤 번연은 "천국이 오든지 지옥이 오든지" 주 예수께서 자기를 붙잡으리라고 하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 앞에서도 위로를 받고 담대한 신앙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신사 참배를 거부하며 1938년부터 약 6년간 옥중에서 항거하다가 1944년 4월 21일 순교한 주기철 목사는 그의 일생을 오직 하나님께만 맡긴 분이다. 다음은 주 목사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기 직전 교인들과 그의 가족에게 한 말이다. "사람이 한번 마음먹은 바를 이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오. 특별히 옥중에서 하나님 신앙을 지키기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만 구하며 끝까지 싸울 것이오. 설혹 내가 옥중에서 죽은 일이 있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내 말을 지켜주기 바라오. 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혹 나를 칭찬하지 말기 바라오. 오로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주시오. 그분만이 모든 되어지는 일에 찬송 받으실 분이시기 때문이오." 

주기철 목사는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공과 의를 알게 하시고 어려움 속에서도 그 거룩한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주기철 목사는 죽음을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 진정 감사함으로 영광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라는 말 속에는 바울이 이제까지 말하였던 '타인의 유익'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시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이웃에 대한 건덕을 먼저 생각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웃의 유익을 구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강령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교초기의 유명한 선교사 제임스 게일 박사의 책 [한국의 풍물]에 기록된 내용이 있습니다. 게일 박사는 한국의 농촌에서 농부들이 땅을 팔 때 가래질하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았고. 그의 친구인 헤버 존스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재미있는 발명품은 조선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구들 중 노동력을 덜어주는 것으로서는 아주 최고에 속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적어도 3명 내지 5명이 많은 일을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가래는 긴 나무에 부삽이 달린 것인데 그 양쪽에 선 사람들이 잡은 끈은 바로 부삽의 가장자리에 매어 있고. 그들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많은 일을 해낸다.” 

가래질을 할 때의 민첩함과 그들의 활력에 찬 노래 운율이며 그들의 휴식시간의 즐거움 등이 그 책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서양 사람의 눈에도 경이롭게 보여질 만큼 우리 조상들은 이같이 서민 생활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속을 이어왔습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는 가래의 자루를 잡은 우두머리가 필요합니다. 나머지 몇 사람은 좌우에서 끝을 잡고 일정한 리듬에 맞추어 우두머리의 삽질을 도와주어야 그 일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앞서 생각하고 자신의 행위를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는 믿는다는 이름만 있을 뿐 이웃을 위한 양보나 건덕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심지어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이웃의 이익과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교회가 분쟁하고 분열하는 곳에는 반드시 이같이 하나님과 이웃에게 거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가로막고 교회의 부흥을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자신과 같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고전10:32)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구원시키는 것이 곧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고전10:33)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성도는 언제나 자신의 유익을 구치 말고 오직 하나님과 이웃의 유익을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자신을 유익케 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함을 바울은 교훈하였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이웃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심을 말씀 합니다

(사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신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엡 1:14)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102층으로 지은 것은  “1620년 9월7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66일 동안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 항구에 도착한 102명의 청교도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평양 대동강변에 세워진 주체탑은 25550개의 돌로 세웠는데 김일성 주석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날 수 곧 70년에 365일을 곱한 숫자라 한다고 합니다. 청교도들은 빌딩 하나를 세워도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와 영광을 생각하고 기념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피조물인 사람을 기념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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