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승리의 길 (수 3:1~13)

  • 잡초 잡초
  • 358
  • 0

첨부 1


승리의 길 (수 3:1~13)


일본의 이케다 가요코가 쓴“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 이 있습니다. 세계에는 63억의 사람이 살고 있는데, 이것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시킨다면 마음과 같은 수치로 환산이 된다고 합니다.

100명 중 52명은 여자고 48명은 남자입니다. 
30명은 아이들이고 70명은 어른입니다. 그 중 7명은 노인입니다 
70명은 유색인종이고 30명은 백인종입니다. 
33명은 기독교, 19명은 이슬람교, 13명은 힌두교, 6명은 불교, 
24명은 무교입니다. 

100명 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그 중 l명은 굶어 죽기 직전입니다. 
15명은 비만입니다.
75명은 먹을 양식과 집이 있지만 25명은 그러지 못합니다.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들어 있고 집안 어딘가에 잔돈이 굴러다니는 사람은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드는 한 사람입니다. 
자가용을 소유한 자는 100명 중 9명입니다. 
100명 중 l명은 대학교육을 받았고, 2명은 컴퓨터가 있습니다. 그러나 14명은 글도 못 읽습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축복 속에서 우리 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느끼고 깨닫는 것이 진짜 축복입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은 너무도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올해에도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애굽을 떠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여호수아”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앞세우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하기 위하여 요단강변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원래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의 선민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후 야곱 때에 애굽으로 이주한 후 뜻하지 않게 노예로 430년간 살다가 모세의 영도로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40년간 온갖 고난 끝에 가나안 입성 직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을 얻기 위해 전쟁에 참여해야만 합니다. 

영적인 의미로 출애굽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홍해를 건넌 것을 고린도전서 10장 1절~2절에 세례를 상징하여“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고 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40년의 여정과 가나안 정복을 하나님이 예비하신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길(히브리서 11:16)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서를 신약의 사도행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진 2010년이라는 한 해 동안 새로운 미지를 향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진군해 나아가야만 합니다. 이 길이 힘들어도 뒤돌아 설 수 없습니다. 또한 이 길이 험난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 길에서 승리를 쟁취해야만 합니다. 2010년은 우리들이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길입니다. 이 길을 나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 물음에 대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해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의 비결을 말씀하셨습니다.

一. 여호와의 언약궤를 뒤따르라 하셨습니다.

본문 3절에“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아래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궤안에는 하나님이 직접 써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넣도록(출 25:16) 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 곡식 한포기도 심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직접 먹여 살리셨던 신비의 양식인 만나를 넣은 항아리를 넣도록 하셨습니다(출 16:33).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도 그 궤안에 넣어 보관하도록 하셨습니다(민 17:10). 이 하나님의 언약궤는 두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임재 해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 언약궤를 볼 때마다“하나님이 우리가운데 계시는구나.”라고 항상 고백할 수 있도록 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궤 앞에 와서 기도도 하고 제사도 드렸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 즉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이 들어 있었으므로“법궤”혹은“증거궤”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교훈하신다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만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말씀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5장 21절~22절에 말씀에“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시되었습니다. 그 언약궤를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만질 수 없었습니다(삼하 6:6~7). 항상 하나님께서 따로 구별한 제사장들이 그 법궤를 어깨에 메고 운반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제사장들이 법궤를 어깨에 메고 갈 때 이스라엘 백성은 2천 규빗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 뒤를 따라오도록 하였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싸우시므로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행진은 곧 그들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단지 그 사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궤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6장에 나타나 있는 여리고성 함락 작전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뒤따르는 참으로 이상한 행렬이었습니다. 그것은 군사행렬이라기보다 선민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 행렬이었습니다. 

이 법궤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의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법궤를 모신 처소가 성막 즉 오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법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영혼의 가정인 교회를 중심하여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는 한 해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28장 1절~6절에“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세상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행복의 안내서입니다. 축복의 대헌장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 1절~3절에 말씀하시기를“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전인 성전에 대해 시편 122편 6절~8절에 말씀하시기를“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강과 형통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시며, 교회를 중심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하나님이 가리켜주신 세상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二. 자신을 성결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면“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기적을 나타내시기 전 성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더러운 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없습니다. 더러운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기이한 일을 행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반드시 성결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셨습니다. 성결하게 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궤 뒤를 따르면 우리 앞길이 평탄하게 열리고, 우리가 자신을 성결하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죄를 끊지 않으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7장에는 이스라엘이 아이성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아간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이 금하신 물건을 몰래 훔친 까닭입니다. 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로 아이성 전투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호수아 7장 1절에 말씀하시기를“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아간이 훔친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7장 21절에 아간이 스스로 밝히기를“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질 앞에 정직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84편 11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 하나님은...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잠언 20장 17절에는“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유대인 부인이 백화점에서 코트를 하나 샀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코트 주머니 속에 다이아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반지는 코트 가게 주인이 코트를 정리하다가 실수하여 코트 주머니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코트를 산 유대인 부인은 다이아 반지를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백화점으로 갑니다. 그때 그는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주인에게 그 반지를 돌려줍니다. 주인이 고마워하고 감사해 하면서 부인에게 묻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그토록 정직하실 수가 있습니까?”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나는 유대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그 말을 하고 부인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짧은 행동 속에서 부인은 다이아몬드 반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몇 가지하였습니다. 

첫째, 자기 아이에게 정직을 가르쳤습니다. 
둘째, 품위 있고 아름다운 삶을 가르쳤습니다. 
셋째,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이 섬기는 하나님을 영화 롭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기 아이에게 유대인과 하나님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물질 앞에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의 소유물에 손을 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십일조입니다. 소유의 1/10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말라기 3장 9절~12절 말씀에“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습니다. 

사무엘상서에는 엘리제사장과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가 범한 안타까운 범죄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짓밟았습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17절에 이 사실을 기록하기를“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 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갔지만 그 전투에서 실패하였고, 심지어 그들이 승리를 믿고 앞세웠던 언약궤마저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수치를 당합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자리에서 전사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을 떠났습니다(삼상 4:11, 22).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따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죄를 버리는 성결한 생활입니다. 우리의 지은 죄를 낱낱 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주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일 못지않게 죄를 멀리하는 성결한 생활이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매주일 예배당에 와서 우리가 정성스럽게 드리는 우리의 예배는 일주일간의 우리의 삶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2절에 권면하기를“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1927년, 프로펠러가 하나 달린 단발기(單發機)를 몰고 대서양을 처음으로 횡단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는 린드버그(Lindbergh) 대위였습니다. 그것은 생명 걸고 한 모험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웅이 된 후 프랑스 파리를 한번 방문했는데 그가 온다는 말을 듣고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어느 큰 담배회사 사장이 “이것 참 좋은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어 자기 회사 담배를 광고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그 사장이 린드버그에게 다가가서 자기 회사 담배 한 개비를 주면서“선생님, 이것을 손에 끼어도 좋고 입에 물어도 좋습니다. 포즈 한 번만 잡아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 한 장을 찍는 대가로 5만 불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제안 하였습니다. 담배회사사장의 그런 엄청난 제안에 린드버그는 얼굴 표정을 바꾸면서 말하기를“사장님, 저는 세례 받은 교인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자기는 그리스도인이고 세례교인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도 않올 뿐만 아니라 담배를 입에 물거나 손에 끼울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기사가 파리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그 신문 기사를 보고 그 당시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큰 감동을 받고 자기들이 성금을 모아서 10만 불을 린드버그에게 격려금으로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거절할 것은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끊을 것은 끊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8절에는“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2장 20절~21절에 말씀하시기를“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결해야만 하나님이 기이한 일을 행하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3절에“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점령하려면 요단강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배 한척 없는 그들이 어떻게 강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강가에 도착했을 때 벌써 강물이 마르고 강이 갈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입니까?“법궤를 멘 제사장의 발바닥이 요단강물을 밟고 멈추면”입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니까?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줄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리 겁을 먹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기이한 일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발바닥이 요단강을 밟고 멈추면 강이 갈라진다는 것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때 가시적인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말씀하시기를“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는 것입니다. 믿음은 합리적 생각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자꾸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큰 낭패와 시험에 부딪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다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도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려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위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초월한 창조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조건 말씀을 통해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매사에 부정적인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내 힘과 내 생각에만 의존하여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포기하고 낙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하면서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천지의 창조주 그분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항상 소망과 용기와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독일의 철재상으로 불리는 비스마르크의 젊은 날 이야기입니다. 친구와 같이 사냥을 갔는데 그만 친구가 늪에 빠졌습니다. “사람 살려라”하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를 본 비스마르크는 총을 들고 물에 빠진 친구의 머리를 겨누며 말하기를 “이 늪은 깊고 나는 수영을 할 수 없으니 자네를 건져줄 수가 없네. 내가 자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자네의 죽음을 좀 더 편하게 해주기 위해 자네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일세. 이것이 친구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일세. 잘 가게.”하며 방아쇠를 당기려 했습니다. 

그때 물에 빠진 친구가 “잠깐만 기다려, 총을 쏘면 안 돼.”하면서 사력을 다해 헤엄을 쳐 나왔습니다. 밖에 나온 친구는 화를 내며 비스마르크의 멱살을 잡고 하는 말이 “이럴 수가 있어!”하며 주먹으로 치려했습니다. 이때 비스마르크의 말이 “이 총을 확인 해보게, 여기는 실탄이 들어있지 않아, 내가 총을 겨눈 것은 자네의 머리가 아니라 ‘나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라는 자네의 나약한 의지를 겨눈 것일세.”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흐르는 요단강물위에 믿음으로 발을 딛는 법궤를 멘 제사장의 믿음과 순종이 우리의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9장 26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2010년이란 생소한 길에 들어섰습니다. 우리에게도 요단강 앞에선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합니다. 우리 앞에도 여전히 요단강이 흘러내려 가고 있고,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는 비결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법궤를 따라가라 하셨습니다.
둘째, 성결하라 하셨습니다.
셋째,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므로 승리하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