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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소명 (출 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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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소명 (출 3:1~14)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애굽기 3:1~14

저는 오늘 공식적으로 20년간의 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 사역을 마칩니다. 오늘까지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할렐루야교회에서 아름답고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배움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제 가족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고등학생, 대학생 아이들을 미국에 놓고 왔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과 제 아내가 하나님 은혜 가운데 저를 잘 도와서 이제 제가 담임목사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모든 분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지 42년, 신학교에 간지 45년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종으로 쓰시려고 부르시고 준비시키시는 것을 알지 못했고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1968년에 미국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교회의 목사로 섬겼고, 그 후 한인교회인 벧엘교회를 창립했고, 20년 전에 할렐루야교회로 왔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사역 세 교회목회를 했는데, 제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죄송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로 부르시는데 저는 목회를 할 자격이 없다고만 생각하고 교수만을 하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저는 지난 1주일 동안 제 일생을 돌이켜보면서 영어 단어 두 개를 생각했습니다. 'reluctant'와 'servant'입니다. 'reluctant'란 ‘마지 못해’ ‘끌려 다니는’이란 뜻이며 'servant'는 종을 말합니다. 제가 그동안 'reluctant servant'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목사가 되길 원하고 노력한 목사님들도 많이 있는데 저는 어떻게든 안하려고 했습니다.

제 모습이 마치 본문의 모세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세를 쓰시려고 부르시는데 모세는 “아닙니다. 어째서 날 부르십니까?”하고 5번이나 거절을 했습니다. 

첫째 이유는 자존감의 부족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합니까? 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격려했습니다. 

둘째 이유는 권위의 부족입니다. “저는 목동에 불과한데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네 일이 아니라 내 일을 할 것이다. 내가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누가 너를 보냈느냐고 묻거든 ‘영원 전부터 자존하신 그분이 보냈다’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내 권위가 아니고 ‘나의 권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이유는 자신감의 부족입니다. “누가 저를 믿겠습니까? 전 아무런 능력도 없는 목동에 불과합니다”라고 거절하자 하나님께서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하셨습니다. “제 양치는 지팡이입니다.” “그것을 던져 봐!” 모세가 던졌더니 그것이 뱀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꼬리를 잡으라 하셔서 꼬리를 잡자 뱀은 다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너는 너에게 말하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하나님이다. 너는 마른 막대기에 불과하지만 그 마른 막대기가 내 손에 들리면 위대한 지팡이가 되는 거다. 가라!” “그래도 저는 못가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문둥병이 생기게 하셨다가 낫게 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능력으로 나의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라는 것이다. 너는 내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이다.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가라!” 전능자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넷째 이유는 말주변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가 어떻게 바로 왕 앞에서 말을 하겠습니까?”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으리라.”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말을 잘 못하면 말을 잘 하는 네 형을 네 대변인으로 주겠다.”고 하십니다.

다섯째 이유는 모세가 “하나님, 다른 사람 보내세요. 저는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분을 내사” 모세를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인간이고 나는 하나님이다. 너는 내 말 그대로 순종만 하면 돼. 그게 전부야!” 모세는 할 수 없이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냈고 결국 이스라엘의 창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reluctant servant, 할 수 없이 끌려 들어가는 모세의 모습이 제 모습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하나님께서는 제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쓰시기 위해서 미리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제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6.25까지의 제 초등학교와 중학교 1학년까지의 시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영원하고도 유일한 영웅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에게 예수님보다 위대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1학년 때 신사참배를 시켜도 제 누이와 저만 절을 안 하고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평양에서 제가 다니던 교회의 주기철 목사님, 방계성 목사님, 백인숙 전도사님과 조만식 장로 등 몇 분의 장로님들이 순교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목숨을 걸고 섬겨도 마땅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너의 영웅이 누구인지 쓰라는 초등학교 때의 과제가 있으면, 북한 공산주의 아래에서 선생님들은 김일성 장군을 쓰기를 원하고 모두 그렇게 썼지만, 저는 예수님이라고 썼습니다. 어려서부터 예수님은 저의 최고의 모델, 영웅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마지막 3년 동안은 주일에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선생님의 매도 많이 맞았지만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순교적인 일편단심, 예수님 한 분만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영원한 영웅이 되셨고 지금 이 시간에도 “주 예수보다도 귀한 분을 없네” 라고 고백합니다. 

기적의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5살짜리 남동생이 죽었다고 온 동네 사람들이 통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불로 덮어 놓았던 동생을 끌어안고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다섯 살인 이 어린아이를 데려 가시다니요. 이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얼마를 기도했는지, “아멘!”하고 나니 동생이 숨을 쉬면서 눈을 떴습니다.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릅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아이가 살아났다고 소리를 지르며 “상복이가 기도해서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기적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한 번은 주일에 교회 가야 하는데, 도저히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습니다. 제가 누이에게 “누나! 우리 비 멈추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하고 했더니 “네가 기도해” 라고 해서 제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교회를 가야 하는데 이렇게 비가 억수같이 오니 비를 멈춰주십시오. 아멘.” 그러자 비가 딱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시간을 걸어서 교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기도를 들으시고 비도 멈추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제 신앙과 인생의 뼈대를 이루었습니다. 

저는 또 공급하시는 하나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6.25 당시 먹을 것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국립 중학교에 합격을 하니 도장을 가져오라고 해요. 어딘가에 도장을 찍고 작은 쌀배급표 한 장를 받았는데, 그것이 있으면 한 달에 쌀 2말을 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소년 가장이 됐어요.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우리 식구들의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또 우리 집 옆에 큰 자동차 정비공장이 있었는데, 국군과 UN군이 평양에 들어오면서 그 공장을 차지했습니다. 제가 어쩌다 그 곳에 취직을 해서 군인들의 밥을 해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먹고 남은 음식들을 집에 가지고 가라고 해서 밥을 다 가져다 우리 식구들을 먹였습니다. 11살 어린 저를 통해 우리 가정에 이런 일들을 하게 하셨습니다. 돌이켜 보니 제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저를 목사로 만드시려는 훈련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또 섭리의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고 있었는데, 제가 저희 집에 막 들어서자 제 두 형님과 누이가 보따리를 들고 어머니 앞에 서서 어디론가 떠나려고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께서 밖에서 뛰어 들어오는 저를 내려다보시며 “얘도 데려가!”라고 하셨습니다. 형님이 “가자!”고 해서 저는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떠났습니다. 그때 제가 1분만 늦었어도 지금 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동생들은 아직도 평양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후에 들으니까 아버지는 저를 어리다고 내려 보내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머니께서 순간적으로 용기 있게 떠나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로서 은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섭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폭격에 돌아가시고 여동생이 불구자가 되는 전쟁의 비극을 봤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미리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고 저를 인도하셔서 결국 목회자로 삼으시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남한에 와서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나의 3,4년 동안의 삶은 외로움과의 투쟁이었습니다. 이산가족으로 홀로 떨어져 부모가 없는 외로움, 이제는 집에 돌아갈 수가 없는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들이 있습니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길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새벽마다 혼자 교회에 가서 평양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을 위해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나의 외로움을 누구에게 말하며 누가 내 외로움을 들어 주겠습니까? 학교에서 학부형을 데리고 오라고 하면 저보다 3살 많은 누나를 데리고 간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멀리 나무에 기대서서 부모와 같이 학교에 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극심한 외로움을 경험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제게 고독과 시련 통해 기도 안에서 스스로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학교 때 저를 위하여 또 다른 기회를 주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3년 동안 부산역 앞 공회당 빌딩에서 다른 중학생 2명과 함께 미국 사람에게 직접 영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북한의 교육과 남한의 교육의 차이는 극과 극이어서 제가 도저히 남한의 교육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단 한 가지, 영어 공부는 남한 아이들이나 저도 똑같이 ABC로 출발하는 유일한 과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영어에서 앞서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훗날 한국 교회를 대표해서 아시아와 세계를 섬기라고 준비시킨 것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서서히 저를 준비 시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학생 때는 가르치는 은사를 개발하게 하셨습니다. 중학교 1, 2학년 때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보조교사로, 중3때는 학교에서 저에게 동급생들의 고교입학시험 준비를 위해 매일 아침 1시간 일찍 와서 영어를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를 영어와 가르치는 것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서울에서의 고등학교 시절은 가난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련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거할 것이 하나 없는 어둠의 시간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말고는 도움을 구할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작은 기도 하나 하나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고3시절 가장 어려웠던 그 시절에 저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인생에는 시련의 마디가 많은데, 어린 고등학생에게 인생의 밧줄에 마디가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그 마디들이 기도로 하나, 둘, 셋 풀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마디든, 어떤 어려움이든 기도하면 풀린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기도로 마디가 풀려나가는 것을 보고 통쾌함을 느끼며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차곡차곡 훈련시키고 계셨습니다.

고등학교시절에는 초등6학년 가정교사 일을 3년간 했고, 대학생 때는 고등학교 3학년들도 가르치며 대학을 다녔습니다. 때로는 잠시지만 친구들과 친척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오갈 데가 없을 때 친구들이 저를 함께 시험공부를 하자며 집으로 초대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번 일주일은 이 친구, 다음 일주일은 저 친구 집에서 지내며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친구와 친척집을 전전한 것을 세어보니 26번이나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갈 곳도 잘 곳도 먹을 것도 없어서 가방을 들고 남산에 올라갔습니다. 남산 꼭대기에서 남산 아래에 있는 집들을 쳐다보면서 ‘저렇게 집이 많고, 저렇게 불빛이 많은데 어째서 내가 잘 집은 없는가?’라고 절망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의 손길을 펼쳐주셨고 결국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저는 JOY클럽 창립에 참여했습니다. 중학교 3년 동안 미국 사람에게 영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고등학교에 가서도 매주 미국 사람들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결국 6년을 미국 사람에게 직접 영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역사, 저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JOY클럽에서 저는 교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저는 그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제가 교수였거든요. 미국 사람이 저를 “김 교수”(Professor Kim)라 부르고 친구들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교수가 돼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려면 영어도 잘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는 제게 길이 어떻게 열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키셔서 교수의 꿈을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총 주셔서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에서는 비교적 안정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대학교 3학년 때 ‘전국 대학생 영어웅변대회’에서 어쩌다 1등을 했습니다. 그 후로 갑자기 서울에서 김상복이라는 대학생이 영어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외국에서 유명한 손님들이 오시면 통역자로 저를 찾는 것입니다. 많은 유명 인사들의 연설을 통역했는데, 그 중에 홀드크로프트 박사의 통역을 하면서 열흘 동안 전국 순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열흘이 끝나자 그 분이 저에게 “나와 미국에 같이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길을 위해 기도해 왔는데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결국 그분의 전적인 도움으로 저는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바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제 아내는 제가 어디로 무엇을 하러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신학교를 “세미너리”(seminary)라고 하는데 제 아내는 제가 "세미나"(seminar)에 가는 줄 알았어요. 그 당시에 그런 단어들을 제대로 알았나요? 가서 보니 그곳이 세미너리요, 바로 목사 양성소였습니다. 저를 그곳에 데리고 간 사람은 그 학교의 부이사장이었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이분들이 저를 목사로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큰일 났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는, 맨 앞자리에 앉으면 교수가 영어로 질문하면 곤란하니까 맨 뒤에서 미국 학생들 등 뒤에 숨어 앉았습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이 어떻게 여기 오게 됐는지 한 사람씩 이야기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오페라 가수였던 학생, 천문학을 공부하던 학생, 의사였던 학생등, 저만 빼놓고 모든 학생들이 하나님이 부르셔서 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은 하나님이 불러서 오는 곳이구나. 나는 홀드크로프트 박사가 불러서 왔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제 차례가 가까워 오는데 큰일 났습니다. 하나님이 불렀다고 할 수도 없고, 홀드크로프트 박사가 불렀다고 할 수도 없고. 그런데 할렐루야! 종이 땡땡땡! 치더니 수업이 끝났습니다. 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야 오는 학교를 부르지도 않은 제가 온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가 원치 않는 공부를 하려고 하니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고민과 번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적이 좋아야 박사학위 공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순전히 성적을 잘 받으려고 열심히 공부 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2년간 고생한 것을 제 아내는 전혀 모릅니다. 제가 모르고 신학교 잘 못 왔다고 하면 제 아내는 어떡합니까? 그러니 혼자서 고심하면서 그냥 공부만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이야. 내가 절대자야. 내가 절대 주권자야.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내가 보낸 것이고 너는 내 목적을 위해서 생명을 주었는데 네가 네 멋대로 살려고 그러는구나!” 그래서 29세에 절대 통치자, 주권자 하나님을 만나고 제가 거기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나를 내 놨습니다. 내 젊음의 비전, 꿈 다 내려놓고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하십시오.” 2학년 말이에요. 저는 그때 그 자리에 앉아서 일어나지 못하고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온 영혼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나를 주관하셔서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찬양을 수없이 불렀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제 멋대로 살려고 한 것을 용서 해 주십시오. 이제부터는 말씀만 하십시오. 하나님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자 마지막 1년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아,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니까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지요. 그렇게 공부하고 나니까 저보고 졸업식에서 수석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를 위로 해 주신 것 같아요.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그렇게 해서 “내가 너를 쓰려고 하는 거야. 너를 내 종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야.” 이렇게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나는 교수 지망생이니까 또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미국 교회에서 저를 목사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 할 사람이여서 목회는 못합니다.” 그렇게 씨름하다가, 씨름하다가, 결국은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미국 교회 목회를 9년을 해서 목회가 뭔지를 조금 알았어요. 

처음부터 저는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인디아나에서 워싱턴에 있는 신학대학으로 전근 왔을 때, 아, “이제는 목회를 그만하고 전임교수만 해야지!”하고 교수만 하는데 3년 반은 잘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와서 교회 목회하자고 못살게 합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도 목회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제 목회는 끝나서 안 한다고 버티다, 버티다, 결국 할 수 없이 벧엘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축복해주셔서 11년을 목회를 하고 나니까 한국에서 저를 또 한국으로 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 간다고, 못 간다고 하고 있는데 에든버러에서 하나님께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 그래서 20년 전에 한국 할렐루야교회에 온 것입니다. 보니까 미국사람들의 목회, 한인교민들의 목회, 한국의 목회로 그냥 끌리고 끌려서 들어가게 된 것 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송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난 42년 동안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써 주신 것 이 시간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온전히 드립니다. 저는 교회를 통해서 특별히 벧엘교회와 할렐루야교회를 통해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벧엘교회를 개척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통해서 모래알 같이 작은 한국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고 힘 있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할렐루야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름답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지난 20년 동안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서, 헌신을 통해서, 사랑을 통해서, 섬김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교수로서, 선교센터에서, 교회에서, 국제사역을 통해서 우리가 본 것은 하나님께서 한국을 선택 하셨고 한국의 세계적인 위치를 보여 주셨고 한국 교회와 한국을 들어서 하나님이 장차 세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소망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희망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능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언어의 훈련과 국제적인 훈련을 통해서 아시아를 섬기게 하셨고 이제 세계를 섬기게 하시면서 한국과 한국교회를 사용하시려는 손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저를 준비시켰습니다. 오직 예수, 죽도록 충성. 중학교 때 외로움 속에서도 새벽기도와 공부로 저를 연단해 주셨고, 고등학교 때 가장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일생에 모든 고난과 시련을 기도로, 하나님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제가 헌신한 다음부터 하나님의 좋으신 손길이 계속해서 저를 이끌어 주심을 저는 평생에 체험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을 할렐루야교회의 담임 목사로 마치게 하시고 45년의 시간을 섬기고 오늘 여러분과 함께 목회를 마치게 된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은퇴는 하지만 당장 제가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후임이 도착할 때까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오늘로 담임 목사를 마무리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제 가족들에게 깊은 애정을 바칩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살아계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기도에 응답 하시는 하나님, 제가 영원히 사랑하는 그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축복이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도 평생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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